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 큰 변혁 겪은 국내 게임 시장 20년
2016-10-30 임병선 기자
패키지의 오랜 추억
과거, 게임을 하려면 오로지 패키지 구매밖에 없었다. PC 통신을 통해 불법으로 다운받을 수도 있었지만, 당시 데이터 전송 속도와 그에 따른 요금을 생각하면 패키지를 사는 게 더 나을 정도였다.우리나라 패키지 시장은 비디오 게임이 주류인 해외와 달리 PC 패키지 시장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당시에는 게임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가게도 극히 드물고, 온라인 구매도 없었기 때문에 주로 PC 판매점에서 사는 일이 다반사였다.하지만 규모가 작은 소매점에서는 정품 패키지보다 불법복제 판매를 권유하는 경우가 많았고,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만큼 사람들도 불법복제가 크게 나쁘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번들과 불법다운로드
국내 PC 패키지 시장이 급속도로 몰락한 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로는 번들과 불법다운로드가 꼽힌다. 1990년대 후반, PC게임 잡지에서 게임을 번들로 제공했다. 당시에는 PC게임 잡지를 구매하는 기준이 책 내용보다 어떤 게임을 번들로 주느냐가 더 중요했다. 심지어 학교 친구들끼리 서로 다른 PC게임 잡지를 구매해 게임을 돌려 하는 경우도 흔했다.3~4만 원 하는 정품 게임을 1만 원도 안 하는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으며, 여러 잡지 중에서 골라 할 수 있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게임이 발매해도 바로 구매하는 것보다 번들로 제공할 때까지 기다리는 사례도 많았다.물론 번들이 PC 패키지 시장에 악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다. 번들 게임은 대체로 출시된 지 1년이 지난 구매력을 잃은 오래된 게임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정품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진 못했다. 오히려 게임 유통사에 수천만 원에서 1~2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안겨줬기 때문에 서로 윈윈(Win-Win)이었던 셈이다. 물론 게임 출시 당시 구매력을 떨어뜨린 점에서는 악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반면, 불법다운로드는 국내 PC 패키지 시장에 악영향만 가져왔다. 빨라진 인터넷 속도로 고용량 게임도 쉽게 다운받을 수 있었으며, 불법 구동을 위한 크랙도 금방 퍼졌다. 더구나 게임 개발사나 유통사에 어떠한 수익도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그 피해는 더 심각했다.여기에 게임을 왜 돈 주고 구매해야 하는 의식이 팽배해진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E-스포츠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생기기 전까지 게임은 안 좋은 문화로 받아들여지기 일쑤였으며,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멀리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온라인 게임 시장 활짝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속도로 빨라지고 저렴해진 인터넷 보급은 국내 게임 시장까지 변화시켰다. 특히 PC 패키지 게임 시장에서 양대산맥으로 불렸던 소프트맥스와 손노리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대성공은 국내 게임 시장을 패키지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변하게 했다. 온라인 게임은 패키지 게임과 달리 불법 복제가 불가능하고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부분 게임회사들이 패키지 게임 개발에서 온라인 게임 개발로 선회했다.더구나 몰락할 대로 몰락한 국내 패키지 시장은 더 이상 살릴 가망성이 없어 보였다. 당시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2가 PC방을 중심으로 크게 히트하면서 비슷한 장르의 게임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단순 양산형 게임들에 지나지 않았고 게임이 안 팔리면 번들이나 쥬얼로 판매할 계획이라 퀄리티 높은 게임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게임 퀄리티가 극과 극으로 갈리면서 팔릴 게임만 팔리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이렇게 되자 해외 고퀄리티 게임과 경쟁을 피하고자 온라인으로 선회하는 회사들도 많아져 사실상 국내 패키지 시장에서 국내 게임회사가 만든 게임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반면, 빠른 인터넷 속도와 전국에 깔린 인터넷망을 통해 온라인 게임 시장은 활짝 꽃을 피우게 된다. 다른 사람과 채팅하면서 협력해 게임을 즐기는 방식은 패키지 게임을 즐겨왔던 게이머들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또한, 게임의 수명도 1~2년이 아니라 인기만 지속된다면 계속된 업데이트를 통해 10년도 넘게 즐길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었다.그 결과, 국산 온라인 게임 1세대인 넥슨의 바람의 나라와 메이플스토리, 엔씨소프트의 리니지는 20년 가까이 게이머들에게 사랑받으며 서비스되고 있다. 단, 인기가 없는 온라인 게임은 몇 달 만에 서비스가 중단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온라인 수익 구조 방식
현재 온라인 게임은 수익을 두 가지 방법으로 벌어들인다. 유료 정액제와 부분 유료화가 그것이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안정적인 게임 운영과 인기만 유지되면 지속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어 많은 게임 회사들이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다.정해진 기간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유료 정액제는 대체로 유저 충성도가 높은 게임이나 구매력이 있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임에 적용된다.부분 유료화는 게임 플레이 자체는 무료이지만,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나 플레이에 제한 조건을 두고 결제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주로 게임에 많은 돈을 쓸 여유가 없는 어린 유저들을 타겟으로 한 게임에 많이 쓰이는 방식이기 때문에 ‘코 묻은 돈 뺏기’라는 안 좋은 시각도 많다.게임회사들은 많은 유저를 확보하기 위해 정액제보다 부분유료화를 적극적으로 채택하는 경향이 더 많다. 여기에 게임 밸런스를 해치지 않고 굳이 유료 콘텐츠를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 게임을 ‘착한 유료화’라고 부르기도 한다.온라인으로 게임을 서비스하면서 패키지를 제작하지 않고 중간 유통 구조가 없어져 벌어들이는 수익이 게임 회사에 고스란히 들어오는 것도 장점이다.다만, 유통사나 게임 소매점이 설 자리가 좁아진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현재 패키지 시장은 비디오 게임과 휴대용 게임 위주로만 돌아가고 있다. 일부 PC 패키지 게임을 취급하는 곳도 있지만, 비중은 크지 않다.스마트폰 보급 증가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의 폭발적 증가는 국내 게임 시장에 또 다른 변혁을 일으켰다. 기존 피처폰보다 성능이 뛰어난 스마트폰은 다양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됐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해 게임을 즐기는 대상과 시장도 광범위하게 늘었다.특히 가입자가 3천만 명을 넘는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한 카카오 게임하기는 그야말로 모바일 게임 유저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한 원동력이 됐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모바일 게임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쉽게 즐길 수 있어 그동안 국 내 게임 시장에 도외시된 여성 유저나 40~50대 이상 성인까지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이에 중소 게임회사들만 있던 모바일 게임 시장에 대기업 게임회사도 뛰어들었으며, 넷마블 게임즈처럼 아예 모바일 게임 개발 체제로 전환한 회사들도 등장했다.모바일 게임 시장 초창기에는 앵그리버드의 성공으로 싼 가격의 캐쥬얼 게임이 흥행을 이어갔다. 이어 카카오 게임하기를 위주로 소셜 게임이나 퍼즐, 슈팅 게임이 주류를 이뤘으며, 무료로 즐기는 대신 부분유료화 방식을 채택했다.하지만 과거 인기 있던 게임의 재탕이나 표절에 그치거나 저퀄리티 게임들 양산으로 모바일 게임의 발전을 저해하는 부작용도 낳았다. 또한, 확률형 카드 게임을 중심으로 정확한 확 률을 공개하지 않아 과도한 과금 결제를 유도하는 문제도 화제로 떠올랐다.최근에는 레이븐이나 뮤 오리진 같은 고퀄리티 액션 RPG 게임이나 크래시 오브 클랜이나 게임 오브 워 같은 소셜 전략 게임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꾸준한 업데이트를 제공하는 모바일 게임이 많아진 것이다.게임을 즐기고 판매하는 시장의 주체가 패키지에서 PC 온라인으로, PC 온라인에서 모바일로 넘어갔을 뿐 나머지는 그대로인 셈이다. 특히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많고 쉽게 접하게 되면서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더 커졌다.<이미지: 스마트폰> 캡션: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됐다.손쉬운 글로벌 시장 진출
국내 경쟁이 치열해지고 개발과 마케팅 비용이 많이 늘어나자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기존에는 국내 게임 회사들이 외국에 진출하려면 제약이 심했지만,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시장은 글로벌 진출이 쉬워졌다. 과거 패키지 시장 때만 해도 국산 게임은 국내에서만 판매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현재는 얼마든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어졌다.이제는 게임회사들이 게임 개발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시장 진출을 고려하는 등 글로벌 마케팅을 계획하고 있다. 이와 함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게임빌과 컴투스처럼 합병을 단행하거나 한게임과 네이버처럼 관련 사업을 분리하기도 했다.이미 국내 게임회사들의 글로벌 시장 성공 사례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잘 만든 국산 모바일 게임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반대로 해외 게임회사들의 국내 시장 진출도 쉬워져 모바일 게임 시장에는 장벽이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