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이 전화선을 먼저 끊는 이유는? - 우리를 위협하는 영화 속 IT 기기

2012-07-12     PC사랑

‘위협’이라는 단어에 가장 적절한 영화는 역시 공포 장르다. 하지만 스크린을 피로 물들이는 공포영화는 불행히도(?) IT 기기를 싫어한다. 본질적인 공포는 고립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대낮에, 그것도 와이파이망이 잘 갖춰진 광장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무장한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공포영화 속 살인마들은 ‘광장’ 대신 ‘산장’을 좋아한다. 외부 연결이 끊긴 공간이 공포영화의 주 무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제거대상 1순위는 휴대전화
영화 <13일의 금요일>을 비롯해 1980년대 수많은 공포영화를 떠올려보자. 사건은 항상 인적이 드문 주택이나 산장에서 벌어진다. 정체를 감춘 살인마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외부 통신수단을 끊는 일이다. 만약 살인마 ‘제이슨’이 깜박 잊고 전화선을 자르지 않았다면, 첫 번째 살인이 시작되자마자 야영장은 경찰과 취재진으로 시장 통이 됐을 것이다. 아무리 천하제일 살인마 제이슨이라도 경찰들이 득시글거리는 야영장에서는 살인은커녕 도망가기도 힘들다. 그래서 살인마들은 무조건 전화선부터 끊어 놓는다.

휴대전화가 대중화된 1990년대 공포영화들은 보다 깊숙한 산골을 무대로 삼는다.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지역으로 몰아넣어야 관객이 납득할 만한 무서운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은 땅이 넒어 휴대전화 전파가 미치지 않는 곳이 많아 현실성을 문제 삼는 관객이 없다. 하지만 산골은 물론, 무인도에서도 휴대전화가 터지는 한국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요즘 시대 한국에서 제이슨이 희생자를 자기 마음대로 다루려면, IT분야 파워블로거를 넘어서는 지식과 기술을 갖춰야 한다. 애써 인적이 드문 산장으로 희생자를 모았어도 그들이 쏘는 휴대전화 전파와 무선 인터넷을 무력화 시켜야 하니 말이다. 혹여 희생자들 중에 누군가가 위성 전화라도 갖고 있다면 애써 짜놓은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작년 가을에 개봉한 한국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떠올려보자. 비록 대여섯 명이 사는 작은 섬이지만 휴대전화 전파는 잘 잡히는 섬이었다. 마을 주민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김복남은 낫을 준비한다. 영화 <나이트메어>의 ‘프레디’처럼 꿈속을 넘나드는 재주도, <할로윈>의 ‘마이클’ 같은 완력도 없는 그의 작전은 기습과 고립이다. 그래서 행동을 시작하기 직전 마을 뒷산의 휴대전화 기지국을 박살낸다. 전국 어디에서나 휴대전화가 ‘빵빵’ 터지는 한국이기에 꼭 필요한 설정이다.




1 2. <13일의 금요일>이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먼저 전화선을 끊어 외부 연결을 막았다. 


3. <링>의 사다코는 비디오테이프라는 기술과 함께 만든 최초의 미래형 귀신. 


4. <착신아리>의 귀신은 휴대전화에 붙어 불특정 다수를 위협한다.

귀신의 모습까지 바꾸는 IT 기기   
만약 김복남이 귀신이었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졌을지 모른다. 놀라운 힘을 이용해 모든 전파를 차단했다고 하면 관객이 고개를 끄덕일 테니까. 이런 설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영화 <링> 덕분이다. 이 영화는 한 서린 귀신 ‘사다코’의 저주가 비디오테이프에 담기고, TV를 통해 저주를 실현한다는 충격적인 설정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링>이 아니었다면 귀신과 고급 IT기술의 접목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사다코는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미래형 귀신인 셈이다.  

하지만 사다코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비디오테이프를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복수는커녕 구천을 떠도는 잡귀만도 못한 신세로 전락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요즘처럼 IPTV와 스마트TV가 대중화될 때까지 어느 집 창고에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운 좋게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저주가 네트워크에 올라오면 사다코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을 테고, 아니면 쓰레기 소각장에서 절규하면서 지옥으로 끌려갔을지도 모른다.

결국 IT기술 진화는 귀신마저도 변화하게 만들었다. 영화 <착신아리>에 나오는 귀신은 네트워크와 연결된 휴대전화에 붙어살고 있다. 휴대전화를 타고 다니는 귀신은 사다코처럼 창고에 갇힐 일은 없다. 주소록에 저장된 수백 명 중 한 사람을 골라 옮기면 된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이런 저주는 일반 사람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케빈 베이컨의 법칙이 증명하듯 몇 단계만 거치면 원하는 인물을 쉽게 찾아낼 수 있어 누구도 안심할 순 없다.

좀더 똑똑한 귀신은 인터넷에 잠입한다. 휴대전화를 버리고 숨어 버린 사람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올 여름 개봉할 국내 공포영화 <미확인 동영상>이 바로 그런 예다. 여고생 저주를 담은 동영상은 인터넷을 타고 널리 돌아 다니며, 귀신은 CCTV를 이용해 동영상 본 사람을 추적한다. 2011년형 귀신은 휴대전화는 물론 인터넷과 CCTV쯤은 우습게 타고 다닐 수 있어야 관객을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IT기술 덕분에 귀신마저 진화하게 만드는 세상에 살고 있다. 공포영화 속 설정이 다소 우습기도 하고,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넘나드는 귀신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도 드물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2011년은 최첨단 기술을 익힌 귀신 따위가 없더라도, 아주 사소한 실수 때문에 상상조차 못했던 위험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는 시대다.


1. 2011년 공포영화 <미확인 동영상>에 나오는 귀신은 CCTV를 마음대로 활용한다.


2. 노트북으로만 생활하다 해킹으로 삶 전체가 위협받는 내용을 담은 <네트>. 


3. 본 시리즈의 능력자 제이슨 본 이라도 IT 그늘에서 완벽히 벗어나긴 힘들다.   


4.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는 마음만 먹으면 사생활을 쉽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5. 터미네이터를 움직이는 컴퓨터가 해커라면 3차 대전이 일어날 수도. 

삶을 조작하는 디지털 기술   
올해 나이 32세. 작은 마케팅 회사에 다니는 김 대리는 휴대전화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급하게 구운 토스트 한 조각을 먹으며 태블릿PC를 켠 김 대리는 미처 확인하지 못한 메일과 업무 정보를 확인하고 거래처로 향한다. 동료들에게 ‘길치’라는 핀잔을 숱하게 듣는 김 대리지만 똑똑한 내비게이션이 가장 빠른 길을 정확히 안내해준다. 스마트폰으로 은행 거래를 해야 하는 터라 신호 대기가 반갑기까지 하다. 메신저를 통해 어리광 부리는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가 감격할 멘트도 날려야하니 말이다.

요즘 직장인 대부분은 김 대리처럼 산다. IT 기기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인간관계조차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니 당연하다. 만약 김 대리의 IT 기기가 반란을 일으킨다고 상상해보자. 그토록 빠르고 정확하던 기기들이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제 맘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알람이 울리지 않아 지각하는 정도면 다행이지만, 거래처에서 쓸 프레젠테이션 파일이 사라지거나, 미친(?) 내비게이션 때문에 엉뚱한 곳을 헤매면 직장 생활을 끝내야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민망한 메시지가 김 대리 이름을 걸고 SNS를 떠돈다면, 인간관계마저 처참한 끝을 보게 된다. 사랑하는 그녀 역시 험한 말을 쏟아붓고 떠날 것이다. 이뿐이라면 그래도 기회는 있다. 하지만 멀쩡하던 신용카드가 정지되고, 미래를 위해 차곡차곡 모은 적금까지 온데간데없이 없어졌다면 김 대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이 아니다. 최근 한 달간 IT 기기와 관련된 사건들만 검색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스마트폰 오류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해킹당한 메신저 때문에 사기에 휘말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미니홈피나 트위터 계정이 해킹 당해 엉뚱한 오해를 받는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보안이 철저하기로 소문난 은행까지도 해킹 때문에 업무가 마비되는 지경이니, 과도한 상상이라고 그냥 넘길 수만은 없다. 이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당사자가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되는 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1995년에 나온 <네트>다.

주인공 ‘안젤라’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다. 노트북과 휴대전화로 모든 일을 처리해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칠 일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뛰어난 해킹 기술을 가진 범죄 조직과 얽히면서 재앙이 시작된다. 개인 정보를 조작해 네트워크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만들어 버린 것. 집안에서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그는 위험을 감지하고 필사적으로 도망치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 범죄자 신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위협하는 범인은 물론, 도움을 받아야 할 경찰까지 적이 된 것이다.    

<네트>는 네트워크에 종속된 현대인이 처할 수도 있는 위험을 자세히 보여준다. 안젤라가 아무리 진실을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이른바 ‘객관’적 가치판단으로 본인 증명보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더 믿는다. <네트>는 인터넷 대중화가 시작할 즈음에 만들어진 영화라 당시에는 관객 대부분이 실제적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15년여가 흐른 뒤 상황은 달라졌다. 한 인간의 모든 것이 숫자 ‘0’과 ‘1’로 표기되는 요즘, 안젤라의 공포는 현실이 되었다. 프로그램을 조작할 능력을 갖춘 악랄한 누군가가 PC 앞에 앉는다면, 한 사람의 인생을 쉽게 망쳐 버릴 수 있는 시대다. 영화 <본 얼티메이텀>을 본 관객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탁월한 기술과 능력을 갖춘 제이슨 본 조차도 전 세계 모든 IT 기기를 통제할 수 있는 CIA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하거늘, 변변한 생존 기술이라고는 없는 일반인이 그들의 마수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터미네이터가 진짜로 등장할 수도
안젤라와 제이슨 본의 이야기는 특수한 상황이긴 하다. 이메일이나 SNS 계정 정도라면 몰라도 전 세계 모든 IT기기와 공공기관의 정보까지 자유자재로 해킹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의 부패한 정부기관원처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면 또 모를까.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의 주인공 ‘딘’은 잘나가는 변호사다. 법과 제도의 테두리를 우습게 넘나드는 마피아조차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딘은 인공위성과 네트워크 등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부패한 정부요원들에게 꼼짝 못한다. 자신에 관한 모든 정보를 손에 쥔 그들과 대적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물건 살 때 이용한 신용카드 기록이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18분에 한 번꼴로 CCTV에 잡히며 일거수일투족이 인공위성의 감시를 받는 상황이라면 도망갈 곳이 없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는 권력자가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의 사생활을 손금 들여다보듯 손쉽게 살펴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조지 오웰이 쓴 <1984>에서 다룬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박탈은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전체주의 사회를 꿈꾸는 막강한 권력자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실현가능한 사회가 된지 오래다. IT 기기를 모두 버리고 인공위성 신호조차 도달할 수 없는 깊은 산 속에 틀어박힌다면 모를까, 전체주의 사회를 꿈꾸는 부당한 권력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독재를 꿈꾸는 권력자뿐인가. 영화 <다이하드 4.0>은 일확천금을 손에 넣으려는 전문 해커가 국가의 모든 네트워크 시스템을 장악한 상황을 보여준다. 다행히 주인공 존 맥클레인의 활약 덕분에 최악의 상황까지 이르진 않지만,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교통관제 시스템을 교란시켜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정도로 도시 하나쯤은 손쉽게 마비시킬 수 있다. 영화 속 상황처럼 현실에서 세계 경제의 심장이라는 월 스트리트가 마비되면 한국의 금융시장 역시 온전하기 어렵다. 미국 네트워크만 장악하면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세상이다.

비록 <다이하드 4.0>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불순한 의도를 가진 누군가가 미국 방위 시스템을 장악한다면 전 인류를 멸망의 길로 이끌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는 그런 우려를 담고 있다. 터미네이터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제 맘대로 핵무기를 발사해 인류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인다. 컴퓨터가 아니라 해커라고 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다. 네트워크로 묶인 세상이라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강 건너 난 불은 더 이상 강 건너만의 문제가 아니니 말이다.

해킹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
실현 가능성이 있긴 하나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거창한 문제라 크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하늘이 무너질까봐 식음을 전폐하고 걱정에 빠져 살았던 기나라 사람을 보는 기분일지도 모른다. 실제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일반인이 실제로 <네트>의 안젤라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의 딘, <다이하드4.0>의 존 맥클레인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당신을 미워하는 누군가가 근처에 있고 당신의 보안의식이 그리 철저하지 못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시 김 대리 일상으로 돌아가 보자. 김 대리에게 애인을 뺏긴 박 대리는 공석인 과장 자리까지 김 대리에게 뺏길 수 없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그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놓인 김대리의 노트북을 본다. 로그인 상태인 김 대리 메일 계정은 손쉬운 먹잇감이다. 노트북에 저장한 입찰 서류를 경쟁 회사의 담당자에게 전송하고 기록을 지운다. 이어 김 대리와 애인의 은밀한(?) 사진을 미니홈피나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다. 김 대리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아주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한 사람은 직장과 애인을 잃을 것이고, 비열한 성격 파탄자로 낙인 찍혀, 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알다시피 단 몇 분이면 충분하다.

숱하게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단골 소재로 삼는 소재니, 기발한 이야기라고 생각진 않을 것이다. 네트워크를 타고 떠도는 정보가 곧 한 인간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도구로 쓰이는 세상에서 흔한 일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요즘은 해커가 등장하지 않는 영화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하다못해 로맨틱 코미디에도 PC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자’가 한 번쯤은 등장한다. 온라인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사랑마저도 얻기 힘든 세상이 됐다는 뜻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해커에게 메신저 계정을 뺏기는 판이니, 가까운 주변인에게 자신의 신분을 도용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2008년에 나온 <미쓰 홍당무>를 보자. 주인공 양미숙은 동료 교사인 이유리와 한 남자를 놓고 싸우는 사이다. 짝사랑인터라 상대 남자인 서 선생은 물론 이유리 선생도 양미숙의 질투심을 모른다. 나름 치밀한 작전을 세워 서선생의 메신저 계정을 손에 넣은 양미숙은 이유리 선생에게 변태적인 메시지를 날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영화 속 이유리는 한 술 더 뜨는 모습으로 양미숙을 놀라게 만든다.

사실 영화가 아닌 현실이라면 놀라는 쪽은 양미숙 선생이 아니라 이유리 선생이었을 것이다. 보통은 절교를 선언하지만, 이유리 선생이 조금 독한 마음을 먹는다면 대화내용을 저장한 파일 하나만으로도 가상의 김 대리처럼 서 선생의 인생을 끝장낼 수도 있다. 서 선생이 메신저 계정의 도용을 증명할 만한 능력이 없거나, 아무리 뒤져도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다. 똑똑한 해커는 증거를 남기지 않는 법이니까.

어쩌면 사무실에 설치된 CCTV 덕분에 서 선생과 김 대리의 비극적 운명이 구원을 받을 수도 있다. 도시에 사는 현대인은 하루 평균 80여회에 걸쳐 CCTV에 잡힌다고 하니, 사무실이나 복도에 설치된 CCTV가 구원자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적진 않다. CCTV는 침입자를 막거나 진범을 가리는데 유용한 정보를 주는 편리한 IT기기 아닌가? CCTV 때문에 김 대리가 아닌 박 대리가 직장을 잃고, 서 선생 대신 양미숙 선생이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CCTV는 보안 카메라? 몰래카메라?
현실을 비추되 관객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스토리를 끌고 가야하는 영화의 특성 때문에 영화 속 CCTV는 현실과 달리 해결사 역할을 맡지 않는다. 그저 범인 추적 단서를 주거나, <미션 임파서블>처럼 CCTV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나가는 모습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주는 수준에 그친다. 그래서 영화 속 CCTV는 정의를 지키는 사도가 아니라 악마의 도구로 더 많이 등장한다.
특히 CCTV와 관음증을 연결하는 상황이 많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사회면을 장식하는 뉴스를 떠올려보자. 아직도 탈의실에 감춰진 CCTV를 통해 누군가를 훔쳐보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지금은 그저 훔쳐보는 수준에 머무는 게 아니라, CCTV를 녹화한 동영상을 협박의 도구로 이용하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CCTV에 대한 이런 우려와 공포는 CCTV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터 이미 등장했다.

1993년에 나온 영화 <슬리버>는 CCTV로 당시의 공포감을 잘 담아냈다. 영화는 주로 <원초적 본능>으로 세계적인 섹시 스타가 된 샤론 스톤의 헐벗은(?) 몸매를 스크린 위에 펼쳐 놓는데 급급했다. 하지만 건물 주인이 남 모르게 숨겨둔 CCTV로 입주민들의 사생활을 낱낱이 살피고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만큼은 당시 대중화의 길로 접어든 CCTV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함축된 장면이다.

영화 속 범인은 CCTV를 이용해 샤론 스톤의 거실과 침실, 심지어 욕실과 화장실까지 모두 살핀다. CCTV를 통해 모든 입주자들의 사생활을 살피고 있는 범인을 발견한 샤론 스톤은 놀랄뿐이다. 세상은 이미 나도 모르게 찍힌 내 모습이 누군가의 변태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이용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누구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몰래 카메라’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오늘 날에는 단순히 훔쳐보는 수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수준까지 나아간다. 지난 5월에 개봉한 영화 <레지던트>가 그 예다.

<레지던트>의 주인공 줄리엣은 저렴한 집세와 건물주의 친절함에 속아 넘어간 피해자다. 집에 있을 때마다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던 그녀는 남모르게 CCTV를 집 안에 설치한다. 다음 날, 자고 있는 자신에게 약물을 주사하는 사람의 실체를 목격하고 경악한다.  그렇다면 IT 강국이라 불리는 한국은 어떨까. 진보한 IT 기술로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아진 몰래 카메라의 공포는 1999년과 2000년에 확산됐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O양’ ‘B양’ 비디오 사건이 바로 그것.

유출된 동영상이 초고속 인터넷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당시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연예인이 연루된 몰래 카메라 동영상 사건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사생활이 다른 사람에 의해 폭로되고, 인터넷의 대량 확산, 무한 복제와 결합하면 개인의 사회적 생명을 단 번에 끝장 낼 수도 있음을 증명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때까지만 해도 연예인이라는 특정 직업군의 특별한 문제라 생각하는 수준이었으나, 저가형 몰래 카메라 유통과 인터넷 확산은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심각한 수준의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2005년에 나온 <연애술사>는 모텔에 설치한 몰래 카메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준수한 외모의 성형외과 의사와 달콤한 사랑을 꿈꾸던 착하고 순진한 미술교사 희원에게 옛 남자친구였던 바람둥이 마술사 지훈이 찾아온다. 그들이 사랑했던 시절, 어느 모텔에서 보낸 하룻밤이 몰래 카메라 동영상이 되어 인터넷을 떠돌고 있었던 것. 로맨틱 영화답게 그들은 범인을 찾아 모텔을 전전하다가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뜬다는 줄거리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희원은 옛 남자친구와 함께 한가하게 과거에 드나들던 모텔이나 뒤지다가 다시 사랑에 빠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발 빠르게 대처해도 범인은 오리무중일 테고,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잡고 P2P 사이트에 올라오는 동영상 삭제에 매달려도, 무한 복제되는 동영상을 완벽하게 지울 수 없음에 절망할 것이다. 이때부터 희원은 자신을 쳐다보는 모든 사람들이 행여나 그 동영상을 본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희원이 가르치는 학생 중 하나가 그 동영상을 보는 날이면 희원의 교사 인생은 그 길로 끝이다.

실제로 이 같은 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으니,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헤어진 옛 애인에 의해, 혹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제3자에 의해 은밀한 사생활이 폭로된 가련한 운명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몰래카메라 공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불특정 다수를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 게다가 누구나 쉽게 동영상을 촬영,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으로 점점 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1. 증권회사에서 동료를 시기하는 내용을 담은 <여의도>. 마치 김대리의 일상을 생각나게 한다. 


2. <미스 홍당무>는 메신저를 해킹해 다른 사람을 이간질한다.


3. <미션 임파서블>의 CCTV는 결정적인 단서를 주지 않고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나가는 모습만 보여준다. 


4. <슬리버>는 샤론스톤만을 돋보이게 만든 영화지만 당시 CCTV의 대한 공포감이 담겨있다. 


5. <레지던트> 주인공은 CCTV를 통해 침입자를 알게 된다.


6. 인터넷 동영상 유포자 찾는 내용을 담은 <연애술사>.

감독을 만들고, 범죄자도 만드는 휴대전화 
누구나 PD, 감독이 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동영상을 보낼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든 2005년, 영화 <핸드폰>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여배우 매니저 승민이다. 성공을 눈앞에 둔 그에게 어느 날 여배우와의 성관계 동영상을 갖고 있다는 인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영상이 담긴 휴대전화까지 잃어버린다. 이제 그는 협박 전화의 주인공을 만나 문제를 해결해야 함과 동시에 휴대전화를 습득한 익명의 남자까지 찾아야 한다.

<핸드폰>은 동영상 촬영 기능을 갖춘 휴대전화가 대중화되지 않았으면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동영상이 담긴 휴대전화를 한 번이라도 분실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분실한 휴대전화에 은밀한 동영상이 없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휴대전화를 주운 누군가가 조금만 주의 깊게 전화번호와 문자 메시지, 사진 혹은 동영상을 살펴본다면, 당신이 감추고 싶었던 비밀을 찾아낼 수도 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은 없으 말이다. 

그나마 <핸드폰>이 나온 2005년은 스마트폰이 나오지 없던 때라 다행이다. 요즘처럼 PC에 버금가는 성능과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 시대에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좀 더 심각한 사건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2G폰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데이터와 기능을 담은 스마트폰은 단순한 휴대전화가 아니다. 쓰기에 따라 디지털로 바뀐 당신의 분신일 수도 있다. 스마트폰을 주운 누군가가 당신의 분신을 마음대로 조작한다고 상상해보자. 장난기 섞인 단문 메시지 하나만으로도 삶이 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 

최근 아이폰이 이용자 위치 정보를 수집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 때문에 시끄러웠다. 위치 정보는 특정 개인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어디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낱낱이 기록하기 때문에 악용하면 무서운 무기로 쓰일 수 있다. 작게는 마케팅의 도구로, 크게는 정치적 목적의 ‘민간인 사찰’까지도 손쉬운 것이 스마트폰에 담긴 개인 정보의 위력이다. 예전에 휴대전화 분실은 금전적 손실에 그쳤지만, 요즘은 치명적인 사생활 폭로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심각한 위협이다. 때로는 영화 <핸드폰> 주인공처럼 휴대전화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각종 SNS 서비스를 통해 네트워크화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이용자가 필요할 때에만 정보나 음성을 주고받아야 할 스마트폰이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는 상황이 펼쳐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08년에 나온 <다크나이트>를 살펴보자. 영화 속 브루스 웨인(배트맨)은 악당 조커를 찾기 위해 휴대전화 음성을 도청장치로 활용하는 기술을 쓴다. 그러자 배트맨 조력자인 폭스는 너무나도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쥔 배트맨 존재를 두려워한다. 만약 누군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휴대전화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정보가 곧 돈인 세상이니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손에 넣을 수도 있다.


1. 동영상 촬영할 수 있는 휴대전화가 나오지 않았다면 만들 수 없는 영화 <핸드폰>.


2. <다크나이트>에서는 휴대전화 음성을 도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3. 홈 네트워크가 완벽히 갖춰져 있는 곳이 범죄 도구로 쓰이면 더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내용을 담은 <호스티지>. 


4. 원격 의료 시스템이 완성 되면 기글 박사는 더 이상을 희생자를 찾아 직접 돌아다니지 않을 것이다.

   
5. 인간을 게임 도구로 이용하는 <게이머>같은 세상이 올 수도 있다. 


6. <월E>와 <써로게이트>는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는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7. <접속> 결말은 인터넷을 통한 만남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이버 머니와 진짜 머니가 바뀌는 세상
첨단 기술이 발전한 시대는 필연적으로 악용의 사례를 남길 수밖에 없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범죄가 퍼지고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피해 사례를 남긴다. 불과 얼마전만해도 화재로 인해 전원이 끊긴 디지털 도어록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충분히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열리지 않는 디지털 도어록 때문에 목숨을 잃은 피해자가 여럿 발생했다. 법과 제도가 신기술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응 기간이 부족한 신기술은 틀림없이 문제를 일으킨다. 유비쿼터스의 총아라고 불리는 홈 네트워크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호스티지>의 배경인 대형 저택은 홈 네트워크 시스템과 보안 시스템을 결합한 요새같은 곳이다. 외부 위협을 막기 위해 설치했지만 악당이 점령한 순간,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다. 영화에서만큼은 슈퍼맨을 능가하는 능력자인 부르스 윌리스조차 감당하기 어렵다. 날이 시퍼렇게 선 검은 칼자루가 누구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운명은 달라진다.    

홈 네트워크 시스템을 완비한 집은 굳이 집 안에 침입할 필요도 없다. 밖에서 전화 한 통이나 SNS 메시지 하나면 집 안의 모든 전자기기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 편리하기 그지없는 시스템이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가 집을 마음대로 조종한다면 그야말로 악몽이다. 한밤 중 불 꺼진 거실에 놓인 TV가 저절로 켜진다고 상상해보자. 한 번쯤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겠지만, 두세번 이어지면 공포감을 느낀다. TV 뿐만 아니라 예고 없이 작동하는 전자기기는 당신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전자기기를 잘못 이용하면 때때로 생명을 위협하는 살인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집안의 모든 전자기기가 네트워크로 묶이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범죄의 피해자가 바로 우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현재 한창 개발 중인 원격 의료 시스템은 또 다른 위협이다. 희생자를 찾아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영화 <닥터 기글>의 기글 박사는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면서 희생자를 찾아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 물론 다소 과장과 상상이 더해진 예측이지만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이라고 잘라 말할 순 없다. 지금은 혈압이나 혈당 같은 간단한 진단만이 가능한 수준이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치료와 처방까지도 가능한 원격 진료 시스템이 등장할 테니, 사이코 패스 기질이 있는 의사를 만나면 당신의 목숨은 바람 앞 촛불 신세가 되고 만다.

IT 기술 발전으로 이미 거대 산업으로 발전한 분야가 있다. 바로 게임.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영화 <엑시스텐즈>를 통해 게임의 발전이 인간성의 말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미 경고했다. 가끔 지나치게 게임에 몰입한 사람들이 현실로 회귀를 거부하다가 목숨을 잃거나 게임 속 세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황당한 일이 가끔 생긴다. 게임으로 획득한 ‘사이버 머니’가 진짜 ‘머니’와 바뀌는 세상이니 게임 속 세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것조차 구세대의 사고방식이다.  

기술력과 위험성은 함께 발전
IT 기술은 갈수록 현실과 구분하기 힘든 게임을 창조해낼 것이고, 인간은 더욱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과도한 몰입으로 현실감각을 잃은 게이머들은 늘었으면 늘었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SF 영화들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현실이 된다면, 영화 <론머맨>처럼 인간이 사이버 세계로 흡수되는 일도 벌어질지 모른다. 조금 더 황당한 상상을 더하면 <게이머>처럼 인간이 인간을 게임 도구로 이용하는 섬뜩한 세상마저 다가올까 두려울 지경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월E> 조차 모골이 송연해질만한 어두운 미래를 묘사하지 않는가.

<월E> 속 인간은 IT 기술과 로봇 공학의 발전으로 인해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안락한 의자에 앉아 기술이 만든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힘들고 귀찮은 모든 일은 로봇이 처리하니,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 이외에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게임에 빠져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이 <월E> 속에 존재한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누워서 오로지 쾌락 중추를 자극하는 시스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써로게이트> 역시 ‘월E’와 비슷한 세계관을 나타내는 영화다. 인간을 대신하는 사이보그가 모든 일을 처리하고, 진짜 인간은 안락한 침대에 누워 뇌파로 사이보그를 조정만 한다. 사무직은 물론,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도 다칠 걱정 없이 마치 게임 속 캐릭터를 조작하듯 사이보그를 뇌파로 조정하고, 자신의 분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돈을 들여 능력치를 높이면 그만이다. 너무 황당한 상상이라고 넘겨버리기엔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이 심상치 않다.

당신의 삶은 안전합니까?
사이버 세계와 현실의 부조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잉태되어 왔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정보는 충분히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한 인간의 본성과 본질을 감추기가 매우 쉽다. 외모가 뛰어난 다른 여성의 사진 한 장만으로 순진한 남성들의 마음을 얻어 금전을 갈취한 사례가 심심치 않게 뉴스에 오르내린다. 스릴러 영화 속 사이코패스들이 가면을 쓴 채 사이버 세상을 활보해도 미래의 피해자들은 그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 

나는 아니라고, 그런 일은 아주 특이한 악인들의 소행일 뿐이라고 흘려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당신이 이용하는 트위터와 미니홈피, 블로그를 장식하고 있는 그 주옥같은 생각과 글이 모두 내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말이다. 자기 과시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누구나 때때로 거짓말쟁이가 되는 곳이 바로 인터넷이다. 영화 <접속>의 마지막 장면을 돌이켜보자. 영화가 아닌 현실이라면 PC 통신으로 만난 두 사람이 행복한 결말 대신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 상식이다. 인터넷 채팅과 만남에 대한 수많은 우스개들이 그에 관한 증명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진짜인가, 네트워크 시스템 속에 존재하는 디지털 숫자가 당신인가? 다행히 아직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나’를 신뢰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좀더 흐르면 상황은 충분히 역전 될 수 있다. 영화 <가타카> 속 사람들이 데이터화된 유전자 정보로 인간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영화 <코드 46>의 사회가 카드 한 장으로 개인의 모든 생활을 통제하듯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네트워크 시스템이 담긴 디지털 숫자가 현실 속에 존재하는 당신을 압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시대가 이미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 삶은 충분히 안전한지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