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음악 대표에서 클린 사이트로 거듭나다 - IT 기업의 숨은 족보 이야기 소리바다

2010-12-21     PC사랑
9년 동안 한결같이 소리바다를 이끌고 있는 창업자 양정환 대표는 1997년에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형과 함께 윈앰프와 비슷한 MP3 재생 프로그램인 ‘소리통’을 만들었다. 9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윈앰프에 견주지는 못하지만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프로그램으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당시 미디어플레이어는 모두 무료 소프트웨어라서 수익 사업으로는 전망이 밝지 않았다.    

‘소리바다’에서 노래를 받자

소리바다의 전신 서비스인 소리통과 SMP 사이트.

1999년 소리통을 높게 평가한 국내 음악 관련업체가 전용 플레이어를 만들어달라며 연락을 해 왔다. 양정환 대표의 첫 돈벌이었다. 요청받은 플레이어를 만들어 주었지만 그게 다였다.  소리통을 가지고 사업을 하려면 mp3 파일을 듣는 이가 많아야 하는데 당시는 MP3 플레이어가 나왔을 때도 아니고, 음악 파일을 구하기도 어려왔다. 그 때 양정환 대표가 떠올린 것이 미국의 음악파일공유 서비스인  ‘냅스터’다.

그는  “미국의 모든 음악을 검색할 수 있는 냅스터같이 한국의 모든 음악을 실컷 듣고 싶어 소리바다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모티브를 따왔기 때문에 한국의 냅스터로 불렸다. 처음부터 P2P 사이트로 키울 생각은 아니었다. 소리통과 같이 서비스하던 파도 플레이어에 P2P 기능을 더하려고 했는데 플레이어에 P2P 재주를 담는 것이 쉽지 않아 일이 점점 커졌다. 결국 기본 뼈대였던 파도 플레이어가 부가 서비스가 되고 소리바다가 주인공이 되었다.

2000년 5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소리바다’는 이름부터 의미를 담고 있다. 소리들이 모여 있는 바다와 내려 받는다는 두 가지 뜻이다. 양정환 대표는  “갑작스럽게 생각한 거지만 프로그램의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해냈다”며 지금까지도 뿌듯해 한다. 

소리바다는 2개월 만에 완성되었다. 허술한 부분은 없었다. 냅스터를 본 양정환 대표는 P2P의 파급력은 알고 있었지만 새로 시작하는 서비스를 어떻게 알릴지가 막막했다. 시험삼아 소리나라 홈페이지에 배너를 하나 붙였다. 놀랍게도 몇 십분 지나지 않아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입소문 덕분이었다. 소리바다는 2주 만에 1000명이 접속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고, ‘공짜음악’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이용자들이 음악 주고받는데 한껏 취해있을 때 소리바다는 한국음반협회로부터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를 당한다.   

소송의 바다에서 표류하다 
소리바다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위기를 맞은 셈이다. 소리바다의 파급효과가 그 정도로 컸다는 반증이다. 음반제작협회가  ‘불법 다운로드로 음반업계의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서비스를 막아달라’고 건 민사 소송에서 법원은 검색서비스가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서비스 중지 가처분 판결’을 내렸다. 짧은 시간 누리꾼의 대표 음악 커뮤니티로 떠올랐던 소리바다는 2002년 7월 31일 서비스를 중단했다. 음반협회의 소리바다 저작권 문제 제기가 오히려 누리꾼의 파일공유체계를 발전시켰다는 시각도 있다.

재밌는 건 소리바다 서비스를 완전히 중단하라는 판결이 아니라 소리바다의 서버를 중지하라는 판결이었다. 중간자 역할을 하는 서버가 문제일 뿐 P2P는 불법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한 달 뒤 양정환 대표는 법의 처벌 그대로 서버는 이용하지 않으면서 중앙집중식 검색기능을 없앤 새 파일 교환 프로그램 ‘소리바다 2’를 개발했다. 이용자 서버를 직접 이용하는 수퍼피어 방식을 쓰는 소리바다 2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저작권법 위반 소송을 한차례도 당하지 않았다. 두 번째 버전까지는 100% 무료였기 때문에 누리꾼의 사랑도 계속되었다.

합법적인 서비스였으나 당시 점점 나빠져 가는 음반 시장 불황의 원인이 불법 파일 공유에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알게 모르게 소리바다에 위협을 가하는 이도 있었다. 양정환 대표는 의도치 않게 ‘음악은 공짜’라는 인식을 퍼뜨렸다는 책임의식과 함께 상생하는 음악 서비스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료화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훔치지 말라’는 가수와 ‘좋은 곡은 한 두곡 밖에 없는데’라며 CD 사기를 꺼려하는 소비자를 위해 그가 생각해 낸 방안은 부분 유료화였다. 하지만 유료화를 도입하면 결제 시스템이 필요해 서버를 다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개발 당시부터 양정환 대표는 문제가 될 것을 예상했지만 음반 권리자에게 이익을 주려는 모습을 보였으니 상황에 달라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소리바다 3’을 내놨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유료화 도입에 이용자들은 혼란스러워했고, 관련 업계는 ‘서비스 중지’만을 외쳤다. 결국 2005년 8월 30일 법원은 ‘소리바다 3을 이용한 무료 MP3 공유와 소리바다 3 프로그램의 배포 금지’하는 결정문을 내놓는다.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썩던 벅스는 저작권문제를 해결하고 합의를 맺어 중간에서 소리바다만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양정환 대표는 “소리바다 3의 중지 결정이 내려졌을 때는 나도 타격이 컸다. 충격이 컸던 만큼 나도 감정적으로 변했다”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그는 11월부터 4개월 동안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고, 분한 마음에 소리바다 프로그램을 오픈소스로 만들어 돌릴 생각도 했었다. 오픈 소스를 뿌려서 누구나 P2P를 만들어 쓰면 그것까지 막을 수 있는지 한번 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단 한 번도 소송에 걸리지 않았던 소리바다 2가 오픈소스와 같은 맥락이죠. 이용자들이 직접 소스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용하면 법원도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양정환 대표는 음악 공유를 악의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불법이니 없애라고만 했다. 여러 사람의 조언을 듣고 섭섭한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조율점을 찾기 시작했다.   

 
SM 온라인과 손잡고 다른 분야로의 적극 진출 움직임을 보였다.

소리바다는 끈질기다
2006년 3월 소리바다는 완전 유료화로 바꾼 ‘소리바다 5’를 내놨다. 개인적으로 4를 싫어할 뿐 아니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 한단계 건너뛰어 5가 되었다. 이미 벅스를 비롯한 많은 파일 공유 사이트가 유료로 바뀌었고, 소리바다 역시 유료화가 될 거라는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왔기 때문에 새삼 화젯거리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용자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었다.  

대신 시장 상황은 사뭇 달라졌다. 유료 사이트로 바꾼 뒤 동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6년 11월에는 코스닥 상장사인 바이오메디아와 합병해 우회상장에 성공했다. 우회등록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들이 많았던 터라 양정환 사장은 두 배로 적극적인 사업을 이끌어나갔다. 같은 달 큰 돈을 주고 디지털 음원 중개업체인  ‘만인에미디어’를 인수했다. 처음에는 사업을 확장시키려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가능성이 있는 회사를 인수해도 잘 운영할 사람이 없으면 오히려 독이 된 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2007년 3월에는 삼성전자와 양해각서를 맺고 휴대폰을 이용한 음악 서비스 시장에 진출했다. 벼랑 끝에 몰렸던 소리바다는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5월에는 디지털 쇼핑몰 ‘소바쇼핑’도 열었다. 이런 시도에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소송도 끊이질 않았다. 2007년 10월 서울음반·워너뮤직코리아 등 대표적 국내외 음반사들이 소속된 디지털음악산업발전협의체는 “소리바다 5 서비스 역시 음원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필터링 방식에서 소리바다 1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며 발목을 잡았다. 소리바다는 합법을 주장하며 1심 판결에 항소했지만 이기지 못했다. 이 소송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소리바다 서비스의 합법이냐 불법여부를 떠나 선두권을 다투던 멜론 등 이동통신사의 세력 확장, 인터넷 자율 서비스 침해라는 의견도 많았다.
   
수많은 소송에 양정환 대표는 “소리바다는 정말 끈질기다”라고 말하며 2007년 12월 ‘소리바다 6’을 내놨다. 아직까지 버전의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아 무리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된다. 인터넷 환경도 많이 변해 웹에서 노래를 주고받는 것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할 수 없는 상황도 한몫 했다. 

소리바다 6이 나오고 서비스가 안정이 되고 나서 다른 사업에도 잠시 눈을 돌렸다. 오디션이 벅스에서 서비스되어 인기를 얻은 것을 보고 소리바다는 2008년 1월 댄스게임 ‘무브업’을 만들었다. 하지만 유료 서비스로 바뀌면서 이용자가 줄었고 호응도 없어 곧 중단했다.  양정환 대표는 “포기한 것이 아니라 게임은 훨씬 더 준비가 잘 된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저작권 문제를 이야기할 때 소리바다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최근에는 인식이 바뀌어 올해 7월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저작권보호센터가 선정하는 클린 사이트로 선정되었다.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클린 평가단은 소리바다가 저작권 보호와 권리자의 이익을 위한 저작권 보호코너를 마련하고 기술적 보호조치를 시행하는 등 각 평가 항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렇게 법원과 싸우더니 올해 7월에는 첫 클린 사이트로 지정되었다.

2000년 5월
음악 P2P 사이트의 원조 소리바다

소리바다는 처음에 mp3재생 플레이어 파도의 부가 서비스로 기획되었던 프로그램이다.

2000년 5월 만들어진 mp3 음악파일 교환 서비스, 공짜 파일 공유 프로그램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소리바다 서버에 접속하면 mp3 파일을 검색해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었다.
입소문을 타고 빠른 시간에 수많은 이용자 커뮤니티가 형성되었지만 공짜 음악 교류에 위기의식을 느낀 음반관계자와 협회가 소리바다를 고소해 2002년 7월 소리바다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2002년 8월
서버를 이용하지 않는 소리바다 2

소리바다 2는 중앙 서버없이 이용자 PC를 이용하는 것으로 소리바다 버전 중 유일하게 소송에 걸리지 않은 버전이다.

2002년 8월 나온 버전으로 소리바다 서비스를 중단한 지 9개월 만에 다시 등장했다. 소리바다 2는 ‘서버 이용 중지’라는 법원 판결을 받아들여 종전 P2P 접속 구조를 개선해 ‘수퍼피어’ 방식을 채택했다. 수퍼피어 방식은 소리바다의 서버를 이용하지 않고 개인 서버를 이용하기 때문에 법의 판결을 어기지 않는 합법적인 서비스였다. 개입하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소리바다 버전 가운데 한 번도 소송을 당하지 않은 유일한 프로그램이다. 2년 여동안 서비스하다가 부분 유료화로 바뀐 세번째 버전이 나오면서 2004년 7월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2004년 7월
유료 서비스 시험한 소리바다 3
2004년 7월 발표한 소리

소리바다는 공짜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부분 유료화에도 소비자들은 불만을 나타냈다.

바다3은 부분 유료화 서비스를 도입한다. 웹에서 다운받는 mp3는 인터넷 머니를 이용해 돈을 지불하고, P2P 방식은 여전히 무료를 적용한 방식이다. 공짜로 음악을 주고받되 유료 서비스가 걸린 음악은 차단한다는 말이다. 부분 유료화지만 소리바다는 공짜라는 인식이 강했던 탓에 이용자의 불만이 많았고, 소송도 끊이지 않아 서비스를 중단해야만 했다.

2005년 9월
나만의 인터넷 음악상자 오르골

오르골에 웹 음악보관함으로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노래를 쉽게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커버를 열면 음악을 자동으로 연주하는 오르골처럼 끊임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게 콘텐츠를 모아놓는 음악 보관함이다. 폴더를 만들어 음악을 종류별로 꾸밀 수 있다. 개인 오르골에 담아둔 음악은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감상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마니아층이 많아 전부 재생할 수도 없는 40만 곡을 담아 놓은 이용자도 있었다. 마음에 드는 음악 리스트를 발견하면 즐겨찾기에 등록하거나 물론 미니홈피처럼 친구를 맺을 수도 있다. 소리바다 5까지는 곡 수의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교류가 자유로웠지만 소리바다 6부터 제한이 생겨 마니아의 반발이 컸다.

2006년 4월
전면 유료화를 선언한 소리바다 5

모든 서비스의 유료화가 시작된 버전. 소리바다가 유료화될 거란 소문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라진 않았다.

저작권법을 잘 피하며 ‘공짜’의 끈을 놓지 않았던 소리바다는 결국 5번째 버전에서 전면 유료화를 시작한다. 지난번과는 완전히 다른 서비스라는 느낌을 주려고 한 세대를 건너뛰고 이름 뒤에 5를 붙였다. 회원들이 공유한 mp3 파일을 실시간으로 검색해 원하는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P2P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며, 월정액제의 자유이용권을 구매해 이용하는 방식이다. 다운로드하면서 미리듣기를 할 수 있고, 가사도 볼 수 있다. 오르골을 무제한으로 주기도 했다. 안타깝게 멜론에 소송당해 또 서비스를 중단했다. 

소리바다는 앞을 알 수 없는 회사  양정환 대표

『음반업계나 외국 직배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냅스터 서비스를 중단시킨 것은 실수였다고 입을 모은다. 음반 제작사 입장에서 그들은 이용자가 음악을 공짜로 듣는다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작은 문제에 가려 큰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냅스터에 모인 사람들은 수 억 명에 가까웠다. 디지털 음악시장이 커진 지금도 음악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그만큼 모으는 것은 쉽지 않다. 만약 그 커뮤니티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었다면 음반사나 가수들이 홍보하고 이벤트 하는 것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소리바다의 안타까운 점이 그것이다. 우리가 한창 번성했을 2000년대 초반에는 700~800만 명이 들어와서 노래를 검색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었다. 지금은 유료 서비스만 남았기 때문에 수익 구조는 좋아졌지만 다수가 이용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소수가 많은 돈을 내는 서비스로 바뀌었다.

2000년 5월 mp3 파일 공유 커뮤니티 ‘소리바다’ 서비스 개시

2001년 1월 한국음반협회에 피소 2002년  8월 ‘소리바다 2’ 서비스 오픈

2003년  11월 소리바다 법인 전환
  12월 한국 기술투자, 20억 원 투자 유치

2004년 7월 P2P 검색 포털로 소리바다 사이트 새 단장
  ‘소리바다 3’ 서비스 오픈
 10월 웹하드 서비스 ‘파일바다’ 오픈
 12월 유료 MP3# 오픈

2005년  1월 벤처기업 인증
 3월 KTF와 전략적 제휴 체결
 9월 ‘오르골’ 서비스 정식 오픈
 12월 ‘파일바다 클럽’ 정식 오픈
  소프트랜드로부터 투자 유치

2006년  4월 ‘소리바다 5’ 오픈 베타 서비스 개시
 6월 바이오메디아와 합병 
 7월 ‘소리바다 5’ 유료 서비스 개시
 8월 ‘소리바다 5’ 유료회원 25만 돌파
 10월 ‘소리바다 5’ 유료회원 50만(누적 130만)돌파
 11월 코스닥시장 우회등록(합병 신주 상장)
       만인에 미디어 인수

2007년  3월 삼성전자와 음악사업 관련 MOU 체결
 5월 디지털 기기 전문 쇼핑몰 ‘소바 쇼핑’ 오픈
 11월 ‘교보문고’와 ‘오디오북’ 콘텐츠 제휴 계약 체결
 ‘LG데이콤’과 인터넷전화 서비스 협력 제휴 계약 체결
 12월 ‘소리바다 6’ 오픈
        ‘SM 온라인 인수’와 ‘SM 엔터테인먼트’와 전략적 제휴 체결

2008년  1월 캐주얼 댄스 게임 무브업 퍼블리싱 계약
 2월 문화부 사용자 징수 규정안 승인
 5월 와이브로 음악 서비스 진출
 7월 KT와 사업협력 협정서 체결
     KBSi와 MOU 체결
 8월 사용자 징수 규정안에 따른 소리바다 6 개편 서비스 오픈
 10월 아이구글에 음악 가젯 서비스 개시

2009년 3월 아이튠즈 음악 공급 시작
 7월 소리바다 클린사이트 선정
나는 경영자이기 이전에 개발자다.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소리바다가 탄탄해지면 다수가 즐길 수 있는 무료 서비스를 다시 만들어 볼 계획이다. 』

앞으로의  계획

현재 소리바다 6이 순조롭게 항해 중이다.

『현재 디지털 음악시장은 포화 상태며, 한정된 시장에서 작은 파이를 나눠먹는 구도가 계속될 것이다. 현재 다른 서비스를 구상 중이다. 동영상 다운로드를 시작으로 조금씩 분야를 넓혀 갈 계획이다. 물론 그 중심은 소리바다의 가장 큰 자산인 ‘음악’이다. 아이튠즈처럼 음악에 기틀을 두고 영화와 드라마, 예능 등의 온갖 콘텐츠를 서비스 할 예정이다.

서두르지는 않겠다. 하나씩 쌓고 올려서 완성해 나갈 계획이다. 현재 준비하는 동영상 서비스도 음악이라는 탄탄한 토대가 있어 진행할 수 있었다. 너무 과감한 투자나 먼 미래를 보고 일을 진행했을 때의 위험부담을 몸소 익혀 왔다. 이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콘텐츠 시장은 판단과 예측의 힘을 무용지물로 만들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소리바다는 지금처럼 잘 할 수 있고 이용자가 좋아하는 서비스를 나침반 삼아 변덕스러운 디지털 콘텐츠 시장을 항해할 계획이다.』

기자의 말
소리바다만큼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겪은 기업도 많지 않다. 수많은 사람을 한곳으로 모았고, 끊임없이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소리바다가 놓지 않았던 것은 ‘음악’이었다. ‘끈질기다’라고 생각될 만큼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독자적인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이제까지 서비스를 이끌어 온 것은 대단하지만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나아진 점을 찾을 수 없다. 저작권법에 이리저리 휘둘리느라 이제야 자리를 잡고 순항하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많은 수업료를 치르며 익힌 값진 경험으로 소리바다의 향수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