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VS 게임, 게임 VS 영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처럼 전후 관계를 따질 수 없는 영화와 게임이 점점 많이 등장하고 있다.
게임은 영화로, 영화는 게임으로
앞으로 영화 마니아와 게이머를 설레게 할 작품 중에는 서로의 장르에서 힌트를 얻은 것들이 많다.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 혹은 장르끼리의 크로스오버다. 하지만 게임과 영화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조금 다르다.
영화와 게임의 이종교배는 영화를 게임으로 만든 게 우선이라고 봐야 한다. 여러 게임들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소설이나 영화처럼 다른 콘텐츠에서 직간접적으로 소재를 얻은 경우가 많다. 영화 <타이타닉>의 아성을 무너뜨린 <아바타>를 토대로 만든 <아바타 : 더 게임>만 봐도 그렇다. 영화 한 편이 10개 이상의 게임 시리즈로 태어나거나 PC, 온라인, 콘솔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개발되기도 한다.
반면 게임 기반 영화는 시리즈로 나오는 경우도 드물고, 모두 합쳐도 수십 편이 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 기반 게임이 더 많은 게 당연하다. 영화는 게임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게임은 새내기 장르에 불과하다. 잘 알려진 소재, 예컨대 영화나 소설을 토대로 게임을 만들면 그 작품 마니아에게도 눈길을 끌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세계적으로 지난 5년간 흥행 1위를 지킨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누적 게이머는 약 1,150만 명 정도다. 그러나 영화 <아바타>는 수개월 만에 1,330만 명을 끌어 모았다. 하지만 게임은 앞으로 성장 잠재성이 충분한 콘텐츠다. <아바타>는 세계적으로 18억 달러의 극장 수입을 거뒀다. 이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1년 반치 계정 이용료와 비슷한 금액이다.
게임의 잠재성은 발전 속도를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한 시네마토그래프를 보기 위해 관객들이 1프랑씩 내던 시절이 1895년쯤이다. 무성영화에 사람 목소리가 들어가고, 천연색 영상이 등장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게임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세다.
최근에는 영화 못지않은 탄탄한 시나리오를 갖춘 게임이 등장하면서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가 조금씩 늘고 있다. 게임의 눈부신 발전이 좀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는 관객 수요와 맞물린 것이다.
영화 덕 보려다 망한 아타리
영화 기반 게임이 처음부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영화를 소재로 한 게임은 죄다 쓴맛을 봤다. 소재 독창성이나 구성, 프로그래밍 등 전 분야에 걸쳐 조롱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당시의 PC 하드웨어 성능으로는 영화를 게임으로 옮기기에 한계가 있던 탓이기도 하다.
이런 시행착오의 산물을 논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게임이 있다.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E.T.>를 토대로 만든 <우주인 E.T.>다. 이 게임은 지금도 놀림감이 될 정도로 최악의 참패를 기록했다. 게임 개발사인 아타리는 <E.T.>의 판권을 사오는데 무려 2,500만 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했다. 판권에 큰돈을 쓰느라 정작 게임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영화의 흥행에 편승하려고 크리스마스 시즌을 목표로 게임 개발에 들어갔다. 심지어는 개발비를 아끼려고 단 한 명의 개발자에게 한 달 안에 게임을 완성하라는 비상식적인 지시를 하기도 했다. 영화의 유명세에 힘입어 ‘날로 먹자’는 심보였다. 게다가 아타리는 당시 크리스마스 시장을 30억 달러 규모로 예상하고 게임을 무려 500만 개나 찍어냈다. 500만 개는 지금 봐도 어마어마한 숫자이고, 당시 팔린 ‘아타리 2600’ 게임기보다도 몇 배나 많은 수량이었다.
고집대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나온 <외계인 E.T.>는 원작 영화에 힘입어 100만 개를 파는 기염을 토했다. 허나 절반 이상의 악성 재고가 남았고, 아타리는 이를 처분하기 위해 다른 게임과 묶어 80% 이상 할인해 ‘땡처리’했다. 당시 비디오 게임이 평균 35달러였는데, <외계인 E.T.>는 5달러도 되지 않았다.
더욱이 제 값에 팔려야 할 다른 게임까지 재고 게임에 치여 판매량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부작용은 아타리뿐 아니라 다른 게임사와 매장까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아타리 쇼크’라고 불리는 북미 비디오 게임 시장 몰락의 전초였다. 이후 북미 게임 시장은 심각하게 망가지고, 아타리 쇼크를 시작으로 여러 악재들이 겹치면서 아타리는 그대로 몰락하고 만다. 이 게임은 지금도 ‘역대 최악의 영화 기반 게임 베스트 5’에서 당당히 1등을 꿰차고 있다.
이 게임으로 인해 북미 시장은 하마터면 망할 뻔 했다.
‘게임이 된 영화’, 성공보다 실패가 많은 원인은?
이른바 ‘아타리 쇼크’로 불리는 저질 게임에 의한 시장붕괴 현상 후 영화 기반 게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영화의 감동을 그래픽으로 표현하기엔 기술적인 문제도 많았다. 제작비의 문제도 계속되었다. 너무 비싼 영화 판권이 문제였다. 판권 가격만 웬만한 게임 개발비를 훌쩍 뛰어넘으니 정작 게임에 투자할 돈이 부족했던 것. 또 영화의 유명세에 기대기 위해 완성도보다 빠른 출시가 우선이었다. 이런 여러 문제 탓에 초기 영화 기반 게임들은 대부분 처참히 실패하거나 어느 정도 팔렸어도 게임으로서는 낙제였다. 이 패턴이 반복되면서 게이머들이 영화 기반 게임을 아예 불신하는 경향까지 불러왔다.
최근 PC 하드웨어 성능의 발전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그럭저럭 살린 게임들이 하나 둘 등장했고, 아예 마케팅의 일환으로 영화 개봉 전에 게임을 먼저 내놓고 시선을 끄는 일도 많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 기반 게임들은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트랜스포머>, <드래곤볼 에볼루션>, <지아이 조 : 전쟁의 서막> 같은 영화를 토대로 만든 게임도 망한 게임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보다 연계성의 부재 탓이 크다. 영화는 2~3시간 동안 기승전결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울고 웃고 재미와 감동을 느낀다. 그런데 이를 게임으로 옮기면 아무런 목적 없이 치고받는 게임이 되거나 모험은커녕 정처 없이 헤매는 게임이 되곤 한다. 영화를 상상하고 게임을 시작한 소비자가 실망하는 건 당연하다. 여기에 영화 주인공이랍시고 등장한 게임 캐릭터가 영화 인물과 전혀 닮지 않으면 불난데 기름을 퍼붓는 꼴이다.
해외 게임사이트가 뽑은 ‘역대 최악의 영화 원작 게임 베스트’ 차트
지난 5월, 해외 게임사이트인 <익스프리싯 게이머>가 이색적인 차트를 공개했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30년간 나온 최악의 영화 기반 게임의 순위를 매긴 것. <외계인 E.T.> 말고 다른 게임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2위 웨인즈월드
1992년 마이크 마이어스, 데이너 카비 등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를 소재로 만든 영화.
캐릭터의 근접 공격 판정이 명확하지 않은 탓에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게임에 참신함도 전혀 없고, 영화에서 웨인이 입버릇처럼 외치는 ‘훌륭해!’를 조작할 때마다 반복하는 것도 끔직했다.
3위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
동명 영화를 게임으로 만들었는데, 전작에 있었던 그나마 할 만한 시스템들이 자취를 감췄다. 결과적으로 액티비전은 ‘최악의 영화 기반 게임’이었던 <트랜스포머 : 더 게임>을 능가하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4위 아이언 맨
조작하는 맛이 형편없을 뿐만 아니라 전투 시스템도 단순하다 못해 빈약하다. 주인공은 매우 잘 표현했지만 다른 부분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콘텐츠가 빈약해 끝을 보는데 몇 시간이면 충분하다. 짧은 플레이 시간이 장점으로 생각될 정도.
5위 스트리트 파이터 : 더 무비
실사 그래픽이라는, 당시로는 최첨단 기술을 도입했지만 오히려 독이 됐다. 마치 <모탈 컴뱃> 아류에 불과한 느낌이다. 전투가 무척 단순해 대전 액션게임으로도 인정받지 못한다. 인공지능도 형편없다.
1. 영화와 게임 모두 사이좋게 혹평을 받은 <드래곤볼 에볼루션>.
2. 이런 영화를 게임으로 만들려면 판권료와 제작비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3. 영화의 재미 이상을 줄 수 없는 게임은 실패하는 게 당연하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영화들
영화에 뿌리를 둔 게임은 눈에 띄는 것만 골라도 100여 개 이상이다. 그러나 게임 기반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경우는 수십 개도 채 되지 않는다.
이 가운데서 최초로 등장한 게임 기반 영화를 꼽는다면 흔히들 <슈퍼마리오>(1993년)를 떠올린다. 닌텐도 게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토대로 만든 영화지만, 이보다 먼저 나온 영화는 따로 있다. 바로 <전자오락의 마법사>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더 위자드>(1989년)다.
이 영화는 이혼과 가정불화로 얼룩진 가정에서 자라다 가출한 코리와 지미 형제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가출한 형제는 자폐증을 가진 동생 지미가 비디오 게임에 소질을 보이자 우여곡절 끝에 전미 비디오 게임 경연대회에 나가 승리한다는 내용으로 끝난다. 하지만 영화의 줄거리가 1년 전 개봉했던 <레인맨>(1988년)과 비슷하고 닌텐도 간접광고가 심해 원성이 자자했다. 게다가 게임을 소재로 했음에도 게임 고증이 엉망이어서 혹평을 듣기도 했다.
<전자오락의 마법사> 뒤에 나온 게임 기반 영화들도 대부분 ‘게임 설정 파괴자’나 ‘영화 시장의 패배자’로 남았다. <슈퍼마리오>도 게임 캐릭터와 주요 등장인물인 마리오, 루이지, 쿠파가 나오는 걸 빼면 원작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앞서 영화를 게임으로 만들다 망한 아타리처럼 게임을 영화로 만들었다가 회사가 망한 경우도 있다. 1억 4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여 만든 CG 영화 <파이널 판타지>가 그렇다. 최첨단 그래픽 기술은 인정받았지만, 정작 영화는 흥행은커녕 원작 게임사인 스퀘어가 스퀘어 에닉스로 합병 당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정도였다.
영화 제작자들은 액션 게임에서 힌트를 얻어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대부분 졸작에 그쳤다. <스트리트 파이터>, <둠>, <데드 오브 얼라이브> 등이 대표적이다. 게임 기반 영화들이 고전하는 이유는 ‘영화가 재미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리고 이 문제의 중심에는 게임 기반 영화 평균 점수를 깎아 먹는 악명 높은 감독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우베 볼 감독이다.
이 영화. 여러 가지 의미로 좀 끔찍한 일이었다.(위), 좋은 액션 게임이 반드시 좋은 액션 영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D.O.A>(아래).
게임 <슈퍼 마리오>의 굼바(좌), 영화 <슈퍼 마리오>의 굼바(우). 가히 충격과 공포다.
게임 영화화의 악의 축, 우베 볼 감독
게임과 영화 마니아들의 공적인 우베 볼은 1965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문학관련 박사학위와 아마추어 복서 출신으로 문무를 겸비한(?) 영화감독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영화사 ‘Boll KG’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역사상 ‘게임 기반 영화’를 가장 많이 만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만든 영화들이 그야말로 최악 중에서도 최악이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누리꾼들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소재로 만든 패러디 성인물과 우베 볼 감독의 영화를 비교하며 “패러디 성인물조차 작품성이 띠는데, 우베 볼 감독은 오히려 떨어지냐”고 질타할 정도다.
우베 볼 감독이 게임 마니아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3년이다. 세가의 FPS 게임 <하우스 오브 더 데드>를 동명의 영화로 만든 것. 하지만 제목만 빼면 게임과 유사성이 거의 없고 게임의 긴장감도 살리지 못한 영화가 되어버렸고, 관객들은 ‘끔찍하게 멍청한 영화’라는 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우베 볼 감독은 좌절하지 않았다. 2005년에는 고전 명작 게임 <어둠 속에 나 홀로>를 영화로 만들었다. 국내에는 영어 제목 그대로 <얼론 인 더 다크>로 나왔는데, <하우스 오브 더 데드>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최악이었다.
연이어 제작한 <블러드 레인>, <던전시즈>, <포스탈>, <파 크라이> 등도 실패했다. <던전시즈>는 제작비만 6,000만 달러 이상이 들어갔지만 수익은 500만 달러도 채 올리지 못했다. 게임 원작을 능멸하는 제작 수준과 돌출 행동으로 게임계와 영화계의 공적이 되었다. 최근 그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영화화를 추진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블리자드가 ‘성공한 게임을 형편없는 영화로 망치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우베 볼 감독이 “내가 영화감독을 그만두게 하려면 100만 명은 있어야 할 것”이라는 말을 접하자마자 100만 명 서명운동이 시작될 정도로 해외 누리꾼들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베 볼 감독은 <블러드 레인> 3편과 <좀비 대학살> 등 게임 기반 영화를 계속 준비 중이어서 앞으로도 악몽은 계속될 전망이다.
‘영화가 된 게임’ 에피소드 : 우베 볼 감독의 어이없는 기록들
▶ 우베 볼 감독은 자신을 욕하는 평론가들에게 ‘내 영화를 비판하고 싶으면 나와 겨뤄서 때려 눕혀봐라’는 식으로 평론가들을 복싱 시합에 말려들게 하고는 시합을 수락한 평론가들을 링 위로 불러들인 뒤 자신의 복싱 경력을 십분 활용하여 링 위에서 때려눕히는 기행을 벌였다. 이 사실이 각종 외신과 유튜브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그런데 당시 링 위에 오른 평론가들의 연령대는 거의 20대 중반에서 30대 정도였던 반면 당시 우베 볼 감독은 40세가 넘은 상태였으니 복싱 시합만으로 따지면 '노익장'을 발휘한 셈이다.
▶▶ 우베 볼 감독이 만든 게임 원작 영화들 중 북미 지역에 개봉되어 제대로 수입을 올린 기록이 있는 것은 <하우스 오브 데드>, <블러드레인>, <어론 인 더 다크>, <왕의 이름으로> 정도뿐인데, 그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것은 <하우스 오브 데드>로서 1000만 달러를 조금 넘는 성적을 거두었지만, 그마저도 상당한 적자를 보고 말았다.
▶▶▶ 의외로 우베 볼 감독은 ‘최악의 영화상’인 골든 라즈베리와는 인연이 없었는데 마침내 2009년에 최악의 감독상 부문의 수상자로 결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우베 볼에게 골든 라즈베리를 안겨준 영화는 <터널 래츠>, <포스탈>, <왕의 이름으로> 등이었다.
▶▶▶▶ 우베 볼 감독이 계속되는 흥행 참패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계속 찍어낼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이 소유권을 가진 영화에 제작비를 댈 경우 세제상의 특례를 주는 조세법 때문이었는데, 이 조세법이 최근에 폐지되었다. 조세법 폐지의 배경에는 우베 볼 감독의 거듭되는 실패와 그로 인한 여론 악화가 단단히 한몫 했다는 후문이 있다.
그나마 재밌는 영화 기반 게임들
반지의 제왕 : 중간계 전투
<반지의 제왕 : 중간계 전투>는 EA에서 만든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반지의 제왕>을 소재로 만든 게임은 많지만 <반지의 제왕 : 중간계 전투>만큼 원작에서 느끼지 못하는 재미를 주는 게임은 몇 없다. 물론 영화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영화의 큰 줄거리를 따라가는 한계는 있다.
게이머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로한, 곤도르, 아이센가르드, 모르도르 4개 진영 중 하나를 골라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덩치 큰 적들과 벌이는 전쟁이나 대규모 공성전 등은 영화만큼이나 박진감 넘치는데, 엑스박스 360으로 이식한 게임은 평론가들로부터 ‘양질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확장팩인 <반지의 제왕 : 중간계 전투 2- 마술사 왕의 부활>은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던 마술사 왕이나 어둠의 제국 잉그마르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와 차별을 뒀다.
아바타 : 더 게임
인간이 될 것이냐 나비족이 되어 싸울 것이냐. 게임에서도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인간 진영에서 시작해 인간으로 남을지, 나비족이 될지 선택하도록 짜여졌다. 선택에 따라 각각의 엔딩이 다르다.
영화에서는 인간이 무분별하게 자원을 채취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것처럼 나오는데 반해, 게임에서는 조금 다르게 그려진다. 이 게임의 장점이자 단점은 종족에 따라 전투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인간은 현대 무기를 쓰는 터라 3인칭 슈팅 게임처럼 진행한다. 나비족은 원거리 무기가 적어 근접 공격 중심이고 시점도 독특하다.
그래픽이 화려하고 영화와는 다른 재미도 찾아볼 수 있지만 단점도 많이 눈에 띈다. 종족에 관계없이 타격감이 부족한 건 애교, 게임을 하다보면 비슷한 지형의 맵을 돌려썼다는 느낌이다. 종족 간의 균형도 맞지 않아 인간이 일방적으로 나비족을 몰아붙이는 현상이 벌어진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게임과 영화 두 장르에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둔 게임이라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 게임은 높은 인지도까지 얻으면서 몇 되지 않은 성공작으로 불린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가 나온 1982년 이후 2009년까지 10개 정도의 게임이 나왔다. 이 중에서 성공을 거둔 게임은 2개 정도에 불과하다. 첫 번째 게임은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삼은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이다. 이 게임은 지긋지긋한 명령어 입력 방식에서 벗어나 영화 주인공을 실제로 조작하는 방식으로 눈길을 끌었다. 다음 작품인 <인디아나 존스 : 아틀란티스의 운명>은 영화 스토리에서 벗어나 아틀란티스 유물을 지키는 내용과 깔끔한 그래픽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로 루카스아츠에서 내놓은 <인디아나 존스 : 인퍼널 머신> 등은 혹평을 받으며 기억 속에서 잊히는 듯했다. 그러다 지난해 <인디아나 존스 : 왕의 지팡이>가 나오면서 모험 게임 명맥을 잇고 있다.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
배트맨 시리즈는 만화와 영화, 게임에서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배트맨 : 아캄 어사일럼>은 액션 어드벤처 게임으로, 영화에만 익숙한 이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안겨주며 인기를 끌었다.
게임은 배트맨이 자신의 숙적인 조커를 체포해 경관들과 함께 아캄 수용소로 끌고 오면서 시작된다. 수용소에서 조커는 또 다른 악당 퀸의 도움으로 수용소 안으로 도망쳐 아예 수용소를 장악한다. 게이머는 배트맨이 되어 악당들을 물리치고 조커를 잡아야 한다.
배트맨은 악당들 몰래 잠입하거나 적들을 때려눕히면서 조커를 제압해야 한다. 엄밀하게 말해 이 게임의 원작은 영화가 아니라 만화다. 하지만 영화 배경음악이 게임에도 쓰이는 만큼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다. 이 게임은 약 250만 장이 팔렸고 게이머와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인기에 힘입어 악당 투 페이스가 등장하는 속편이 나올 예정이다.
리딕 연대기 시리즈
근육질 영화배우 빈 디젤이 출연한 영화 <리딕>을 게임으로 옮긴 것이 <리딕 연대기>다. 이 중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 2004년에 나온 <리딕 연대기 : 부처 배이 탈출>로, 영화 속 리딕의 특징을 잘 살렸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리딕이 어둠에서도 사물을 정확히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사연을 담아 리딕 팬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 게임은 원작을 떠나 복합장르 게임으로서 다양한 재미를 갖췄다. 게임 진행은 크게 세 가지로, 감옥에 갇힌 초반에는 대화 중심의 어드벤처로 풀어나간다. 탈출하면서부터는 잠입 액션으로, 후에는 FPS 게임 방식으로 뒤바뀐다. <아바타 : 더 게임>이 아쉬운 최적화로 원성을 들었다면, <리딕 연대기 : 부처 배이 탈출>은 최적화 성공 게임 중 하나로 꼽힌다. 같은 해 나왔던 <둠 3>가 최고의 그래픽 묘사에 연연하다 낮은 제원 PC를 가진 게이머들을 등한시했다는 질타를 받은 것과도 대조적이다.
냉혹한 평가 속에 계속되는 시도
성공한 ‘영화가 된 게임’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를 저예산 영화로 만든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제작비를 훨씬 넘는 수익을 올리며 상업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영화가 된 게임’의 모범답안을 보여주었고, <사일런트 힐>은 영화 팬들에게 게임에서처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스스로 상상하도록 만드는 방식, 게임처럼 지지직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크리처들, 보잘 것 없는 무기로 몸을 지켜내야 하는 주인공들의 연기, 그리고 원작의 독특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영화로도 이입시키는 데 성공하며 게이머와 영화 팬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다. 국내에서만 2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끌어 모았다.
또한 <툼레이더>는 원작 게임이 ‘라라 크로프트’라는 여주인공의 섹시함으로 더욱 흥행했던 것처럼 안젤리나 졸리의 섹시함을 한껏 드러내며 게임 원작 영화로는 최초로 북미 극장가에서만 1억 달러 이상의 흥행 성적을 올렸다. <모탈 컴뱃> 역시 1편의 수익만으로 놓고 보면 괜찮은 흥행을 기록한 축에 속한다.
하지만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 중에는 흥행에 성공한 영화라 해도 전문가들과 영화 팬들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이 없다. 실제로 해외 영화 사이트 IMDB에 의하면 ‘영화가 된 게임’ 중 지금까지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영화는 10점 만점에 고작 6.5점이라는 평이한 점수를 받은 <사일런트 힐>이었고, 우베 볼 감독의 <포스탈>은 외국 영화 전문 사이트에서 평점 0점을 받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더욱이 게임을 영화화했을 때 원작이 아예 무시당하거나, 원작을 살렸다 해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등의 원작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도 게이머들의 감정 이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손꼽힌다. 최근 개봉한 <페르시아의 왕자>의 경우에도 ‘영화가 된 게임’으로는 드물게 우리나라에서 개봉 7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흥행에서는 성공 조짐이 보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게임 전문가들은 이 영화조차도 원작 게임을 망친 영화들 중 하나로 보고 있다.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대한 평이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여러 게임들의 영화화 발표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샘 레이미 감독에 의해 2011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에 들어갔고, <미르의 전설>은 중국의 투자를 받아 영화화에 착수하고 있다. 상업적 영화화의 좋은 예인 <레지던트 이블>은 어느덧 4편이 제작될 예정이다. <심즈>나 <클락타워>, <메탈 기어 솔리드> 같은 다양한 게임들이 영화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앞으로도 소재의 고갈 문제와 새로운 볼거리 발굴 등의 수요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게임에 러브콜을 보내는 영화 제작자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 생각된다.
당연히 게이머들이 흥분할 수밖에 없다. 감독이 ‘우베 볼’이니까.우베 볼이 창조한 악몽의 시작. <하우스 오브 더 데드>.
국내 온라인 게임으로는 처음 영화화가 진행 중인 <미르의 전설>. <페르시아의 왕자> 역시 원작을 잘 고증했다고 말하기는 다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