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국HP 이홍구 부사장

2009-10-23     PC사랑
 
처음 PC 사업에 발을 디딘 게 1981년이니까 벌써 26년이다. 대영전자를 거쳐 한국IBM, 그리고 12년 만에 컴팩으로 자리를 옮겨 HP와 합병된 지금까지 줄곧 PC사업에만 매달린 HP 이홍구 부사장(50)이 흘린 시간이다. 이 바닥에서 자신과 함께 일을 시작했던 동료들이 모두 떠나 홀로 남았다는 아쉬움과 탄식도 잠시, 컴팩과 HP에서 보낸 10년 동안 PC부문을 맡아 연매출 5천억 원짜리 알짜배기 부서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궁금했다. 또 앞으로 어떤 사업을 펼칠 것인지 이홍구 부사장의 인터뷰를 키워드로풀어본다.
 
PC 시장
사실 HP가 한국에서 PC사업을 시작한 게 얼마되지를 않았어. 그 이전부터 시도하다가 실패하기를 여러 번반복하는 바람에 주도권을 잃었거든. 더구나 우리나라는 삼성이나 LG 같은 지역 브랜드가 강한 나라라서 더 쉽지 않아. HP가 세계 PC 판매 1등(2006년 3/4분기 판매 실적에서 델을 제침)이지만, 그래도 한국은 예외야. 때문에 작년에 서비스 망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정비하고 있지. ‘HP 제품을 사면 서비스가 될까’라는 의구심을 해소하려는 거였어. 다국적 기업 중에 HP만큼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서비스망을 갖춘 것도 드물거든. 그만큼 많은투자를했고그결실을맺으려는거야.
하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아직 낮아. 외국에서야 많은 이들이 HP를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프린터만 파는 회사인 줄 알잖아. HP가 우리나라 톱 3인데도 모르는 이가 많단 말이지. 내가 그걸 풀어야 할 책임자거든. 그래서 지난해 4월부터 브랜드 마케팅을 시작했고 아시아태평양 지역 노트북 신제품 발표회도 한국에서 처음으로 유치했던 거지.(HP는 2007년 1월 24일,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신제품 발표회를또다시한국에서개최했다.)
물론 대대적인 발표회 말고도 우리나라에 맞는 광고 마케팅도 하고 있는데,여기에 한 가지 원칙은 있어. 수익을 넘어서는 무리한 광고는 안 하는 거야.브랜드 인지도 올리겠다고 무리했다가 자칫 중장기 전략이 다 꺾여버리는수가 있거든. 다국적 브랜드가 한국에서 고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전략의 잦은 변경을 꼽을 수 있어. 무리한 마케팅을 하다가 어쩔 수 없어 전략을 수정하는 데가 많거든. 분명 좋은 의도로 행한 일이지만 결과가 그러하니까. 사실 지금 HP가 2위(LG)와 거의 차이 없는 3위이기에 조금만 더 강하게 밀어 붙이면2위로올라설수있지만, 그렇게는안할거야. 어마어마한투자를해서한단계올라섰을 때 그것을 얼마나 길게 이어가느냐가 숙제 아니겠어? 연속성 있는 전략을펴고길게보면서하나씩해나가는게내방식이고HP의갈길이야.
 
3년뒤계획
당연히 세워져 있지. 1990년 이전에는 기술적 장벽이 있었고,이것이 해결된 1990년 이후에는 유통 장벽이 있었지. 지금은 유통 장벽의 문제도해결됐거든. 누구라도 인터넷을 통해서 제품을 팔 수 있으니까. 대신 새롭게 재무장벽이란 게 생겼어. 과거에는 PC 1대만 팔아도 큰 영업 이익을 남겼지만, 2000년이후에는 영업 이익률이 크게 떨어졌어. 누구라도 PC를 만들어 팔 수 있게 되니까경쟁이치열해지는바람에아무도이익을가져갈수없는구조가된것이지. 결국규모를더크게가져가지않으면원가부담을견디기힘든구조가된것을뜻하거든.이러한 시장의 움직임으로 볼 때 3~5년 뒤에는 두 가지로 나뉠 거야. 고부가 제품시장(리치 마켓)과 대량 판매 시장(볼륨 마켓) 말이야. 한 마디로 시장이 정리된다는거지. 1년에 1억 대의 판매량을 가진 미국도 PC 업체는 10개나 될까. 대부분 통합되거나 정리되고 있거든. 삼보가 투자한 이모션스는 게이트웨이로, IBM PC 사업부는 레노버로, 컴팩은 HP로 이동했잖아. 그 이면에는 경비 구조를 줄이는대신 규모를 키워 전체적인 이익을 높이는 재무적인 문제가 있었던 거야. 그래야만개발과서비스, 재투자를할수있는비용이생기거든.
우리나라도 3년 안에 이런 통합이 일어날 거야. 규모의 사업을 하던 업체들위주로 말이야. 그게 아니라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는 구조로 가게 되겠지. 그렇다고 모든 PC 업체가 망하라는 소리로 받아들여서는 안 돼. 규모의 사업을 하는 업체가 아닌 특화된 기술과 제품, 영업 전략을 하는 고부가제품판매자들은살아남을가능성이있으니까.
HP는 당연히 대규모 시장을 노리는 업체야. 우리도 이에 대비해 슬림화된 조직을 운영해왔던 것이고 말이지. 브랜드와 서비스 투자에 대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3년 안에 있을 재무 장벽의 파고를 헤쳐 나갈준비는해놓았어. 규모의경제에벌써대비하고있는셈이지.
 
구조조정난
구조조정을 좋아하지 않아. (컴팩을 포함해) HP에서10년 동안 PC 사업을 하면서 가장 싫어한 단어가 구조조정이거든. 조정할 구조를 왜 만들지?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은 그 구조를 만든 사람이 책임져야 할 일이잖아. 그런데 구조조정을 하면 열심히 일했던사람이 희생양이 되고 구조조정을 당해야 할 사람이 스타가 되는 게현실이거든. 구조라는 것은 그 환경에 맞게끔 지속적으로 변화시키고 최적화해 나가야 해. 난 10년 동안 한 번도 수익이나 비용 문제로 누군가에게 나가 달라고 말한 적이 없어. 해마다 이직하는 이가한두명인데그나마도개인적인일로떠나는거고.
난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할 환경 자체를 안 만들어. 지금 매출액이 5년 전에 비해 9배 정도 늘어났지. 부가세 포함해 5천억 원 정도 되거든. 7년 전에는 한 달에 10~20억 원이나 했을까, 노트북200대만 팔려도 좋았거든. 그때 직원 수가 48명이었는데 지금78명밖에 안 돼. 물류를 도와주는 외주 인력을 포함해봤자 100명이 안 넘어. 인력은 두 배 밖에 안 늘었는데 매출은 9배 이상뛰었잖아. 우리 스스로 경쟁력을 갖춘 거야. 물론 HP는 업무량이많아소위‘빡 세다’는 걸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직원들에게도 물어보면 답은 같아. 수시로 구조조정을 하느니 그 비용을절감하자는 의견으로 모아지니까 말이야. 단기적인 성과 때문에 사람을 쓰다가 필요 없게 되면 이전에 있던 인력들도조정대상자가될수도있거든.
때문에 난 구조조정 대신 구조를 조금씩 바꿔 왔어. 이를테면 PC에서 노트북으로 주 사업이 바뀌거나 채널 영업에서컨슈머 영업으로 바뀔 때 사업방향에 따라 이동시키는 거지. 물론 이에 대비해 미리 직원 교육을 시키고 있어. 매년10~20%의 직원들에게 보직 순환을 시키거든.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미리 준비해두는 거야. 사업의 연속성을 이어가기 위한 전문가를내부적으로 만들어낸다고 볼수있어.
 
올인원PC와노트북
HP가올해올인원PC를 내놓잖아. 이전까지 올인원 PC를 만들어서 성공한예가없어. LG, 삼보, 컴팩등성공했다고평가할만한기
록을못냈지. 이런올인원PC의징크스때문에삼성은시도도안하고있거든. 난이징크를깨보일거야. 과거올인원PC가실패한것은최소한2년뒤를내다보고제품을만들어야 하는 데 항상 개발 당시 상황에 맞춰서 내놓는다는말이지. 이번에 HP가 내놓은 올인원 PC는 20인치 터치스크린에 최고 성능의 CPU와 램, 하드디스크, 광학 드라이브등 2년은 너끈히 버틸 수 있는 제원으로 채웠어. 올인원 PC를쓰고싶어도안쓰는이유가미약한성능과디자인때문이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그 불만을 확실히 해결했어. 아마도 올인원 PC가 HP의 메인 제품은 아니겠지만 얼리어답터와 파워유저, 전문직종사자들이고를만한옵션이될수있을거야.노트북은 소비자들의 취향을 좀더 빠르게 읽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 그래도 최소한 시간이 6개월 정도 시간이 걸리거든.
늘 디자인을 고민하면서도 내부적인 절차를 거치느라 너무 느렸던 게 사실이야. 그런데 지난 해 상감 기법을 넣어 만든 노트북의 판매량이 48%나 증가한 뒤에야 변화가 좀 생겼어. 연구소에 있는 수많은 디자인도 좀더 공격적으로 바뀌고 다소 보수적이던 결정권자들의 판단도 앞당겨지고 있거든. 때문에 컨슈머노트북과 데스크탑 PC가 이미 바뀌었고, 올 하반기 기업용 노트북 디자인이 바뀌게 될 거야. 컨슈머 노트북만큼은 아니지만, 이전의 기업용 이미지와 다를 정도로 바뀌는 것이지. 20인치 노트북도준비하고있으니까기대해도좋을거야.
 
PDA의미래
PDA폰으로 가는 수밖에 없겠지. 소비자가 원하니까. PDA와 이동 통신을 결합한 PDA폰이 나온 뒤에는 두 가지를 따로 갖고 다니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이러한 고객 취향에 맞춰야하는게옳은거겠지.
사실 PDA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동통신은 의미가 없었어. 그런데 이동통신이 시장의 대세로 자리를 굳힌 이후에는 PDA가 더 이상 주도하지 못하고 말았거든. 그러다보니 이동통신 기능을 넣은 PDA폰을 만들게 된 거야. 외국에서는 이미 매우 많은 PDA폰을 팔기도 했거든. 2년 전에 우리도 했지만, 사실 이게 쉽지 않아. 다른 나라는 전부 GSM인데 우리는 CDMA니까 우리나라만을 위한 PDA폰을 만들어야 하거든.원래 HP는 한 지역에 특화된 제품을 안 만드는데, 그때는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했던 거야. 한 번 해보니까 한계를 알겠더라고. 당시 ODM 생산을했던LG와업무관계나시장에대해서말이지.
앞으로 3G나 4G 시대가 열리면 GSM이나 CDMA를 나누지 않아도 되니까 하나의 하드웨어로 모든 시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PDA폰을 만들 수 있어.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도 다시 시작할 거야. 아마도 올 하반기겠지. 아직 확실히 하겠다고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CDMA가 아니라 3G에 대한 가능성을 보면서 시장을 면밀히 분석 중이야. HP 혼자 할 수 없는일이잖아. 이동통신 업체와 협의도 해야 하고 본사 개발팀하고도 이야기를해야 하니까. PDA폰을 만들어야 할, PDA폰으로 서비스를 해야 할 동기가맞아야만 사업을 할 수 있는 부분이라 장담은 못해. 그래도 PDA폰이 PDA의미래라는건변함이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