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게임 - 오늘은 학교에서 뭘 배워 왔니? 사립 저스티스 학원
2014-05-22 PC사랑
어린 시절, “학교에 다녀왔습니다!”하고 인사를 하며 집에 들어서고, 손을 씻고 식탁에 앉으면 어머니는 으레 “그래, 오늘은 학교에서 뭘 배웠니?” 묻곤 했다. 길게는 하루 10시간 가까이 지내는 학교에서 자식이 뭘 배우는지 부모는 항상 궁금하다. 다만 그 학교가 사립이고, 게다가 이름이 ‘저스티스 학원’이라면, 배운걸 해 보이라는 요구는 절대 금기사항이다. 큰일난다.
정환용 기자
정환용 기자
대전 액션 전성시대
수많은 대전 액션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던 90년대 중반은 대전 액션의 절정기였고 ‘킹 오브 파이터즈’, ‘아랑전설’, ‘용호의 권’ 등의 2D, ‘버추어 파이터’, ‘철권’ 등의 3D로 나뉘어 각축전을 벌였다. 스테이지 바깥으로 떨어지면 패배하는 링 아웃 시스템이나 2인 협력 플레이 등 다양한 특징으로 무장한 게임들은 한 때 호황이었던 오락실에서 매주 게임대회가 치러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현재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대전 액션은 남코의 ‘철권’으로, 정식 넘버링 타이틀의 스핀오프였던 2인 협동 시스템 ‘철권 태그 토너먼트’ (이하 ‘철권 태그’)의 후속작 ‘철권 태그 2’가 국내에서 여전히 성황리에 운영 중이다. 특히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의 프레대회인 ‘실내/무도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e스포츠의 출전 종목에도 철권 태그 2가 포함돼 있어 대전 액션의 대표적인 킬러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아직도 오락실의 동전 먹는 하마는 대전 액션이다. 일반적인 게임과 달리 모르는 사람과의 한 판 승부는 승부 근성에 불을 지피기 좋은 콘텐츠인데다가, 세계적으로도 ‘먼치킨’ 수준인 한국인의 게임 센스가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든지 1등을 노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장점이자 단점인 한국인의 근성은 게임에도 적나라하게 적용된다. 덕분에 기자는 액션 게임에 소질이 지지리도 없다는 것을 온 집안의 동전을 모두 대전 게임에 갖다 바치고서야 알게 됐다.(리듬 게임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도 딱히 그쪽 방면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대전 게임보다는 그나마 잘할 수 있어서였다)
사제 간의 아름다운 주먹질 향연
‘철권’과 ‘버추어 파이터’와 같은 3D 대전 게임인 ‘사립 저스티스 학원’ (국내 출시명 ‘라이벌 스쿨’)이 출시됐을 때, 기자는 그저 “캐릭터들이 학교 선생님이나 야구부원? 현실에 좀 더 가깝네” 정도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기자가 이 게임을 처음 접했던 1998년 당시의 오락실 최고 인기 게임은 ‘철권 3’와 ‘버추어 파이터 3’로, 대전 게임의 양대 산맥이 오락실을 먹여 살리던 시기여서 신작 게임에 대한 집중도가 높지 않았다. 심하게는 철권 3 기기에 동전을 올려두고 남는 시간에 잠깐 즐기던 ‘시간때우기용’ 게임 정도로 치부하던 친구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게임과 더불어 이 게임에 들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재미’가 더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2vs2 대전을 구현하고 격투 중 기를모아 필살기를 사용하는 등 새로운 전개 방식의 전투가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의 진리를 무참히 깨부순 사제간의 주먹다짐이란 설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철권 태그 토너먼트와는 다르지만 특정 기술을 구사할 때 두 캐릭터의 합동 공격이 가능한 점도 새로웠다. ‘라이벌 스쿨’로도 알려진 ‘사립 저스티스 학원’은 제목 그대로 등장인물들이 선생과 학생으로 구분돼 있다. 캐릭터들이 사용하는 무기도 야구부원 쇼마의 야구방망이, 선생님의 출석부 등 학교스러운 아이템이었고, 심지어 교사를 훈계하는 학생 필살기도 가능했다. 2인 1조로 플레이하던 중 특수공격 게이지가 쌓이면 무려 ‘사랑과 우정의 투 플라톤 어택’이라는 유치찬란한 이름의 필살기를 구사할 수 있다.(이 네이밍 센스는 후속작 ‘저스티스 학원 2’에서 3인 1조 플레이의 필살기 ‘정의와 용기의 쓰리 플라톤 어택’으로 발전하기까지 했다) 밸런스는 전혀 신경을 안 쓴 듯한 일부 먼치킨 캐릭터의 점유율과 약간의 편법을 활용하는 무한콤보 시스템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저스티스 학원의 국어교사 히데오와 양호선생 쿄코의 투 플라톤 어택 또한 상대방을 때려눕혀 놓고 신속한 전신안마로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흐뭇한 스킬이다.
저스티스 학원의 기본 시스템은 지금 봐도 디테일한 면이 많다. 캐릭터가 공중 공격을 할 때의 카메라 워크, 공격의 강도 강화로 이어지는 열혈콤보 공격 시스템과 횡이동 회피 등 현재의 대전 액션이 가지고있는 대부분의 시스템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또한 두 명의 캐릭터를 플레이할 수 있는 점은 ‘킹 오브 파이터즈’에서 이미 구현했지만, 2인 합동 특수공격 시스템의 특수성은 이 게임을 한 층 높이 평가하게 만들었다. 기본 2선승제에서 2라운드에 돌입하기 전 자신이 플레이할 캐릭터를 유지하거나 바꿀 수 있는 선택지도 특별했다. 또한 자신이 선택한 캐릭터에 따라 스토리가 나눠지는 점도 재미있다. 가령 저스티스 학원의 보스 팀을 구성하면 일반적인 순서대로 최종 스테이지까지 가야하지만, 해외파 학생들이 포진한 퍼시픽 하이스쿨 팀을 구성하고 3화에서 저스티스 학원의 라이조 교장과 겨뤄 승리하면 7화로 점프할 수있다. 또한 저스티스 학원 팀으로 싸울 때 7화에서 만나는 라이조 교장과의 싸움에서 투 플라톤 어택 피니시를 한 번이라도 성공해야 최종 보스인 ‘효’ 스테이지에 도달할 수 있다. 대전 액션의 일반적인 진행과는 사뭇 다르게 각 학교와 캐릭터마다 스토리 라인이 강조된 점이 저스티스 학원의 팬을 양산하게 된다. 스토리 모드인 ‘열혈청춘일기’는 훗날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이식될 때 본편과 함께 두 개의 CD로 나눠져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저스티스 학원의 캐릭터는 각 학교에서 내노라하는 학생 뿐만 아니라 선생, 교장까지 주먹다짐에 동참한다. 실로 아름다운 싸움박질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비운의 게임, 비운의 캐릭터들
그러나 2편 ‘불타라! 저스티스 학원’까지 출시된 이 게임은 의외로 국내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속편은 하드웨어 기판 교체 문제 때문에 국내에 많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점도 있지만, 전작에서 제기됐던 무한콤보 문제나 캐릭터 밸런스 등 많은 부분에서 큰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점도 흥행 실패의 원인이 됐다. 합동 공격에 가담하는 집단폭행 멤버가 세 명으로 늘기도 하고, 공중연속 콤보 시에 2콤보까지만 타격함으로써 가능했던 무한 공중 콤보도 막히는 등 개선의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2편이 출시됐던 당시 오락실은 철권 태그 토너먼트가 장악하고 있어 다른 대전 액션이 비집고 들어오기가 순탄치 않았다. 여러 모로 비운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은 그렇다 치더라도 캡콤의 특성상 잘 나가는 캐릭터들이 다른게임에 등장할 수 있었다. 정작 주인공 바츠는 이 게임 속에서 뼈를 묻었지만, 샤프한 이미지의 쿄스케는 캡콤과 SNK의 합작 ‘Capcom VS SNK 2’에 출연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개성 넘치는 저스티스 학원의 캐릭터들이 다른 게임에 출연하는 일은 여기서 끝났다. 게임은 그렇다 치더라도 캐릭터만큼은 잠재성이 높아 보였지만 대전게임에서의 연이은 실패 때문인지 캡콤은 이 아까운 캐릭터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원 소스 멀티 유즈, 모르나? 아무튼 기자의 즐거운 학창시절의 한 부분을 책임졌던 저스티스 학원과, 그 중에서도 야구보다 사람 두들겨 패는 재주가 더 좋은 쇼마는 꽤 오랫동안 기자의 연구 대상이었다. 비록 출시 당시에 큰 인기를 끈다거나 게임계에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지만, 게임에서나마 못된 선생 이미지를 게임 속 상대에게 심어놓고 신나게 두들겨 주는 쾌감만은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만약 지금이라도 캐릭터 간 밸런스를 철저하게 맞추고 그래픽을 끌어올린 신작이 나온다면, 소위 ‘약먹고 만든’ 듯한 이 게임이 큰 인기를 끌게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