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게임 - 너는 밀어붙여, 나는 튕겨낼테니 핀볼
2014-06-25 PC사랑
‘오락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평면의 화면에서 조이스틱과 버튼으로 조작하는 게임기계이다. 놀이공원의 대형 오락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레이싱 게임이나 에어하키 게임정도가 체감형 기기였고, 다양한 형태의 리듬 게임이 등장하며 게임기기의 형태가 다양해진 것도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수많은 플랫폼들이 스포트라이트를 스쳐 갔지만, 유독 국내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 게임이 있었으니, 바로 ‘핀볼’이다.
정환용 기자
정환용 기자
미국 뉴햄프셔 주(州) 펄햄의 핀볼 박물관. 출처 : pinball.rocket9.net
핀볼(Pin Ball)은 초창기의 다양한 변화를 거쳐 우리가 기억하는 형식의 게임이 됐다. 1800년대 후반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Bagatelle’(바가텔)이 핀볼의 원조인데, 처음에는 우측의 공을 쏘아올리는 ‘키커’만 있었고 내려오는 공을 다시 올리는 ‘플리퍼’가 없었다. 자연히 플레이어는 기계 내부에서 공이 어떻게 떨어지는지 지켜보는 수준에 머물렀기에 게임이라기보다는 도박에 좀 더 가까운 형태였다.
핀볼의 전신 ‘Bagatelle’는 키커만 작동시킬 수 있는 단순한 형태였다.
이후에 좀 더 진화된 형태의 기계가 등장한 것은 1932년이다. 당시 미국의 노동자들은 포커나 룰렛 등의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보다 저렴하게 게임을 즐기기를 원했고, 이에 착안한 레이몬드 멀로니가 만든 최초의 핀볼 머신 ‘볼리 볼리후’(Bally Ballyhoo)가 우리가 알고 있는 핀볼의 시초가 됐다. 볼리 볼리후 역시 전기 장치나 플리퍼는 없었고, 쏘아올린 공이 기계내부에 촘촘히 박힌 핀을 따라 다양한 점수의 포지션에 들어간다. 공의 최종 위치에 따라 점수를 얻고, 게임이 끝나면 스코어 포지션 하단에 뚫려 있는 구멍 뒤로 공을 회수하는 방식이었다. 7개의 공을 쏘는데 1센트를 받은 것은 당시의 물가를 고려해도 매우 저렴한 비용이었다.
볼리 볼리후의 창시자 레이먼드 멀로니.
레이먼드의 창작품 ‘볼리볼리후’의 복각판. 원형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볼리후의 탄생 이후 핀볼 기계는 발전과 성장을 시작했다. 1937년에 등장한 핀볼 기계에서는 핀이 아니라 탄력을 가진 고무 범퍼를 장애물로 사용했고, 이와 함께 ‘핀볼’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1947년에 출시된 ‘험피덤피’(Humpty Dumpty)에서 드디어 플레이어가 떨어지는 공을 되살릴 수 있는 핀볼의 핵심 ‘플리퍼’가 사용됐다. 공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는 수동적인 방식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기계 양쪽의 버튼으로 플리퍼를 작동시켜 공을 쳐 올리는 능동적인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핀볼 기계는 급격한 발전을 하게 된다. 동전을 넣어 기계를 작동시키는 전기 장치와 인공적으로 공을 세게 튕겨내는 범퍼 등 다양한 방식이 추가된 핀볼 기계는, 우리가 기억하는 현재의 모습와 비슷한 형태를 띠게 됐다. 덕분에 이용 요금은 약간 올랐지만, 오락실이나 술집 등의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더 높은 점수를 얻기위해 동전을 싸들고 덤벼드는 경쟁 구도가 생기기도 했다. 역시 인간의 본능은 ‘승리’인가보다. 잠시 현대로 돌아오자. 기자는 1990년대 중반 처음 핀볼 기계를 봤는데, 동네 오락실이 아니라 놀이공원에 마련된 ‘비싼’ 대형 오락실이었다. 핀볼은 1970년대 이후 급격한 하향세를 타게 되는데, 오락실의 대세가 핀볼이나 농구 게임 같은 아날로그 액션에서 화면을 보고 스틱과 버튼으로 즐기는 아케이드 형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국내에 처음 ‘오락실’이 생긴 것은 1970년대 후반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인기 있었던 테트리스나 갤러그 등의 게임들은 흑백 화면이었다. 1980년대로 넘어오며 비로소 컬러 게임들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팩맨, 너구리, 버블버블 등의 단순 퍼즐 액션부터 더블 드래곤, 황금도끼 등의 횡스크롤 액션까지 그 범주가 다양해져 갔다. 국내 오락실의 역사를 보면 핀볼이 왜 국내에서 인기를 끌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일단 현재의 핀볼 기계 형태는 1940년대에 정착된 것으로 부피와 무게가 상당했다. 보통 체형의 어른이 어깨 넓이 이상으로 팔을 벌려 기계의 양쪽 플리퍼 버튼을 작동해야 했고, 앞뒤로 길고 경사진 형태에 서서 플레이하는 특성상 높이 또한 보통 사람의 허리에서 배 정도까지 오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기계 위쪽의 스코어보드는 더 높아 사람 키와 엇비슷했다. 게다가 기기 자체가 하나의 게임방식으로 고정돼 있어서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즐기려면 그 게임 숫자와 같은 수량의 기계가 있어야 해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 큰 단점이었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핀볼 박물관에서 지난 2012년 개최된 ‘Pinball & Arcade Show’. 수많은 핀볼 매니아들이 다양한 게임을 즐기고 있다. 역시 종주국의 위력인가?
출처 : www.geekwire.com
출처 : www.geekwire.com
그럼 왜 핀볼이 추억의 게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가 이번 호 추억의 게임 아이템으로 핀볼을 선택한 것은, 바로 이 책 때문이다.
1973년의 핀볼, 무라카미 하루키 저.
중학교 시절 부모님 몰래 대강 읽어넘겼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973년의 핀볼’의 메인 테마는 제목 그대로 핀볼이다. 소설의 주된 등장인물은 ‘나’와 친구 ‘쥐’, 그리고 동거인 쌍둥이다. 여기서 핀볼은 어찌 보면 소설에 큰 주제가 되지는 않고, ‘나’의 정체성과 함께 ‘집착’에 대한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대변하는 정도로서 등장한다. 대학생인 주인공 ‘나’는 방학 기간 동안 바텐더 J가 운영하는 ‘제이스 바’에서 매일같이 맥주와 피스타치오를 소비하며 바 한켠에 설치된 핀볼 ‘스리 플리퍼 스페이스십’에 집착한다. 일본에 들여왔다는 단 세대 중 한 대였던 그 기계는 세 개의 플리퍼를 작동하는 특이한 방식이었고, ‘나’는 결국 역대 대통령의 동상을 전부 세울 수 있을 만큼의 동전을 쓰며 기어이 최고 기록을 세우고 만다. 어느 날 찾은 제이스 바의 핀볼 기계는 주크박스로 바뀌어 있고, ‘나’는 최고 점수에 집착했던 것처럼 자신의 베스트 스코어가 찍혀 있는 그 기계를 찾으려 무던히 애를 쓴다. 한 핀볼 매니아의 수집품 창고에서 기어이 찾아 낸 그 기계와 ‘나’는, 마치 헤어진 연인이 서로 다른 사람의 동반자가 된 후에 다시 만난 것처럼 애틋한 감정만을 남기고 창고의 전원을 내리며 또다시 이별한다. 친구 ‘쥐’는 사랑하던 여자 때문에 혼란에 빠진 채 도시를 떠나고, ‘나’는 핀볼에 대한 집착과 함께 쌍둥이와도 이별하며 지난 날의 방황을 잊게 된다. ‘1973년의 핀볼’은 하루키 특유의 오픈 엔딩의 일종으로, 해피엔딩도 아니고 뚜렷한 결말이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기자가 생각하고 있던 이 소설의 주된 테마인 ‘집착’을 핀볼 기계로 표현한 점이 흥미로웠다. 군대에서 다시 읽게 된 이 책은 기자가 전역 후 전국의 오락실을 돌며 핀볼 기계를 찾아 플레이해보고 근처의 바에서 맥주와 땅콩을 소비하게 만든 원흉(?)이기도 하다. 핀볼이라는 게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 그리고 한계를 이 책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반(反)해 2013년 현재 아직도 새로운 핀볼기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 새로우면서도 안타까웠던 점이 이 게임을 본 칼럼의 주제로 잡게 된 계기가 됐다. 재미있게 즐기는 사람들이 있기에 소수지만 아직도 새 게임이 만들어지고 있는 반면, 이를 찾는 사람들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것이 핀볼의 현재 모습이다. 도박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미국에선 1942년에 핀볼 금지법까지 제정되기까지 했지만(1976년 폐지), 이미 사양길로 접어든 분야에서도 꾸준히 찾아 주는 ‘매니아’들 덕분에 그 명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윈도우 기본 게임으로, 정품 PC 게임으로, 모바일 기기 애플리케이션으로 형태를 바꿔가며 핀볼의 명맥은 100년이 넘도록 끊어지지 않고있는 장수 게임이다.
스타워즈 핀볼(좌)과 스파이더맨 핀볼. 나무 판자에 핀이 박혀 있던 초창기의 핀볼은 현재 태블릿 애플리케이션에서 화려한 그래픽과 효과로 무장돼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