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로 한껏 포장해야 ‘유물 발굴자’란 직업이지, 사실상 ‘툼 레이더’는 도굴꾼이라고 보는 게 맞다. 액션 어드벤처 시리즈 ‘언차티드’에 영향을 줄 만큼 인기 프랜차이즈였던 툼 레이더는, 2013년 선보인 두 번째 리부트로 시리즈 사상 최단기간에 100만 카피 판매를 돌파할 만큼 호평을 얻었다. 1996년 처음 선보인 이후 20년이나 계속된 3D 성형수술(과 몸매 초월적 영화화)로 거듭난 라라 크로프트는, 2015년 말 Xbox 기간 독점 출시로 약간의 비난을 얻었으나, 지난 1월 29일 PC 버전 출시로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PS4 이용자들은 올해 말까지 기다려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전작에서 라라가 전문 도굴꾼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번 작품에선 아버지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영생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번에도 라라의 진정한 친구는 사람보다 유용한 한 쌍의 피켈이었다.
게임은 주인공 라라가 전작에 이어 본격 모험가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라라는 처음에는 암벽등반이나 재료 탐색 등이 익숙지 않지만 점차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행동이 능숙해지며 프로 모험가로 성장해 나간다. 전작에서 배의 조난으로 시작했던 것과 달리 그녀 스스로 세계에 뛰어드는 모습은, 모험보다 생존이 우선이었던 전작과 다른 점이다.용의 삼각지대에서 살아나오기 위한 고군분투가 전작의 특징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확실히 도전정신 충만했던 예전 작품들처럼 모험 그 자체가 목표다. 예뻐진 건지 개성이 강해진 건지 알 수 없는 라라는, 온갖 고난을 헤쳐 나가며 아버지 크로프트 경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선지자의 영생의 비밀을 밝히려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가진 의문의 비밀결사대 ‘트리니티’와 맞서기도 하고, 구소련의 수용소에서 만난 제이콥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때로는 인간보다 더 잔인한 자연과 싸우기도 한다.
PC판의 출시일이 확정된 뒤 사람들의 관심사는 ‘최적화’에 몰렸다. 성능이 고정인 콘솔과 달리 PC 버전은 다양한 해상도에서 어느 정도의 성능으로 돌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출시 이후 몇몇은 최적화가 잘 됐다고 호평했고, 몇몇 사용자들은 메모리 누수 문제를 거론하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기자의 경우 인텔 제온 E3-1230v3와 GTX970의 조합으로 2K 해상도에서 수직동기화를 해제하고 ‘높음’ 설정으로 평균 50FPS 중후반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부분적으로 텍스처가 깨지거나 사라지는 등의 작은 문제들에 신경이 안 쓰일 순 없지만, 매끄러운 게임 진행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옵션 설정의 차이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건 역시 주인공 라라의 얼굴이다. 기자의 PC에서 플레이할 때는 프리셋 높음 설정에서 바꾸지 않고 진행했는데, 라라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에서 낮음과 높음의 차이는 확연했다. 하지만 높음과 가장 높음의 차이는 두 장면을 교차해서 확인하지 않으면 크게 느끼기 어려운 정도였다. 게임도 영화처럼 즐기고 싶은 기자는 되도록 최고급은 아니더라도 고급 옵션을 소화할 수 있어야 게임이 즐겁다.(덕분에 지갑은 안 즐겁다)역시 게임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려면 중간 이상의 옵션이 필요했는데, GTX970으로 FHD 해상도에선 차고 넘칠 정도였고, 4K 해상도에선 50FPS를 넘지 못해 GTX980 이상이 필요해 보였다. FHD의 경우 GTX960을 장착한 PC에선 비넷 블러, 모션 블러, 퓨어 헤어 등 몇몇 옵션을 끄고 플레이하면 적어도 40~60FPS는 유지할 수 있다. 부분적으로 보이는 프레임 하락 현상이 아쉬운데, 지금은 패치 작업으로 어느 정도 개선됐다.
게임을 시작하면 시베리아 한복판에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게임 내내 어마어마한 고생길이 열렸다는 걸 시작부터 확연히 알게 해 준다. 실제로 처음에는 피켈 한 쌍에 의지해 빙벽도 타고 도망도 다니는데, 게임을 진행하면서 활, 권총, 소총, 샷건 등 다양한 무기를 얻게 된다. 역시나 겉보기엔 활과 권총, 피켈이 전부이고, 다른 무기들(심지어 2~3종류나 되는 라이플 등등)은 도라에몽의 주머니 속에 보관한 듯하다.
▲ 게임의 배경이 시베리아, 시리아 등 산악지대 및 고산지대가 많다. 덕분에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라라의 모습 뒤로 멋진 산악 풍경이나 고대도시의 전경들이 볼만하다. 아틀라스처럼 폐허가 된 유적도, 빙하 한복판에서 얼어붙은 배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게임에 집중할 때면 오로지 전진만이 전부인 게이머들도 조금 여유를 가지면 PC 배경화면으로 쓸 만한 멋진 스크린샷을 남길 수 있다.
▲ 역시나 빠지면 섭섭한 사서고생 퍼레이드는 게임 내내 계속된다. 시작부터 무너지는 빙벽을 피해 전력질주하다 동료와 헤어지고, 곳곳에 설치된 함정을 피하고, 게임 내내 빙벽이나 암벽, 대들보, 나무판자 등 숱하게 매달려 다닌다. 때로는 엄청난 길이의 로프를 타고 내려와야 하며, 혹 지나가다 놓친 것이 있다면 도로 기어 올라오기도 한다. 일요일 오전쯤의 홍대처럼 적들로 번잡한 곳을 보며 신세한탄도 잊지 않는다. 심지어 진행 중 아군에게 적의 공격을 봉화로 알리기 위해 탑을 오르는데, 계단이 아니라 탑 바깥을 수없이 날아다니며 빙글빙글 기어올라야 한다.(라라 없으면 도대체 누가 불을 붙이려고 탑에 그 꼴을 해놨는지)
▲ 게임을 잘 못하는 편인 기자는 4개 중 2번째 ‘툼레이더’ 난이도로 스토리를 클리어하는 데 약 14시간이 걸렸다.(이게 길게 걸린 건지 짧게 걸린 건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13시간쯤 했을 때 진행상황이 59%쯤 됐기에, 생각보다 콘텐츠가 길다 싶었다. 그런데 그 즈음 진행하던 챕터가 거의 마지막이었다. 클리어하고 나니 60%가 돼 있었다. 약간의 배신감이 들긴 했는데, 그래도 정신없이 즐겼으니 괜찮았다. 게다가 완전한 클리어를 위해선 라라의 스킬과 무기 업그레이드, 찾지 못한 유물과 무덤을 비롯한 각종 찾을 거리들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지역마다 몇 개씩 숨겨진 무덤과 묘지는 EQ를 한껏 발휘해야 하는 퍼즐들이 산재해 있다. 100%를 보기 전까지는 클리어한 게 아니니, 이 리뷰를 마치고 기자는 다시 스팀에 접속할 예정이다. 아니, 접속을 끊지 않았으니 되돌아간다고 해야 하나?
▲ 전작에 이어 한글화가 진행된 점은 기뻤고, 음성 더빙까지 됐다는 점은 놀랐다. 아직 우리나라에 정의가 살아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문어체를 그대로 더빙한 걸 들을 때 약간 어색한 점은 있지만, 게임을 1시간만 해보면 주인공이나 히로인들의 발음 따위는 안중에 없어질 것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영화처럼 연출된 게임의 특성상 인물들의 깊은 감정 표현이 필요할 때는 몰입도가 약간 떨어지긴 한다. 이것이 어색하다면 여느 때처럼 영어 음성에 자막을 사용하면 된다.(그래도 기자는 더빙의 매력을 다음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길 바라며 끝까지 한국어 더빙 모드로 플레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