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실용성은?
2016-06-29 석주원 기자
확률형 아이템 논란의 발단
확률형 아이템이 언제부터 게임에 등장했는지 명확한 시기를 가늠하는 것은 어렵다. 대체적으로 부분유료화가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확률형 아이템도 도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내에서 사용되는 아이템 뽑기나 캐릭터 뽑기 등 다양하게 활용돼 왔다. 초창기 확률형 아이템들이 문제가 됐던 것은 ‘꽝’이라고 할 수 있는 의미 없는 아이템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이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업계 안팎으로 논란이 커지자, 게임업계에서는 자체적인 기준점을 마련해 논란을 잠재우려는 시도를 한다. 2008년 한국게임산업협회(현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이하 K-IDEA)는 ‘캡슐형 유료 아이템’ 서비스 제공에 대한 자율준수 규약을 통해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결괏값이 ‘0’이거나 판매가에 비해 가치가 현저히 낮은 결과 값을 포함해서는 아니 되고, 게임의 진행에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을 ‘캡슐형 유료 아이템’에서만 얻을 수 있게 해서도 안 되며, ‘카지노’, ‘복권’ 등 사행성을 연상시키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미 이때부터 게임업계 스스로 확률형 아이템의 사행성 논란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셈이다.하지만, 위에서 제시한 자율적 규약은 내용자체가 상당히 모호한데다, 애초에 법적인 강제성을 띄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문제가 갈수록 커지자 2011년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는 확률형 아이템 서비스와 관련해 게임업체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개최했지만 단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확률형 아이템의 현황 조사를 위해 관련 데이터 제출을 요청했지만 이 역시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묵살 당했다. 결국 같은 해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기에 이른다. 당시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은 일부 온라인게임들이 확률형 아이템을 서비스하며 사행성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게임업계가 스스로 정한 규약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쯤 되자 게임업계에서도 다급해졌는지 앞서 언급한 자율적 규제안을 더욱 보강하고, 모니터링 시스템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화부에서는 업계의 입장을 받아들여 강화된 자율적 규제안의 가이드라인을 제출토록 했고, 만약 일정기한까지 해당 규제안이 마련되지 않거나 내용이 미약하면 문화부에서 직접 개입할 뜻을 내비쳤다.문화부에서 제시한 시일은 2011년 10월. 하지만 2012년이 다 가도록 업계의 가이드라인은 제출되지 않았고, 문화부의 가이드라인 역시 만들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2011년 말부터 이어진 셧다운제와 쿨링오프제 논란이 지속되면서 확률형 아이템 규제와 관련된 논의가 뒤로 밀려나 버렸다. 2012년 중반을 지나면서 셧다운제와 관련된 논란이 가라앉자 확률형 아이템 규제 논의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기는 했지만, 논의만 계속될 뿐 실질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은 채 질질 끄는 형태가 이어졌다.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법안 발의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된 정계의 규제안 논의와 업계의 반발 및 자율적 규제 주장은 2013년과 2014년에도 계속돼 왔지만 어떠한 합의나 뚜렷한 해결책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2015년 들어 국회 정무위원장인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이 온라인 및 모바일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할 때는 아이템 구성과 획득확률을 공시하도록 하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게임산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 하면서 게임 업계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동안 지지부진 끌어왔던 확률형 아이템 규제안이 마침내 법제화 형태로 윤곽을 드러낸 것이다.개정안에서 확률성 아이템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면 ‘게임물의 이용을 통하여 획득할 수 있는 유·무형의 결과물(점수, 경품, 게임 내에서 사용 되는 가상의 화폐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게임머니 및 대통령령이 정하 는 이와 유사한 것을 말한다. 이하 “유·무형결과물”이라 한다)의 종류· 구성비율 및 획득확률’을 공개하도록 명시돼 있다. 이 법안이 발의되자 업계에서는 일제히 반발하며, 자율규제가 아닌 법제화로 확률성 아이템 을 규제하려는 것은 또 다른 게임 산업 죽이기라고 성토했다. 또, 외국산 게임들과의 역차별 문제, 정부의 규제 철폐 기조와 역행 등을 이유로 들 어 이번 법안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반면 셧다운제 등 게임 규 제안이 발의될 때마다 게임업계와 한 목소리를 내며 힘을 실어줬던 인터 넷 여론은 오히려 이번 개정안을 찬성하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동 안 국내 게임들이 이용자들에게 어떠한 시선을 받아 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게임산업법 개정안 발의 전후로 일부 게임에서 판매하 는 확률성 아이템의 확률조작 의혹이 발생하면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게이머들의 시선은 더욱 차가워질 수밖에 없었다.모 게임매체를 통해 업계 종사자들이 직접 밝힌 내용에 따르면 확률성 아이템의 확률 조작은 단순한 의혹이 아니라 실제로 현재 행해지고 있는 사기 행각이다. 희소성이 높은 아이템의 경우 확률이 소수점 이하로 매우 낮거나 아예 0으로 설정돼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며, 심지어는 따로 테이 블을 관리해 특정한 조건이나 시점에 따라 등장하게 조작하는 경우도 비 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동안 막연하게 의혹만을 품고 있었던 확률형 아이 템의 조작 가능성이 업계 종사자들의 입을 통해 실체화된 셈이니 그동안 멋모르고 비용을 지불했던 게이머들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 는 상황이다. 게다가 일부 업계 관계자들의 “게임의 재미를 위한 요소”, “일부 게이머들의 감정적인 반발” 등을 비롯한 부적절한 발언들이 공개 되면서 게이머들의 빈축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주십쇼?
게임산업법 개정안은 현재 발의만 된 상태이며 아직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은 법안이다. 이틈을 타 K-IDEA는 캡슐형 유료 아이템의 자율규제 확대안을 발표하면서 업계에서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자율적 규제를 관철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K-IDEA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기존의 ‘전체 이용가’ 게임에만 적용됐던 확률형 아이템의 획득 가능 아이템 구성과 확률을 ‘청소년 이용가’ 게임으로 확대하며,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기업교육, 모범적으로 규율을 준수하는 업체에게 인증마크 부여 등을 담고 있다.그러나 이 자율규제안이 큰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 공개 범위가 조금 더 넓어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작년에 제시했던 자율규제안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범위 확대로 인해 모바일게임 매출 상위 30위 안에 80%가 이 규제안에 적용된다고 밝혔지만, 실제 구매력이 높은 대상은 성인이라는 점에서 별 의미가 없기도 하다. 게임의 등급을 높게 만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게다가 우리는 이미 수년 동안 업계의 자율규제라는 가식적인 퍼포먼스에 속아오지 않았던가. 이미 게임업체들에게는 2011년 국정감사 이래로 3년 이상의 유예기간이 주어졌었다. 그러나 그동안 그들은 말로만 자율규제를 외쳤을 뿐 실질적으로는 지속적으로 게이머들을 속여 왔다.물론, 지나친 규제가 게임 산업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면 법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게임산업법 개정안의 내용만을 놓고 봤을 때 업계에 대해 지나친 간섭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확률성 아이템의 획득 확률을 공개하라는 것에 불과하다.물론 법안 자체가 두루뭉술하게 표현돼 있어 몬스터에게 획득 가능한 아이템의 확률까지도 적용될 여지가 있긴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법안을 대표 발의한 정우택 의원측에서도 의견을 수렴해 개선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게임산업법 개정안은 4월 임시국회에 상정되지 않았고, 6월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만약 게임업계가 진정성을 갖고 자율규제를 관철시키고자 한다면 그 안에 무엇인가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여야할 것이다.그러나 4월 말 K-IDEA에서 자율규제 확대안을 공개한 이후 5월이 다 지나도록 확률성 아이템의 정보를 공개한 회사는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게이머들이 게임업체를 믿고 지지해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셧다운제, 4대 중독성물질 규제 법안 등 게임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만한 법안이 발의될 때마다 업계 안팎은 물론이고 게이머들까지 하나가 돼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게임업체들이 게이머들을 함께 할 동반자가 아닌 자신들의 배를 불려 줄 ‘호갱’으로 취급한다면 가장 강력한 우군을 잃게 될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