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LR 시대는 끝났다” - 권좌 노리는 마이크로 포서드, 하이브리드 디카
2010-06-08 PC사랑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덩치가 크고 무겁기 때문에 오래 가지고 다니기 힘들다. 배율이 높은 망원 렌즈를 달면 렌즈의 크기와 무게가 본체 이상이다. 보관과 휴대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값도 무시할 수 없다. DSLR 본체는 예전보다 많이 싸졌지만 렌즈와 플래시 가격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성능이 좋은 고급 렌즈는 보급형 DSLR 이상이다. 사진을 진지하게 찍는 사람들은 결국 DSLR로 오게 되어 있다.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 이다. 하지만 DSLR을 쓰면 희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 앞서 말했듯 크기와 무게 때문에 불편하다.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를 가지고 다니다 보면 사진을 찍기도 전에 기운이 빠진다. 때문에 DSLR을 쓰면서 콤팩트 디카를 서브 카메라로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캐논의 렌즈들. 이 렌즈들을 다 써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후발주자의 주도권 빼앗기
DSLR은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뚜렷하다. 제조사들은 DSLR의 장점인 화질을 그대로 가지면서도 가볍고 다루기 편한 카메라를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DSLR 시장을 주도하는 캐논과 니콘을 공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이런 시도를 처음 시작한 것은 소니다. 소니가 2005년 출시한 ‘R1’은 콤팩트 하이엔드 디카에 속하지만 DSLR에 쓰이는 APS-C 규격의 이미지 센서를 넣어 DSLR과 콤팩트 디카의 중간 성격을 가졌다. DSLR의 뛰어난 화질과 콤팩트 디카의 편의성이 합쳐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보급형 DSLR의 값이 크게 낮아지면서 사람들은 DSLR로 눈을 돌린다. 또한 소니가 코니카미놀타의 DSLR 사업부를 인수하고 본격적으로 DSLR에 뛰어들면서 R1은 후속 기종을 내놓지 못하고 단종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호환 렌즈를 주로 생산하던 시그마가 독자 개발한 포베온 이미지 센서를 넣은 ‘DP1’을 선보인다. 콤팩트 카메라에 DSLR급 이미지 센서를 넣은 원리는 R1과 같지만 줌 렌즈 대신 28mm 단초점 렌즈를 달아 크기를 줄였다.
2008년 여름에는 올림푸스와 파나소닉이 DSLR의 기본 구조에서 미러 박스를 뺀 ‘마이크로 포서드’ 규격을 발표하기도 한다. 두 제조사가 쓰는 포서드 규격을 기반으로 한 마이크로 포서드는 종전 DSLR보다 더욱 작은 DSLR을 만들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제공한다. 이어 삼성디지털이미징이 마이크로 포서드와 원리는 같지만 APS-C 센서로 좀더 높은 화질을 내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발표한다.
캐논과 니콘, 소니를 제외한 다른 제조사들은 DSLR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올림푸스와 파나소닉의 마이크로 포서드, 그리고 삼성디지털이미징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DSLR 업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강력한 대항마가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이엔드 보디에 DSLR급 이미지 센서를 단 R1.
마이크로 포서드
2008년 8월, 올림푸스와 파나소닉은 이전에 자신들이 생산하던 포서드 규격보다 더 작은 카메라를 더 작게 만들 수 있는 마이크로 포서드 규격을 발표했다. 마이크로 포서드는 포서드 규격과 같은 이미지 센서를 쓰지만 SLR(일안 반사식) 카메라의 핵심인 미러 박스와 광학식 뷰파인더를 없앤 것이 특징이다.
렌즈와 이미지 센서 사이의 미러 박스를 없앤 마이크로 포서드는 포서드에 비해 플렌지백(렌즈 결합부와 이미지 센서 사이의 거리)이 40mm에서 20mm로 무려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렌즈 결합부도 기존 포서드보다 작아졌다. 때문에 마이크로 포서드 규격 렌즈는 종전 포서드 규격 카메라에 쓸 수 없다. 거꾸로 포서드 규격 렌즈는 어댑터를 이용해 마이크로 포서드 카메라에 쓸 수 있다.
파나소닉도 마이크로 포서드 규격으로 만든 ‘DMC-G1’을 내놓았다. DMC-G1은 광학 뷰파인더 대신 전자 뷰파인더를 쓰며, 회전 LCD 모니터로 피사체를 확인해 촬영을 하는 라이브뷰 모드를 지원한다. 기존 DSLR은 미러 박스 때문에 라이브 뷰를 통해 촬영하려면 지연 시간이 있지만 DMC-G1은 콤팩트 디카처럼 바로 초점을 잡고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 제품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일반 DSLR보다 조금 작다는 것을 빼면 획기적인 변화를 느낄 수 없는데다 비슷한 시기에 니콘과 캐논이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DSLR 카메라를 선보여 마이크로 포서드에서도 동영상 촬영을 하는 카메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실제로 올 봄에 출시된 후속 모델 ‘DMC-GH1’에는 HD 동영상 촬영 기능이 추가되었다.
한편 올림푸스는 직사각형 디자인의 마이크로 포서드 보디를 선보여 많은 화제를 모았다. 완제품이 아닌 콘셉트 단계지만, 콤팩트 디카와 흡사한 디자인과 작은 크기는 혁명에 가까웠으며 사람들의 기대를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다. 올림푸스의 마이크로 포서드 카메라는 올 여름 출시될 예정이다.
올림푸스가 공개한 마이크로 포서드 규격 콘셉트 보디.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많은 기대를 불러 모으고 있다.
파나소닉의 DMC-G1은 마이크로 포서드 규격을 쓴 첫 제품이다.
올림푸스와 파나소닉이 공동 발표한 마이크로 포서드 규격. 미러 박스를 없애 크기를 줄였다.
하이브리드 시스템
올림푸스와 파나소닉이 마이크로 포서드 규격을 발표한 뒤, 삼성디지털이미징도 유사한 콘셉트의 하이브리드 카메라를 개발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졌다. 삼성디지털이미징의 하이브리드 규격은 미러 박스와 광학식 뷰파인더를 없애 크기를 줄인다는 점에서 마이크로 포서드와 동일선상에 있다. 다른 점이라면 포서드 규격 이미지 센서보다 큰 APS-C 규격 이미지 센서를 쓴다는 점이다. 삼성디지털이미징은 “DSLR과 콤팩트 디카의 장점을 모두 갖춘 하이브리드 카메라가 2012년에는 전체 시장의 20%를 차지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밝히기도 했다.
삼성은 올해 3월 PMA 2009(사진영상기기 전시회)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첫 타자인 ‘NX’를 공개했다. 하지만 파나소닉의 DMC-G1이 그랬듯 NX 역시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지 못했다. 이미지 센서 규격이 다르다는 점을 빼면 파나소닉 DMC-G1이나 DMC-GH1과 크게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디자인도 이들 제품들과 닮은 점이 많아 제조사가 주장하는 혁신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더 큰 문제도 있다. 렌즈교환식이라면 얼마나 많은 렌즈를 쓸 수 있느냐가 경쟁력이다. 올림푸스와 파나소닉은 이미 만들어 낸 포서드 호환 렌즈들을 마이크로 포서드에서 쓸 수 있도록 해 렌즈 문제를 해결했지만 삼성디지털이미징은 자체 렌즈가 많지 않을뿐더러 그마저도 펜탁스와 제휴로 펜탁스 DSLR의 규격에 맞춘 것이라서 NX와는 호환이 되지 않는다.
삼성의 하이브리드 카메라 NX 콘셉트 보디.
콤팩트 하이엔드 디카
DSLR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는 바로 하이엔드 디카였다. 하이엔드 제품들은 DSLR 못지않은 수동 촬영 기능과 완성도 높은 보디로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상위 제품군을 주도해 왔다. 하지만 DSLR의 값이 떨어지면서 시장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기능과 성능은 DSLR에 밀리고, 휴대성과 디자인은 슬림형 디카에 비해 떨어지는 하이엔드는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제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소니의 R1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시장에서 볼 수 없을 것 같던 하이엔드 디카는 2006년 출시된 캐논 ‘파워샷 G7’을 통해 부활의 신호탄을 알린다.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이 장족의 발전을 보여 그동안 콤팩트 디카에서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ISO 1600 이상의 고감도, 얼굴 인식 AF 기능을 비롯한 다양한 부가 기능, 손떨림 보정 기능 등이 일반적인 기술이 되었고, G7은 이런 변화를 모두 수용한 첫 번째 하이엔드 디카로서 갈 곳 잃은 하이엔드 디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듬해 니콘은 G7에 대응하기 위해 ‘쿨픽스 P5000’을 출시한다. 한때 DSLR에 밀려 시장에서 사라질 뻔했던 하이엔드는 부담스런 크기와 렌즈 탓에 DSLR 구입을 망설이는 소비자에게 적절한 대안으로 다시금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작년 가을에 나온 캐논 ‘파워샷 G10’은 28mm 광각의 5배 줌렌즈를 달았으며, 비손실 압축 규격인 RAW를 지원해 폭넓은 후보정을 지원하는 등 콤팩트 디카에서 볼 수 없던 여러 편의 기능을 담고 있다. 또 니콘의 ‘쿨픽스 P6000’은 GPS를 지녀 사진에 위치 정보를 기록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08년 시그마는 포베온 센서를 넣은 DP1을 출시했다. 포베온 센서는 색 표현력을 높인 이미지 센서로서 그동안 시그마의 DSLR에 쓰였다. 렌즈는 28mm 화각의 단초점 렌즈가 쓰였고, 줌 기능은 컨버터 렌즈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 DP1은 처음 공개될 때만 해도 하이엔드의 기준을 바꿀 기대주로 주목받았으나 조작이 불편한데다 자잘한 문제점까지 발견되면서 인기를 얻는 데는 실패한다. 현재 시그마는 DP1의 단점을 개선한 ‘DP2’를 내놓고 다시 소비자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캐논 파워샷 G7은 DSLR이 대세가 된 이후 갈 길 잃은 하이엔드 디카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시그마 DP2. 겉으로 보기엔 하이엔드 디카지만 DSLR에서 쓰던 포베온 센서를 넣었다.
콤팩트 고배율 줌 디카
올해 초 국내 디카 시장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던 제품으로 삼성디지털이미징의 ‘블루 WB500’을 손꼽을 수 있다. 슬림한 크기에 광학 10배 줌 렌즈를 내장한 것이 인기의 비결로 꼽힌다.
사실 이런 성격의 제품은 삼성이 처음은 아니다. 고배율 줌 렌즈를 갖춘 콤팩트 디카의 시초로는 파나소닉의 TZ 시리즈를 들 수 있다. TZ 시리즈는 경통 돌출식과 렌즈가 본체 안쪽에서 움직이는 이너줌 방식을 조합해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인 고배율 줌 디카다.
콤팩트 고배율 줌 디카는 작은 크기와 활용도 높은 줌 배율의 장점을 모두 지녀 다양한 용도로 두루 활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초점거리별로 다양한 렌즈를 갖춰야 하는 DSLR을 꺼리는 소비자들에게 대안이 되고 있다. 여행이나 행사 관람 때문에 화질 저하를 감수하고 18-200mm 이상의 고배율 줌 렌즈를 쓴다면, 차라리 렌즈보다 훨씬 저렴하고 들고 다니기 편한 콤팩트 고배율 줌 디카를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삼성의 블루 WB500. 일반 콤팩트 디카와 거의 비슷한 크기에 10배 광학 줌 렌즈를 넣었다.
시그마의 18-200mm 고배율 줌 렌즈. 화질보다 화각을 중시한 렌즈다.
새 시대의 도전자들, DSLR의 무덤을 팔까?
카메라 제조사들이 앞다퉈 DSLR을 대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제품을 선보이는 이유는, DSLR을 앞세워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캐논과 니콘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아직 DSLR의 질주에 제동을 걸 만한 결정타가 없는 점은 아쉽지만, 경쟁을 통해 성능을 높이고 매력을 더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DSLR의 대중화로 침체기를 겪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강력하고 세련된 하이엔드 디카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5월 4일, 일본 IT 정보지 ‘닛케이 일렉트로닉스’는 “일안반사식이 가진 떨림문제, 그 심각성이 분명해져”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1/60초 이하의 셔터 속도로 찍은 사진은 DSLR 카메라의 미러와 셔터가 작동하면서 생기는 진동으로 실질 해상도가 1/4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특히 화소가 높은 카메라일수록 이런 문제점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DSLR 제조사와 이용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하이브리드 규격의 장점과 기존 DSLR의 한계가 부각되면서 가까운 시일은 아니더라도 DSLR은 내리막길을 걸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DSLR 내부의 진동을 완화하는 기술이 등장할 수도 있고,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고 해도 필름카메라가 그렇듯 소수의 고정팬을 통해 명맥을 이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카메라 전쟁에서 승리한 새 주자가 시장을 주름잡을 것이 분명하다.
“일안반사식이 가진 떨림문제, 그 심각성이 분명해져”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 닛케이 일렉트로닉스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