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아이스크림보다 공포 게임”
2013-06-10 PC사랑
'사일런트 힐’의 첫 스토리는 주인공이 미지의 힘으로 현재와 다른 세계 ‘사일런트 힐’에 들어가게 되고, 그 힘을 이용하려는 이단 종교집단의 음모를 파헤쳐 나가는 이야기이다. 현재까지 정식 넘버링 타이틀로 4편, 스핀오프 시리즈로 최신작 ‘다운포어’까지 총 8편이 출시됐다. ‘사일런트 힐’의 팬들은 제작사의 마찰 때문에 3편 이후의 작품들을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아직까지 호러 게임의 대명사로 악명에 가까운 명성을 떨치고 있다.
게임을 상징하는 것은 짙은 안개. 시작할 때부터 엔딩을 보기전까지 시종일관 자욱한 안개가 화면에 가득하다. 협소한 시야를 밝혀주는 것은 작은 손전등과 라디오 뿐이다. 어두컴컴한 건물에 들어가다가 라디오에서 잡음이 들리기 시작하면 주변에 뭔가가 있다는 신호다. 뭔가가 가까워질수록 라디오의 잡음은 심장 소리와 함께 점점 커지고, 마침내 등장하는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형상의 괴물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괴물을 제압해도 라디오의 잡음은 희미하게 이어지고, 괴물의 머리를 발로 밟아 완전히 숨을 끊고 나서야 조용해진다. 게임이 진행되며 주인공이 얻을 수 있는 무기가 다양해지긴 하지만, 현실적이게도 무기의 내구도는 약한 편이어서 끊임없이 사용할 수는 없다. 주인공은 협소한 시야, 제한적인 무기, 여기에 무엇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공포와 싸워야 한다.
인간의 가장 정직한 감성은 두려움?
사람이 느끼는 오만 감정들 중에선 솔직한 감정이 있다. ‘무섭다’는 감정은 조절의 범위를 벗어나는,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감정이다. 공포영화 잘 본다고 공언했다가 <셔터>나 <실크>를 보며 질렀던 비명 한 번으로 체면 다 구긴 경험을 돌이켜보면, 두려운 감정은 오히려 솔직하다. 여름에 공포영화가 잘 팔리고 득세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공포’라는 스트레스를 주며 얻게 되는 학대적인 쾌감(Abusing Pleasure) 때문이다.
사람이 느끼는 오만 감정들 중에선 솔직한 감정이 있다. ‘무섭다’는 감정은 조절의 범위를 벗어나는,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감정이다. 공포영화 잘 본다고 공언했다가 <셔터>나 <실크>를 보며 질렀던 비명 한 번으로 체면 다 구긴 경험을 돌이켜보면, 두려운 감정은 오히려 솔직하다. 여름에 공포영화가 잘 팔리고 득세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공포’라는 스트레스를 주며 얻게 되는 학대적인 쾌감(Abusing Pleasure) 때문이다.
호러 소설 <어느날 갑자기>의 작가 유일한 씨는 책에서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고 했다. 우리가 심령사진이나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도 그들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공략집을 정독하고 뭐가 튀어나올지 알고 있으면서도 눈을 감고 컨트롤러를 놓고 싶게 만드는 정통 호러 어드벤처 게임을 소개한다. 호러 게임이라고 하면 플래시 게임부터 퍼즐까지 다양한 장르에 포진돼 있지만, 더위를 날려버리기에는 역시 어드벤처가 최고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정말로 밤에 불을 꺼놓고 혼자 플레이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도 나름의 피서(避暑) 방법이긴 하지만, ‘진짜’ 무섭다.
괴물을 이정도 거리에서 마주쳤다면, 이미 끝난 목숨이다.
▶게임 속의 간호사는 우리가 알던 친절한 백의의 천사가 아니다. 협소한 시야 바깥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숨거나, 도망치거나, 그냥 잡히거나
암네시아 : 더 다크 디센트
장르 : 어드벤처
플랫폼 : PC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암네시아’의 키워드는 ‘무력감’이다. 주인공 대니얼은 알렉산더를 따라 죄 없는 사람들을 고문한다.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망각의 꽃 암네시아를 먹게 된다. 정신을 잃은 주인공은 성 안에서 깨어나고, 자신의 기억 속에는 ‘한남자를 죽여야 한다’는 것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게임이 진행되며 점차 자신이 기록해 둔 일기나 노트를 하나씩 발견하며 사건의 전말을 조금씩 기억해내고, 게임 중반 오컬트 소설가 아그리파의 도움으로 기억을 잃기 전 자신이 저지른 만행을 모두 기억하게 된다.
이 게임의 특징은 배경음악과 함께 끊임없이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린다는 점이다. 게임을 진행하며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실은 그 말소리가 과거에 자신이 잔인하게 고문했던 사람들이 했던 말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대니얼이 충성을 다했던 알렉산더를 죽이는 것이 이 게임의 목적이지만, 대니얼의 기억 속 고문당했던 자들이 살려달라고 비는 소리를 게임이 끝날 때까지 들어야 하는 것이 이 게임의 진정한 공포이자 고통이다. 알고 보면 처음부터 악인이었던 주인공 대니얼은 참회가 아니라 회피하기 위해 망각의 꽃을 먹은 비겁한 남자다. 게이머로선 이 남자를 살리고 알렉산더를 찾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호러 게임의 트렌드일까? ‘암네시아’는 게이머가 일종의 도전 정신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일단 아이템을 획득하거나 문을 여는 등의 모든 행위를 화면중앙에 맞춰 클릭해야만 한다. 마우스의 이동은 곧 주인공의 시점이기에 오른손은 오로지 주인공의 시점 역할만 할 뿐이다. 게다가 게임이 종반에 다다랐다 해도 주인공의 체력이 크게 늘지도 않는다. 게이머에게 극한의 시련을 주려 하는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호러 게임으로서의 악명이자 명성은 유명하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다 기절한 사람도 있다고 하니 이 게임의 진정한 매력이자 공포를 느끼려면 마음가짐을 단단히 먹어야 하겠다.
주인공부터 목적까지 밝은 면모가 없는 이 게임의 진정한 공포는, 괴물이 나타나도 대항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괴물과 맞닥뜨린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괴물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숨거나, 들켰다면 그저 있는 힘을 다해 도망치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그냥 잡히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가장 현실적인 부분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다못해 저항이라도 해보고 싶지만, 잡히면 끝이다. 최종 저장 지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끝없이 들려오는 고문자들의 애처로운 목소리와 시시각각 주인공의 목을 옥죄는 괴물들까지 상대하려면 정신을 단단히 차려야 한다.
공포를 무릅쓰고 알렉산더를 만나 복수(?)에 성공했다면, 일단 축하한다. ‘암네시아’의 공포를 이겨내고 포탈까지 도달하다니,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좋은 소식인지 안 좋은 소식인지, 이 게임의 엔딩은 총 세가지다. 다른 루트를 선택했을 때 알렉산더가 어떻게 되는지, 주인공은 참회하고 낙원에 갈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게다가 본편의 DLC인 ‘저스틴’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엔딩 한 번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그렇다면 도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