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꿈꾸는 전기차③] "화재 잡아라"… 배터리 3社3色, 열 식히는 기술
[커버스토리] 전기차 포비아?... 그래도 혁신을 꿈꾼다 ‘열폭주 취약’ 리튬이온배터리… 전기차 포비아 확산 안전성 방점… LG엔솔, 셀 사이 열확산 소재 적용 삼성SDI, 셀 내부 폭발 시 열·가스 배출구 탑재 SK온, 양극재-음극재 분리 ‘Z폴딩’ 기술 상용화
[디지털포스트(PC사랑)=성지은 기자] 국내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들은 화재 예방 기술을 고도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사고 등으로, 한 번 사고가 나면 브랜드 신뢰도가 추락함은 물론 전기차 시장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나오기 때문이다. <디지털포스트>는 배터리 셀 내부 안전성을 공고히 하면서도 열 폭주를 방지하는 기술을 제조사별로 조명했다.
전기차 화재 건수 많지 않지만, 진압 쉽지 않아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 자료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 건수는 2021년 24건, 2022년 43건, 2023년 72건으로 3년 새 200% 늘었다. 수치만 보면 전기차가 유독 화재에 취약한 듯하지만, 다소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최근 3년간 내연기관 차량에서 발생한 화재는 총 1만 933건으로, 무려 전기차의 78배에 달한다. 이 같은 압도적 수치 차이에도 전기차 산업에 캐즘(Chasm·일시적 수요 둔화)은 물론, 아예 전기차 구매를 꺼리는 포비아(phobia·공포증)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원인 중에서도 ‘배터리’ 특성이 팔 할을 차지한다. 오늘날 가장 대중적으로 쓰이는 전기차용 동력원은 ‘리튬이온배터리’다. 은백색의 알칼리 금속인 리튬(Li)은 원자번호 3번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금속 중 세 번째로 가볍다는 의미다. 다른 금속보다 작고 가벼워 무게당 에너지를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리튬이온배터리는 양극재에 종류에 따라 ▲리튬인산철(LFP) ▲NCM(니켈·코발트·망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등으로 나뉜다. 이 중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NCM과 NCA의 ‘삼원계 배터리’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여기에 쓰이는 원소는 니켈, 망간, 코발트, 알루미늄 등이다.
이 중 니켈은 에너지 용량을 키우는 역할을 맡는다. 이들 3사는 니켈 비중이 큰 ‘하이니켈배터리’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다만, 하이니켈은 에너지 밀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열 폭주(Thermal Runaway)에 취약하다.
전기차 포비아가 본격 대두된 인천 청라의 지하 주차장 화재 또한 열 폭주에 의한 사고다. 현재는 배터리 내 모든 열과 전기·화학 에너지가 소진되는 방법 외에 배터리 열 폭주를 막을 방법이 없다.
이에 따라 전기차 시대로 가는 여정에 포비아 현상이 나타나자,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안전성 제고 카드로 진화에 나섰다. 배터리 셀 내부 안전성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열 폭주를 막기 위한 기술을 개발, 적용하는 게 핵심이다.
3사 3색, 다양한 열 관리 추진하는 배터리 업계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전기차 포비아를 막기 위해 제품 자체의 안전성을 높이고 위험 요소를 원천 차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우선, 삼성SDI는 열을 식혀 줄 냉각판과 접점을 넓히거나, 가스를 외부로 빼낼 통로를 만드는 식으로 안전성을 높였다. SK온 역시 셀 형태에서 차별점을 둬 화재 예방 기능을 강화했다. 양‧음극 간 접촉을 막는 분리막을 기존 제품보다 많이 넣어 화재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한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진화 능력을 키우는 방식 외에도 제품을 관리하고 제어하는 데 방점을 두기도 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자사 배터리관리시스템(BMS)으로 제품의 이상 징후를 파악하고, 배터리 컨디션을 최적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 밖에도 3사는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불량률을 낮추려는 노력도 전개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파우치형 배터리 외관 검사 및 X-ray 고속 검사 장비 등을 도입했다. 삼성SDI는 일찍이 X-ray·3D CT 장비 등을 활용해 왔다. X-Ray 인라인(In-line) 같은 검사 장비로 불량 검출률을 높인다는 취지에서다.
LG엔솔, BMS 특허만 8,000개 이상
구체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은 셀 설계 최적화로 열 제어 기능을 향상했다. 일례로 하이니켈 NCMA 배터리는 니켈 함량을 50~60% 수준으로 낮추는 대신 망간 함량과 전압을 높였다. 고전압 미드니켈 NCM 배터리는 열 안전성이 타 배터리 대비 30% 이상 높다.
연내 양산 예정인 원통형 ‘46시리즈’는 셀 단계에서부터 연쇄 발화를 막을 수 있도록 ‘디렉셔널 벤팅’기술을 적용했다. 이 기술은 배터리 내부에서 발생한 에너지를 즉시 바깥으로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순식간에 치솟은 열에너지를 분산시켜 셀 저항을 줄이는 동시에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모듈과 팩 소재도 강화했다. 설령 발화하더라도 방화 소재에 의해 불꽃이 배터리 팩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시간을 지연하기 위함이다. 배터리 셀 제조 과정에서도 엑스레이(X-Ray) 등을 활용, 공정별 전수 검사 체계를 구축해 운영 중이다.
제조 이후에는 ‘배터리관리시스템(BMS)’으로 배터리 이상 징후를 파악, 제어한다. BMS는 배터리 상태를 살펴 최적의 조건에서 배터리를 사용·유지할 수 있도록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전류와 전압, 온도 등 다양한 데이터로 충전 중 전압 하강, 비정상 퇴화 및 방전, 특정 셀 용량 편차 등을 사전 감지하거나, 조치하는 역할을 맡는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은 오랜 기간 쌓아온 설계 역량과 실증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신뢰성을 높이고자 노력 중이다. 현재 시점으로 LG에너지솔루션이 보유한 BMS 관련 특허는 8,000개 이상이다. 배터리 셀 기준으로는 13만개 이상, 모듈 기준으로도 1,000개 이상의 실증 기반 자체 기술을 갖고 있다.
삼성SDI, 폼팩터 자체 안전성 우수
삼성SDI는 특유의 조립 공정 경쟁력을 활용해 각형 배터리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각형 배터리는 배터리 폼팩터(형태) 중 안전성 측면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넓은 밑면은 하부 냉각판과 접촉면을 넓힐 수 있어 구조상 발열 전파를 막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배터리 캔 위에 작은 뚜껑 형태의 가스 배출 장치인 ‘벤트(Vent)’를 둔 것도 삼성SDI만의 화재 예방 기술이다. 셀 내부가 발화될 때 생기는 열이나 가스를 벤트로 배출하는 원리다. 이렇게 하면 배터리가 팽창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열 확산도 막을 수 있다는 게 삼성SDI 측 설명이다.
특히 삼성SDI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 선두에 선 업체다. 전고체 배터리는 이차전지 요소 중 하나인 전해질이 고체인 제품이다. 기존 전해질은 액체여서 빠른 속도로 충돌하거나, 차량 하부에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화재를 온전히 막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업게는 전해질을 액체가 아닌 안정적인 고체로 바꾼 ‘전고체 배터리’에 기대를 걸고 있다.
SK온, 전극 간 접촉 완전 차단
마지막으로 SK온은 분리막을 지그재그 형태로 쌓는 'Z폴딩(혹은 Z스태킹)' 기법으로 안전성을 꾀하는 동시에 차별화를 줬다. 해당 기법은 양극과 음극을 균일하게 쌓아 화재를 유발할 수 있는 전극 간 접촉을 차단하는 데 중점을 뒀다. 분리막 사용량이 일반 공정 대비 많지만,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게 최대 장점이다. 향후에는 셀과 셀 사이에 방호재를 넣어 열 전이를 억제하는 ‘S팩’ 적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SK온은 원소 배합을 조정하는 ‘복합 도핑’ 기술을 상용화하기도 했다. 복합 도핑은 양극활물질의 구조적 안전성과 배터리 장기 성능을 향상하며, 충·방전 시 가스 발생도 억제한다.
반도체 제조사와 협업해 ‘배터리관리칩(BMIC)’도 개발했다. BMIC는 여러 개 셀로 구성된 배터리 팩의 전반적인 상태를 진단하고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전기차나 에너지저장시스템(ESS)에는 수백 개의 배터리 셀이 탑재되는데, BMIC는 각 배터리 셀의 전압과 온도 정보를 파악한다. 이후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배터리 셀을 찾아내면 정상적인 배터리 작동을 위해 해당 셀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SK온의 BMIC는 자동차 기능안전 관련 국제인증 최고등급인 ASIL-D를 취득했다. 또한, 기존 제품에 비해 전압 측정 오차 범위가 절반으로 줄었으며, 125℃ 고온에서도 동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