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중립성

모두가 평등한 인터넷 세상의 첫 걸음

2016-05-14     석주원 기자
얼마 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인터넷 서비스의 차별을 없애는‘망 중립성’강화 규정을 확정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작년 초만 하더라도 미국 워싱턴 D.C. 항소법원은 FCC는 통신사가 콘텐츠, 애플리케이션에 대해‘비차별’원칙을 지키도록 강요할 권한이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었다. 이후 FCC는 몇 차례 강화정책을 제시해 왔고, 결정적으로 작년 1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성명을 통해 모든 인터넷 트래픽은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발표한 이후, 올 2월 초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것과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2월 26일 FCC 전체 회의에서 3:2로 법안이 통과되면서 망 중립성 강화를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망 중립성’이란 무엇일까? 석주원 기자 

망 중립성 논란, 왜 발생할까?

 망 중립성이 왜 필요한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망 중립성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위키백과에서는 망 중립성에 대해‘네트워크 사업자는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게 취급하고 어떠한 차별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즉, 인터넷 망 사업자(Internet Service Provider, 이하 ISP)가 특정 업체나 콘텐츠의 유통을 제한하거나, 더 유리하게 망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망 중립성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미국 콜롬비아 법대의 팀 우(Tim Wu) 교수로,“망이나 이용자에게 해가 된다는 증거가 없다면 통신사업자는 트래픽을 차별할 수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팀 우 교수는 통신사업자에 의한 특정 단말기의 이용 제한이나 애플리케이션의 이용 제한 등의 행위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통신사업자가 망을 관리해야 하는 필요성과 망의 이용제한이 초래할 통신시장의 잠재적 위험성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망 중립성 원칙을 제안한 것이다. 처음 인터넷이 도입됐을 당시에는 속도가 느린 탓도 있겠지만, 트래픽도 크지 않았고 콘텐츠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공급하는 업체도 많지 않았다. 개인과 개인과의 연결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망의 중립성에 대한 논의 자체가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과 관련된 사업들이 점차 성장하고, 전문적인 콘텐츠 생산자 및 공급자들이 등장하면서 상업적인 인터넷 망 이용에 대한 논란이 서서히 발생하기 시작했다. 콘텐츠 생산자의 기업화는 이전까지와는 비교되지 않는 막대한 트래픽을 발생시켰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통신사업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늘어갔다. 이쯤 되자 통신사업자들은 콘텐츠 생산자에게 비용의 일부를 부담시키려 했고, 이로 인해 실제로 특정 서비스의 이용이 정지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이런 문제는 인터넷의 발상지인 미국에서도 발생했었는데, 미국의 통신사업자들이 구글에게 통신망 사용료를 지불하라고 압박을 가한 적이 있었다. 구글은 통신사업자들의 압박에 굴하지 않았고, 결국 일부 통신사들이 구글 이용에 제한을 걸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아 통신사업자들이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콘텐츠 소비자들이 구글 연결이 제한되는 통신망을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현재의 통신망은 망 사업자와 콘텐츠 생산자, 그리고 콘텐츠 소비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있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미국의 망 중립성 논의 

 미국에서 망 중립성 논란이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미국은 1934년 제정되고, 1996년 개정된 통신법을 통해 통신 관련 사업을 4개의 타이틀로 분류했다. 망 중립성 논란에서 핵심이 되는 ISP는 이 분류에서 타이틀1에 해당되는데, 문제는 FCC가 타이틀1에 대해서는 부수적인 관할권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1월에 워싱턴 D.C. 항소법원이 FCC에게 망 중립성을 규제할 관련 권한이 없다고 판결을 내린 것도 이 분류에 따른 것이다. 2000년대 초반 FCC는 케이블 인터넷과 DSL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정보 서비스(타이틀 1)로 분류하여 비규제 영역으로 취급했다. 그러자 ISP들이 경쟁사의 서비스를 차단하는 반경쟁적 행위가 대거 발생하게 된다. FCC는 해당 ISP 업체에 벌금을 부과하고, 부당한 서비스 차단을 규제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후에도 ISP의 불공정 행위는 멈추지 않았고, 2004년 FCC 위원장 마이크 파월은 콘텐츠 접근의 자유, 애플리케이션 이용의 자유, 단말기 접속의 자유, 서비스 정보 획득의 자유를 골자로 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FCC의 망 중립성에 대한 첫 번째 입장 표명이기도 했다. FCC는 이듬해인 2005년에도 비슷한 내용의 성명을 다시 한 번 발표했다. 3항 까지는 거의 같은 내용이고, 4항을 경쟁 혜택의 자유로 변경했다. 소비자는 망 사업자, 애플리케이션 및 서비스 사업자, 콘텐츠 사업자 등의 경쟁에 따른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성명은 물론 법적인 강제성은 없지만, 정부의 정책적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공약 중 하나로 망 중립성 확립을 내세웠는데, 대통령에 취임한 해인 2009년 10월 FCC를 통해 이전에 발표된 성명에 비차별성 원칙과 투명성 원칙을 추가한 위원회 규칙 시안을 발표하고, 망 중립성 확립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FCC는 위에 언급한 규칙을 바탕으로 망 중립성 확립을 위한 법제화를 시도했는데, 컴캐스트가 FCC에게는 타이틀1에 대한 규제 권한이 없다는 소송을 제기해 승리하면서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FCC가 여기에 굴하지 않고 곧바로 Open Internet Rule(OIR)를 발표하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OIR은 투명성, 차단금지, 불합리한 차별 금지, 합리적인 망 관리를 4대 핵심원칙으로 삼았는데, 내용적으로 이전에 발표한 가이드라인을 한층 더 강화한 모습이었다. FCC의 OIR이 발표되자, 이번에는 버라이즌이 워싱턴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컴캐스트와 마찬가지로 FCC가 망 중립성 규제를 채택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T-모바일도 버라이즌에 이어 소송에 동참하면서 ISP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한편으로는 망 중립성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에서 OIR이 망 중립성을 확립하기에는 규제안이 약하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FCC의 OIR이 진퇴양난에 빠진 가운데, 서두에 언급한 대로 2014년 1월 워싱턴 D.C. 항소법원은 ISP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OIR이 법적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 판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망 중립성 원칙 자체를 부정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FCC의 망 중립성 규제권한 자체는 인정하고, OIR 역시 유효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FCC가 타이틀1으로 분류되는 ISP를 법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그렇다면 지난 2월 말에 있었던 망 중립성 확립 법안은 어떻게 통과될 수 있었을까? ISP들에게 번번이 방해를 받았던 오바마 정부는 아예 근본적인 부분을 수정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지금까지 통신법상 타이틀1으로 분류돼 있던 ISP들을 커먼 캐리어(common carrier), 즉 공공사업자로 지정해 타이틀2로 재분류 해버렸다. 이를 통해 FCC는 이제 합법적으로 망 중립성 규제안을 시행할 수 있게 됐지만, 실제로 법을 적용하는 데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논의되어야할 사항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어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유럽의 망 중립성 논의

 유럽은 망 중립성 논의가 상당히 늦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이다. 각 국가별로 망 중립이 법제화 된 곳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유럽연합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망 중립성 확립을 위한 행동에 나선 것은 2012년부터다. 이에 앞서 2011년 12월에 유럽의 규제 기관 연합체인 BEREC(Body of Regulators for Electronic Communications)은‘망 중립성에 있어서의 QoS에 대한 가이드라인(A framework for Quality of Service in the scope of Net Neutrality)’을 발표했다. BEREC은 이 가이드라인에서 서비스 품질 저하는 전반적인 인터넷서비스 및 인터넷을 이용하는 개별 애플리케이션의 품질 저하로 구분하고, 인터넷서비스의 최소품질 보장을 위한 정책수립 시 정책수단 선택의 원칙으로 유효성, 필요성, 비례성을 제시했다.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의 초국가적 집행기관인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2012년 7월부터 망 중립성에 대한 공공 자문을 실시했고, 유럽연합은 2013년 유럽 내 메이저 통신사들을 대상으로 일부 서비스에 대해 속도 제한을 실시했는지 여부를 불시 조사하면서 망 중립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와 관련해 유럽위원회는 유럽연합 경쟁법에 근거해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불법적인 행위를 해 왔는지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2014년에 이르러서야 유럽연합 차원에서의 법적 장치가 마련됐다. 작년 4월 유럽연합은 통신개혁 법안을 채택했는데, 여기에 망 중립성 보호 조항이 포함된 것이다.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통신ㆍ네트워크 기업이 인터넷 콘텐츠 및 인터넷TV 서비스에 과금하거나 차단과 차별을 할 수 없고, 유럽연합 내 모든 사용자에 대한 평등하고 자유로운 인터넷 접속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법안이 공개되자 유럽 내 통신사업자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유럽통신네트워크운영사협회(European Telecommunications Network Operators Association, 이하 ETNO) 회장은 이런 조치가 유럽 소비자들이 고품질 서비스를 받는데 피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유럽 통신 업계가 이로 인해 2020년까지 70억 유로(약 8조 4200억 원)의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법안은 2014년 하반기 최종 승인을 완료할 예정이었는데, 작년 말 유럽연합 의장국이었던 이탈리아가 망 중립성 개념을 약화시킨 새로운 규정을 제안하면서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유럽의 망 중립성 논란은 얼마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기기 박람회 MWC2015에서 다시 이슈가 되기도 했다. FCC의 톰 휠러 위원장은 MWC2015 기조연설에서 망 중립성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이런 조치가 통신업계의 성장을 저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유럽 통신 업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애초에 MWC는 통신업계 관계자들이 주체가 되는 행사인 만큼 망 중립성 강화가 달갑게 다가올 리 만무하다. ETNO의 전 회장이었던 루이지 감바델라는 미국의 광대역망이 급속히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유로운 시장 경쟁 덕분이었다고 전제하고, FCC의 망 중립성 강화는 시장 경쟁력 약화를 초래해 타국의 추격을 허용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현재 유럽에서 망 중립성이 법적으로 보장한 나라는 네덜란드와 슬로베니아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 업계의 반발이 그 어떤 지역보다 거세고, 국가별 이해관계와 유럽연합의 정책이 엇갈리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쉽게 결론이 도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의 망 중립성 논의

 일본의 망 중립성 논의는 미국과 유럽의 영향으로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우리나라 방송통신위원회의 업무를 맡고 있는 일본 총무성은 2006년 12월‘망 중립성에 관한 간담회’를 설치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이 간담회에서는 ISP의 비용문제, P2P 서비스의 트래픽 제한 문제 등이 거론됐으며, 이용자들이 선택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총무성은 논의를 거쳐 2007년 9월에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여기에는 네트워크 이용의 공평성과 네트워크 비용부담의 공평성을 주요 과제로 선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10월에‘신경쟁촉진프로그램2010’을 발표하고 망 중립성에 대한 세 가지 원칙을 확립했다. 첫 번째는 소비자가 네트워크를 이용해 자유롭게 콘텐츠 응용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것, 두 번째는 소비자가 기술기준에 맞는 단말기로 네트워크에 자유롭게 접속하고 단말기 간에 유연하게 통신할 수 있도록 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비자가 통신계층 및 플랫폼계층을 적정한 가격으로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 주요 내용이다. 2008년 초에는‘인터넷정책간담회’를 통해 소비자, 통신사업자, 콘텐츠 사업자 등 각각의 이해관계자 시점에서 망 중립성에 대한 다양한 방향성이 제시되기도 했다. 일본의 망 중립성 논의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정책 방향성이 조금 다르다. 미국이 보편적인 평등을 강조하고 있고, 유럽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반면, 일본은 통신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및 소비자 등 각 계층 간의 형평성을 바탕에 깔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인터넷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급격하게 증가하는 트래픽에 대한 비용 문제다. 특히, 수년 전부터 보편화된 P2P 서비스는 트래픽 과다 발생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데, 일본 인터넷 사업자 협회에 의하면 인터넷 가입자 중 1%의 P2P 이용자가 전체 트래픽의 60%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한다. 소수에 의한 과도한 트래픽 발생으로 인한 서비스 혼잡과 그에 따른 추가 비용을 과연 누가 어떻게 부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도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는 중이다. 전 세계의 인터넷 속도 순위를 보면 측정 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이 대체적으로 1ㆍ2위를 다투고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여러모로 비슷한 인터넷 서비스 환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논의되는 문제들은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정책이 우리의 서비스 환경 및 정책과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일부분은 참고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일본의 망 중립성 정책의 방향을 지켜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망 중립성 논의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 강국을 자처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터넷 인프라와 소비 강국에 국한되지만, 어쨌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회선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통신사업자들의 영향력이 매우 크게 작용하는 나라다. 덕분에 우리나라의 통신정책은 사실상 통신사업자들의 의지에 의해 좌지우지 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폰이 도입될 때까지 모바일 단말기에서 Wi-Fi조차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 통신사들의 횡포를 엿볼 수 있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렇게 통신사업자의 힘이 큰 환경에서 망 중립성이 제대로 지켜졌을 리 만무하다. 실제로 국내에서 망 중립성 문제가 수면위로 불거지기 전인 2006년에 KT에서 하나TV의 VOD 서비스를 제한한 전례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망 중립성 문제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큰 이슈가 되지 못했었다. 우리나라에서 망 중립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스마트폰 도입 이후부터였다.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사건 중 하나는 2012년 초, 삼성 스마트TV의 앱 사용이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한다고 주장한 KT가 망 사용 대가를 요구하면서 서비스를 제한한 일이었다. 당시 이 논란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통신망 기간사업자와 국내 최대의 IT기업의 충돌이었기 때문에 언론에서 크게 이슈화 된 것은 물론이고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망 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정도였다. 같은 해 하반기에는 국민 메신저로 등극한 카카오톡을 둘러싼 망 중립성 논란도 발생했다. 카카오톡 등장 이후 이동통신사들의 문자 서비스 이용률이 급감했기 때문에 이동통신사들에게 카카오톡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 와중에 카카오톡이 보이스톡, 즉 데이터망을 사용한 무료통화(mVoIP)를 제공하면서 통신사와 카카오톡 사이의 대립이 고조됐다. 이동통신사들은 mVoIP 서비스가 과도한 데이터 트래픽을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처음엔 전면 제한했다가 후에 일부 요금제에 한해서 풀어주는 정책을 사용했다. 그리고 올해 2월, 수년을 끌어온 이 문제에 대해 법원은 이동통신사들의 mVoIP 서비스 제한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망 중립성 논란에 다시 불을 지피고 말았다. 사실 국내의 메이저 통신사업자인 SKT, KT, LG유플러스는 모두 기간망 사업자이기 때문에 미국과 달리 정부 정책에 정면으로 대치할 수 없다. 그러나 정작 통신망 구축에 필요한 비용을 정부 지원 없이 사업자들이 직접 투자했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통신망 사업자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불편한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더욱이 기업 위주의 정부 성향이 맞물리면서 망 중립성 논의도 통신 사업자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1년 망 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2013년에 문제점을 보완해 현재까지 적용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인터넷망 사업자는 이용자가 합법적인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어떤 제한도 가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몇 가지 예외 조항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결국 통신망 사업자들이 망 중립성을 빗겨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서비스 품질을 제한할 수는 없지만, 특정 콘텐츠 생산자에게 더 빠른 망을 제공할 수는 있도록 해 놓은 것이다. 명백히 보편적인 망 중립성 원칙에 어긋나는 예외 조항이다. 이처럼 국내의 망 중립성 논의는 다른 대부분의 분야와 마찬가지로 정부와 사업자들의 긴밀한 이해관계 속에서 결정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 소비자들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망 중립성, 꼭 필요할까?

 지금까지 각 국가별 망 중립성 논의에 대해 살펴봤다. 국가별 시장 상황과 정책 방향성, 그리고 통신 사업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 망 중립성에 대한 입장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사실 무조건적인 망 중립성 강제는 시장 경쟁이라는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 개념을 훼손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또, 망 사업자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구축한 설비를 콘텐츠 사업자가 거의 무상으로 이용한다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국가들에서 망 중립성 확립을 위한 정책을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미국 FCC의 톰 휠러 위원장의 발언에서 그 이유의 일부를 찾아볼 수 있다. 톰 휠러 위원장은 FCC의 망 중립성 확립 정책 표결에 앞서“인터넷은 누구나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므로, 통신사들이 관련 규정을 만들도록 허용할 수 없다”는 발언을 했다. 강력한 미디어가 대중들의 정보를 통제하는 현대 사회에서 오직 인터넷만큼은 정치ㆍ경제적으로 통제되지 않은 정보를 공급하고 수집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로 남아 있다. 그러나 망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 마지막 돌파구마저 망 사업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가공된 정보들로 넘쳐나게 될 것이다. 또, 산업적 측면에서도 망 중립성은 콘텐츠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정책적으로 망 중립성을 표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들이 많다. 단순한 인터넷 소비 강국이 아니라, 진정한 인터넷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보다 선진화된 관점에서 망 중립성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