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모바일? 게임기? 허물어지는 게임 플랫폼 경계

2017-10-31     임병선 기자
기존에 게임을 즐기려면 거기에 해당되는 플랫폼이 있어야 했다. 과거에 PC로는 PC게임만을 즐길 수 있었고, 게임기 게임은 게임기로만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개발사마다 멀티 플랫폼을 채택하면서 PC와 게임기로 동시에 게임이 출시되는 일이 잦아졌다.그럼에도 독점으로 나오는 게임은 여전히 해당 플랫폼으로만 즐길 수 있다. 특히 게임기 성능이 PC 성능을 따라오지 못하게 되면서 게임기는 자체 경쟁력을 독점 게임으로 내세우고 있다.그랬던 게임 플랫폼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PC의 성능을 넘보고 있는 모바일은 물론이고 게임기가 점차 PC에 가깝게 변하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아직 완벽하게 모든 부분에서 경계가 허물어진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더 흐르면 같은 게임을 PC와 게임기, 모바일에서 즐길 수 있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기본 바탕은 PC

플랫폼 경계가 허물어지는 중심에 있는 것은 PC다. 사실 이런 현상에서 가장 수혜를 얻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PC일 것이다. 그동안 PC는 PC 전용 운영체제, 모바일은 모바일 전용 운영체제, 게임기는 게임기 전용 운영체제로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영역을 넘보지 않았다.물론, 과거에도 에뮬레이터 같은 것을 통해 PC에서 게임기 게임을 강제 구동할 수 있었지만, 현세대 게임기를 구동하는 것은 무리였고 전 세대 게임기를 구동하는 것에만 만족해야 했다.그래도 게임을 구동하는 데 큰 문제가 없으며, 성능으로 밀어붙이면 게임기에서 즐겼던 게임에 다양한 옵션을 추가하거나 더 고퀄리티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흔히 우스갯소리로 ‘PC는 신의 게임기’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하지만 현재 진행형으로는 전세대가 아닌 현세대와의 플랫폼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것은 마이크로소프트(MS)다. MS는 PC의 윈도우 운영체제를 통해서 자사의 게임기인 엑스박스(X-BOX)와 PC의 경계를 허물려고 하고 있다.그 시발점이 된 것이 바로 윈도우10이며, 윈도우10에 있는 윈도우 스토어와 엑스박스 스토어를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미 엑스박스 독점 게임 중 몇 개는 윈도우 스토어를 통해 PC 쪽으로 출시하기도 했다.
 

변화 선도하는 MS

PC로 엑스박스 전용 게임이 출시되자 기존 게임기 유저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팽배했다. 해당 게임을 하기 위해 구매했던 게임기가 PC로도 구동할 수 있으니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하지만 MS 입장에서는 게임기보다 PC를 보유한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더 많고 그만큼 많은 사람을 윈도우10의 영역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렸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해당 게임을 즐기고 싶었지만, 엑스박스 게임기를 가지고 있진 않았을 경우라면 윈도우 스토어로 출시된 게임을 즐기기 위해 윈도우10으로 업그레이드한 사람도 상당수 있다.물론 윈도우 스토어를 통해 출시된 게임이 엑스박스에서 즐겼을 때 보다 무조건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양한 옵션 설정과 고퀄리티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은 큰 강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엑스박스 만의 강점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같은 가격이라면 PC보다 엑스박스에서 더 최적화된 게임을 즐길 수 있을 뿐더러 하드웨어 성능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여기에 MS는 엑스박스 게임 패키지를 구매하면 윈도우 스토어에서도 같은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쿠폰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집에서는 엑스박스로, 회사나 PC방에서는 PC로 같은 게임을 그대로 이어서 즐길 수 있는 플레이 애니웨어(Play Anywhere)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물론 PC로 하지 않을 것이라면 해당 쿠폰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도 게임 구매에 드는 가격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변화 시도하는 닌텐도

닌텐도는 국가코드 등 다양한 정책에서 가장 폐쇄적인 게임 회사다. 국가 코드는 DVD에도 사용됐던 것으로, 나라마다 다른 국가코드를 적용해 서로 다른 국가의 콘텐츠를 즐길 수 없게 하는 장치다.닌텐도는 첫 번째 게임기인 패미콤(내수)과 NES(외수,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 국가코드는 물론, 게임기 팩 형태까지 다르게 디자인해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최근 출시됐던 Wii U의 경우는 전용 패드에도 국가코드가 탑재돼 있어 일본 게임기의 패드를 다른 나라 게임기의 패드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기도 했다.닌텐도가 이런 식의 배짱 장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강력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닌텐도의 대표적인 IP(지적재산권)이라 하면 마리오와 젤다, 포켓몬스터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IP는 오직 닌텐도 게임기에서만 즐길 수 있었고 즐기고 싶다면 닌텐도 게임기를 구매해야 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던 닌텐도는 새로운 게임기를 출시할 때도 성능 향상에 중점을 두기보단 얼마나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느냐에 집중했다. 물론, 닌텐도의 게임기를 통해서만 말이다.하지만 최근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절대 자신의 뜻을 굽힐 줄 몰랐던 닌텐도가 모바일용 게임을 하나둘 출시하기 시작했다. 앞서 큰 화제를 모았던 ‘포켓몬GO’나 얼마 전 출시한 ‘슈퍼마리오 런’ 등이 그 시발탄이다. 닌텐도가 커진 모바일 시장만큼 거기에 순응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아직은 미온적인 소니

SIE(소니 익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 이하 소니)는 MS나 닌텐도보다 더 미온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소니는 자사의 플레이스테이션을 모바일이나 PC에 진출할 계획이 아직은 없는 상태다. 그저 모바일 앱을 통해 계정을 관리하는 정도만 지원할 뿐이다.그나마 자사의 휴대용 게임기인 PS Vita에서 지원했던 PS4의 리모트 플레이(네트워크를 통해 집에서 대기 중인 PS4에 연결해 조작하는 것)를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물론, 윈도우10에서 리모트 플레이 프로그램을 설치해 구동할 수 있도록 해 모바일과 PC와의 연동도 어느 정도 제약을 풀었다.하지만 어디까지나 스트리밍에 한정된 것이며, 소니 자체에서 모바일이나 PC 쪽으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경쟁사인 MS와 닌텐도 쪽에서 모바일과 PC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만큼 소니도 생태계 확장을 위해 모바일과 PC 진출은 앞으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