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 곳간 더 채워라?... 차기 농협은행장도 '농지비 부담' 가중

NH농협은행 이석용號 실적 주춤에 농지비 지목 농협금융, 매년 농지비 부담율 증가 농협법 개정안, 농지비 상한 최대 2배까지 可 농민 지원 대신 특별퇴직금·인건비로 농지비 사용

2024-12-05     김호정 기자
농협

 

[디지털포스트(PC사랑)=김호정 기자] 임기 만료를 앞둔 금융권 수장들의 교체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이석용 NH농협은행장은 이달 31일 자로 임기 만료일을 맞는다. 올해 들어서만 6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하면서 내부 통제 부실에 대한 이 은행장 리더십이 크게 흔들렸다. 농협은행은 올해 3분기 호실적을 기록했지만, 잇단 금융사고를 보완할 만한 충분한 성과로 보긴 어렵다는게 중론이다.  

농협은행은 올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으로 1조 656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3분기 누적 순익 1조 6052억원보다 3.1%(509억원)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이를 온전히 이 행장의 경영 성과라기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고금리 기조에서 은행의 이자 수익을 바탕으로 한 증가 요인이 크기 때문이다. 농협은행의 올해 순이자 순익은 5조 7706억원으로 전년 5조 7666억보다 늘었지만, 수수료 이익은 작년 5669억원에서 84억원 줄어든 5585억원을 기록했다.  

아울러 이 행장 체제의 농협은행 실적 상승세가 주춤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농협은행은 2021년 연간 순이익으로 1조 5583억원을 올린데 이어 2022년에는 1조7972억원의 순익을 거두며 상승 곡선을 그려왔다. 그러나 이 행장이 취임한 2023년에는 누적 당기 순익으로 1조7783억원을 기록해 오히려 실적이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행장은 실적 부진에 대해서는 다소 변명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농협은행은 올해 3분기 농협중앙회에 납부하는 2777억원의 농업지원사업비(농지비)를 지출했다. 이는 작년 3분기(2480억원)보다 297억원 늘어난 금액이다. 이는 농협은행의 3분기 농지비 차감 전 순이익의 15%를 차지하는 규모로 약2000억원의 추가 순익을 거둘 수 있었다는 의미다.

농지비는 농협은행을 비롯한 농협 명칭을 사용하는 계열사들이 농협중앙회에 내는 명칭 사용료(브랜드 사용료)를 뜻한다. 농업협동조합법 제159조 2에 따라 농협 계열사는 중앙회에 매출액 또는 영업 수익의 0.3~2.5%를 농지비로 내야 한다. 농지비 비율 산정 기준은 직전 3년 연평균 매출액의 2.5% 이내에서 결정된다.

연평균 매출액이 10조원을 초과한 계열사는 매출액의 1.5~2.5%, 3조원 초과~10조원 이하는 0.3~1.5%, 3조원 이하일 때는 0.3%이하가 적용된다. 농협은행, 농협생명, NH투자증권 등 농협금융계열사들은 최대 부과율인 2.5% 수준에서 농지비를 내고 있다. 반면 수익성이 좋지 않은 농협경제지주는 최저치인 0.3% 수준에서 농지비를 부담하고 있다. 사실상 농협 중앙회의 예산 대부분을 농협 금융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농협금융지주는 올해 3분기 농지비로 4583억원을 지불했다. 2020년에 4281억원, 2021년 4460억원, 2022년 4504억원, 2023년에는 4927억원으로 농협금융이 부담하는 농지비는 매년 늘어났다. 내년에는 최대 2배에 달하는 농지비를 부담할 가능성도 있다. 22대 국회에서 농지비 부과 상한율을 최대 5%까지 상향하는 개정안이 발의됐기 때문이다. 

윤준병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농·축협의 금융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내부통제 강화, 안정적인 회원 지원사업 재원 마련을 위한 농업지원사업비 부과율 상향, 도시조합과 농촌조합 간의 경영격차 완화 및 균형 등의 내용을 담은 농협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다양한 농협 개혁안이 제시됐으나 농지비 부과율 상한을 기존 2.5%에서 5%로 2배 상향하는 내용이 골자다. 올해 안에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농협금융이 내년 부담해야 할 농지비는 1조원 규모에 이르게 된다. 

농지비는 순익이 아닌 적자를 기록하더라도 내야 하는 비용이다. 2018년 농협생명은 114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지만, 628억원의 농지비를 부담해야 했다. 농협 계열사에서 농지비가 순이익을 과도하게 갉아먹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농지비 상한률 2배 개정안은 농협 계열사 입장에서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며 "농협중앙회는 이미 고배당을 받고 있는데 이와 별도로 내는 순익의 10% 수준에 해당하는 농지비는 기업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중앙회 입장에서 넉넉한 재원을 확보하고자 하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농지비 인상은 당장 급하다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나 마찬가지다"고 설명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농지비 인상과 관련해 "과도한 농지비 부담은 주주가치 훼손을 넘어 소비자들에게 그 부담을 전가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 하향 기조에 따라 농협은행에서도 대출 이자율을 낮추는 방안을 고민할 수도 있지만, 농지비 납부로 순익이 줄게 되면 대출 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농협은행 고객 입장에서는 금리 인하 혜택을 받을 기회가 상실하는 셈이다. 

농지비 인상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농협금융이 각종 수익 사업으로 막대한 수입을 창출하고 있지만 농촌을 지원하기 위해 내는 농지비는 최소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10년 새 농협 금융이 얻는 수익은 2배 늘었지만, 4000억원 규모의 농지비 상한선은 14년째 그대로라는 점을 강조한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농지비는 농협 중앙회 회원과 조합원의 지원 사업을 위해 필요한 재원"이라며 "회원 지원사업에 소요되는 재원을 안정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법안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말했다. 다만 "농지비 인상은 지난 21대 국회 때부터 논의됐던 내용으로 아직 국회 차원에서 농지비 인상에 관련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중앙회가 이를 거론하는 건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부연했다. 

농지비가 본래의 취지대로 농업·농촌을 위한 자금으로 쓰이지 않고 임직원 퇴직금, 성과급 잔치 등 제멋대로 쓰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문표 전 국민의힘 의원실은 농협 중앙회가 2014~2022년까지 4조3224억원의 농지비를 조성하고도 46%에 달하는 1조9756억원을 인건비·특별퇴직급여·경비 등 사업관리비 명목으로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정 관리비 외에 특별 퇴직금 명목으로 1087억원의 비용이 쓰였다고 비판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도 올해 6월 발표한 성명에서 농지비를 농협금융지주의 경영상태를 악화하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하며 농지비 세부 지출 내역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지주로부터 최근 5년간 배당금 및 농지비로 5조4251억원을 독식하고 있지만, 농지비 등이 당초 목적에 맞게 사용되는지 확인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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