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의 추억] 야심찼던 국산 휴대용 게임기는 왜 망했나, GP32
2021-02-28 남지율 기자
[smartPC사랑=남지율 기자] 최근 콘솔 시장에서는 국산 게임을 어렵지 찾아볼 수 있으며, 출시 예정인 작품도 꽤 되는 편이다. 하지만 점차 늘어나는 국산 콘솔 게임 타이틀과 달리 콘솔 게임기는 지난 수십 년을 되돌아봐도 대부분이 일본과 미국 제품이다. 물론 국산 콘솔 게임기 제작에 대한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며, 그중 일부는 국내 게임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이번 기사를 통해 살펴볼 GP32도 상당히 의미가 깊은 제품이다. GP32는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로 2001년 11월에 출시됐다. 타사의 경쟁 기종과 달리 기본적으로 MP3나 동영상과 같은 멀티미디어 플레이를 지원해 게이머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으나 닌텐도의 아성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GP32는 무엇이 부족했을까?
턱없이 부족한 게임 타이틀
콘솔 게임기의 성공을 결정짓는 것에는 가격, 스펙 등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게임 타이틀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GP32의 가장 큰 약점도 빈약한 게임 타이틀에 있다.
GP32로 출시된 손노리의 국산 RPG 게임인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R’이나 ‘그녀의 기사단 강행돌파’ 등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게임 타이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런칭 타이틀이 고작 4개뿐이며, GP32용 신작 게임은 매우 드물게 출시됐다.
게임파크는 분위기 반전을 꾀하기 위해 ‘길티기어’, ‘스트리트 파이터 Zero 3’, ‘록맨 X5’ 등 30여 개의 해외 작품들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으나 실제로 출시된 해외 유명 게임은 ‘프린세스 메이커 2’뿐이다.
게다가 가뭄에 콩 나듯 드물게 출시된 게임 중에는 GP32의 유저층과 그리 잘 부합하지 않는 게임도 많았다. GP32로 출시된 ‘탱글이의 매직 스퀘어’, ‘김치맨’, ‘둘리축구 2002’와 같은 게임이 그렇다. GP32는 25만원에 출시된 게임기로 출시 당시의 물가를 고려하면 게임 마니아가 아니면 손쉽게 구매하기 어려운 편이다. 과연 게임 마니아들이 이름부터 라이트한 작품들을 좋아했을지 의문이다.
독이 되어버린 부가 기능
GP32의 강점은 다양한 부가 기능에 있다. ‘무비 파크’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동영상을 보거나 이미지, 텍스트 뷰어는 물론이고 공개된 SDK를 통해 개인 사용자가 직접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도 가능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PMP가 처음 출시되기 시작했던 당시에는 꽤 파격적인 기능에 속했다. 특히, 경쟁 기종인 ‘게임 보이 어드밴스’는 게임에 충실한 기기였기에 GP32의 부가 기능에 매료된 게이머가 많았다.
하지만 이는 결국 GP32의 발목을 잡게 된다. SDK를 통해 각종 에뮬레이터가 등장하게 되면서 굳이 GP32용 게임을 구매하지 않고 ‘에뮬 머신’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GP32용 게임이 적게 출시됨에 따라 이 문제는 더 심화됐다. 이 현상은 GP32의 후속격인 ‘GP2X’, ‘GP2X Wiz’, ‘CAANOO’에서도 잔존했다.
마치며
최초의 국산 휴대용 게임기 GP32는 야심 찬 꿈과 강력한 스펙으로 출시돼 큰 주목을 받은 기기다. 게임파크가 언급한 30여 종의 해외 유명 게임이 실제로 출시됐다면, GP32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쓰라린 참패를 거뒀다. 하지만 국내 게임사에 기억될 게임파크의 과감한 시도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