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세서 새 시대 열어줄 APU
개인적으로는 썩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모임에 가면 소맥 한두 잔은 마신다. 소주의 문제인 목걸림과 화공약품 맛을 중화시킬 뿐 아니라 맥주의 부작용인 배부름 현상이 오기 전에 신속하고 얼큰하게 취할 수 있어 어색한 자리일지라도 짧은 시간에 분위기를 달구는 매력을 가진 것이 소맥이다.
섞으면 고유의 맛이 사라진다. 대신 실용주의 시대에 부합한다. 너도나도 하이브리드를 외치는 것도 시대의 보편적인 흐름이다. 디지털 기술, 그리고 PC도 마찬가지다. CPU와 그래픽카드를 더하면 각각의 특성은 분명 희석될 수밖에 없다. 대신 소비자가 원하는 PC를 더 저렴하고 쓰기 편하게 만들 수 있다. APU가 그 결과물이다.
소비자에게 GPU・CPU 구분은 무의미해
디지털 기기의 급격한 변화는 소비자뿐 아니라 PC에게도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 다양한 장치와 자유롭게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쫓겨나지 않는다. 인터페이스와 통신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요즘 PC는 TV, 휴대전화, 카메라,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등과 스스럼없이 말을 섞는다. 아예 PC 없이 자기들끼리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기도 늘었다. 그래도 여전히 디지털 데이터 보관과 가공에 있어 PC는 빠질 수 없는 존재다. 대신 예전처럼 크고 무식하게 빠르기만 한 PC는 인정받지 못한다.
이런 요구에 맞춰 PC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PC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크기는 작지만 PC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물론 한계가 없지는 않다. 크기를 줄이려면 성능이 부족한 부품을 쓸 수밖에 없다. 성능을 양보하지 않고 작게 만들 수도 있지만 문제는 값이다. 100만 원 하는 휴대전화와 태블릿은 얼굴값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100만 원 하는 PC는 지탄의 대상이 된다.
기능과 성능은 유지하면서 크기는 작고, 다른 디지털 기기를 구입하는 데 부담이 되지 않게 값까지 저렴하려면 지금과는 다른 기술과 설계를 적용한 부품이 필요하다. APU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AMD가 투자자의 외면을 받으면서도 ATI를 인수한 까닭이기도 하다.
PC의 핵심 장치인 CPU와 그래픽카드, 이 둘을 하나로 합친 APU는 시대가 요구하는 PC를 만드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반도체다. PC에서 가장 크고 전기를 많이 먹을 뿐 아니라 값이 비싼 두 장치를 하나로 합치면, 시스템 구조가 간단해지고 데이터 전송을 위한 복합한 버스 인터페이스 기술도 필요 없어진다. 소비전력을 크게 줄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당연히 PC를 더 저렴하게 만드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PC 역사의 새 장을 열다
펜티엄 4로 종지부를 찍은 단일 코어 CPU 시대의 화두는 클록 주파수였다. AMD와 인텔이 클록을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그 시절의 CPU는 높은 발열과 형편없이 낮은 에너지 효율이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좌고우면하지 않던 소모적인 발전의 시대는 코어 2 듀오와 애슬론 64 X2로 대표되는 멀티코어 프로세서가 등장하면서 종말을 맞는다. 1세대 멀티코어는 코어를 2배, 4배로 늘렸을 뿐 아니라 동일한 클록 주기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에너지 소모량은 이전보다 크게 줄었다. 현재는 코어 12개를 갖춘 서버용 CPU까지 등장한 상태.
하지만 개인용 컴퓨터는 늘어난 코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만한 프로세서 성능을 요구하는 애플리케이션이 없는 탓이다. 현재 데스크톱 CPU는 6코어까지 나왔지만 4코어 이상부터는 확연한 성능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소비자가 절대 다수다. 멀티코어 CPU 시대는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이정표를 놓쳤다.
무의미한 속도와 성능 경쟁으로는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눈치 챈 PC업계는 몇 년 전부터 짬뽕 프로세서, 바로 APU(accelerate processor unit) 개발을 시작한다. 그리고 소비자가 더 이상 고성능 PC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 2010년, 디지털판의 헤게모니가 완전히 휴대기기의 손아귀에 떨어진 2010년 그 결실을 내놓게 되었다.
코어 12개를 얹은 옵테론 프로세서. 서버와 달리 데스크톱에서는 코어를 늘려 성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
이미 시작된 2011년 APU 전쟁
데스크톱이든 노트북이든, 최근 등장한 태블릿PC도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컴퓨터 장치는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범용 프로세서(CPU)와 그래픽 정보를 가공하고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그래픽 가속 장치(GPU)가 핵심 연산 장치다. APU는 이 둘을 하나의 칩으로 만든 프로세서다.
지난해 인텔이 내놓은 클락데일(코어 i5/i3)이 바로 그래픽코어를 갖춘 프로세서다. 최근 미니노트북과 초소형PC 등에 쓰이는 아톰(파인뷰) 역시 CPU 안에 그래픽코어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클락데일은 CPU 코어와 GPU 코어가 같은 기판 위에 나란히 놓인 형태다.
파인뷰도 내장 GPU의 성능이 그래픽 가속장치보다는 화면 출력 장치 수준이고, 기능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CPU로서는 흠잡을 데 없지만 GPU라고 부를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클락데일이 짬뽕과 자장면을 절반씩 담은 ‘짬짜면’이라면, APU는 자장면에 짬뽕 국물을 듬뿍 부은 퓨전 요리다. APU는 하나의 칩에 CPU와 GPU, 그리고 데이터 전송을 위한 버스 인터페이스 회로가 모두 포함된다. 연산에 필요한 데이터를 칩 내부에서 주고받을 수 있어 병목현상이나 데이터 전송지연으로 인한 성능 하락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만큼 시스템 크기는 작아지고, 구조도 단순해진다. 노트북이나 초소형 PC 분야에서 활약이 기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AMD 퓨전, 라노와 온타리오
AMD는 이르면 올해 안에 첫 번째 APU인 자카테(Zacate)와 온타리오(Ontario)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CPU에 GPU를 집어넣는 퓨전 프로세서 개념을 먼저 제시하고도 실제 제품은 인텔보다 1년이나 뒤진 것이다.
자카테는 코어 i5 500/400M 시리즈에 대항하는 노트북용 프로세서다. 소비전력은 18W 수준으로 요즘 많이 팔리는 초박형 노트북용 CPU와 비슷하다. 온타리오는 이보다 전기를 적게 쓰는 미니노트북(넷북) 시장을 겨냥한 보급형 프로세서다. 경쟁사보다 늦게 GPU 통합 프로세서를 내놓은 대신 AMD는 강력한 GPU로 차이를 만회하겠다는 계획이다. 다이렉트X 11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비디오 인코딩 기능을 더해 HD 동영상도 매끄럽게 재생한다.
AMD는 최근 APU를 시연하면서 “APU를 쓰면 일반 노트북은 8∼9시간, 넷북은 11시간까지 배터리 이용 시간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카테와 온타리오를 쓴 노트북 제품은 올 연말을 시작으로 등장하기 시작할 예정이다. 한편 AMD 시연에서 자카테는 CPU와 GPU 부분 모두에서 인텔 코어 i5-520M보다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스크톱 APU는 내년 2분기에나 만날 수 있다. 라노(Llano)라는 코드명의 APU는 페넘 II 기반의 CPU 코어와 라데온 HD 5600급 GPU가 결합한 프로세서다. 고성능 노트북과 데스크톱에 걸쳐 쓰일 것으로 예상되는 라노는 지금의 페넘의 뒤를 이어 AMD의 주력 프로세서 자리를 넘겨받는다. 내장 그래픽으로는 상당한 성능의 GPU를 결합해 그래픽카드 없이도 대부분의 3D 게임을 원활하게 돌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 AMD APU 출시 계획
데스크톱 | 노트북 | |
고성능 | 잠베지(2011 상반기) 32나노 | 라노(2011 상반기) 32나노 |
보급형 | 자카테 18W(2010 4분기) | 온타리오 9W(2010 4분기) |
페넘 II에 기반을 둔 라노와 달리 자카테와 온타리오는 새로운 CPU 코어 기술을 적용한 밥캣 기반의 프로세서다. 고성능 데스크톱 프로세서인 잠베지는 불도저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불도저는 코어 하나로 두 개의 스레드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자카테와 온타리오는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생산하고, 잠베지와 라노는 AMD에서 분리된 글로벌 파운드리가 생산을 담당한다.
■ AMD 라노・온타리오 프로세서의 내부 구조
라노(Llano)
내년 상반기 중 출시될 라노는 페넘 II 설계의 CPU 코어와
다이렉트X 11을 지원하는 스트림 프로세서가 올라간다.
성능은 라데온 HD 5600급으로 알려졌다.
온타리오(Ontario)
미니노트북 등에 쓰이는 온타리오 프로세서는 2개의 밥캣 코어와
80개의 스트림 프로세서를 조합한 형태로 제작된다. CPU 다이
크기는 인텔 아톰(파인뷰)보다 약간 작고, 트랜지스터는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기초 설계부터 다시 한 샌디브리지
인텔은 클락데일을 잇는 CPU, 샌디브리지를 준비 중이다. 클락데일처럼 노트북과 보급형 데스크톱을 타깃으로 하지만 샌디브리지는 내부 구조가 종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설계의 프로세서다. 네할렘 기반의 클락데일, 린필드 등과 동일한 32나노미터 공정에서 만들며, 클락데일과 달리 CPU 코어와 GPU 회로가 하나의 칩에 들어간다.
설계가 크게 바뀌면서 클락데일보다 IPC(한 클록에 처리할 수 있는 명령)가 향상되었고, 새로운 명령어를 더해 복잡한 데이터를 더욱 빠르게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인텔의 터보부스트와 전원관리 기술이 더욱 강화되어 평소에는 전기를 아끼다가 높은 성능이 필요할 때만 소비전력을 높이는 재주가 한결 더 똑똑하게 바뀌었다.
또 캐시 구조를 확 뜯어고쳐 GPU와 CPU가 상황에 따라 필요한 캐시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 내장 GPU의 성능도 종전 인텔 HD 그래픽보다는 개선되었다고 알려졌으나 구체적인 성능이나 다이렉트X 호환성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샌디브리지는 데스크톱부터 노트북에 이르는 대부분의 프로세서 라인업에 투입될 것으로 보이며, 새로운 규격의 소켓을 쓰기 때문에 종전 메인보드와는 호환성이 없다. 샌디브리지와 호흡을 맞추는 칩셋으로는 6 시리즈가 새롭게 등장한다. 샌디브리지 역시 올해가 가기 전에 시장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AMD는 최근 라노를 시연해 낮은 소비전력과 우수한 연산능력을 뽐냈지만 내장 그래픽 정보 제공에는 인색한 모습이었다. |
위쪽이 클락데일, 아래쪽이 샌디브리지다. CPU와 GPU 분리된 채 하나의 프로세서를 이루는 클락데일과 달리 샌디브리지는 설계 단계부터 둘을 하나의 칩으로 만들었다. |
■샌디브리지의 내부 구조
샌디브리지의 내부 구조. CPU 코어와 그래픽 회로가
캐시 메모리를 공유해 데이터 전달에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CPU 코어는 제품 종류에 따라
2개 또는 4개가 될 수도 있다.
APU 내부 그래픽 회로 성능이 승부처
올 연말을 기점으로 시작될 APU 전쟁에서 누가 웃게 될까? 우선 출시 시기와 물량에서는 인텔이 AMD를 압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진정한 승부는 프로세서에 포함된 그래픽 유닛의 성능에 달렸다. 우선 현재까지 정보에 근거해 보면 이 부분에서는 AMD의 우세로 보인다. AMD의 APU는 다이렉트X 11을 지원하지만 인텔은 다이렉트X 10까지만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게이머가 타깃이 아닌 보급형 PC 시장에서 다이렉트X 11 지원은 큰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AMD가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현재 판매되는 내장 그래픽도 기술에서는 AMD가 앞서지만 이용자가 차이를 체감할 정도는 아니다. 또 동영상 인코딩이나 그래픽 유닛을 활용한 일반 연산 지원 등의 기술은 반도체의 성능보다는 관련 업계에 대한 기술 지배력이 더 중요한 분야다.
내년에 등장하는 AMD의 데스톱 APU 라노는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 구동이 가능한 라데온 HD 5600급 그래픽을 포함하는 만큼 그래픽 부분에서는 확실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라데온 HD 5600급을 내장했다는 것은 내장 그래픽의 성능이 10만 원대 그래픽카드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픽카드 시장에서 이 가격대의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0%에 육박한다.
AMD가 내놓을 APU의 그래픽 성능은 어느 정도 공개된 상태다. 즉, 승부는 인텔 샌디브리지에 포함된 그래픽 유닛이 어떤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IDF 행사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 샌디브리지의 특징을 설명했다. |
인텔과 AMD 싸움에 엔비디아 등 터져
한편 인텔과 AMD의 APU 경쟁을 앞두고 엔비디아는 불편한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최근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인텔과 AMD에게 “GPU 영역을 넘보지 말고, 하던 일이나 제대로 하는 게 나을 것”이라며 경고했다. 그는 CPU와 GPU 결합상품이 “현저히 느릴 뿐만 아니라 발열도 심할 것”이라며 소비자들의 요구를 읽지 못한 제품이라고 깎아내리면서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과 AMD가 준비하는 APU 시장이 활성화되면 엔비디아의 활동 영역이 고가의 하이엔드 그래픽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전체 그래픽 시장에서 게임 마니아용 고가 그래픽카드 시장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두 회사가 준비 중인 APU가 상당히 못마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최근 엔비디아가 역점을 두고 있는 옵티머스 기술도 앞으로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옵티머스 기술은 내장 그래픽을 갖춘 노트북에 그래픽 유닛을 추가해 상황에 따라 두 가지 그래픽 장치를 선택적으로 이용해 성능은 높이고 배터리 이용 시간은 늘린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고성능 그래픽의 경우에는 이런 조합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종전 내장 그래픽보다 향상된 성능을 가진 APU가 등장하면 노트북 제조사는 굳이 제조비용을 올려가며 엔비디아의 그래픽을 추가로 달 필요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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