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은 다방에서 작업은 카페에서
“그 매장에 있으면 내가 모여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일본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요시다 슈이치의 장편소설 <파크라이프>에 나오는 문장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스타벅스를 자주 찾는 여자(스타바 여자)로부터 스타벅스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소설 속 인물의 말처럼 커피전문점에 가면 정말 모두가 특별해지는 것일까?
구두디자이너 이지원 씨는 하루 2시간 정도 커피전문점을 찾는다. 제품 구상, 재료 수집, 시장 조사 등 외근이 잦아 외부에서 업무를 처리할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씨처럼 커피전문점을 찾아 일을 하는 사람들을 코피스족(Coffice族)이라고 한다. 코피스족은 Coffee와 Office의 합성어다.
미니노트북,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기기가 대중화되면서 커피전문점에서 공부를 하거나 업무를 보는 이들을 일컫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커피전문점이 진화하다‘ 코피스족’의 일터
불과 10년 전만 해도 커피전문점은 공동의 커뮤니티 공간이었다.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찾는 곳이었다. 연인들의 달콤한 기다림이 존재했던 곳이기도 했다. 요즘은 일을 하기 위해 커피전문점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코피스족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코피스족은 공동의 공간에서 개인의 공간을 찾아 일하는 것이 특징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던 공동의 공간이 사적인 공간으로 변모되는 중이다. 코피스족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유연근무제 확산, 20대 청년 취업난, 프리랜서 확산 등이 주요 원인으로 풀이된다. 고립된 공간보다는 분위기가 있는 쾌적한 공간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취향도 코피스족 문화에 적절하게 맞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코피스족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에는 이런 유사한 계층을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창작과 관련된 직종군에서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굳이 전문직종이 아니어도 많은 이들이 커피전문점을 찾아 일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문화로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우리나라는 IT인프라가 발달해 커피전문점에서도 집이나 회사처럼 편리하게 인터넷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기업형 커피전문점을 중심으로 확산된 카페의 무선인터넷 문화가 최근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커피전문점으로 확산되고 있다. 무선 인터넷 공유기를 활용하면 손쉽게 무선 인터넷을 서비스할 수 있다. 물론 코피스족에게는 커피 한 잔이면 어디서든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일 듯하다.
코피스족이요? 들어봤죠!
어릴 때부터 커피전문점을 찾는 걸 좋아했다는 이 씨에게“ 코피스족이라는 말을 들어봤냐”고 물으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오면 정리된 느낌이 많이 들죠. 아무래도 자유롭고 편하게 일할 수 있으니까 이런 공간이 좋아요. 요즘은 이런 공간이 자유롭죠.”
이 씨는 직업 특성상 외근이 잦아 커피전문점을 찾게 되었다. 일이 바쁠 때는 식사를 거르는 일이 잦았는데, 커피전문점에서 때늦은 식사 겸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자주 찾게 됐다고 한다.
“커피전문점에 오면 저처럼 혼자 책을 읽거나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지난해까지 홍대에 살았는데 많이 봤죠. 특히 대학가는 더욱 그런 것 같아요.”
코피스족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공공의 공간에서도 개인적인 공간을 찾으려는 욕구에서다. 이날 이 씨를 만난 커피전문점에도 노트북을 앞에 두고 홀로 커피를 마시는 젊은이들이 제법 많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예전 세대보다 마음의 여유가 더 있잖아요. 감성적으로 풍부해졌다고 할까요? 아마도 이곳에 홀로 오는 이들을 보면, 뭔가를 채우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타인에 대해 신경을 안 쓴채, 혼자서 자유롭게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PC방보다는 이곳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죠.”
“커피숍에서 해야 일이 더 잘 돼요”
이 씨가 인터뷰 도중에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애플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이었다. 이 씨가 3년 째 쓰고 있는 것이었다. “커피전문점에서 일을 하려면 이 아이(아이팟)가 꼭 있어야 해요”라고 이야기하는 이 씨의 얼굴은 진지했다.
이 씨처럼 커피전문점에서 일을 하기 위해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엠피쓰리 플레이어가 필수품인 듯했다. 엠피쓰리 플레이어는 공동 공간에서 일을 할 때 집중력이 높여주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피아노 음악가 유키 그라모토의 감미로운 음악을 좋아해요. 일을 할 때, 이런 조용한 노래를 많이 들어요. 감미로운 음악이 일을 하는데 큰 도움을 줘요. 마치 실타래를 푸는 느낌이라고 할까요?”(웃음)
이 씨 앞에 놓인 미니노트북도 2년째 사용하고 있는 손때 묻은 물건이었다. 이 씨가 외근할 때 문서를 작성하거나 인터넷 정보 검색을 할 때 유용하게 쓰고 있는 물건이었다.
“이 넷북은 우선 크기가 작아서 좋죠. 직업 특성상 짐을 많이 들고 다닐 때가 많아요. 이동하면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문서 작성도 하죠. 아, 최근에는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는 놈이 또 생겼어요.”
이 씨가 곧바로 손에 든 것은 휴대전화. 삼성전자 애니콜 SPH-W9500이다. 치 여자핸드백 같은 느낌이 들어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스타일리시 레이디폰이라고 들었어요. 여자 클러치백 같죠? 여자들이 세련된 제품 좋아하잖아요. 광택 이미지가 세련된 느낌을 줘서 좋아요. 진짜 쁠 땐, 이놈으로 인터넷을 쓰죠.”
제품을 살펴보니 겉모습만 여성을 위한 게 아니었다. 모임 일정 관리를 위한 파티플래너 기능을 비롯해 식약청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체중과 칼로리를 관리해주는 칼로리마스터, 현금과 카드 사용 내역을 체크해주는 미니 가계부 등 다양한 기능이 눈길을 끌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휴대전화가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순간은 눈에 띈 것들 사진으로 담을 때다.
“커피전문점에 오면 일단 잡지들을 많이 봐요. 잡지의 이미지를 찍어두거든요. 특히 남자 신발요. 여자 구두를 디자인하다보니 반대로 남성구두를 많이 보죠. 길을 가다 눈에 들어온 걸 많이 찍기도 해요.”
코피스족 관련 ‘커피전문점 업계 동향’
최근 코피스족을 위해 커피전문업계의 서비스가 강화되고 있어 관심을 끈다. 무선인터넷을 쓰려고 커피전문점을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여서 무선인터넷 서비스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이동통신사들도 ‘와이파이 존’을 경쟁적으로 늘려가는 추세라서 코피스족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할리스커피는 무선 인터넷 서비스가 바로 고객의 충성도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 주안을 두어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전 매장으로 확장했다. 미술, 그림, 영화 등을 활용해 할리스커피 매장을 전시장 또는 공연장처럼 꾸미는 감성마케팅도 진행하고 있다. 카페베네는 지난 5월 말 KT와 업무 제휴를 맺은 지 3개월 만에 대부분의 전국 매장에서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할리스커피 홍보를 담당하는 아이피알앤리턴컴의 이지혜 대리는“ 커피전문점이 커피 만을 즐기는 곳이 아닌 스마트한 문화공간으로 변하고 있다”며“ 업무 또는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김진경 기자 · 사진=설동호 사진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