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U 쿨러는 항상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정품 박스에 기본 포함돼 있는 일명 ‘초코파이’ 쿨러부터 고급형 공랭식 쿨러, 라디에이터를 이용한 수랭식 일체형 쿨러, 그리고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커스텀 수랭식 쿨러 등 수많은 종류의 냉각기가 열받은 CPU를 진정시키려 노력해 왔다. 수랭식 하면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과거와 달리, 워터펌프와 라디에이터가 결합된 일체형 수랭식 쿨러가 출시되며 진입 장벽이 많이 낮아진 것도 공랭과 수랭의 차이에 대한 이슈가 뜨거워진 계기다.
공랭식과 수랭식 쿨러의 냉각 능력에 대한 이슈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혹자는 두 방식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고도 하고, 실제 사용기를 예로 들어 수랭식 쿨러가 훨씬 낫다고도 한다. 물론 기본 제공되는 쿨러보다는 수십만 원대의 수랭식 쿨러의 냉각 성능이 뛰어나다. 여기에는 쿨링팬 뿐 아니라 CPU와 쿨러 사이의 전도사인 서멀구리스의 역할도 있고, 알루미늄 방열판의 구조와 배열도 냉각 성능에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백견이 불여일행이라했다. 공랭식 쿨러와 수랭식 쿨러의 냉각 성능을 알아보자.
쿨러의 냉각 원리 먼저 쿨러가 CPU의 열을 어떻게 식혀 주는지 알아보자. 쿨러는 크게 방열판, 히트파이프, 쿨링팬으로 구성된다. 이는 공랭식과 수랭식 모두에 해당하는데, 수랭식의 경우 냉매로 냉각수를 사용하기에 이를 순환시키기 위한 워터펌프가 더해진다. 정품 CPU에 포함된 쿨러는 방열판과 쿨링팬만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적인 사용 환경에선 쿨러에 따른 큰 온도차이가 없으나, CPU에 지속적으로 부담을 주는 작업을 할 때는 히트파이프가 함께 구성된 공랭식 쿨러의 성능이 더 좋다.
공랭식 쿨러의 원리
수랭식 쿨러의 원리
▲ 히트파이프의 내부 구조는 가운데에 기체가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주변으로 스펀지처럼 액체 상태의 냉매가 아래로 흐를 수 있는 공간(wick)이 구분돼 있다.
▲ 히트파이프를 3개 부분으로 나누면 구리로 만들어진 하우징, 내부의 스펀지나 메시 형태의 wick, 그리고 가운데의 기체 이동용 공동(,空洞)이다. 아이들 상태에선 냉매가 wick에 액체 상태로 머물러 있고, 자연히 파이프의 가장 아래인 CPU 접촉부에 있다. CPU에서 열이 발생해 냉매가 기화하면, 가운데의 공동을 통해 열과 함께 위로 상승한다. 이 과정에서 주변의 알루미늄 방열판에 열을 나눠주고, 방열판까지 이동한 열은 쿨링팬에 의해 밖으로 배출된다. 이렇게 끌어온 열을 나눠준 냉매는 다시 액화해 wick으로 돌아가 아래로 내려오고, PC가 작동하는 내내 이 과정을 반복한다.
▲ 히트파이프는 열을 배출해야 하는 기기에 많이 적용돼 있다. 대부분의 그래픽카드 쿨러에도 적용돼 있고, 특히 휴대성이 중요한 노트북에는 납작한 형태의 히트파이프가 적용된다. 수랭식 쿨러 역시 형태는 달리 생겼지만 구성과 원리는 비슷하다. CPU에 접촉하는 부분이 히트파이프 역할을 하는 구리 베이스와 결합된 워터블록이고, 냉매를 사용해 열을 배출하는 것도 원리는 같다. 다만 공기를 강제로 냉각시키는 강제대류방식의 히트파이프는 열의 전달이 수동적이다.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간다’는 자연현상을 응용한 방식이기 때문에, 열을 머금은 냉각수를 강제로 라디에이터로 올려 냉각시키는 수랭식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다.여기서 냉각 방식의 구분 때문에 자칫 잘못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짚고 넘어가겠다. ‘공랭(空冷)식’과 ‘수랭(水冷式)식’을 단어 그대로 이해하면 공랭식 쿨러는 열을 공기로 식히고 수랭식 쿨러는 물로 식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엄연히 따지면 두 방식 모두 CPU에서 끌어낸 열을 식히는 역할은 공기가 담당한다. 공랭식은 방열판에 쿨링팬을 맞닿게 설치해 열을 끌어내는데, 수랭식 역시 라디에이터에 쿨링팬을 장착해 열을 배출한다. 그러니 수랭식 쿨러의 물은 열을 식히는 것이 아니라 히트파이프 내부의 냉매처럼 머금은 열을 방열판까지 옮겨주는 매개체라는 것이다.결국 두 방식이 냉각 성능의 차이를 만드는 요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냉매가 CPU의 열을 바깥으로 끌어내는 방식, 그리고 그 냉매에 따른 열전달 능력의 차이다. 공랭식과 수랭식 쿨러의 장착 덕에 방 안의 온도가 높아졌다거나 낮아졌다는 등의 얘기가 설전으로 이어지곤 하는데, 이는 냉각 방식의 차이라기보다는 얼마나 전력을 더 많이 소모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CPU에서 배출되는 열의 양은 냉각 방식과는 관계가 없고, CPU에서 전력을 얼마나 소모하는지에 따라 갈린다는 얘기다. 게다가 PC에서 열을 배출하는 건 CPU 뿐 아니라 VGA, 파워서플라이 등 많은 변수가 있다.
모 커뮤니티에서 일명 ‘수랭 대란’으로 불린 이슈가 있다. 검색하면 곧장 볼 수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이론들이 나오니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단적으로 얘기하면, 수랭식 쿨러 장착 PC로 방 안의 더위를 줄이려면 에어컨의 실외기처럼 라디에이터를 방의 바깥에 설치해야 한다.(사실 무리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커스텀 수랭으로 워터펌프의 압력을 최대한 높이고 냉각수 튜브를 창밖까지 길게 늘릴 수 있다면…)
공랭식 쿨러 DEEPCOOL FROSTWIN LED 2016
지난 2014년 출시된 ‘FROSTWIN’은 원형 쿨러를 채택했었다. 여기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2016년형 제품은 방열판의 크기에 맞춘 사각형 92mm 쿨러로 바뀌었고, 푸른 색 LED가 추가돼 조명 효과를 더했다. 4개의 히트파이프가 CPU의 열을 머금어 촘촘한 알루미늄 방열판에 전달하면, 2개의 92mm 쿨링팬이 히트파이프가 가져온 열을 효율적으로 배출한다.
제원
쿨링팬: 92mm x2 커넥터: 4핀 x2 팬속도: 최대 1800rpm 풍 량: 최대 80CFM 쿨러 TDP: 130W 무게: 740g 가격: 4만 원
수랭식 쿨러 DEEPCOOL Gamer Storm CAPTAIN 240 white
공랭식 쿨러에 대적할 수랭식 쿨러로 같은 브랜드의 240mm 라디에이터 제품 ‘캡틴 240’을 준비했다. 블랙앤화이트의 깔끔한 컬러가 인상적인 캡틴240은 240mm 라디에이터로 120mm 쿨링팬 2개를 장착해 사용한다. 강력한 워터펌프가 데워진 냉각수를 라디에이터에 전달해 주고, 저소음 베어링을 장착한 2개의 쿨링팬은 풀로드 상태에서도 시끄럽지 않다.
제원
쿨링팬: 120mm x2 커넥터: 3핀 x1, 4핀 x2 (팬 허브 제공) 팬속도: 최대 2200rpm 풍 량: 최대 91.12CFM 쿨러 TDP: 220W 무게: 총 1183g 가격: 14만 원
테스트 PC
본 테스트는 오픈케이스에 설치했기에 PC 케이스 내부에 장착했을 때보다 온도가 약간 낮게 측정됐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테스트 결과 수집에 사용한 온도 측정 프로그램 ‘HWmonitor’가 CPU의 온도를 정확하게 알려주진 못하기에 약간의 ± 오차는 감안해야 한다.
CPU 인텔 i5-6600K 4.4GHz 오버클럭 M/B 기가바이트 GA-Z170X-UD5 RAM 삼성전자 DDR4 4GB x2 SSD 킹스톤 퓨리X 240GB P/S 시소닉 M12II-620 EVO
아이들(idle) 상태
kids가 아니라 ‘일하지 않는’이란 뜻의 형용사 idle은 PC에서 별다른 작업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프로스트윈과 캡틴240을 장착했을 때의 아이들 상태는 4개 코어 평균 24℃ 정도를 유지했다. 이 상태는 업무용 프로그램이나 웹서핑 등의 가벼운 작업을 할 때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간혹 플래시나 영상이 재생될 때 약 3~4℃ 정도 올라가긴 했지만, 영상이 꺼지면 이내 원상복구됐다. 참고로 본 테스트에서는 ‘HWmonitor’란 온도체크 유틸리티를 사용했는데, 여기에 나타나는 수치는 100% 정확한 것은 아니다. 가장 정확한 온도는 바이오스에 진입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PC 사용 중에 확인할 방법이 없어 그나마 가장 많이 사용되는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CPU에 강제로 부하를 주는 여러 프로그램 중 ‘헤비로드’와 ‘프라임95’를 사용했다. 헤비로드는 CPU와 그래픽, 디스크까지 모두 부하를 걸 수 있어 스트레스 테스트에 많이 사용되는 프로그램이다.
헤비로드 15분
위 표는 헤비로드를 실행한 뒤 15분이 지났을 때의 온도를 측정한 결과다. HWmonitor에는 CPU의 각 코어 온도와 전체 평균 온도를 보여주는데, 보통은 평균값만 봐도 된다. 공랭인 프로스트윈은 최대 54℃를 기록했고 캡틴240은 49℃를 기록했다. 생각보다 프로그램 자체가 CPU를 크게 흥분시키진 못하는 듯했다.
헤비로드 60분
이 온도차는 측정시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벌어지는데, 두 쿨러의 경우 생각보다 그 차이가 많이 벌어지진 않았다. 프로스트윈은 프로그램 구동 1시간째에 최대 58℃를 기록했고, 캡틴240은 그보다 7℃가량 낮은 51℃를 기록했다. 솔직히 테스트를 진행하며 온도 차이를 보고 ‘생각보다 가격 대비 성능이…’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캡틴240의 냉각 성능이 더 나은 건 사실이나, 3배가 넘는 가격 차이를 감안했을 때, 만족도까지 프로스트윈보다 높을지는 의문이었다.
프라임95 15분
프라임95는 링스와 함께 오버클럭 안정화를 테스트할 때 많이 사용된다. 헤비로드 프로그램보다 평균 온도가 더 높게 측정돼 공랭과 수랭의 차이를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프로스트윈의 경우 15분 만에 최대 76℃까지 상승했고, 캡틴240 또한 최대 70℃를 기록하는 등 상당히 빠른 속도로 열이 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프로스트윈과 캡틴240 둘 다 본체에 손을 갖다 대도 그리 뜨겁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프라임95 60분
1시간 동안 프로그램을 돌리니, 소리에서 먼저 차이가 나타났다. 프로스트윈 쿨링팬은 최대 1800rpm으로 회전하고, 캡틴240은 2200rpm이다. 크기도 라디에이터에 장착된 팬이 120mm로 더 크다. 15분가량 돌렸을 때도 느껴졌지만, 테스트가 진행될수록 캡틴240의 소음이 프로스트윈보다 훨씬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케이스 내부에 설치돼 있다 해도 그 소음의 차이는 느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덕인지 평균 온도는 캡틴240이 6℃ 더 낮게 측정됐다.
마치며 일체형 수랭식 쿨러의 등장으로 수랭식의 입문 장벽이 많이 낮아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구입할 수 있을 만큼 일반적인 것도 아니다. 제대로 투자하려면 20만 원 가까이 지불해야 하는 가격대는, 3~4만 원이면 꽤 괜찮은 공랭식 쿨러를 살 수 있다는 점에 비하면 아직 높은 편이다. 이번 테스트를 통해 그 가격 차이의 값어치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더해졌다. 한 달 내내 테스트를 진행할 수 없어 조금은 아쉬운 결과일 수도 있으나, 이만큼의 차이가 3배가량의 가격 차이를 납득시킬 수 있는지는 소비자의 몫이다. 예전부터 수랭식 쿨러의 장점을 피력해 왔던 기자로선, 이번 결과로 공랭식과 수랭식의 중간 지점을 찾아 숨고 싶기까지 했다. 어느 한 쪽을 명확하게 선택하는 건 역시 어려운 일지만, 그래도 기자는 성능의 절대값이 조금이라도 뛰어난 수랭식 쿨러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