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언론 통제국인 중국과는 다르다” - 구글, 왜 실명제 거부했나
‘구글의 기업 정신’ vs ‘국내법 위반’
지난 4월 8일 이후로 유튜브에 한국설정으로는 게시물을 업로드하지 못한다. 유튜브는 4월 1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2009년도 본인확인조치의무자 선정결과’에 뽑힌 153개 업체 중에 하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하루 10만 명 이상의 방문자가 드나들며 게시판 기능이 있는 인터넷 서비스는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라”는 방통위 방침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유튜브는 “구글은 어떤 상황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우선으로 한다”며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해 누리꾼들로부터 영웅대접을 받고 있다.
“실명과 주민번호를 모두 확인한 뒤 글을 올려야 한다면 이용자들은 표현에 있어 위축될 것이다. 물론 표현의 자유에는 일정 부분 제한이 필요하지만 법률과 문화가 모두 다른 100여 개 국가에서 서비스를 하는 우리로서는 그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문제다. 모든 나라에서 불법인 아동 포르노에 대해서는 글로벌 차원의 금지 원칙을 적용한다. 그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우선으로 한다. 인터넷 문화에서 자유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바로 익명성이다. 그 원칙을 고수하기로 한 것이다.”
구글코리아의 정김경숙 상무는 “표현의 자유”란 말을 여러 차례 힘 주어 말했다. 전 세계에 적용하는 이 방침을 굳이 한국에만 특별히 바꾸어 적용할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한국 사람들은 유튜브를 이용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유튜브 블로그에서도 밝혔지만 한국 국가 설정으로 업로드만 제한했을 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국가 설정을 전 세계나 다른 나라로 하면 업로드도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단계가 하나 늘어났다고 생각하면 된다.
별명과 아이디에 익숙한 누리꾼들의 호의적인 반응이 많지만 국내에 진출한 서비스인데 당연히 현지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중국에 구글을 오픈할 때는 중국 정부의 사상검열에 백기를 들었던 전례도 문제가 되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구글은 한국법을 따르기 위해 실명제를 거부한 것이다. 유튜브는 전 세계적으로 본인확인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현재 22개의 국가 중 유튜브에 실명확인을 요구한 곳은 한국뿐이다. 운영 방침에 따라 조건이 맞지 않는 곳에 서비스를 하지 않는 것뿐이지 맞서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언론통제국인 중국과 한국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현지법 위반이 아니나 법이 적용될 수 없는 곳으로 한 발 물러섰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비판의 목소리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실명제를 도입하는 이유는 글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익명이라는 이름으로 악플이나 선정적인 파일의 문제를 유튜브라고 피해갈 수는 없다.
“우리는 인터넷에 올라가는 파일의 종류를 결정하는 중재자가 아니고, 그런 역할을 해서도 안 된다. 구글은 유튜브가 지닌 자정 능력을 믿는다. 좋지 않은 글이나 영상에 대해서는 신고하거나 걸러내는 등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인터넷을 부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은 그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법이나 제도의 틀 안에서 이런 것을 관리하게 되면 자유로운 표현들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정부는 유감, 누리꾼은 호감
초반 본인확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말과 달리 구글이 거부의 입장을 밝히자 게시판에는 누리꾼들의 응원 글이 쏟아졌다. 인터넷 실명제로 갈 곳을 잃은 누리꾼들이 구글로 옮겨가면서 ‘사이버 망명지’라는 별명을 얻었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영상과 호응 댓글이 꾸준하게 올라오고 있다. 정치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구글은 이런 반응을 예상했을까.
“솔직히 뒤의 반응까지 예상할 겨를이 없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이용자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해서 결정했을 뿐이다.”
법 위반에 관계없이 한국 정부로부터 곱지 않은 눈초리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 1년여의 현지 적응을 끝내고 이제 본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하는 유튜브코리아의 계획이나 방향에 악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에 견주면 작은 시장인 한국에서 사업을 축소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국내 유튜브 점유율은 15%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오히려 길게 보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는 하겠지만 구글코리아나 유튜브의 사업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정김경숙 상무는 “인터넷은 변화가 빠른 곳”이라며 “이런 곳일수록 많은 사람들의 솔직한 이야기들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표현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하는 구글의 정신을 기준으로 볼 때 ‘제한적 본인확인제’ 거부는 어쩌면 당연한 결정이다. 하지만 방통위가 이번 일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지켜 볼 일이다.
한국 설정으로 동영상을 올리려고 하면 자발적으로 비활성화되었다는 메시지가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