블루레이와 HD-DVD가 채택한 AACS
차세대 광미디어인 블루레이와 HD-DVD는 고용량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어 디지털 방송과 발맞춰 고해상도 영상의 보급을 앞당길 주인공으로 대접받는다. 우리나라는 소니가 이끄는 블루레이 진영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소니픽처가 블루레이 영화 타이틀을 공급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블루레이 플레이어 ‘BD-P1000’을 내놓았다.
블루레이와 HD-DVD 타이틀은 온라인 음악 서비스나 VOD처럼 DRM에 보호를 받는다. 업계에서는 블루레이와 HD-DVD 둘로 나뉘어 팽팽하게 경쟁하고 있는 만큼 각자 다른 기술의 DRM을 이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예상과 달리 두 진영은 AACS 컨텐츠 보호 기술을 함께 쓰기로 합의를 이뤘다.
AACS는 애플의 DRM 페어플레이를 처음으로 해킹한 존 요한슨에 의해 무너진 DVD의 CSS를 보완하려고 만든 보호 기술이다. 도시바, 마이크로소프트, 마츠시다, 소니, 워너, 월트디지니, 인텔, IBM 이렇게 8개 회사가 모여 만든 저작권 보호 기술 책정 연합체(AACSLA)에서 내놓았다.
CSS가 40비트의 암호화 기법으로 컨텐츠를 저장한 것과 달리 AACS는 128비트의 암호화 기법을 써 해킹이 쉽지가 않다. CSS는 미디어와 타이틀마다 고유 키를 지닌다. 이 키의 조합으로 데이터를 암호화해 저장하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디코딩키만 알아내면 얼마든지 복제를 할 수 있다. AACS는 미디어, 타이틀 그리고 플레이어까지 고유 키를 지녀 공격이 있는 부분을 차단할 수 있다.
CSS나 AACS는 원본 파일의 복사나 복제를 막는 기술이다. 파일을 그대로 복사할 수는 있어도 암호화로 자물쇠가 채워놓아 소프트웨어 플레이어나 다른 기기에서 재생할 수 없다. 암호 코드를 그대로 두고 컨텐츠를 복제하는 방법도 있다. 재생을 하는 동시에 화면을 캡처해 복사하는 방법이다. PC에서 재생하면서 각 프레임마다 원본 해상도로 한장씩 캡처해서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으로 이어버리면 원본과 똑같은 품질은 아니지만 비슷한 수준의 복사본을 만들 수 있다. DVD는 CSS 보안 코드가 해킹되기 이전까지 이런 방법으로 복제되었고, AACS로 걸어잠근 영화가 같은 방법으로 복제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를 막고자AACS에는 미디어를 재생하는 소프트웨어 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기기까지 복사 방지를 위한 보안 장치를 달아놓았다.
그래픽카드와 디스플레이 기기 사이의 디지털 인터페이스인 DVI와 HDMI에 적용되는 HDCP(high-bandwidth digital content protection)가 대표적인 하드웨어 잠금장치다. 인텔이 개발한 이 기술은 블루레이와 HD-DVD 모두 이용하고 있다. DVI와 HDMI는 디지털 디스플레이 기기와 그래픽카드를 연결하는 디지털 인터페이스로서 DVI가 나온 뒤 오디오 신호까지 함께 보낼 수 있는 HDMI가 개발되었다.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디지털 TV는 DVI와 HDMI 입력 단자를 갖추고 있다. PC는 HDCP에 맞춘 TMDS(그래픽카드에 쓰이는 신호 변환 부품)를 달거나 HDMI 단자를 지닌 그래픽카드를 꽂아야 제한 없이 보호된 컨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HDCP는 디지털 비디오 신호를 전송하는 영상 소스 기기(PC에서는 그래픽카드)에서 외부로 전송할 때 HDCP 기술을 적용해 데이터를 암호화한다. 이를 수신하는 디지털 TV나 모니터는 암호화된 데이터를 해독해 화면에 표시한다. 이 방법으로 재생을 위해 디코딩한 영화나 음악 소스가 외부 디스플레이나 재생 장치로 나가지 않고, 곧바로 재인코딩 과정을 거쳐 복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보안 기술은 소스 기기와 디스플레이 장치 중 어느 한쪽이 HDCP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고해상도 HD 영화를 감상할 수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물론 HD 영화를 재생할 때 DVI가 아닌 D-Sub나 컴포넌트 출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
HDCP 규격에 맞는 실리콘이미지사의 ‘DVI 트랜스미터’가 소스 기기와 디스플레이 장치를 연결하는 방법을 나타낸 그림이다. | |||
디스플레이가 HDCP를 따르고 있어도 소스 기기가 HDCP 관련 규격을 지키지 않으면 HD 영상을 재생하지 못한다. | 2002년 한일 월드컵 특수를 타고 팔려나간 디지털 TV라면 HDCP 호환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
PC는 아직 준비 덜 끝나
디지털 영상 신호를 알아채는 TV와 모니터가 널리 보급되었지만 HDCP 요구 조건까지 만족하는 제품은 그다지 많지 않은 실정이다. 디지털 TV가 쏟아지기 시작하던 2002년은 HDCP 기술이 공개된 시기라서 그 당시 디지털 TV를 샀다면 HDCP 호환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때는 블루레이나 HD-DVD 등의 차세대 광 미디어가 고해상도 영화 보급에 쓰일 것이라 생각하도 못했던 상황이었다.
2004년까지도 대부분의 디지털 TV가 DVI나 컴포넌트 입력 단자만을 갖추고 있었다. HDMI 단자를 갖춘 디지털 TV는 LCD와 PDP의 값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2005년부터다.
HDMI는 2004년 1.1 규격이 정해지면서 디지털 비디오와 오디오 신호를 하나의 케이블로 전송한다는 장점 때문에 가전 시장의 표준 디지털 입출력 인터페이스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모든 디지털 TV가 HDMI 단자를 갖추고 있다. 최근 디지털 TV를 샀다면 고해상도 영화 감상에 걸림돌은 없는 셈이다.
가전 업계가 2005년부터 HDMI 인터페이스를 표준 디지털 인터페이스로 채택한 데 반해 PC 업계는 올 여름부터 HDCP 관련 제품을 내놓고 있다. 그래픽 프로세서 제조사인 엔비디아와 ATi는 작년부터 HDCP 기술을 홍보해 왔다. 당시 두 회사는 저마다 우수한 기술력으로 HDCP 기술을 갖추었다고 떠벌렸지만 어디까지나 ‘지원 가능’이었지 실제 HDCP에 대한 준비를 마친 제품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문제가 되기도 했다. HDCP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자 엔비디아가 지난 여름에 듀얼 그래픽 프로세서 그래픽카드인 지포스 7950 GX2에 HDCP 키롬을 달아 내놓았다. 그 뒤 나온 지포스 7950GT와 7900GS도 HDCP를 ‘지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ATi는 지난 9월에 내놓은 라데온 X1950 XTX, X1950 프로, X1650 XT가 HDCP를 지원(역시나!)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HDCP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그래픽카드는 모두 6개다. 이 가운데 지포스 7950 GX2를 뺀 나머지 제품은 그래픽카드 제조사의 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말로만 HDCP에 대한 준비가 끝났다는 엔비디아와 ATi와 달리 그래픽카드 제조사는 HDCP 기술이 기본으로 적용되는 HDMI 출력 제품을 내놓고 있다. 이들 그래픽카드의 HDMI 인터페이스는 비디오 오디오 신호를 한꺼번에 전송한다. 때문에 사운드카드나 오디오 코덱에서 디지털 신호를 건네받아 그래픽카드의 HDMI TMDS를 거쳐 HDMI 신호로 바꾼 뒤 외부 기기로 전송한다.
HDCP 기술을 갖춘 지포스 7950GT와 7900GS는 사진처럼 뒷면에 키롬이 달렸다. | MSI가 내놓은 ‘NX7600GT 다이아몬드 플러스’는 HDMI 단자를 갖춰 HDCP 기술을 만족한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팔지 않는다. | ||
그래픽카드의 HDMI 단자다. 모니터보다는 디지털 TV와 연결을 쉽게 하는 데 의미가 있다. |
HDCP 모니터는 아직 극소수
PC 모니터 역시 블루레이와 HD-DVD 기반의 영화를 즐기려면 HDCP 기술을 갖고 있어야 한다. 다만 모니터는 오디오 신호까지 전송하는 HDMI 단자를 갖출 필요가 없다. 아직도 대부분의 모니터가 D-Sub와 DVI 인터페이스를 지니고 있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HDCP와 관련 없어 차세대 미디어로 HD 영화를 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현재까지 HDCP 준비를 마쳤다고 알려진 LCD 모니터는 델의 20.1인치, 24인치 그리고 30인치 제품 등 극소수일 뿐이다.
적게나마 한두 모델이라도 HDCP LCD 모니터를 내놓은 대기업과 달리 시장에서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제품은 HDCP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뷰소닉은 2007년부터 HDCP 제품을 내놓겠다고 밝혔는데, 다른 중소 LCD 모니터 제조사 역시 비슷한 시기에 대응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제조사 | 이름 | 화면크기 |
NEC | 멀티싱크 20WMGX2 | 20인치 |
게이트웨이 | FPD2185W | 21인치 |
HP | F2105 | 21인치 |
뷰소닉 | VP2330WB | 23인치 |
삼성전자 | 싱크마스터 244T | 24인치 |
삼성전자 | 싱크마스터 214T | 21인치 |
삼성전자 | 싱크마스터 930MP | 19인치 |
삼성전자 | 싱크마스터 940MW | 19인치 |
삼성전자 | 싱크마스터 242MP | 24인치 |
소니 | MFM-HT95 | 19인치 |
소니 | MFM-HT205 | 20인치 |
HDCP 지원 LCD 모니터. 모델 번호가 조금 다르고, HDCP를 지원하지 않는 제품도 함께 나오고 있다.
HDCP 준비를 마친 모니터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은 델 ‘2407WFP’ 24인치 LCD 모니터로서 HDCP 규격을 만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고음질 다채널은 HDMI 1.3부터
블루레이나 HD-DVD 영화는 고화질이 특징의 전부인양 알려졌지만 오디오에서도 큰 발전을 이뤘다. DVD는 DTS와 돌비디지털 규격으로 5.1채널 또는 7.1채널의 다채널 시대를 열었지만 음질 향상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용량 제한으로 한계를 맞은 DVD와 달리 블루레이와 HD-DVD는 DVD의 몇 배에 달하는 저장 공간으로 고화질 비디오와 함께 고음질 다채널 오디오 기술인 돌비 트루 HD와 DTS 마스터 HD가 적용된 사운드를 담고 있다.
이들 새로운 오디오 포맷은 손실 적은 압축 기술이어서 각 채널마다 24Bit/96KHz의 오디오를 최대 8개 채널까지 저장한다. 하지만 이는 최신 HDMI 규격이 뒷받침 되었을 때 전송할 수 있다.
HDMI 인터페이스는 초기 1.1부터 1.2, 1.2a 그리고 가장 최근에 나온 1.3 규격이 있다. 1.2a까지는 전송 속도가 165MHz(4.95Gbps)라서 1,920×1,080 또는 1,600×1,200 해상도 영상이나 24bit/192Khz DVD-오디오를 전송하는 데 그쳤다. 1.3 규격은 1.2a보다 두 배 늘어난 340MHz(10.2Gbps)라서 1,920×1,080 화소 영상 신호와 함께 돌비 트루 HD와 DTS 마스터 HD의 고음질 다채널 오디오 신호를 함께 전송할 수 있다. 따라서 블루레이나 HD-DVD 플레이어가 HDMI 1.3 규격이 아니라면 차세대 미디어의 뛰어난 음질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다.
당장 오디오 규격까지 갖춘 HDMI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블루레이와 HD-DVD 영화가 돌비 트루 HD와 DTS 마스터 HD를 채택한 이상 HDMI 1.3 규격이 빠르게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HDMI 1.3 규격을 따른 제품은 나오지 않았다. HDMI 1.3 규격이 지난 7월에 정해졌기 때문에 아직 이를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현재 이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알려진 기기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3이 유일하다. 하지만 오디오 신호를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바꾸는 AV 리시버는 제품 발표는커녕 예정에 있는 것도 알려진 바 없다.
HDMI 인터페이스는 HD 영상과 고품질의 차세대 음성 포맷까지 함께 전송한다. |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3가 현재로는 HDMI 1.3 규격을 따르는 유일한 재생장치다. |
블루레이와 HD-DVD 아직은 갈 길 멀어
차세대 광미디어를 통한 고화질 디지털 미디어 시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DVD에서 불거진 문제를 보완하고 수정해 불법 복제를 막겠다고 꺼내든 AACS나 HDCP라는 칼 때문에 모든 소비자가 예비 범죄자 취급을 당하고 있지만 다행히 아날로그 출력에 제한을 두지 않아 초기 고화질 디지털 컨텐츠 보급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디지털 TV와 HD-DVD나 블루레이 영화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없는 만큼 관련 제품 구입은 시장 흐름을 좀더 지켜본 뒤로 미뤄야 할 것이다. PC 역시 차세대 미디어를 알아채는 드라이브를 단다고 준비가 끝나지는 않는다. 고화질 컨텐츠와 차세대 영상 매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아직은 PC를 업그레이드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