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성착취물 판치는 SNS"... 각국 청소년 금지령 확산, 우리는?
호주, 'SNS 나이 제한법' 추진... 초당파적 지지 이탈리아, 16세 미만 SNS금지 논의 본격화 美 42개 주 법무장관 "소셜미디어에 경고 표시 넣어야“
[smartPC사랑=정혜] 온라인 범죄와 괴롭힘, 영상 중독 등 소셜미디어(SNS)가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심각하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청소년의 SNS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지나친 온라인 이용으로 인해 청소년들이 병들고 있다고 판단한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논의와 강력한 조치들이 진행되고 있다.
호주, 'SNS 나이 제한법' 추진
2023년 시드니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12~17세의 호주인 약 75%가 인스타그램 등 SNS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는 청소년들이 SNS로 음란물 등 각종 부적절한 내용의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지난 9월 10일 호주 ABC 방송에 출연해 연내 SNS 연령 제한법 도입을 위해 조만간 시범 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청소년 온라인 이용에 대한 연령제한 정부 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호주의 여야 정치권은 이례적으로 소셜미디어 연령 제한 입법화에 대해 초당파적인 지지를 보이고 있다. 호주 정부는 지난 5월, 2024~25년 연방 예산 발표에서 소셜미디어 및 기타 온라인 콘텐츠 접속 시 사용자의 연령을 확인하는 연령 인증 기술 시범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위한 예산으로 650만 호주 달러(약 58억 원)를 배정했다.
더불어, 지난 5월 남호주(South Australia) 정부는 호주에서 가장 먼저 14세 미만 어린이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금지하는 입법 초안을 발표했다. 이 초안에 따르면, 13세 이하 어린이의 소셜미디어 접근이 금지되며, 14~15세 청소년은 계정에 접근하기 위해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만약 호주에서 SNS 연령 제한법이 통과되면 세계 최초의 사례가 된다.
호주 정부가 SNS 연령제한 등 강력 규제를 추진하는 이유는 청소년들의 SNS 중독, SNS 관련 폭력·혐오 사건이 빈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4월 시드니 한 교회에서 벌어진 16세 소년의 흉기 테러 사건의 경우, 이 소년이 극단주의 단체에 속해 있었고 이들은 SNS를 통해 활동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흉기 난동 영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퍼졌고, 사회적 파장을 우려한 호주 온라인안전국(eSafety)은 지난 4월 22일 X에 영상 게시물 차단을 명령했다. X(구 트위터)는 호주 내에서의 해당 동영상 접근을 차단했지만, 서버에서 삭제하지 않아 호주 외에서는 여전히 이 영상을 볼 수 있으며, 호주 내에서도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제한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호주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이탈리아, 16세 미만 청소년 SNS 사용금지 논의 본격화
이탈리아에서도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사용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청원 사이트 체인지닷오르그(change.org)에 올라온 '스마트폰과 SNS: 모든 기술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다' 청원서엔 이탈리아 각계 저명인사가 서명했다.
14세 미만은 휴대전화 보유 자체를 금지하고 16세 미만은 SNS 계정 개설을 차단하자는 내용이다. 이 청원은 교육 전문가 다니엘레 노바라, 심리치료사 알베르토 펠라이가 주도한 것으로 영화감독 파올라 코르텔레시, 배우 알바 로르와처, 스테파노 아코르시, 루카 진가레티 등이 서명에 동참했다. 이탈리아 안사통신은 SNS 연령 제한 온라인 청원에 각계 저명인사들이 서명하면서 큰 호응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美 42개 주 법무장관 "소셜미디어에 경고 표시 넣어야“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도 저서 《불안 세대》(The Anxious Generation)에서 스마트폰이 아이들의 뇌 회로를 바꿔놓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14세 전에는 스마트폰을 갖지 못하게 하고, 16세 미만은 SNS 이용을 금지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조치는 청소년들이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에 노출되면 성인보다 더 빨리 중독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미실종학대아동방지센터(NCMEC)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온라인 아동 성학대물 신고 건수도 3,600만여 건으로 사상 최대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미국 상원은 지난 7월 30일 플랫폼 회사가 SNS의 유해 콘텐츠를 직접 차단하도록 하는 법안을 처리했다. 미국 상원은 아동 온라인 안전법(KOSA)과 어린이 및 10대 온라인 프라이버시 보호법(COPPA 2.0)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찬성 91명, 반대 3명)
이 법안의 핵심은 페이스북, 엑스,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업체 등이 자사 서비스에서 정신 건강 장애, 학대, 성적 착취 등으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하도록 강제하는 '주의 의무'를 부과하고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9월 10일 미 42개 주 법무장관들은 SNS에 ‘청소년 건강에 유해하다’는 경고문을 다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때때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의견이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관할 구역 내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지속적인 우려를 공유하고 있으며 알고리즘 기반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이런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미 연방 42개주 법무장관 공동 성명]
이들은 공중보건 최고책임자인 비벡 머시 의무총감의 제안에 초당적 지지를 표명하며, 담배나 술과 같이 SNS에도 청소년 건강에 유해하다는 경고문을 부착할 것을 제안했다.
한국, 청소년 SNS 이용시간 제한 법안 발의
우리나라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청소년이 SNS 등에서 경험한 사이버 폭력 비율은 40.8%로 성인(8.0%)의 5배에 달했다. 이에 한국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SNS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청소년의 SNS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은 청소년의 중독성 콘텐츠를 규제하는 ‘청소년 필터 버블 방지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청소년 필터 버블 방지법’은 알고리즘을 활용해 아동‧청소년에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추천하는 서비스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는 전세계 주요국에서 미성년자에 대한 대형 정보기술(IT) 업체의 콘텐츠 무제한 추천을 금지하거나 강력히 규제하는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에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통해 청소년 안전과 관련한 법안이 발의되고 있지만 호주나 이탈리아의 SNS 연령제한과 비교해 ‘시간 제한’이 더 효과적일지는 명확하지 않다. SNS 이용시간 제한이 2011년 청소년의 심야(0~6시) 게임을 금지한 ‘게임 셧다운제’처럼 실패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모든 플랫폼 차단은 득(得)보다 실(失)?
세계 각국 정치권의 적극적인 입법 조치와 관련해, 한편으로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정보 접근권과 디지털 기회 박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장애가 있는 청소년이나 원주민 출신 청소년처럼 같이 사회화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소셜미디어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차단하는 것은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소셜미디어 금지가 특정 도구에만 적용될 것인지, 아니면 모든 플랫폼에 적용될 것인지 신중히 고려해야 하며, 개별적인 성숙도를 고려하지 않은 연령 제한이 UN 아동권리 협약에서 선언한 어린이의 정보 접근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어린이·청소년 정보접근권 침해받지 않으려면
어린이·청소년 보호를 위해 강력한 규제책인 ‘연령제한’ 입법화를 추진하는 나라들의 경우 독점적 글로벌 소셜네트워크 기업과의 갈등 요소도 존재한다. 폭력 사건의 선동 및 가짜뉴스 유포 책임을 제기하고 영상 및 사이트 차단 요구에 해당 기업들이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사업자들이 관리 소홀로 인해 범죄 피해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강력한 규제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이들 기업은 유해 콘텐츠를 완벽히 차단하는 기술적 어려움과 각국의 상이한 법률 및 규제로 인해 일관된 정책 시행이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유해 콘텐츠를 모니터링하고 차단하는 데 드는 비용과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도 주요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 안전교육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학부모뿐 아니라 당사자인 어린이· 청소년들도 소셜미디어에 대한 연령제한이나 시간제한 등에 대한 정책방향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미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이 유해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일방적 규제에 머물지 않고, 재발방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SNS를 통한 청소년 범죄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및 사회적 역량을 집중하여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 이용에 앞서 안전 교육을 명문화하고, 경고문 게시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동 및 청소년 보호를 위한 유해 콘텐츠 모니터링 및 차단 기술 개발에 기업이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며, 이용자들도 체계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및 미디어 안전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기사는 digitalpeep님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