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아웅하는 MS

2010-04-14     PC사랑




지난 3월 19일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 8(IE8)의 정식 버전을 발표했다.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액티브 X의 처리 문제였다.

IE8 발표가 있기 전 MS는 “IE8에서는 웹 표준을 지킨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말은 많은 추측과 혼란을 불러왔다. MS가 명확하게 밝히진 않았지만 표준을 지킨다면 액티브 X를 쓰지 않게 되는 게 아닌가라고 예상한 이가 많다. 액티브 X를 더 이상 쓰지 못한다면 우리나라 대부분 은행의 인터넷 뱅킹을 이용할 수 없다. 은행 등 금융업계는 물론 국가 기관 사이트까지 혼란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인터넷 대란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다는 다소 과장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액티브 X로 인한 보안 문제와 불편함을 아는 이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잠깐 혼란스럽고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액티브 X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국내 인터넷 풍토를 바꿀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IE가 웹 표준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을 비웃기라고 하듯 IE8은 MS가 발표한 대로 웹 표준을 지켰지만 액티브 X도 쓸 수 있도록 별도의 호환 모드를 두는 꼼수를 두었다.

웹 표준이라고 해놓고 MS도 포기한 액티브 X를 포함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는 물론 해외도 액티브 X를 전혀 지원하지 않는 웹브라우저를 내놓으면 예상한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문제가 좀더 심각할 뿐이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PC가 윈도를 운영체제로 쓰고, 웹브라우저도 인터넷 익스플로러 일색이다. 이는 인터넷이 보급되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용자가 윈도와 IE밖에 모르니 개발자들도 그에 맞춰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MS의 전략에 놀아났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 덕에 IT 시장이 활성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획일화로 인한 문제가 불거졌을 뿐이다. 현재는 거의 모든 웹 사이트들이 IE에 최적화되어 다른 웹 브라우저에서 화면이 깨지고, 액티브 X가 작동하지 않아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할 수조차 없다.

특히 보안에 취약한 액티브 X가 문제다. 웹 사이트에 접속만 해도 자동으로 깔리는 액티브 X를 이용한 해킹이나 바이러스 등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MS는 IE7부터 이용자가 원할 때만 액티브 X를 설치하도록 했지만 아직도 많은 웹 사이트가 여전히 액티브 X에 의존하고 있다.

액티브 X에 묶여 있는 우리나라는 MS에게 일종의 보험과 마찬가지다. 해외에서는 MS와 IE의 영향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파이어폭스는 전세계적으로 점유율 20%를 넘어섰고 사파리 4는 두 자릿수 점유율에 바짝 다가섰다. IE가 70% 이상의 점유율을 보이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파이어폭스나 사파리 4의 인지도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MS가 액티브 X를 포기한다면 이용자가 대거 다른 웹 브라우저로 갈아탈 가능성이 높다. 어떤 웹브라우저를 쓰더라도 액티브 X를 쓸 수 없고, 이로 인해 불편을 겪는다면 굳이 다른 브라우저에 견줘 속도가 느린 IE를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독점에 가까운 점유율을 포기하고 동일한 출발선에서 서서 다른 웹브라우저와 처음부터 다시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뜻이다. 한동안은 국내 인터넷 업계와 누리꾼이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MS의 영향력은 상당 부분 줄어들고, 액티브 X에 안주하던 업계도 신속하게 다른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IE8은 확실히 이전 버전보다 좋아졌다. 최대한 웹 표준을 준수했고, 등을 돌렸던 개발자들을 달래려 개발자 전용 툴도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일반 이용자들은 속도가 빨라졌다고 반색이다. 하지만 액티브 X를 쓸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전략이다. 처음부터 웹 표준을 지키겠다는 발표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을 뻔 했다.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확인하고 IE8을 내놓았다.

그러고는 마치 인심 쓰듯이 혼란에 대한 우려가 있어 액티브 X를 전면 차단하지는 않겠다고 주장한다. 액티브 X 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늘 “노력 중이다”는 대답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 웹브라우저 시장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MS와 보안 문제는 안중에도 없이 누리꾼을 이용해 돈벌이만 하려는 웹서비스 업체의 이해관계가 계속 맞아떨어지는 한 우리나라에 웹 표준이 정착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인터넷 뱅킹을 쓰려면 여전히 액티브 X를 설치해야 한다. IE8은 전반적으로 전작에 비해 속도와 호환성은 좋아졌지만 문제가 많은 액티브 X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벗어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