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rtPC사랑, 10년 전을 되돌아보다: MP3 플레이어의 기억
2017-12-02 양윤정 기자
예전부터 IT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동안 다양한 IT 기기를 접해 왔을 것이다. 그래서 smartPC사랑에서는 10년 전을 되돌아보자는 의미에서 정확히 10년 전 잡지에서 소개된 내용 중 하나를 발췌해 소개해보는 자리를 마련해 봤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누군가에게는 생소한 물건일 것이다.
이번 호에는 지난 2006년 11월 호에 소개된 ‘MP3 플레이어’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MP3 플레이어는 1998년 국내에서 최초의 보급형 MP3 플레이어 ‘엠피맨’이 개발된 이후 빠르게 발전해 2000년대 디지털 기기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잘 나갔던 MP3 플레이어의 10년 전 상황을 살펴보자.지금은 낯선 MP3 플레이어
정확한 명칭은 디지털 오디오 플레이어로 디지털 오디오 파일을 재생하는 기기를 의미한다. 주로 오디오 데이터 중 사람이 듣기에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제거한 손실된 압축 포맷인 MP3 파일로 음악을 재생해 MP3 플레이어라 불렸고 그게 굳어져 지금까지 MP3 플레이어 혹은 MP3로 줄여서 부르고 있다.음원 파일인 MP3는 1990년대 중반부터 말까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고 이에 MP3 파일을 재생하는 휴대용 음향기기 MP3 플레이어의 원천 기술이 1997년, 다우기술 출신인 황정하가 설립한 디지털캐스트에 의해 개발됐다. 한국에서 최초의 MP3 플레이어가 만들어짐과 동시에 국내 기업 아이리버(당시 레인콤), 코원, 엠피오, LG전자, 삼성전자 등이 MP3 플레이어 사업에 뛰어들었고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까지 큰 두각을 나타냈다. 그 당시, 한국은 MP3 플레이어의 종주국이라 불렸다.절대강자 아이팟(iPod)
10년 전,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 점유율 1위는 애플의 ‘아이팟’이었다. 미국에서는 아예 아이팟이라는 단어가 MP3 플레이어 전체를 부르는 명칭이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많이 이용했다.2001년 아이팟(현 아이팟 클래식)으로 MP3 시장에 첫 발을 내딛은 애플은 하드디스크를 내장해 5GB의 대용량(그 시절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던 ‘아이리버 iFP-390T’의 용량이 256MB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대용량이다)과 음악 및 동영상 프로그램 아이튠즈로 단번에 MP3 플레이어 시장을 장악했다.애플이 MP3 플레이어의 절대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튠즈의 공이 컸다. 아이튠즈는 애플에서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파일을 다운로드함과 동시에 별도의 이동 과정 없이 바로 아이팟에서 재생이 가능했다.또한, 아이튠즈로 상세한 음원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작곡가, 장르, 출시연도 등으로 분류를 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어 음원 관리 기능이 타 MP3 플레이어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애플이라는 브랜드 파워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개인용 컴퓨터를 보편화 시키면서 이름을 널린 알린 애플은 당시 힘 있는 브랜드 중 하나였고, 특히 탁월한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던 상태였다.
아이팟의 대항마? 마이크로소프트의 준(Zune) 플레이어
2006년 9월 12일 애플은 터치스크린이 탑재된 차세대 아이팟 6세대를 공개했다. 그리고 이틀 뒤 14일,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첫 MP3 플레이어 ‘준 플레이어’의 출시일을 발표했다.준 플레이어는 출시 첫 주 미국 시장 점유율 9%로 순조롭게 출발했지만 아이팟의 자리를 탐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여러 사이트에서 아이팟과 준 플레이어를 비교하는 기사들이 쏟아졌고 대부분이 아이팟의 손을 들어줬다.음악 이외에 TV 프로그램 및 영화 등 동영상 서비스와 게임까지 선보이고 있는 아이튠즈와 음악만을 공급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음악 서비스 프로그램 ‘준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콘텐츠 양의 차이는 컸다.또한, 준 소프트웨어는 PC에서만, 아이튠즈는 PC와 애플 맥에서도 연결이 가능했고 다른 버전의 아이팟과 연동할 수 있는 등 가장 주목을 많이 받았던 소프트웨어 부분에서 아이팟이 완승을 차지했다.
준 플레이어는 아이팟과의 차별점으로 다른 준 플레이어와 노래를 무선으로 공유하는 WiFi 기능을 핵심으로 내세웠지만 미국 경제전문지 ‘CNN 머니’는 공유를 원하는 소비자가 별로 없다는 점과 절반 가까이 공유가 거절당하고 공유를 받아도 노래를 3일 밖에 듣지 못한다는 점을 꼬집으며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종주국 한국은 어디에
MP3 플레이어의 종주국 한국의 상황은 어땠을까. 국내 MP3 플레이어 기업들은 콘텐츠 없는 MP3 플레이어만을 출시하다 시장의 주도권을 애플에게 빼앗기고 말았다.당시 국내에서도 합법으로 음원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었지만 이 사이트에서 음악을 다운받아 MP3 플레이어로 재생하기까지의 과정이 아이팟에 비해 불편했다.이런 음원 사이트들은 불법 복제로부터 콘텐츠를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플랫폼 DRM을 이용했는데 DRM의 종류가 워낙 많았고 지원되지 않는 MP3 플레이어는 음악을 재생시키지 못해 꼭 호환 기기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또한, 재생 기간이 따로 설정돼 있어 약 한 달이 지나면 다시 해당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 일일이 기간 연장을 신청해야 했다. 이런 문제점들은 당시 불법 다운로드가 성황이었던 이유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그렇다고 MP3 플레이어 시장이 완전히 아이팟에 잠식당하지는 않았다. 국내에선 여전히 국산 브랜드 제품이 우위였으며 세계 시장에서도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이튠즈 때문이다.일단 국내에서 아이튠즈 사용은 정말 불편했다. 한국 계정에선 다운로드 서비스가 지원되지 않아 음악을 다운받기 위해선 해외 계정을 따로 만들어야 했으며 이에 따른 결제의 어려움도 많았다.아이튠즈에서 다운로드받은 파일 이외에 다른 파일을 아이팟에 옮기고 싶어도 꼭 아이튠즈 프로그램을 거쳐야 하는 등 손이 많이 가는 프로그램이라 단순히 드래그&드랍으로 파일 이동이 가능하고 라디오, 음성 녹음 등 다양한 기능이 추가된 국산 MP3 플레이어도 세계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국내 대표 브랜드 아이리버와 코원
국내 MP3 플레이어 업계의 선두주자는 아이리버였다. 삼성전자에서 나온 양덕준은 1999년 아이리버의 전신인 ‘레인콤’을 차리고 MP3 플레이어를 연구, 개발해 2000년부터 ‘iFP 시리즈’를 선보이며 세계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2004년, 최초의 MP3 플레이어를 만들었던 ‘엠피맨닷컴’을 인수하고 레인콤의 MP3 플레이어 브랜드 이름이었던 아이리버로 2009년 회사명을 변경했다.엠피맨닷컴 인수로 몸집을 불린 아이리버는 2004년 4,54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국내 시장 점유율 79%, 세계 시장 점유율 25%(세계 시장 2위)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고,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의 라이벌은 아이리버라고 언급할 정도로 MP3 플레이어 업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회사로 이름을 날렸다.하지만 아이팟이 상승세를 타면서 아이리버는 점점 점유율을 잃게 된다. 반전을 기대하며 카메라, 사전 등 다양한 기능을 담은 MP3 플레이어를 출시 하지만 가격, 콘텐츠를 앞세운 아이팟을 이기기엔 부족했고 제자리 걸음을 하다 국내 1위 자리도 결국 삼성에게 빼앗기고 만다.화려했던 MP3 플레이어의 슬픈 결말
10년 전, 가장 핫 했던 IT기기 MP3 플레이어는 스마트폰의 등장과 스트리밍(음악을 다운받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및 와이파이를 사용해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기법) 서비스를 제공하는 음악 사이트들의 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되면서 완전히 죽어버렸다.MP3 플레이어 시장을 호령했던 아이팟은 2014년 아이팟 클래식이 6세대를 마지막으로 단종됐고 아이팟 나노 역시 2012년 7세대 이후 다음 세대 제품이 나오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 출시된 제품이 2015년 7월, 3년 만에 선보인 아이팟 터치 6세대지만 이미 아이팟 매출은 반토막이 난 상태였다.국내 사정도 다르지 않다. 수많은 MP3 플레이어 회사들은 문 닫은 지 오래고 그나마 아이리버와 코원이 보급형 MP3 플레이어에서 고가의 프리미엄 MP3 플레이어 시장으로 눈을 돌려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지만 예전 디지털 기기 시장을 주도했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