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게임 - 달라지는 게임 심의, 어떻게 봐야 하는가

2013-08-14     PC사랑
지난 5월 22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개정된 게임산업진흥법을 공포했다. 새로 공포된 개정 법안의 주요 내용은 게임물등급위원회를 폐지하고 청소년 이용 가능 게임들의 등급 분류를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하는 민간 기관에 위탁하도록 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를 신설해 청소년 이용 불가 게임 심의와 사후 관리 권한을 위탁하는 것이다. 공포된 내용만 보면 게임계와 게이머들이 원하고 있는 게임에 대한 자율심의로 가는 첫 단추가 꿰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걱정스러운 부분과 우려가 뒤섞여 있다. 과연 어떤 이유 때문인지 알아 보도록 하자.
박원기 death_priest@naver.com
 
 
게임 심의와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지난 7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 산하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가 생기기 전까지 게임의 심의와 등급 분류를 담당하던 것은 정부에서 설립한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였다. 그러나 영등위가 주도하는 게임의 사전 심의 제도는 시작부터 많은 문제가 있었다. 게임만을 다루기 위한 위한 심의기관이 아니다 보니 게임사들과 게이머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성과 일관성이 없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그래서 심의 대상인 게임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모습도 여러 차례 보였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의 게임산업이 온라인 게임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에도 영등위의 심의는 게임산업의 발목을 잡는 도구로 전락하였으며 게이머들에게 조롱거리로 희화화되기도 했다.
 
특히,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리니지 2>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으로 불거진 이중 심의 논란을 비롯한 몇몇 굵직한 사건들은 정부가 설립한 영등위가 주도하는 게임 심의 대신 게임 선진국들처럼 민간 전문 심의기관이 주도하는 자율심의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갈팡질팡하는 등급분류 속에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게임 심의 과정을 둘러싼 비리가 일부 사실로 밝혀지며 영등위의 게임 심의에 대한 공신력과 객관성은 시간이 갈수록 상실됐다. 그리고 여기에 결정타를 가한 것은 정치권과 게임계를 비롯해 사회 전반에 큰 소란을 불러일으킨‘바다이야기 사태’였다.
 
 
 
영등위와 정통위의 <리니지 2> 이중 심의는 심의 체계에 대한 논란을 부채질했다.
 
 
처음에 정치 쟁점으로 시작되었던 바다이야기 사태는 수사 및 감사 결과 정부 유력인사의 개입이 확인되지 않아 정치 쟁점으로서의 위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영등위의 게임 심의와 등급분류에 엄청난 문제가 있음이 밝혀져 또 다른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의하면 문화부(당시 문화관광부) 정책 담당자들은 사행성 도박물에 대한 경품용 상품권 인증제 및 지정제를 사행성 도박물 유통업자들의 요청으로 시행하는 등 직무유기와 파행적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바다이야기를 심사한 영등위 직원들은 바다이야기에 탑재된 사행성 도박 기능을 은폐하여 경찰의 단속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무원들이 사행성 도박물을 일반 아케이드 게임으로 위장하여 유통하는 잘못된 일을 막기는 커녕, 적극적으로 협조한 것이다.

영등위와 문화부의 잘못된 일 처리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e스포츠와 친환경 산업 이미지 등으로 긍정적인 인식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던 게임산업은 바다이야기와 일반 게임이 동일하게 인식돼 아직도 억울한 오해를 받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사건 이후로 아케이드 게임장들의 명맥이 사실상 끊긴 것이다. 바다이야기 사태가 일어나자 아케이드 게임장은 전부 도박장으로 매도 당하기 일쑤였고, 경영난으로 상당 수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물론 바다이야기 사태의 결과로 영등위가 게임의 등급 분류 기능을 박탈당하는 등 게임에 대한 행정적 제도 개선이 이루어진 점은 긍정적이지만, 게임계의 피해는 제도 개선으로 인한 이점으로 가려지기엔 너무 컸다.

영등위가 게임 심의 권한을 상실하게 되자, 게임계에서는 게임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자율적 심의를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게임의 사전 심의는 사전 검열에 해당하기 때문에 위헌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자율심의에 대한 취지와 정당성과 별도 심의기구의 필요성은 영등위의 심의가 공신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서부터 계속 제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간 자율심의를 당장 실행하는 것은 제도상으로도 무리가 있었고, 게임계 역시 자율심의를 주장했지만, 그 주장은 민간 심의를 위한 기구 설립 등의 실질적 움직임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영등위의 심의 권한이 종료되고 게임에 대한 심의 공백 우려가 높아지자, 민간 심의의 전 단계로 새로운 심의 기관을 설립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결국 정부와 게임계는 서로 게임 심의의 민간 이양을 위해 노력하기로 하는 한편, 영등위를 대신할 과도기적 단체인 게임위를 2006년 10월부터 설립해 2년 기한으로 활동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시작부터 매우 급하게 만들어졌던‘임시 단체’인 게임위는 얼마 안 가 이전의 영등위와 같은 위치로 변질됐다. 게임 심의를 민간 이양하는 노력은 게을리 한 채 이전과 다름 없는 사전 심의를 계속 진행했고 2년 기한으로 활동하기로 했던 약속은 네 차례에 걸친 연장안이 통과되며 어느덧 세배 이상인 7년으로 늘어났다. 매 번 기한 연장을 할 때마다 다음부터는 더 이상의 국고 지원과 기한 연장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지만 이 결정 역시 기한이 다다르면 뒤집어지기 일쑤였다.

물론 이런 식으로 존속되면서 게임위가 이전의 영등위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설립 취지에 맞는 행동을 보였다면 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게임위라고 해서 게임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이들이 늘어난 것이 영등위 때보다 눈에 띄게 아니었기 때문에 게임의 심의와 관련된 일관성 및 전문성 문제는 계속 일어났다. 또 심의와 관련된 월권행위를 저질러 물의를 빚는가 하면 게임 심의수수료를 인상하고 인디 게임에 대해서까지 게임의 사전심의를 의무해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의 유통을 사실상 불법으로 간주하는 등 심의를 권력화하고 게임 시장의 유동성을 경직시키는 잘못을 범했다. 게임산업의 발전과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 구제도에 안주하는 관료주의적 성향을 보인 것이다.

게다가 게임위는 설립 취지인 민간 심의 이양과 제 2의 바다이야기 사태를 막겠다는 목표를 이루기는 커녕, 오히려 사행성 도박물 유통을 눈감아주는 행동을 저질렀다. 등급분류 심의에서 사행성 도박물로 변질될 우려가 높은 아케이드 게임과 지적재산권을 무단 침해하는 불법 저작권 게임에 대해 심의를 내 준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정부 공공기관이 불법 저작물이 사용된 게임과 도박물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게임을 합법적 게임이라고 인정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심지어 게임위 관계자가 아케이드 게임의 불법 개변조 상황을 살피면서 경찰에게 향응을 제공받고 수백만 원의 뇌물을 받은 것이 적발되고 고압적 자세와 언행으로 물의를 빚는 등, 각종 비위사실로 인해 게임위 무용론은 갈수록 거세졌다.

 
 
게임위는 <디아블로 3>의 게임 시스템을 임의 변조해 등급 분류하는 월권행위를 저질렀다.
 

 
 
게임위의 비리 및 월권행위로 인해 게임위에 대한 폐지 요구는 갈수록 거세졌다.
 
 
 
게임위의 대표적 월권행위 사례

법보다 우선한 자체적 가이드라인: 게임위는 청소년 이용 불가 등급으로 신고한 아케이드 게임 <황금포커성>에 대해 게임위에서 마련한 자체적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여 사행성 도박물로 간주해 내용수정신고를 반려하고 게임물의 등급 부여를 거부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에 대하여 게임산업진흥법에 근거한 심의규정 대신 자체 가이드라인을 적용해 등급거부 근거로 삼고 사행성 도박물로 판단한 것은 잘못된 행정처리이자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황금포커성>에 대한 내용수정신고 반려 및 등급거부처분을 취소하라는판결을 내렸다.

<디아블로 3>을 맘대로 뜯어고친 게임위: 출시되기 이전부터 여러 가지 화제와 현금 경매장 콘텐츠를 통한 논란을 불러 일으킨 <디아블로 3>은 지난 2011년 12월 초부터 등급분류를 신청했지만, 블리자드 코리아가 게임위의 요구사항을 대체로 수용했음에도 게임위 측은 갖가지 이유를 빌미로 등급 분류심사를 거부했고 결국 2012년 1월 13일에야 등급분류 심사가 완료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게임위가 <디아블로 3>에 대해 게임의 현금경매장 시스템을 삭제하고 등급 분류를 실시한 것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심의 대상으로 제출된 게임에 대해 시스템의 추가 및 제외 권한이 없는 게임위가 이를 어기고 게임을 임의로 변조하는 월권행위를 저지른 것.

등급분류 수수료 인상 해프닝: 2011년 초 게임위는 별다른 의견 수렴 과정 없이 문화부와 협의해 게임 등급분류 수수료를 최대 300%까지 인상하기로 결정했고 설명회를 열어 이 내용을 게임업계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당연히 게임계의 상당한 반발을 사게 되었으며 설명회에 참석한 게임위 관계자가 설명회 중간에 게임계 앞에서 조는 등의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여 파장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게임위의 등급분류 수수료 인상안은 예산안을 심사하는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시행이 불가능해졌고, 기획재정부와의 논의도 없이 심의료 인상을 일방적으로 공포한 게임위의 안하무인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확인시키며 해프닝으로 끝났다.
 
 
 
민간 심의 이양 부분에 있어서도 활동 기한을 연장하면서 민간 자율기구에 대한 심의 이양 준비를 분기별로 보고하겠다고 약속한 것조차 거의 지켜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2011년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와 게임위가 특별한 근거나 활동보고 없이 심의를 민간에 이양하는 것이 시기상조이니 게임위를 영구히 존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실한 심의 시스템과 비리를 통해 불법 도박 게임을 용인한 게임위가 그런 주장을 할 만한 당위성이나 명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과거의 영등위와 다를 바 없는 게임위의 관료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행동이 지속적으로 노출되자, 많은 게이머와 게임 산업 관계자들은 물론 게임위의 정상적 활동을 위해 노력했던 이들까지 게임위의 존속을 반대하기 시작했다.
 
특히 게임위의 계속된 문제행동으로 게임위에 예산 지원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치권의 분위기가 매우 싸늘해진 것은 게임위 존속 결정을 내린 계기가 됐다. 게임위 초기에 예산 지원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설득시켜 가며 게임위의 예산 지원에 도움을 준 전병헌 의원조차 지난 7년 간 게임위가 행한 실정과 비리를 조목조목 비판하며 게임위의 폐지를 주장하기에 이를 정도였으니 게임위에 대한 정치권의 신뢰 수준이 얼마나 하락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결국 지난 5월 22일 공포된 개정 게임산업진흥법의 공포문에서도 게임위에 대해 '업무의 공정성 확보가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불공정한 업무로 인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바, 업무의 공정성 확보를 위하여 게임물등급위원회를 폐지한다'라고 언급할 만큼 게임위에 대해 낙제점을 주었다. 그 결과 게임위는 법 개정과 함께 만 7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게임 심의 시스템은 어떻게 바뀌는가?

개정된 게임산업진흥법으로 인해 게임위가 폐지 수순을 밟으며 게임에 대해 부분적으로 민간 심의가 도입되었지만, 이 결정이 내려지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한시적으로 운영되던 게임위와 관련된 예산 지원이 완전히 중단되고 게임위에 대한 폐지 목소리도 높아지는 등 게임 심의에 대한 여론이 변했기 때문에 게임 심의 시스템은 법안 개정을 통해 전체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이는 게임산업진흥법의 개정을 놓고 문화부가 발의한 개정안과 전병헌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 사이에 약 2년에 걸친 힘겨루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2011년부터 성인 등급 게임의 심의를 정부에 남기고 게임위를 사후관리에 초점을 맞춘 기관으로 개편하여 영구히 존치시키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PC 온라인 게임에 대해서는 청소년 이용 가능 게임에 대한 심의를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언급한 반면, 아케이드 게임에 대해서는 과거 바다이야기 사태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등급에 관계 없이 게임위의 후속 기관이 계속 심의 및 사후관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게임위 폐지를 주장하는 국회의 기류와 맞물려 약 2년 간 통과되지 않았다. 지난해 말 전병헌 국회의원이 중심이 되어 제출한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에서는 문화부의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게임위의 완전 폐지와 함께 게임 심의 권한을 전부 민간에 이양하는 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같은 내용을 다룬 두 개 이상의 개정안이 계류될 경우 병합심사를 거치는 원칙에 따라 정부의 안과 전병헌 의원의 안은 같이 심사되었고 게임위의 폐지와 게임 심의 민간 이양의 범위 등을 놓고 갑론을박이 계속되었으나 두 안이 게임산업 및 게임 심의를 보는 관점과 의견이 달랐기 때문에 합의를 이룰 만한 진전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쟁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사전심의 대신 민간 자율심의 및 사후 관리로 이행되어야 하는 방향은 전체적으로 공감했지만, 먼저 민간 자율심의의 범위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다음으로는 아케이드 게임의 심의를 민간 이양 대상에 포함할 것인지의 여부가 쟁점이 되었으며 마지막으로는 게임위의 존치 문제를 놓고 의견이 나뉘었다.
 
 
 
게임산업진흥법이 개정되었지만 모든 등급의 게임이 민간 심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며 아케이드 게임도 부분적으로 민간 이양에 합의하는 등 일부 진전이 이루어졌으나 게임위의 존속 문제와 민간 자율심의의 범위에 대해서는 이견이 매우 큰 상태에서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교착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부에서 절충안을 제시했다. 우선 전병헌 의원 등이 내놓은 게임위의 비위사실 등을 근거로 한 게임위 폐지론을 수용하고, 게임에 대한 민간 심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취지를 고려하여 게임의 심의 권한을 민간에 이양하도록 했다. 다만 민간 기관이 심사할 수 있는 게임의 범위는 청소년 이용 가능 게임으로 한정하였는데, 그 이유는 게임 등급 심의의 민간 이양에 대한 진척이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고 주무부서가 아닌 이들이 게임 심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을 필요도 있으므로 청소년 이용 불가 게임에 대한 등급 분류 및 심의 업무를 민간에 맡기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 이용 불가 게임 심의와 사후 관리 권한을 위탁하고, 청소년 이용 가능 게임을 심의할 민간 기관을 관리하기 위한 별도의 정부 산하 기관을 마련하기로 하였으며 이 기관의 명칭은 게임물 관리위원회로 정해졌다. 다만 기존 게임위가 신뢰성을 잃었고 직원들의 비위사실이 문제가 된 것을 고려하여 게임위의 업무와 의무를 승계하는 대신 인력 승계의 의무는 없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종전의 비상임 감사 제도를 전병헌 의원이 주장한 상임 감사 제도로 고쳤다. 또한 게임물관리위원회 역시 감사원의 감사대상으로 포함시킬 수 있도록 감사원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게임의 등급과 심의 기준을 1년에 한 번씩 검토하여 고시하는 것도 의무화했다.

문화부의 절충안은 큰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다. 게임위 존치를 주장했던 정부도 게임위의 비위사실 및 전문성 상실 문제 등으로 게임위의 존속을 계속 주장할 명분이 없었고, 전면적인 민간 심의를 주장했던 전병헌 의원도 심의 전체를 당장 민간에 이양하는 것이 원리원칙상으로는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것을 인지했다. 더불어 지금의 제도상으로는 심의 권한이 게임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엉뚱한 부서에 넘어갈 수 있는 위험도 있었다. 약 2년 간의 논의 끝에 국회 교육문화체육 관광위원회는 지난 4월 22일 전체회의에서 문화부의 절충안을 토대로 게임산업진흥법의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후 4월 30일 국회 본회의의 가결을 거쳐 약 3주가 지난 5월 22일, 심의 구조 변경을 골자로 하는 게임산업진흥법을 정식으로 공포하였다.

따라서 올해 11월부터는 게임의 등급분류 심의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영등위-게임위 등의 정부 산하 기관에서 심사를 받았던 예전과는 달리 PC 온라인 게임과 아케이드 게임의 등급분류 심의 창구가 이원화되어, 청소년 이용 가능 게임은 민간 기관에, 청소년 이용 불가 게임은 게임물관리위원회에 심사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좋게 바라보면 민간 심의기구가 생겨 게임에 대해서도 TV 프로그램처럼 자율심의 후 관리로 가는 기반을 열어 둔 과도기적 제도 개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조금 냉정하게 바라보면 당장은 두 개의 창구가 생겨 혼선을 빚을 수도 있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게임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에 대해 맞서 싸우는 것은 권리라기보다 의무다.
 

개정된 게임산업진흥법으로 변경되는 심의 구조

심의 체계의 이원화: 과거 게임위가 담당하던 게임 등급분류 업무를 청소년 이용 가능 여부에 따라 이원화하게 된다. 청소년 이용 가능 게임의 등급 분류는 문화부의 심사를 통과하는 민간 기관이 담당하며, 청소년 이용 불가 게임의 등급 분류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담당한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역할: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과거 게임위와는 달리 청소년 이용 불가 게임에 대해서만 사전 심의를 진행하며 게임의 사후 관리와 민간 기관 관리에 주안점을 두어 운영된다. 만일 문화부의 심사를 통과하는 민간 기관이 없다면 임시로 전체 등급 분류를 담당할 수도 있다.

게임 심의의 투명성 강화: 게임위 시절의 비상임 감사 구조를 상임 감사 구조로 고치고, 게임물관리위원회를 감사원의 감사대상으로 포함시키도록 감사원법을 개정하기로 합의하였으며, 또한 매 년마다 게임의 등급과 심의 기준을 공개적으로 고시하여 게임 심의의 투명성을 꾀하고 있다.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준비

게임산업진흥법의 공포 이후 바뀐 절차에 대비하기 위해 문화부는 게임물관리위원회 설립추진위원을 선임하였다. 선임된 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게임산업진흥원장을 지낸 최규남 제주항공 대표, 게임위 위원을 지낸 김민규 아주대 교수, 게임문화재단 이사로 재직 중인 이헌욱 변호사, 한국게임산업협회 자문위원인 박형준 성신여대 교수 등의 게임심의 행정 경험이 있는 이들이고, 여기에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정책관을 포함해 총 다섯 명이 선정되었다. 이들은 5월 22일 공포된 개정 게임산업진흥법이 실제로 시행되는 2013년 11월까지 게임물 관리위원회를 설립, 출범하도록 하기 위해 정관 및 규정 작성, 기구와 직제 구성, 직원 채용, 사무 인수인계, 법인등기 절차 완료 등의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문화부는 게임물관리위원회 설립추진위원과의 간담회를 열었다(사진출처: 문화부)
 
 
하지만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추진 준비 외에 바뀐 게임 심의를 위한 눈에 보이는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이 사실상 없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게임 심의의 민간 이양 준비가 순조롭지 않은데, 그 원인을 살펴보면 문화부와 게임계 모두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게임산업협회를 비롯한 게임계의 움직임을 보면 지난 3월 민간 심의를 담당할 기구의 출범에 대하여 인큐베이팅 방식으로 민간심의를 위한 비영리 법인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준비 계획을 밝히고 있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 준비에서도 미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법안 공포 시점인 5월 말 기준으로 민간 심의 기구 설립을 위한 인력이나 자금 등이 준비된 상황도 아니라 게임업계와 민간, 정부등의 의견을 취합하는 토론회나 공청회 등의 일정도 결정하지 못하는 등 민간 심의로 가는 첫걸음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자율심의의 기초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게임계의 이런 안일한 준비 태도는 매우 유감이다. 게임 심의의 민간 이양이 실제로 실현되려면 주무부처인 문화부의 민간 심의 기관 지정 신청 공고가 나오기 전에 민간 심의 기관으로 활동할 법인을 설립하여야 한다. 또 그 법인이 문화부의 심사 자격요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문화부의 심사를 통과하면 게임위가 진행하던 심의 업무를 인수받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법안 시행까지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지금부터 실질적인 준비에 들어가 빠르게 준비해도 정상적으로 심의 업무가 가능하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태지만, 지금까지 게임계 측에서 나온 행동은 게임문화재단이 두 차례에 걸쳐 문화부의 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게임산업협회는 언론 보도를 통하여 민간 심의 기관 준비가 어느 정도까지 진척되었는지에 대해“지금은 기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부분을 정하는 단계며, 문화부의 공고가 나온 뒤 문화부의 업무 진행 속도에 맞춰 준비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이는 행동만으로 판단하면, 과연 실질적인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게임산업협회의 이런 언급에 대해 당장 준비해도 모자랄 판에 그 동안의 게임 현안에서 그래 왔던 것처럼 실질적인 준비 없이 정부가 주도하는 대로 끌려 가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게임산업협회의 심의 민간 이양 준비는 아직까지 지지부진하다.
 
 
그렇다면 주무부서인 문화부의 준비 상태는 어떨까? 유감스럽게도 문화부의 준비 상태 역시 제대로 된 상태라고 보기는 어렵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추진 준비를 위한 설립추진위원을 선정하고 위촉했지만, 그것 외에는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일단 민간 이양 절차의 시작인 문화부의 민간 심의 기관 지정신청 공고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것이 문제다. 문화부가 언급한 바에 의하면 게임위는 지난해 4월에 이미 게임의 심의 업무를 민간 기관에 이양할 준비를 모두 끝낸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민간 심의 기관의 지정신청공고 역시 빠르게 진행되야 한다. 그러나 문화부는 언제 공고를 낼지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고 있다.

언론을 통해 문화부가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게임계 측에서 조율이 되어야 공고를 내는 것이 이치에 맞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나름대로의 당위성이 있어 보이지만, 그러나 주무부서로서의 역할을 생각하면 적절한 답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작년에 민간 심의기구로 게임문화재단을 놓고 심사했을 때도 게임문화재단의 일정에 맞춰 공고 혹은 재공고를 낸 것에서 볼 수 있듯 문화부는 적극적으로 게임 심의 행정을 주도하기보다는 게임계에서 대안을 마련해 오면 그에 따른 수동적인 행동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 및 게임계의 수동적 자세는, 정부가 규제에 나서기 전에 민간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심의에 임하는 미국의 사례와도 비교된다.
 
 
개정된 게임산업진흥법에 민간 심의기관이 없으면 청소년 이용 가능 게임의 등급 분류 심사를 맡는 것이 게임물관리위원회로 되어 있는 것 역시 문화부의 수동적 행동을 질타하는 근거가 된다. 즉 문화부의 준비 상태가 지지부진하다 한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이전의 게임 위와 다를 바 없게 되는 셈이고, 따라서 문화부 입장에서는 달라지는게 없으니 능동적인 개선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이미 2012년에도 게임에 대한 민간 등급 분류 이야기가 문화부와 게임계 사이에 물밑에서 진행되었고 민간 기관 지정 공고가 7월에 나오기는 했지만, 대상이 된 게임문화재단의 준비도 미비했고 그 외의 다른 활동도 없어 결국 무산되었던 일을 생각하면 올해에도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유가 어떤 것이든, 자율심의의 발판을 마련했음에도 게임계와 문화부 모두 수동적 행동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민간 심의기구 발족에 대한 필요성이 논의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라, 지난 2008년 6월에 정부 주도 공청회가 있었을 정도로 오래된 일이다. 공청회가 열렸던 시기부터 만 5년의 시간이 있었는데 실질적 준비가 겨우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문화부와 게임계의 대응과 준비 상태는 매우 안일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게임계 일부와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앞으로의 심의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서서히 불어나고 있다. 민간 자율심의로 가는 발판을 겨우 만들어 놓고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할 수도 있는 불안감과, 게임과 관련된 돈과 권력을 노리는 자들에게 고생해서 얻은 결과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와 걱정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 심의 권한을 놓고 군침을 삼키는 자들

법안을 공포하고 논의하는 과정과 위촉된 게임물관리위원회 설립추진 위원의 면면에서 보듯, 개정된 게임산업진흥법의 주무부서는 문화부이며 게임 심의와 관련된 관계자들의 문답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게임심의와 관련되어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주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문화부와 게임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게임 심의 권한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해 이익을 챙기려고 하거나, 아예 심의 절차를 가져와 퇴보시키려는 이들로 인해 게임의 민간 심의는 시작부터 위기에 놓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게임 심의 권한을 획득하여 잇속을 챙기려는 대상으로 가장 먼저 지목되는 것은 다름아닌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등의 주무부서가 아닌 정부 부처들이다.

여성가족부는 공공연히 게임 심의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그럴 때마다 청소년보호법을 법적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여성가족부는 청소년보호법을 내세워 게임뿐만 아니라 문화 콘텐츠 전반에 관여해 안하무인의 행태를 일삼고 있으며 특히 음반에 대해서는 청소년보호법을 빌미로 일관성 없이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을 남발해 사실상 음반 사전심의제를 부활시켰다는 악평을 받고 있다. 게임 셧다운제 역시 청소년 보호를 빌미로 관철시켰지만 실효성이 없는 것이 정설이며, 청소년 보호에는 뒷전인 반면 일부 국회의원 및 이익단체 등을 등에 업고 적게는 몇 백억 원 수준부터 많게는 몇 천억 원에 달하는 자금을 게임계에 요구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게임 규제 목적은 청소년 보호가 아니라 부가가치가 높은 게임 산업을 자신들의 수중에 넣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여성가족부의 씀씀이에 필요한 돈을 뜯어내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가 셧다운제 대상이 되는 게임을 선정하고 평가하는 기준 역시 음반 및 음원을 대상으로 한 자의적인 청소년 유해매체 지정과 다를 바 없는 고무줄 잣대에 불과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비전문적 핑계를 들어 셧다운제 대상이 아니라는 자의적 해석을 내리고, <애니팡>이 모바일 게임들의 셧다운제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여성가족부의 기준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비전문적인지를 알 수 있는 대표적 사례다. 특히 여성가족부가 셧다운제 대상 게임의 중독성을 평가할 목적으로 마련한 게임물평가 기준은 게임계와 게이머들을 넘어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비웃음 거리가 될 정도로 조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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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악한 기준으로 게임을 재단하는 여성가족부의 안하무인은 염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