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피싱 직접 당해보니

2010-12-17     PC사랑

오랜만에 말을 걸어 돈을 빌려달라는 친구. 주변 이야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무조건 돈만 송금하라고 한다. 100% 메신저 피싱이다.

“지금 급한데, 내가 계좌이체가 안되네. 210만 원만 대신 보내주라.”
척 봐도 말로만 듣던 메신저 피싱. 네이트온이나 MSN 등 메신저 아이디를 도용해서 아는 사람에게 돈을 요구하는 신종 사기수법이다. 기자에게 말을 걸어온 것도 학교를 졸업한 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였다. 몇 년 동안 연락이 없다가 2주 전에 메신저로 어색한 인사를 나눈 게 다였다.

처음에는 그냥 로그아웃 해버릴까 하다가 나에게 사기친 죄와 친구 아이디를 도용한 죄를 묻겠다는 정의감(?)에 불타올라 범인의 단서를 잡기 위해 작전에 돌입했다.
  
1단계 증거 잡기
일단 사기꾼의 꼬리를 잡을 수 있는 증거를 잡아야 했다. 돈을 보낼 계좌번호는 일단 확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워졌다고 하고 다시 물어봐도 똑같은 예금주와 계좌번호를 불러 주었다. 이번에는 돈을 넣고 확인하려고 하니 전화번호를 달라고 한다. 통화중이라며 알려주지 않는다. 더 파고들면 나가버릴까봐 일단 알겠다며 계속 잡아두었다.

혹시나 진짜 친구일 수도 있으니 짧고 굵은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 아이디를 도용하는 것도 모자라 미니홈피 등을 살펴보고 사전조사한 뒤 말을 거는 치밀한 범죄자도 늘고 있으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확실한 것은 가족 관계다. 여동생있는 친구에게 ‘남동생은 군대 갔니?라고 물어보는 식이다. 머뭇거리거나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면 확실하다. 대충 찍어서 맞는 경우도 있으니 3번까지 확인사살을 해서 진위를 확실히 해두자. 돈을 보내는 척 하면서 틈을 타 다른 친구의 안부를 물었다.

약간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지 답을 피하며 말을 돌린다. 100%다. 하지만 계좌번호 말고 다른 것을 알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돈을 빨리 부치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거짓으로 붙였다고 말하니 “고맙다. 이 XX야”라는 말을 남기고 네트워크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 이 사람을 추적하는 것이 내 임무다.

2단계 사이버 수사대의 도움받기   

신종플루만큼 무서운 것이 메신저 피싱이다. 미리 싹을 자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이버 수사대에 전화해 사건의 전말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신고했다. 사이버 수사대의 말에 따르면 메신저 피싱 신고가 하루에 4~5건씩 정도 접수된다고 한다.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아이디 도용당한 친구한테 빨리 알려주라”다. 하지만 전화통화 안하고 지낸 지 몇 년, 바뀐 연락처를 알 리가 없다.

계좌번호를 추적하면 범인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은 “쉽지 않다”는 한마디에 바로 무너졌다. 만약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면 사기를 당한 것이므로 은행에 계좌정지를 요청 할 수 있지만 금전적 피해가 없으면 사기 미수로 그쳐 설사 그 예금주가 범인이라고 해도 법을 적용할 방법이 없다는 설명이다. “만약 정보가 계좌번호밖에 없다면 100원이라도 보내라. 그러면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므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 사이버 수사대의 귀띔이란 게 고작 이런 수준이다.    
               
두 번째 방법은 네이트온에 IP정보를 요청하는 것이다. 요즘 메신저 피싱 피해 사례가 늘어나면서 메신저에 돈이나 카드라는 단어만 말해도 의심하고 “신고하라”는 버튼이 뜬다.  당사자가 신고를 하면 접속했던 IP를 준다. 경찰의 말에 따르면 “국내 IP라면 수사를 진행하지만 대부분이 중국인 경우가 많다”며 스스로 조심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메신저 대화 중에 돈이나 카드 관련 단어를 입력하면 신고하기 버튼이 뜬다.

3단계 불신 권하는 사회 
범인 체포는 수사기관에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내 정보 지키기까지 떠넘길 수는 없다. 주민번호 도용사이트를 이용해 내 주민번호가 이상한 곳에서 쓰이지는 않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가장 중요한 건 비밀번호를 자주 바꾸는 것이다. 
메신저에 등록되어 있다는 것은 친분이 있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불신을 권하는 사회가 된 것 같아 무척 아쉽지만 지금은 자나 깨나 개인정보조심이다. 기억이 가물한 그가 연락해 온다면 정신 바짝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