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의 기원: 호러 게임(Horror Game)
2016-09-01 임병선 기자
호러는 성인용?
호러 게임은 장르 특성상 놀라게 하는 부분이나 누군가가 죽거나 잔인한 연출이 많아 대체로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인 것이 많다. 심지어 몇몇 게임은 국내 출시되지도 못했다. 일부 게임은 주인공 캐릭터가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이 포함돼 게이머에게 충격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성인용이 많은 것이지 모든 호러 게임이 성인용은 아니다. 게이머는 괴물이나 살인마, 유령 등 다양한 공포에 대항해 살아남는 것을 강요받는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액션이나 어드벤처 게임과 달리 적을 공격할 수 없거나 공격할 수단에 제한을 둔다. 어떤 게임은 세이브를 할 수 있는 부분도 제한했으며, 공포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간이나 시점을 제한하기도 한다.하지만 공포 주체가 자주 나오는 게임일수록 게이머가 공포에 익숙해지는 단점도 있다. 또한, 여러 번 즐겼을 경우 게이머를 놀라게 하는 부분이나 장치가 점점 무의미해진다. 이런 부분이 호러 게임을 중복해서 플레이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최근 호러 게임은 공포보다 액션에 비중을 둬 반복해서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초창기 호러 게임
장르에 따라 호러 게임의 구분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최초의 호러 게임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여러 장르마다 공포를 소재로 다룬 대표 인기 게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액션에는 ‘마계촌(1985년)’과 ‘악마성 드라큘라(1986년)’가 대표적이며, 어드벤처는 ‘어둠 속에 나홀로(1992년)’, FPS로는 ‘둠(1993년)’ 등이 있다. 하지만 호러 게임은 이보다 더 예전인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도 있어서 어느 게임이 최초라고 볼 수는 없다. 단, 그래픽 기반 게임 중 최초의 호러 게임은 펭귄 소프트웨어의 ‘트랜실바니아(1982년)’를 꼽을 수 있다. 드라큘라의 성에 잠입해 드라큘라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출하고 드라큘라와 그의 부하들을 해치우는 단순한 목표에도 해가 뜨기 전까지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제약을 걸어 긴박감을 더했다. ‘트랜실바니아’는 애플2와 아타리, PC-8801 등 콘솔 기기로도 출시됐으며, 두 편의 후속작을 내는 등 8비트 시대 대표적인 공포 게임으로 꼽힌다. 호러 영화를 게임으로 만든 것도 있다.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1983년)’이나 ‘13일의 금요일(1985년)’ 등이 대표적이지만, 영화의 명성에 편승해보고자 한 졸작이었다.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은 무섭기는커녕 엉망진창 그래픽으로 무엇이 표현되는지도 알 수 없는 게임이었다. ‘13일의 금요일’도 영화와 전혀 관계없는 전개, 수많은 버그 등으로 최악의 게임으로 꼽힌다.호러, 액션과 만나다
호러 게임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액션 장르과 접목하면서부터다. ‘마계촌’과 ‘악마성 드라큘라’, ‘스플래터 하우스’ 등이 대표적이다. 캡콤의 ‘마계촌’은 다양한 의미의 공포를 선사했다. 괴이한 몬스터와 배경, 음산한 배경음악과 효과음 등에 극악의 난이도까지 더해졌다. 이 때문에 ‘마계촌’ 시리즈는 게이머들에게 공포보다 절망으로 기억되고 있다. 코나미의 ‘악마성 드라큘라’의 수출명 제목은 ‘캐슬바니아’로, 이쪽 제목이 더 익숙한 게이머도 있을 것이다. 성에 있는 드라큘라를 무찌르는 내용인데, 음산한 분위기와 음악은 ‘마계촌’에 뒤지지 않으며, 적절한 난이도로 대중성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초기 패미컴판은 단순한 액션 게임에 그쳤지만, MSX판은 맵을 자유롭게 이동하고 맵 여기저기 있는 아이템과 열쇠를 얻어 진행하는 던전 탐험 액션으로 변했다. 이런 독특한 게임성은 큰 인기를 끌었고 후속작은 모두 이런 형태로 나오게 된다.인기 장르로 부각
호러 게임이 일부 하는 사람들만 하는 비주류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다. 북미와 일본의 호러 게임은 서로 다른 진화를 보였다. 일본은 ‘바이오 하자드’나 ‘사일런트 힐’ 같이 어드벤처 부분이 강조됐으며, 북미는 ‘둠’과 ‘퀘이크’ 같이 액션이 중시됐다. 추구하는 게임 방식은 달라도 모두 호러 게임이 주류가 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에서 공포가 중점이 된 게임은 ‘바이오 하자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바이오 하자드’는 서바이벌 호러라는 단어를 만들기까지 했으며, 이후 ‘바이오 하자드’ 풍의 서바이벌 호러 게임들이 쏟아지게 된다. 해외 출시 명은 ‘레지던트 이블’로, ‘바이오 하자드’라는 동명의 밴드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제목을 사용했다.캡콤의 ‘바이오 하자드’는 1996년 미카미 신지의 개인 프로젝트로 출발했다. 생체 변이 바이러스로 좀비로 변한 괴물들 속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흔한 내용이지만 독특한 게임성으로 잘 풀어냈다. 초기 ‘바이오 하자드’는 ‘어둠 속에 나 홀로’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액션보다 퍼즐 장치나 길 찾기 등이 중요한 어드벤처 게임에 더 가깝다. 게이머는 제한된 아이템과 무기로 살아남는 것이 목표며, 고정 시점으로 공포감과 긴박감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문 여는 장면을 로딩 화면으로 쓰거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적이 튀어나와 놀라게 하는 요소도 호평이었다. 이후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는 액션 위주로 변모해 공포와는 다소 거리를 둔다.일본 호러 게임의 변화
‘바이오 하자드’가 큰 성공을 거두자 일본에는 어드벤처 요소를 강조한 호러 게임이 대거 등장한다. 1999년 출시한 ‘사일런트 힐’은 발매 이전 ‘바이오 하자드’ 아류작으로 폄하됐다. 하지만 발매 후 ‘사일런트 힐’만의 매력을 선보이며, ‘바이오 하자드’와 더불어 일본 호러 게임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았다. ‘사일런트 힐’과 ‘바이오 하자드’의 공포 요소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바이오 하자드’는 주인공이 고도로 훈련된 특수요원이거나 경찰관이지만, ‘사일런트 힐’의 주인공은 일반인으로 긴장감이 더 높다. 이 밖에도 폭력과 고어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바이오 하자드’에 비해 ‘사일런트 힐’은 두려움이나 불안함, 괴이한 소리 등 심리적인 부분에서 공포감을 준다. ‘사일런트 힐’ 시리즈는 4까지 코나미에서 제작했지만, 오리진부터 외주 제작에 맡기면서 퀄리티 저하와 스토리가 무너졌다. 여기에 최신작인 ‘사일런트 힐즈’는 내부 사정으로 제작이 취소됐다. 2003년 출시한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SCE)의 ‘사이렌’은 아예 액션을 배제했다. 안개가 자욱한 외딴 농촌이나 어촌을 배경으로 죽일 수 없는 적으로부터 도망 다녀야 한다. 특히 이유도 모른 채 쫓기는 공포를 극대화했다. 이러한 잠입 액션 호러 게임은 이후 출시된 ‘암네시아(2010년)’와 ‘아웃라스트(2013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적의 시야를 훔쳐 어디로 움직이는지 예상할 수 있는 ‘뷰재킹(view-jacking)’ 시스템으로 공포감을 더했다. 이 외에도 테크모(현 코에이테크모)에서 2001년 발매한 ‘영 제로’가 있다. ‘영 제로’는 일본 전통 가옥을 배경으로 10대 중후반의 미소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영 제로’ 시리즈는 카메라로 원령을 촬영하면 대미지를 가할 수 있는 전투 시스템이 특징이다. 최신작으로는 2014년 Wii U로 출시된 ‘령 제로 유아의 무녀’가 있다. 이 밖에 세가의 건 슈팅 게임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시리즈와 캡콤의 액션 게임 ‘데드 라이징’ 시리즈도 있지만, 공포감은 다소 덜하다.액션 플레이 중심의 북미
북미 쪽은 퍼즐과 스토리 위주의 어드벤처보다 ‘둠’이나 ‘퀘이크’처럼 유혈과 잔인한 표현들로 가득 찬 FPS 장르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때문에 심리적인 공포 대신 시각적인 공포가 강화됐으며, 액션 게임에 공포 요소를 가미한 호러 게임이 주를 이뤘다. 이 때문에 긴장감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공포를 주는 일본과 달리 쉴 틈 없이 공포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발전했다.FPS식 액션 호러 게임은 뛰어난 그래픽과 고어 표현이 특징이며, 대표적으로 앞서 소개한 ‘둠’과 ‘퀘이크’ 이외에 ‘바이오쇼크’, ‘레프트 4 데드’, ‘피어’, ‘컨뎀드’, ‘데드 스페이스’ 등 대부분 FPS 장르가 혼합돼 있다. 기괴한 분위기 때문에 호러 FPS로 분류되는 ‘바이오 쇼크’ 시리즈와 생존자인 인간과 수많은 좀비의 전투를 그린 ‘레프트 4 데드’ 시리즈, 이상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아 의문을 해결해야 하는 ‘컨뎀드’ 시리즈 등 다양한 FPS 게임이 등장했다. 그래픽과 액션은 계속 강화됐지만, 공포 요소는 참신함이 다소 부족했다. 이런 와중에 2008년 비서럴 게임즈에서 개발하고 EA에서 출시한 ‘데드 스페이스 1’은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데드 스페이스’는 시체가 변이한 ‘네크로모프’와 싸우는 주인공 ‘아이작 클라크’의 이야기를 다뤘다. 움직이는 시체라는 점이 좀비와 비슷하지만, 기괴한 모습 때문에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우주선 내부라는 폐쇄된 장소도 한몫해 긴장감까지 잘 버무렸다. 특히 사지절단이나 주인공의 다양한 데드씬의 고어 표현은 압권이다. 물론, 이런 FPS 장르 외에도 공포 어드벤처 게임은 꾸준히 출시됐다. 대표적인 호러 어드벤처 게임 ‘어둠 속에 나 홀로’는 전작들의 명성까지는 아니지만, 후속작이 계속 나오고 있다. 퍼즐을 중시한 호러 어드벤처인 ‘7번째 손님’ 시리즈와 심리적 공포를 잘 살린 생존 호러 어드벤처 ‘암네시아’도 있다.차세대 호러 게임
플레이스테이션4와 엑스박스 원에서 출시된 차세대 호러 게임은 극히 적다. 우선 ‘바이오 하자드’의 아버지인 미카미 신지가 만든 ‘디 이블 위딘’을 꼽을 수 있다. ‘디 이블 위딘’은 미카미 신지가 캡콤 퇴사 이후 첫 총괄 제작을 한 호러 게임으로 제작 발표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다만 전 세대인 플레이스테이션3와 엑스박스360도 함께 출시돼 완전한 차세대는 아니다.국산 호러 게임
PC 패키지로 나온 국산 호러 게임은 ‘제피’와 ‘화이트데이’가 전부다. 1999년 출시된 ‘제피’는 국산 게임이면서도 악령과 엑소시즘을 다루는 서양식 공포를 표방했으며, 잔인한 묘사와 기괴한 효과음으로 음산한 분위기를 잘 살렸다. 하지만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받았음에도 당시 심의 문제로 여러 부분을 수정해 별도 무삭제 패치를 해야만 제작진이 의도한 공포를 맛볼 수 있었다. 이후 후속작 ‘제피 2’도 출시됐지만, 명맥은 끊어졌다. 2001년 손노리에서 출시한 ‘화이트데이’는 한국색이 짙은 국산 호러 게임이다. 화이트데이 때 한밤의 학교 안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으며, 쓰러뜨릴 수 없는 적을 상대로 도망 다니는 긴장감과 기묘한 소리까지 더해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화이트데이’는 국산 호러 게임으로 많은 게이머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겼지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이후 한국에서 이렇다 할 호러 게임은 나오지 않았다. ‘다크에덴’과 ‘프리스트’ 등의 공포 분위기를 다룬 여러 온라인 게임이 등장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최근에는 미스터리 사건이나 공포를 다룬 ‘위험한 초대’, ‘방탈출’, ‘검은방’ 등 시리즈와 모바일판 ‘화이트데이 모바일 2015’ 등이 모바일 쪽에서 그나마 국산 호러 게임의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암울한 국내 호러 게임 시장이지만, ‘화이트데이’에 견줄 국산 호러 게임이 등장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