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인식을 실제로 처음 써본 것은 90년대 말 ‘걸면 걸리는 휴대폰’ 걸리버로 ‘우리~집’을 속삭인 것이었다. 당시엔 몇몇 단어로 지정된 번호에 전화를 걸 수 있는 기능 자체가 신기했고,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우리 집’, 혹은 ‘OO동’으로 집에 전화를 거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물론 학생들은 ‘XX놈’이란 걸출한 육두문자로 친구와 통화를 하곤 했다.그리고 현재, 음성인식 시스템은 과거보다 월등히 나아져 음성만으로 오늘의 교통정보를 듣고 친구에게 약속 시간에 늦는다는 문자도 보낼 수 있게 됐다. 모바일 기기가 점점 똑똑해지며, 압도적 명령 도구였던 엄지의 지분을 목소리가 조금씩 가져오고 있다.
지능형 기기는 이미 존재하는 기기에 적용된 기술들이 계속되는 진화로 점점 똑똑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많은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로봇 청소기, 구글이 인수한 네스트랩스의 학습형 온도조절기 써모스탯도 지능형 기기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지능형 기기 시스템인 음성인식도 ‘우리집’처럼 간단한 단어 정도만 인식이 가능했던 15년 전과 달리, 이젠 오늘 날씨와 함께 회사까지 가는 길의 교통상황을 물어도 척척 대답이 돌아올 만큼 발달했다. 구글에서 추진하고 있는 무인 운전시스템 ‘구글 카’ 역시 운전에 필요한 정보를 끊임없이 송수신해 운전자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준다.
가트너의 데이빗 설리 부사장은 10대 전략 기술 중 지능형 기기를 언급하며 “이제 사람들은 많은 일들을 기기에 맡겨 두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작업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며, 향후 20년 동안 지능형 기기는 계속 확장하고 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과정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렇게 쌓인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분석해 진화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도자기를 만들 좋은 재료와 레시피를 찾았다면, 이제 도자기를 더욱 예쁘게 만드는 과정으로 넘어가는 시기다.일명 ‘가상 비서’(Virtual Personal Assistants, VPA)로 불리는 이 서비스들은 가트너에서 함께 언급한 ‘머신 러닝’과 궤를 함께 한다. 기기 스스로 수집되는 정보를 분석해 학습하는 머신 러닝은, 데이터 자체를 분석하는 빅 데이터보다 한 층 진화된 기술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미래의 범죄를 예측해 사전에 방지하는 시스템 ‘프리 크라임’이 머신 러닝의 개념이라 보면 된다.
머신 러닝의 핵심은 기계 스스로 정보를 분류하고 분석하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s)이다. 이는 가트너가 2014년에도 선정한 바 있는 딥 러닝(Deep Learning)이 기반을 두고 있는 인공신경망의 단점이 보완된 개념이다. 또한, 그동안 프로세서를 비롯한 컴퓨터 하드웨어의 발전으로 길게는 몇 달이 걸렸던 연산이 며칠 만에 가능해진 것도 한 요인이다. 더불어 계속해서 쏟아지는 자료들에 대한 수집과 분류가 더욱 원활해져, 자료 분석의 질이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기도 하다.지난 3월 바둑 세계 챔피언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4:1로 승리를 거둔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 역시 발달된 지능형 기기의 한 종류다. 일반 사람이 익히는 데 1천 년이나 걸리는 약 3천만 기보를 모두 학습한 알파고는, 고급 트리 탐색과 함께 심층신경망을 결합해 매 수마다 최적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 현재 지능형 기기와 인공지능에 대해 가장 가까운 것은 모바일 기기의 음성인식 기능으로 볼 수 있다. 애플 시리, 구글 나우,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가 그것이다. MS 코타나는 아직 한국어가 지원되지 않는다.
음성인식, 부르면 대답한다 이처럼 기기 스스로가 입력되는 정보를 학습하게 되면, 인간의 학습처럼 기기 스스로의 지식이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다음에 ‘더 나은 결과를 내놓는’ 것이 가능해진다. 음성인식을 예로 들면, 강원도 춘천에 사는 김춘천 씨의 스마트폰이 ‘내일 강원도에 눈 오나?’를 알아듣지 못해 항상 손으로 검색해야 했다면, 이런 데이터가 계속 쌓인 스마트폰은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해당 명령어의 정확한 목적을 알아낸다. 다음에 김춘천 씨가 같은 내용을 물었을 때, 심층신경망은 마침내 이 소리가 강원도의 날씨를 묻는다는 걸 알아내고 ‘내일은 눈이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라며 오는 1주일의 날씨 정보를 보여준다. 누적되는 데이터를 학습해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오류 분석만으로 가상 비서가 똑똑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해당 명령과 그에 대한 기기의 답변, 그리고 그 답변이 사용자가 원하는 답이었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같은 과정이 반복됐을 때 기기가 ‘왜?’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아직 먼 얘기다) 날씨를 묻는 음성에 ‘잘못 알아들었습니다’를 반복하면, 사용자는 음성인식을 끄고 웹브라우저를 열어 날씨를 검색하거나 날씨 앱을 실행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음성 질문(날씨) - 대답(동문서답) - 음성인식 종료 - 날씨 앱 실행’의 프로세스를 통해 기기가 질문에 대한 자신의 대답이 잘못됐다고 판단하는 과정이다.대부분의 언어가 마찬가지로, 한국어도 발음의 길이에 따른 이의어가 많아 음성인식이 완벽해지기 어려운 편이다. 이 경우 기기는 명령의 앞뒤 문장구조에 따라 해당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야 하는데, 이 분석 과정을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반복적인 사용으로 인한 데이터 누적이다. 이미 현재 서비스 중인 음성인식 서비스는 개인화 서비스를 기반으로 사용자 경험에 따라 학습 및 최적화가 계속 이뤄지고 있다. 특히 애플의 시리는 전원이 연결돼 있을 때만 부를 수 있었던 전작과 달리 아이폰 6S, 6S+에서 전원 연결에 관계없이 ‘시리야’를 부르면 곧장 실행되도록 진화했다.
▲ 몇 해 전 인공지능에 대해 ‘버튼을 눌러 불러내야 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다. 언제든 부를 수 있어야 진짜 인공지능’이란 요지의 글을 작성한 적이 있는데, 드디어 영화와 같은 인공지능 시대가 시작된 것 같다.
▲ 구글은 지난 2011년 무인자동차 관련 기술로 특허를 획득했고, 이후로도 수백 건의 관련 특허를 출원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자율주행자동차를 위한 잠금과 인증 관련 특허를 등록하기도 했는데, 해당 특허의 이미지에는 자동차에 당연히 있어야 할 운전대와 브레이크가 존재하지 않았다.
자율주행시스템, 운전 대신 명령한다 일반적인 판단으로 본 자동차 운전은, 자동차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당연히 사람이 하는’ 행위였다. 운전대를 쥐고 액셀을 밟는 촉감, 앞뒤 좌우를 항상 주시하는 시각, 주변의 소리에 반응하는 청각, 차량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후각… 운전에는 사용해야 하는 신경도 많고, 시동을 켤 때부터 내릴 때까지 거의 대부분의 근육을 사용해야 하는 전신운동행위다. 영화 ‘아이,로봇’(2004)과 같은 SF영화에서야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흔히 봤지만, 창문을 열었을 때 자동차 운전자가 두 손으로 신문을 들고 읽는 모습은 아직 그려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것을 조만간 실제로 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구글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이 직접 바퀴를 조종하지 않는 자동차를 연구해 왔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등록한 특허의 자동차 이미지에는, 자동차와 이음동의어라 해도 무방한 운전대가 없다. 브레이크도 없다. 이 자동차의 운전에 필요한 우선순위는, 운전대를 잡는 손이 아니라 목적지를 말하는 입이다. 출발부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필요한 모든 움직임은 자동차 스스로가 해결한다.
자율주행자동차는 머신러닝의 좀 더 가까운 예시로, 데이터를 수집해 진화하기보다는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것에 더 특화돼 있다. 항상 GPS와 위성통신으로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목적지까지 가는 경로와 교통상황 및 주행상황을 실시간으로 빠르게 분석해야 한다. 교통법규를 준수하며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탑승자를 도착시키는 것이 이 자동차의 목적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탑승자가 집과 직장을 왕복하는 경우 해당 목적지까지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경로를 찾거나, 앞선 차량의 속도가 느릴 때 차선을 바꿔 주행속도를 높이는 등의 선택적 연산까지 가능해진다.구글은 이 2세대 자율주행차를 소개하며 “사람의 조작이 전혀 필요 없어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홍보했다. 비록 현재의 국제 도로교통법에 의하면 ‘모든 차량에는 운전자가 있어야 하며, 운전자는 모든 상황에서 차량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때문에 구글은 무인자동차를 도로에서 시험할 때 2명의 탑승자가 항상 동행해 왔다. 자동차업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무인자동차 시스템에 국제규약이 대응하게 되면, 뒷좌석에만 사람이 타고 있어도 무섭지 않은 세상이 곧 올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