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게임 10년의 침묵, 3년의 성장, 그 이후
<아크메이지>는 해외에서 <Reincarnation>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게임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인기를 끄는 게임의 전형도 생겨났다. 하지만 게임은 어디까지나 재미를 추구하는 것. 게임 세계에는 항상 의외의 일들이 일어난다. 블록버스터급 대작 게임이라도 화려한 등장이 무색할 정도로 초라하게 사라지고 개발 단계에서는 이목을 끌지 못한 게임이 마치 갯벌에서 진주를 찾을 듯 인기 게임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하지만 웹을 기반에 둔 이른바 웹게임이 몇 년 전부터 인기를 얻더니 이제는 게임계의 중심이 된 것은 이런 의외성으로 보려 해도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웹 대중화 바람을 타고 일어난 것도 아니고 초고속 인터넷 대중화와 시기가 맞물리지도 않는다. 무려 10년 동안 자리잡지 못하고 주변 요소로 치부하던 웹 게임이 어느 날 갑자기 왜 다시 뜨기 시작했는지 이유를 살펴보고, 향후 웹게임이 갈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아크메이지, 그리고 긴 침묵의 시작
브라우저 게임(Browser Game)이라는 말도 더 잘 알려진 웹게임은 따로 설치하지 않고 웹브라우저에서 직접 게임 서버로 접속해 즐길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을 말한다. 웹게임의 시초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1980년대 또는 그 이전부터 있어온 텍스트 기반 게임이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환경을 만나면서 옮겨간 1990년대 초를 시작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보는 시각이 조금 다르다. 텍스트 기반 게임이 웹으로 옮겨간 것은 다를 바 없으나 웹 환경으로 넘어가기 전 있었던 <쥐라기 공원>이나 <단군의 땅> 같은 PC통신 기반 머드(MUD) 게임을 과도기적 단계로 거쳤기 때문이다. 당시 인터넷 환경은 웹이라는 개방 형태가 아니라 회원제도에 의한 제한 서비스를 행하는 PC통신이었기 때문이다. 웹 환경조차 PC통신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개방성을 띈 웹과 구분 짓는 게 보통이고 이 PC통신 환경에서 이루어진 게임이 머드 게임이어서 이를 웹게임과 동일시하는 것에는 지금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만 이 머드 게임을 웹게임의 원형으로 봐야 한다는 것에는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현행 웹게임의 전형을 갖춘 우리나라 최초 웹게임은 1997년 마리텔레콤에서 출시한 <아크메이지>다. <아크메이지>는 턴 방식을 이용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턴 방식에 시간 흐름을 접목해 독특한 게임 방식을 만들어냈다. 시간에 비례해 턴이 쌓이게끔 해 구태여 실시간 접속해있지 않아도 지난 시간에 비례해 쌓인 턴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게끔 만든 것. 당시 <아크메이지> 일반 서버는 대략 15분에 한 번씩 1턴에 해당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었고, 나중에 추가한 게임서버 가운데는 보다 빨리 게임을 진행하고자 하는 게이머들을 위해 약 5분 당 1턴의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기회가 쌓이게끔 조절한 것도 있었다.
<아크메이지>는 ‘아마겟돈’이라는 궁극의 마법을 써서 세상을 멸망시키고 명예의 전당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게 목적이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 특이한 점 하나는 일정 인원이 아마겟돈을 시전하는데 성공하면 서버가 국력에 상환 없이 24시간동안 무한 전쟁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상위 랭킹 10위 안에 드는 사람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고 게임이 초기화된다. 이로 인해 다른 게이머들은 누군가 아마겟돈을 시전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 누군가의 국가로 함께 쳐들어가 멸망시키는 방법으로 아마겟돈으로 세상이 멸망한 후 초기화되는 문제를 겪지 않게끔 상대를 견제했다. 만일 누군가 아마겟돈을 시전하는데 성공해 게임이 초기화되면 서버 내 게이머들 모두 다시 처음부터 경쟁해야 했다.
이런 초기화 시스템은 래더나 투기장처럼 일정 기간 운영하다가 초기화하는 ‘시즌제 시스템’과 비슷하다. 이것은 뒤늦게 시작한 게이머들이 일찌감치 시작한 게이머들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요소가 됐다. 하지만 이런 초기화가 반복해 일어나자 이미 잘 숙련된 게이머는 세력 확장을 성공시키고 아마겟돈을 시전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남기고자 길드를 조직하는 등 점차 집단화되었다. 무엇보다 평소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국가는 국력을 기준으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길드에 속하지 않거나 새로 시작한 게이머들에게 진입 장벽을 느끼게 하는 일이 갈수록 커지기도 했다.
<아크메이지>는 지금 웹게임과 비교해도 신선하고 독창적임을 느낄 정도로 잘 구현한 웹게임이었다. 하지만 이런 <아크메이지> 흥행 성공 후 우리나라의 웹게임은 오히려 명맥이 끊기며 긴 침묵 기간에 접어들고 말았다. 비디오게임 시장이 주류를 이루고 게임 인구가 어느 정도 있었던 해외의 사례를 들어보면 이런 게임 인프라가 초고속 인터넷을 빠르게 보급하는데 걸림돌이 된 반면 웹게임이 충분한 영역을 구축하면서 점진적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교육용PC 보급, PC방 산업 성장을 토대로 PC 보급률이 폭발적으로 오르고 컴퓨터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온라인 게임이 텍스트 기반에서 그래픽 위주로 빠르게 바뀌어갔다.
문제는 여기서 왔다. 환경이 급변하면서 별다른 그래픽 기술 없이 만들 수 있었던 웹게임이나 머드 게임은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하는 패키지 게임 등과 경쟁에서 뒤쳐져 갔고, 한때 웹브라우저를 부가 서비스쯤으로 여기던 PC통신도 주도권을 웹으로 넘기면서 머드 게임 자체가 갑자기 줄어들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게임 보급에 결정적 역할을 한 PC와 인터넷 보급이 웹게임에 있어선 독으로 작용한 것이다.
자투리 이야기 1
웹게임 소재 중 실제 역사나 고전이 많은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것이든 해외 발 게임이든 가릴 것 없이 웹게임을 살펴보면 고전 소설이나 실제 역사를 소재로 삼은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게임이 삼국지로, 한때 웹게임이라 하면 삼국지가 떠오를 정도에 이르렀고, 지금도 삼국지를 재해석한 게임이 심심찮게 시장에 나오거나 개발 중에 있고 인기를 끄는 등 중국 춘추전국시대, 세계 대전 같은 역사는 빼놓을 수 없는 게임 소재다. 우리나라에서 흥행하는 웹게임이 주로 특정 국가로부터 들어오다 보니 더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웹게임의 유별난 역사, 고전 사랑을 단순히 지엽적 이유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게임에 실제 역사나 널리 알려진 소설을 이용하는 까닭은 여럿 있다. 우선 게임을 만드는 입장에서 본다면 실제 역사나 고전 소설을 바탕에 깔면 게임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을 구상하는데 필요한 노력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환타지 소설의 교과서라 부르는 반지의 제왕을 보더라도 소설 속 세계관이 매우 치밀하고 상세한데, 이런 세계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구상해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치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이것은 곧 시간과 돈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이미 세계관이 짜여 있는 역사나 소설은 기성품 갖다 쓰듯 그대로 반영하면 되므로 세계관을 구상하는 노력과 비용을 상당 부분 덜어준다. 또 대상이 지금 트렌드에 맞는 소설이거나 기존 게임, 애니메이션 등 저작권 문제를 품고 있는 것이라면 원작자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고, 이를 게임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협화음 등이 복병이 될 수도 있지만 이것이 처음부터 없는 실제 역사나 이미 저작권이 사라진 고전이라면 추가 비용 발생 요소나 위험 요소가 없어 좋다.
게이머 입장에서 실제 역사나 널리 알려진 고전 소설은 이미 친숙한 소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게임 속으로 쉽게 빠져들 수 있다. 게임은 어디까지나 가상 세계에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가급적 소재와 개연성을 갖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쉽게 녹아들 수 있는 것. 즉 게임의 소재가 널리 알려진 것일수록 유리하다. 따라서 역사나 고전을 소재로 삼았을 때 게이머는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나 고전 소설 주인공으로 흐름에 동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곤 한다. 따로 설치하는 과정 없이 즐기는 웹게임에다 소재마저 친숙하다면 게임에 접근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10년에 걸친 오해와 수난
2000년대 들어서면서 초반부터 벤처 열풍을 업고 등장한 한게임, 넷마블 등 게임 포털 사이트들이 당시 게임 트렌드를 주도하면서 웹게임이라는 표현이 널리 알려졌다. 2001년을 전후해 나타난 게임 포털 사이트들은 이른바 ‘고포류 게임’이라 부르는 고스톱, 포커, 맞고 등 사행성 게임이나 바둑, 당구, 테트리스 등 고전 아케이드 게임 등을 웹에서 즐기게끔 서비스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등장한 웹게임이라는 건 기존 흥행작인 <리니지> 등 MMORPG나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과 구분해 상대적으로 가벼이 할 수 있는 게임 포털 사이트 서비스 게임을 일컫는 표현이 되었다.
하지만 게임 포털 사이트에서 서비스하는 고전 보드 게임이나 아케이드 게임들은 대부분 따로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설치해야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다. 따라서 웹브라우저 상에서 즐기는 게임인 건 같지만 ‘따로 프로그램을 설치할 필요 없이’ 즐기는 게임이 아닌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반드시 설치해야만 하는 게임들을 가리켜 웹게임이라고 부른 것은 게임 용어를 잘못 쓴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다. 시간이 오래 흐른 뒤 우리나라 게임 시장에 다시 웹게임이 등장했을 때 이미 웹게임이라는 용어가 엉뚱하게 혼용되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도 빈번했으며, 이들 게임 포털 사이트에서 서비스하는 클라이언트 게임을 ‘웹보드 게임’이라고 고쳐 부르는 지금 상황에도 여전히 이를 웹게임이라 부르는 경우가 남아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북미와 유럽은 1990년대 초반을 넘어서며 웹게임이 점차 활성화되어 다양한 장르의 웹게임을 서비스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가운데는 게임성을 인정받아 전 세계적으로 많게는 수천만 명에 달하는 누적 회원을 가진 게임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2002년경부터 서비스한 게임포지의 <오게임(O-Game)>, 독일 이노게임즈의 <부족전쟁(Tribal Wars)>이다. 이런 글로벌 히트작들은 국내 게이머들에게도 알음알음 알려져 언어 장벽을 뚫고 수만 명에 달하는 게이머들이 즐기기에 이르렀고, 게임사는 한글 페이지를 만드는 방법 등으로 결제나 회원가입을 돕는가 하면 한국 서버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국내 서비스를 시행했다.
하지만 이런 웹게임이 국내 게이머들을 위해 서비스하게 되면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이들 게임이 웹브라우저 상에서 이루어지다보니 국내 서비스를 하긴 해도 외국에 서버를 둔 외국 회사가 국내 정식 지사 등을 갖추지 않은 것이어서 게임 내에서 생기는 분쟁이나 민원을 대응하는 것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런 게임들이 정식 국내 서비스가 아니다보니 게임위의 심의를 받지 않은 채 서비스하는 것이었고, 국내 서비스를 통해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 세무적 문제도 이행하고 있지 않았다. 심의 절차를 밟지 않은 게임물을 유통하거나 국내 발생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명백한 불법이다.
2005년 말부터 등장한 각종 사행성 게임들은 사회 전반에 걸쳐 게임에 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바카라, 포커, 슬롯머신 등 카지노를 그대로 재현한 사행성 게임들이 외국에 서버를 두고 웹게임 형태로 서비스하다가 어느 정도 게이머가 모여들고 수익을 쌓으면 서비스를 중단하고 도주하는 식으로 피해를 입히는 일도 생겨났다. 사행성 게임이 갖는 문제로 인해 법규를 따르지 않고 유통되는 게임이 늘어나는 것을 사람들이 큰 문제로 인식하고, 게임위는 미심의 게임에 대해 단속하기 시작했으나 이는 범법 행위나 사행성과 무관한 웹게임들마저 ‘불법 게임’으로 매도하는 결과를 낳았다. 게임위는 단속 의지를 강하게 밝혔지만 규정과 제도가 미비해 실제로는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다. 단속을 하더라도 부족한 공적 역량과 낡은 제도로 인해 반드시 규제해야 할 불법 도박 사이트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고 여전히 피해를 주면서 버젓이 영업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근절해야 하는 사행성 게임은 단속하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국내 법규 안으로 충분히 끌어들일 수 있었던 웹게임이 희생양이 되버렸다. 그 결과 수많은 웹게임이 외국 게임사와 게임위의 안일한 대처 속에 ‘불법 게임’으로 낙인찍히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한때 고스톱과 같은 클라이언트 방식 웹보드 게임을 가리켜 웹게임이라 부르기도 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오게임>은 글로벌 웹게임에 맞는 규모로 인기를 끌었다.
카지노를 그대로 재현한 사행성 게임들은 웹게임의 인식마저 나쁘게 만들었다.
자투리 이야기 2
웹게임, 어떻게 다시 인기를 얻었을까?
웹게임은 지금에 비해 매우 열악했던 당시 인터넷 환경과 PC 성능을 감안한 방식이었다. 지금처럼 실사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한 3D 그래픽으로 화려함을 뽐내고, 거대한 스케일을 화면에 담아내는 게임 분야에서 웹게임이 다시 인기를 끄는 것은 게임 트렌드에 역행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매우 빠르게 초고속 통신망을 구축한 우리나라에서 웹게임이 자취를 감춘 것도 빠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시각을 자극하는 효과가 월등한 클라이언트 게임이 단시간 내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웹게임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드는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이렇다. 첫째, 게임의 몰입도, 흥미를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는 것. 게임이 가상 현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사실적이면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오겠지만, 사실적인 게임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고 게임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사실적인 게임이라도 사람마다 좋아하는 부류가 다르고, 사실적인 게임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있다.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 중 매우 간단히 만든 플래시 게임이라도 중독성이 강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는 경우가 제법 있음은 이처럼 사람마다 기호가 다양함을 말해준다.
둘째, 바로 바로 정밀하게 조작해야 하고 깊이 몰입해야 하는 요즘 게임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떠오른 게 웹게임이라는 것이다. 현란한 그래픽을 집중해 쳐다보며 정밀하게 조작하는 요즘 게임들은 게임마다 피로도 시스템 등으로 게임에 몰입하는 시간을 줄인다 해도 피로감을 느끼기 쉽다. 이런 피로가 쌓이면 게임을 계속 하고자 하는 마음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때 가볍게 즐기는 캐주얼 게임이 MMORPG나 RTS 게임 등 대작 게임보다 인기를 끈 까닭도 이와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지금은 캐주얼 게임도 스케일이 커지면서 기존 대작 게임 못지 않은 몰입도를 요구하다보니 가벼이 즐길 수 있는 웹게임이 대안으로 떠오른 건 당연하다.
10년 만에 꽃 피우다
앞서 밝힌 것처럼 웹게임은 제도 미비, 공공기관의 몰이해, 서비스사의 규정 미준수 등 악재가 겹치며 ‘불법 게임’이 되 버렸다. 하지만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도 마니아를 중심으로 이용자 층이 조금씩 늘어 2008년부터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8년 당시 유럽에서만 5000만 누적 회원을 확보하고 있던 <오게임> 등 웹게임을 서비스하는 게임포지사의 미국 CEO가 국내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나타내면서 웹게임분야가 다시 알려지고 대중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교착 상태에 빠져있었던 당시 게임 시장은 이를 타파할 방법으로 웹게임에 관심을 두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중국 웹게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더파이브인터렉티브의 <칠용전설>이다. 2008년 9월부터 공개 테스트하기 시작한 <칠용전설>은 불과 석 달만에 동시 접속자 1만 5000명을 돌파하고 월매출 수 억 대를 달성하는 등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화려한 대작 게임들이 흥행에 참패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겉보기 초라한 웹게임이 이례적으로 성공을 거두자 업계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칠용전설>의 뒤를 이어 <카오스로드>와 같은 전략 요소를 갖춘 웹게임이 우리 시장에 차례로 들어왔다. 이미 기반을 갖춘 <칠용전설은> 그간 성적을 바탕으로 넷마블을 비롯한 게임 포털 사이트에서 채널링 서비스를 실시, 게이머 간 접점을 더 많이 확보하며 기존 게임 포털 사이트들이 웹게임 시장에 진입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기도 했다. 웹게임 소재도 다양해져 부동산 투자를 다루는 <바이시티> 같은 게임이 등장했고, 그라비티는 라그나로크 브랜드를 활용한 IP 사업의 일환으로 <라그나로크 온라인>을 웹게임으로 개발할 것임을 밝히는 등 웹게임 시장에 기존 클라이언트 게임사나 게임 포털 사이트가 참여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움직임도 빨라졌다. 미국 애니메이션 채널 카툰네트워크와 한국 그리곤엔터테인먼트가 합작해 만든 <퓨전폴>은 북미에서만 가입자 수 4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북미 지역에서 먼저 인기를 얻고 국내로 들어오기도 했고, <로드워> 같은 국산 웹게임도 클라이언트 게임처럼 해외로 진출하기도 했다.
2009년 4월 구글이 웹브라우저에서 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O3D 툴을 내놓았다. 이어서 웹브라우저에서 더 나은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차례로 나왔다. 이렇다보니 클라이언트 게임이나 콘솔 게임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3D 게임을 웹게임 형태로 즐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웹게임의 가능성은 한층 높이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한편 해외에 서버를 두면서 심의 없이 국내 서비스하던 웹게임들은 게임위가 단속을 강화하면서 국내 서비스 종료와 정식 서비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한때 비공식 집계로 동시 접속자가 최대 10만 명에 달했다는 소문이 돌만큼 크게 인기 끌었던 <부족전쟁>은 게임위의 심사를 피해 계속 서버를 이전하면서 서비스해왔으나 게이머들의 불편이 가중되면서 경향플러스와 퍼블리싱 계약해 2009년 5월부터 정식으로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반면 비슷한 길을 걸었던 <오게임>은 게임위의 단속에 차단이 빈번해진데다 국내 운영진의 무성의한 조치 등으로 인해 이용자 수가 줄어 2009년 11월 결국 국내 서비스를 종료했다. <오게임>은 현재 북미나 유럽 등 웹페이지로 접속해야만 즐길 수 있다.
웹게임 열풍을 불러 온 <칠용전설>은 웹게임 중 최초로 국내에 속편까지 내놨다.
웹게임화 프로젝트를 발표한 <라그나로크 온라인>.
게임위가 단속을 강화한 후 <부족전쟁>은 국내에 정식 계약을 통해 서비스한다.
빠른 성장 속 과열 경쟁 조짐
이처럼 웹게임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부족전쟁>이나 <칠용전설>과 같은 히트작이 나오자 국내 게임 개발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웹게임을 다루기 시작했다. 2009년 7월 중국에서 열린 ‘차이나조이’에서 이루어진 수출입 상담에서 한국 출시 의지를 보인 웹게임은 약 30가지 정도였다. 이들은 대부분 중국과 대만 등에서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과도 수입 상담을 통해 약 10여 가지 정도를 들어왔다.
당시 넥슨은 <열혈삼국>을, 엔씨소프트는 <무림제국>과 <배틀히어로>를 서비스했다. CJ인터넷은 <칠용전설>이나 <로드카오스> 등 기존 흥행 웹게임을 채널링 서비스하는 한편, 웹게임 수입도 추진했다. 엠게임도 빅포인트와 손잡고 <다크오빗>, <씨파이터> 등 웹게임을 서비스하기로 결정하는 등 대규모 게임 포털 사이트를 거느린 대형 게임사들이 앞장서서 웹게임 수입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액토즈소프트는 <종횡천하>를 수입해 서비스하기 시작했고 <칠용전설>로 성공을 거둔 더파이브인터렉티브도 여러 웹게임을 계속 수입, 서비스해 영역을 넓혀나갔다. 이런 과정에서 게임사끼리 협력 관계를 맺거나 M&A를 이루기도 했는데, 위메이드는 삼성전자와 손잡고 삼성 스마트폰과 PC용 웹게임을 서비스하게 되었으며 웹게임, 고전 게임 전문 포털인 게임엔젤의 휴먼웍스는 넥슨 자회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단기간의 급속 성장은 업체들 간 경쟁을 심화시켜 과열 경쟁을 낳는다. 웹게임 업계도 다르지 않았다. 당장 시장에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선 해외로부터 수입 위주다 보니 이들 대부분 삼국지 등 잘 알려진 소재를 이용한 것이어서 차별화를 꽤하지 못했다. <베르카닉스>와 같은 국산 웹게임도 있었지만 2009년 당시 30여 종 나오거나 예정했던 해외 발 웹게임에 비해 국산 웹게임은 훨씬 적은 5개에 불과했다. 이를 인지한 게임 업계는 막 활발해지기 시작한 웹게임 시장의 주도권을 해외로 빼앗기는 게 아니냐 우려하면서도 웹게임을 간과해 이 지경에 이른 것을 자성하는 분위기가 일기도 했다.
국내 유통 웹게임이 갑자기 늘어나다 보니 게임 수입가가 오르며 저비용 고효율 콘텐츠라는 웹게임 장점을 무색케 된 것도 문제였다. 당시 언론 보도나 관계자들의 언급을 보면 웹게임이 인기를 못 얻던 때는 따로 계약금 없이 수익 분배 조건만 잘 제시하면 쉽게 들여올 수 있었던 웹게임들이 2009년 이후로 제작사 입맛에 맞추기 위해 계약금을 많이 주거나 수익 분배 조건을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대형 게임사들이 웹게임에 손을 댄 것도 문제의 원인 중 하나다. 물론 대형 게임사라고 해서 웹게임 시장에 진출해선 안될 게 없지만 계약 과정에서 들여올 가치가 보이는 게임을 입도선매하는 일부 게임사의 태도가 도마에 올랐고 웹게임 시장의 과당 경쟁을 야기하는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미 기존 시장에서 충분히 높은 수익을 얻고 있는 대형 게임업체들이 기존 클라이언트 게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거나 유통하는 게 아니라 초기 시장으로 진입하기 쉬워 중소 게임사들이 활로를 찾을 수 있는 영역으로 알려진 웹게임 시장까지 손대는 모습은 대형 게임사들이 모든 영역을 독식하려는 모습으로 비춰져 도의적 책임 논란마저 불러일으켰다.
중국 웹게임 대신 독일 웹게임을 주로 선택한 엠게임, 사진은 <다크오빗>이다.
<종횡천하>와 같은 삼국지 게임도 계속 들어왔다.
<베르카닉스> 프로젝트는 웹게임 병행 프로젝트로 관심을 모았지만 결국 좌초됐다.
계속되는 성장 속 혼돈
웹게임은 2010년으로 오면서 더욱 뜨거워졌다. 2009년 앞다퉈 계약을 맺은 게임 중 그 해 서비스 시작한 게임은 불과 10여 종, 나머지는 모두 2010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황에 맞춰 웹게임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몇몇 움직임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먼저 웹게임 포털, 웹게임 전용 브라우저와 같은 웹게임 특화 서비스가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웹게임 포털을 확보한 업체가 <칠용전설>의 더파이브인터렉티브 정도에 불과했지만, 2010년 이후에는 <삼국지W> 등 웹게임을 서비스하던 동양온라인이 웹게임 포털 ‘게임하마’를 오픈하며 경쟁하기 시작했다. <바이시티>, <웹야구매니저> 등 라인업을 갖춘 블라스트도 게임 포털 ‘테드게임’을 오픈했고, 2011년으로 넘어와서는 브라우저 게임스라는 웹게임 포털이 생기는 등 웹게임만 갖고 이루거나 웹게임이 주축인 게임 커뮤니티가 계속 늘고 있다.
대형 게임사들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CJ인터넷은 게임 퍼블리싱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앞장서겠다는 각오로 내건 신사업 ‘마블루션’ 설명회에서 웹게인 전용 브라우저인 ‘마블 박스’를 공개하고 게임 통합 애플리케이션을 공개할 계획을 밝히는 등 자사 패러다임 변혁 수단으로 웹게임을 채택했다. 엔씨소프트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에서 웹브라우저를 쓸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웹게임 서비스 시기부터 휴대기기에 특화시킨 연동 환경을 내놨다. 엠게임은 웹게임 전용 채널을 게임 포털 내에 따로 구성해 웹게임을 주력으로 삼았다.
<라그나로크 온라인>을 웹게임으로 만든다는 계획이 나오면서 기존 게임을 웹게임으로 만드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전략웹>이나 <마이트 앤 매직 히어로즈 킹덤즈>처럼 유명 전략 게임의 IP를 활용한 웹게임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고, 조이맥스의 <실크로드 온라인>과 엠게임의 <열혈강호 온라인>은 각각 <실크로드W>와 <열혈강호W>라는 웹게임으로 재탄생 작업이 한창이다. 엔씨소프트는 일본에서 <리니지 가이덴(Lineage Gaiden)>이라는 이름으로 <리니지>를 모태로 한 웹게임을 내놨다. <리니지 가이덴>은 웹게임 진행 수준에 따라 역시 일본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리니지> 시리즈에도 특전을 주는 방식을 도입해 웹게임 흥행과 기존 게임 관심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시도했다.
삼국지 게임이 주류를 이뤘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인기 웹툰 작가 이말년 화백의 만화로 주목받은 <파머라마>는 농장 경영 웹게임이었고 <카나안 온라인>과 같은 MMORPG 형식 웹게임도 점차 늘기 시작했다. <프로야구 매니저> 같은 매니지먼트 게임이 성공을 거두자 위메이드의 <판타지 풋볼 매니저>나 블라스트의 <웹야구매니저>, NHN의 <야구 9단> 등 매니지먼트 게임이 여럿 등장하기도 했다. 전략 게임 배경도 다양해져 <로마전쟁> <웹 2차대전>처럼 중국 역사, 삼국지를 벗어난 전략 게임이 나오기도 했고 <위대한 항로> <소드걸스> 같이 항해나 TCG 등 고정 매니아가 있는 소재를 채택한 웹게임도 나왔다.
한편 경쟁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웹게임 시장은 게이머들을 다른 웹게임에 뺏기지 않으려 높은 몰입도를 강요하는가 하면 게이머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유료 아이템 의존도를 높이는 업데이트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일부 웹게임은 ‘웹게임을 가벼이 즐기려고 했더니 클라이언트 게임보다 더 독하다’는 원성을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우리나라에 앞다퉈 들어온 중국산 웹게임들은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으로부터 시작된 부분 유료화 아이템 설계 노하우를 많이 이어받았고, 한국으로 서비스하면서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한 구조로 개편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일부 웹게임은 심지어 유료 아이템을 구입하지 않고선 게임을 정상 진행할 수 없을 만큼 유료 아이템 의존도가 높은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논란 속에서 심지어 등급까지 재분류당한 웹게임도 있었다. <웹삼국지:병림성하>와 <강산 온라인>은 유료로 사야 하는 화폐로만 경매장을 쓸 수 있는 등 문제를 지적 받아 당초 허가받은 ‘12세 이상 이용 가’ 등급에서 ‘청소년 이용 불가’ 등급으로 상향 조정됐다. ‘15세 이상 이용 가’ 등급을 받은 <열혈삼국>도 보물상자 시스템을 비롯해 게임 내에서 유료 화폐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부분을 문제로 지적 받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자신이 접속해 있지 않아도 자신의 국가에 다른 국가가 침략해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실시간 전쟁 웹게임들은 게이머들에게 접속 시간을 늘리게끔 강요해 게임에서 오는 피로를 클라이언트 게임 못지 않게 높이기도 했다.
<실크로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웹게임 프로젝트 <실크로드W>.
<레이싱 매니저> 등 라인업을 갖춘 웹게임 포털 사이트 ‘게임하마’.
TCG를 웹게임화한 <소드걸스>는 미소녀 일러스트로 주목받았다.
자투리 이야기 3
자신이 허가한 웹게임을 비난한 L교수의 진짜 속사정
2010년 7월. 모 대학교에 재직중인 L교수가 웹게임 <열혈삼국>을 비난하는 글을 한 매체에 실었다. ‘돈 뺏고 사람 털자, 中 게임 한국서 2위’라는 제목의 이 기고문에서 그는 <열혈삼국> 시스템 중 하나인 ‘명장’이라는 서브 캐릭터를 전쟁으로 강탈해 팔 수 있는 것에 문제가 많다며 게임 내 전쟁 관련 커뮤니티의 움직임을 ‘정신착란’과 ‘살인청부’등 극언을 섞어 비유했다. 더불어 게임 등급 심의를 사후심의 중심으로 개편하고, 게임 수입사는 청소년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L교수는 이에 그치지 않고 글이 나간 며칠 뒤 또 다른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해당 게임을 다시 비난하며 명장 시스템에 대한 민원을 국민신문고에 제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L교수의 행위에 <열혈삼국>을 즐기던 게이머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L교수 자신이 <열혈삼국>을 즐기는 게이머였는데 게임 내 최고 연맹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패한 후 게임을 악의적으로 비난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얼마 안 가 내막이 드러났다. L교수가 강탈당한 ‘명장’은 게임 속에서 정당하게 얻은 게 아니라 자신이 전쟁을 선포한 연맹으로부터 약 30만원에 달하는 현금 거래를 통해 획득한 것으로 밝혀졌다. 게임 내 전쟁 관련 커뮤니티의 움직임을 악의적으로 비유한 것도 게임에서 자신과 자신의 지인이 속한 연맹이 상대 연맹과 벌인 전쟁에서 패하고 ‘명장’을 강탈당한 것 때문에 앙심을 품은 것으로 드러났다. 즉 L교수는 전쟁을 선포한 적 연맹의 구성원과 ‘명장’을 현금 거래한 것. 더 어이없는 건 <열혈삼국>이 국내 서비스를 위해 게임물 심의를 받을 때 L교수가 게임위 심의위원이었고 이 게임에 앞장서서 지인들을 끌어들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명장’을 강탈하는 <열혈삼국>의 게임 시스템이 정상이라 해도 전쟁에 패한 게이머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분명하다. 이를 지적하고 정신적 피해의 위험성과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게임 내에서 일어난 분쟁은 원칙적으로 그 속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불문율임에도 L교수는 자신이 심의에 참여한 게임에서 현금 거래라는 약관 위반까지 해가며 게임 내에서 ‘지존’이 되고자 욕심을 부렸고, 그게 이뤄지지 않자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개인 문제를 사회 문제로 확대시켜 왜곡한 것이다.
전반적 부진 속 엇갈린 희비
이처럼 웹게임 시장이 과열되면서 비슷한 웹게임들이 넘쳐나자 새로운 웹게임을 기존 웹게임과 차별해 받아들이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것은 새로운 웹게임이 기존 웹게임을 대체할만한 흥행을 일으키는 정도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새로 등장한 웹게임에서 기존 웹게임과 차별화 할만한 요소를 찾을 수 없기 일쑤였기 때문에 <부족전쟁>. <칠용전설>과 같은 일부 히트 게임을 제외한 대부분 웹게임은 1∼2개월 정도만 흥행하다가 관심 밖으로 급격히 멀어져버리는 일이 빈번했다. 마치 ‘포스트 리니지’를 노렸던 MMORPG가 대부분 좌초되고, ‘타도 서든어택’을 내건 FPS 게임들이 대거 몰락한 과거 사례들과 판에 박은 듯 똑같은 일이 웹게임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웹게임이 그 전철을 밟는 건 아니다. <칠용전설>은 속편 <칠용전설 2>까지 들어와 계속 흥행하고 있고 쿤룬코리아가 서비스하는 <강호>는 신흥 웹게임의 새로운 성공사례로 꼽힌다.
이런 사례를 답습하는 이유는 저자본으로 어렵지 않게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웹게임을 새로 서비스한다 해도 많은 비용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 대비 수익을 거두기 쉽다. 따라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해도 소소한 수익으로 꾸준히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특징은 기존 게임과 차별화를 추구하는 대신 안정적으로 가려는 경향을 갖기 일쑤여서 기존 흥행작의 아성을 쉽게 넘어서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웹게임 시장의 양적 성장과 맞물려 나타나는 실패 사례도 나타났다. <웹야구매니저>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올해 초 서비스를 종료했고 같은 회사에서 운영하던 웹게임 포털 ‘테드게임’은 지난 9월 사이트를 폐쇄했다. 3D SF MMORPG와 웹게임으로 동시 개발하던 <베르카닉스> 프로젝트는 회사 내부 사정으로 인해 지난 6월 갑자기 개발을 중단했다. 지난 9월에는 게임하마의 <웹전략:봉신연의>가 중국 개발사의 지원 미비 등 사유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실패 사례는 대형 게임사라고 피해가지 않았다. NHN의 <야구 9단>은 독점적 지위를 구축하고 있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등에 업고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특정 SNS 이용자 수를 무리하게 늘리려는 일부 게임 시스템이 시작부터 게이머들의 진입을 방해했고, 수많은 사람을 유입시켜 게이머 수를 늘릴 거라 기대한 포털 사이트 환경은 한 사람이 여러 ID를 가질 수 있는 포털 사이트 특성을 악용함으로써 어뷰징이 만연하는 상황을 낳았다. 게다가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후 업데이트 방향이 더욱더 진입 장벽을 높이고, 무리하게 유료 아이템을 쓰게끔하는 방향으로 흘러감에 따라 게이머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한편 중국 내수 시장을 뛰어넘어 다른 나라로 진출하고자 하는 중국 게임사들이 우리나라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웹게임을 적극 활용하는 일도 늘고 있다. 소셜 게임과 웹게임을 주축 라인업으로 갖고 있는 중국의 쿤룬은 한국 현지 법인인 쿤룬코리아를 설립하고 웹게임 <K3온라인>과 <강호>를 통해 우리나라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 중 <강호>는 올해 들어 최대 동시 접속자 2만 명을 기록하며 웹게임의 새로운 성공 사례로 떠올랐다. 전 세계 누적 회원 1억 명을 보유하고 있는 <K3온라인>은 공개 서비스를 시작한 후 3개원만에 국내 회원 수 30만 명을 넘어서는 등 인기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야구 9단>은 좋은 환경이 게임 흥행과 반드시 연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강호>의 성공은 중국 게임사의 대한민국 침공이라고까지 여겨지고 있다.
한국 웹게임 시장의 미래는?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웹게임으로 최근 3년 간 일어난 일들은 그 전 10년이라는 침묵이 무색할 정도로 많다. 짧은 시간동안 양적으로 빠르게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형 게임사는 물론 크고 작은 게임사들 역시 웹게임 한 종류씩은 기본적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웹게임 전용 게임 포털에 맞서는 일부 대형 게임 포털은 아예 웹게임 페이지만 따로 만들어 웹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를 끌어 모으기도 한다. 새로 게임 시장에 뛰어들려는 회사들도 웹게임 하나쯤 라인업에 넣는 것이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하지만 웹게임이 앞으로도 지금같이 성장하고 우리나라 게임 시장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지속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낙관적인 시선을 짚어보자면 이미 유행한 클라이언트 방식 게임에서 피로를 느끼는 게이머들을 잡기에 웹게임이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귀찮은 게임 설치 시간을 줄여주고 다른 게임을 즐기고 있더라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웹게임 특성이 게이머들에게 긍적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태블릿PC,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그 수단이 널리 보급된 것도 웹게임 발전 가능성을 밝게 보는 이유 중 하나다. 기존 클라이언트 게임은 새로운 인터넷 기기에 대응하기 어렵지만 웹게임은 태블릿PC나 스마트폰에서 쓰는 웹브라우저와 호환성만 확보하면 어렵지 않게 게임을 즐길 수 있으므로 PC의 틀을 벗어날 수 있다. 소셜 네트워크가 커뮤니티의 결속을 다지는 수단으로 웹게임을 서비스에 편입시켜 소셜 게임 환경을 만드는 행위도 웹게임 성장을 가속시키고 있다. 실제로 1억 5천만 명 이상 웹게임 이용자가 있는 중국에서도 80% 이상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기본 웹게임을 즐기고 있다.
클라이언트 게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웹게임 시장 규모가 나날이 성장하는 것도 전망을 밝게 해준다. 중국은 이미 웹게임 시장 규모가 올해 1분기에만 15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런 추세로 간다면 2년 뒤 1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내수 시장이 어느 정도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중국에서 웹게임이 게임포털로 편입되며 기존 인기 클라이언트 게임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전체 게임 시장 규모를 늘리고 있는 현상은 이미 과포화 상태인 국내 게임 시장에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다수 웹게임이 해외에서 들여온 것이라는 문제가 비관적인 전망의 근거다. 웹게임 시장이 양적으로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흥행하는 게임이 대부분 중국 등 해외로부터 들여온 것들이고 후발 주자일 수밖에 없는데다가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는 토종 웹게임은 자생력이 미약한 실정이다. 이렇다보니 게임계에서는 웹게임이 성장하더라도 우리나라 게임 시장에 이익을 가져오는 건 분명 한계가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웹게임 시장이 외산 게임 위주로 굳어지면 토종 웹게임은 후발 주자에 머무는 것도 모자라 아예 해외 게임에 종속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웹게임의 근본 한계도 비관적인 이유 중 하나다. 게임에서의 재미가 그래픽, 동영상 등 화려한 볼거리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나, 웹게임 기술이 발전해 3D 그래픽 등을 수월하게 표현한다 하더라도 클라이언트 방식 PC 온라인 게임이나 콘솔 게임의 효과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PC나 콘솔 게임으로 나오는 현실감 넘치는 블록버스터 게임들이 피로를 가중시켜 게이머로 하여금 웹게임을 선호하게 한다 해도 웹게임을 주로 즐기는 게임으로 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에 시장 성장 규모에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과열된 경쟁으로 인해 몇몇 웹게임은 규모와 시스템이 너무 대형화되기도 했다. 이런 경우는 클라이언트 방식 온라인 게임처럼 게이머에게 실시간 조작을 강요해 피로를 증가시키는 등 웹게임 고유 장점조차 갖지 못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웹게임’이 통념적 의미를 벗어나 단지 ‘웹으로 하는 게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임 규제가 웹게임 성장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부족전쟁>,<오게임>에서 봤듯 게임위가 갖고 있는 제도는 처음부터 웹게임이라는 신흥 트렌드와 포맷을 따르지 못하고 있었다. 꽤 오랜 기간동안 심의료를 올리고 까다로운 규제를 강요함은 물론 개인이 공개한 게임마저 심의 받지 않으면 제재하겠다는 식의 태도로 일관해 우리나라의 소규모 웹게임 시장이 활성화될 여지마저 꺾어버리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오픈마켓 자율 심의 조항이 생겼지만 아직 그 효력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또 사후심의로 전환하고 민간에 권한을 이양한다고 해도 제도가 과연 언제 개선될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셧다운제 같은 위헌 조치를 관철시켜가며 게임을 왜곡해 바라보는 여성가족부와 그릇된 근거로 그에 동조하는 일부 시민단체의 행위가 게임 발전에 치명적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은 웹게임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웹게임과 결합해 이른바 ‘소셜 게임’ 환경을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에 서비스하고 있는 웹게임들은 대다수가 외국 게임이다. 사진은 <열혈삼국>.
마치며
웹게임의 미래를 점치는 의견은 엇갈리지만, 웹게임이 분명 게임계의 ‘가능성’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몇 년 새 웹게임은 게임을 서비스하고자 하는 사업자와 개발자에게 가장 쉬운 가능성이 되었다.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의 개발자와 몇 십 억에서 몇 백 억까지 자금을 투입해야 만들어 내놓을 수 있는 클라이언트 게임과 달리 웹게임은 10명이 채 되지 않는 개발자와 몇 억 수준의 개발비로도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좀 더 다양한 아이디어가 신속히 게임화될 수 있고 시장성이나 사업성을 타진하기도 쉽다.
모든 문화 콘텐츠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웹게임의 미래를 밝게 하는 가장 원론적이고 분명한 해법은 ‘양질의 게임’이다. 웹게임에 대해 여러 가지를 조사하는 동안 게임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열이면 열 웹게임에 대해 ‘기획’을 강조했다. 화려한 볼거리로 승부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게임에 차별성을 두는 법은 오로지 게임 기획력이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그 말에 공감한다. 점차 대형화하고 새로운 볼거리를 추구하는 게임들의 홍수 속에서 게임의 재미가 볼거리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쉴 새 없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움직이지 않아도 재미있는 게임이 있다는 것을 웹게임이 앞으로 보여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