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의 기원: 레이싱 게임
2017-04-29 임병선 기자
레이싱 게임의 태동
최초의 레이싱 게임으로는 1973년 아타리가 출시한 ‘스페이스 레이스’(Space Race)를 꼽는다. 스페이스 레이스는 유성이 날아다니는 우주를 배경으로 우주선을 조종해 건너편으로 가는 게임이다.건너편으로 넘어가면 하단에 숫자가 올라가고 다시 시작 지점에서 출발하게 된다.어떻게 보면 자동차와 장애물을 피해 이동하는 ‘프로그’(Frog)와도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2명이 경쟁해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다, 스페이스 레이스 게임기의 컨트롤러는 위아래로 움직이는 2개의 조이스틱이 전부다. 이 조이스틱을 조작해 제한 시간 내 상대보다 더 많은 바퀴를 도는 쪽이 승리하게 된다. 하지만 스피드를 만끽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스피드를 느낄 수 있도록 제작된 레이싱 게임은 1974년 타이토에서 제작한 ‘스피드 레이스’(Speed Race)다. 자동차 경주를 하는 게임인 스피드 레이스는 배경이 정지된 스페이스 레이스와 달리 화면 스크롤과 함께 상대 자동차를 추월하는 스피드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같은 방식의 레이싱 게임이 한동안 정석으로 자리 잡게 된다.스피드 레이스의 또 다른 특징은 조이스틱이나 버튼이 아닌 핸들을 게임기에 장착했다는 것이다. 요즘 레이싱 게임에 적용되는 핸들처럼 세밀한 조작을 하는 것이 아닌 단순하게 왼쪽 오른쪽으로만 움직이는 방식이지만, 간접적으로 운전해볼 수 있는 체감형 게임기였다. 같은 해 출시된 아타리의 ‘그란 트랙 10’(Gran Trak 10)은 좀 더 진일보된 조작 방식을 취했다. 핸들은 물론 액셀, 브레이크, 변속 기어(1~3단, 후진)까지 직접 조작할 수 있었다. 그란 트랙 10은 마치 미니맵을 보듯이 전체 트랙을 위에서 쳐다보면서 자동차를 조작하는 게임이다. 다른 자동차와 경주하는 형태는 아니고 제한 시간 내 얼마나 긴 거리를 이동하느냐가 전부였다.아케이드 방식 발전
레이싱 게임은 아케이드를 중심으로 점점 발전해 갔다. 그중 현재 레이싱 게임 화면을 보여준 게임은 1982년 남코(現 반다이남코)에서 출시한 ‘폴 포지션’(Pole Position)이다. 고전 레이싱 게임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폴 포지션은 이후 출시된 레이싱 게임에도 큰 영향력을 줬으며, 레이싱 게임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다.F1 차량을 몰고 서킷을 달리면서 CPU의 자동차를 추월하는 방식으로, 체감형 게임의 원조이기도 하다.과거에도 레이싱 휠이나 액셀, 브레이크 등이 달린 게임기가 있긴 했지만, 폴 포지션은 실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아예 전용기기에 앉아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플레이 방식도 시간제한과 일정 체크포인트를 지나면 시간이 늘어나는 등 이후 출시된 아케이드 레이싱 게임들은 이 같은 것을 그대로 차용해 아케이드 레이싱 게임의 교과서적인 존재다.이러한 방식의 레이싱 게임이 계속 큰 인기를 얻었지만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PC와 콘솔 등 집에서 레이싱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자 서서히 쇠퇴했다.누구나 쉽게 집에서
1980년대 후반, 다양한 아케이드 레이싱 게임이 콘솔로 이식되면서 집에서도 레이싱 게임을 할 수 있게 됐다.하지만 그래픽이나 사운드는 물론, 컨트롤러도 게임 패드 내지는 스틱이 전부였다. 이런 컨트롤러로 레이싱 게임의 섬세한 조작은 힘들었으며, 자연스레 간단하거나 독특한 레이싱 게임이 큰 인기를 얻게 된다. 1990년 닌텐도에서 슈퍼패미컴으로 출시한 ‘에프제로’(F-ZERO)는 엄청나게 빠른 레이싱 게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미래를 배경으로 한 에프제로는 400km/h가 넘는 속도로 레이싱을 펼치는데 스피드감은 물론 슈퍼패미컴 패드에 특화된 조작으로 큰 인기몰이를 했다.이런 조작 방식은 1992년 출시된 ‘마리오 카트’(Mario Kart)가 이어받는다. 1992년 슈퍼패미컴으로 출시된 마리오 카트는 기본 시스템은 에프제로를 그대로 하고 있지만, ‘마리오’라는 익숙한 캐릭터가 주류가 되면서 좀 더 가볍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속도감은 조금 줄이고 불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아이템을 추가해 누구나 레이싱 게임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마리오 카트의 성공은 캐주얼하게 만든 레이싱 게임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줬고 이후 다양한 마리오 카트 아류작을 탄생하게 한다. 지금도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넥슨의 ‘카트라이더’도 마리오 카트에서 파생된 게임 중 하나다.3D 시대로 돌입
190년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동안 2D로만 제작되던 레이싱 게임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3D로 제작됐다.비록 최초의 3D 레이싱 게임은 아니지만, 세가에서 1992년 출시한 ‘버추어 레이싱’(Virtua Racing)은 보여주기 용이 아닌 본격적인 3D 레이싱 게임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이어 남코에서도 1993년 ‘릿지 레이서’(Ridge Racer)를 시작으로 3D 레이싱 게임을 출시했으며, 1994년 세가는 ‘데이토나 USA’(Daytona USA)를 출시해 본격적인 3D 레이싱 게임의 경쟁이 시작됐다.그렇지만 레이싱 게임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은 아마 1997년 출시된 ‘그란 투리스모’(Gran Turismo)가 아닐까 싶다. ‘리얼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표방한 그란 투리스모는 그 말 그대로 현실에 가깝게 제작됐다. 차량에 따라 가속력, 최대속도, 커브 등 성능이 천차만별이었으며, 실제 차량의 배기음과 엔진음을 넣어 뛰어난 현실감을 보여줬다. 오죽하면 레이싱 게임의 역사를 나눌 때 그란 투리스모 전(前)과 후(後)로 나누겠는가?그란 투리스모의 성공은 기존 레이싱 게임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줬고, 크게 아케이드, 세미 시뮬레이터, 시뮬레이터의 세 가지 방식으로 나뉘게 됐다.레이싱 전용 컨트롤러
다른 장르 게임보다 레이싱 게임은 전용 컨트롤러의 중요성이 상당히 높다. 물론 전용 컨트롤러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게임을 즐기는 데 전혀 문제없지만, 세밀한 컨트롤이나 체감도, 재미는 크게 달라진다. 특히 전용 컨트롤러가 실제 자동차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직접 운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크다. 가볍게 레이싱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키보드나 게임패드로도 충분하지만, 레이싱 게임 마니아라면 당연히 전용 컨트롤러인 ‘레이싱 휠’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을 정도로 필수다.문제는 어느 정도 가격이 적당한 수준인지다. 저렴한 제품이라면 10만 원 미만으로 구매할 수 있지만, 성능이 뛰어난 제품은 휠만으로도 50만 원 이상을 호가한다. 여기에 거치대나 전용 시트, 넓은 화면으로 즐기기 위한 트리플 모니터 등을 추가하면 몇백만 원은 우습게 깨진다.비록 뛰어난 장비가 실력과 비례하진 않지만, 그만큼 게임에 더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다는 것은 누구든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조작에 따라 움직이는 체감형 시트도 등장해 많은 레이싱 게이머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 밖에도 모니터를 3개 연결해 레이싱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상당수 있다. 모니터 1개로 게임을 즐기는 것보다 더 넓은 화면을 볼 수 있으며, 실제 운전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같이 트리플 모니터를 구성하기 위해선 PC는 다중 모니터를 지원하는 그래픽카드만 있으면 그만이지만, 콘솔 시스템에서는 똑같은 콘솔 3대와 게임 타이틀 3개라는 괴상한 조건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콘솔로만 즐길 수 있는 레이싱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를 즐기기 위해 이러한 시스템을 갖춘 마니아도 적지 않다.최근에는 VR 기기와 연동해 360도 시점을 구현한 것도 존재한다.대표 레이싱 게임
그란 투리스모
마리오 카트
포르자 모터스포츠
니드 포 스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