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IT기술 - 라이프 오브 파이
2014-09-13 PC사랑
리처드 파커를 만든 엔비디아의 GPU 솔루션
맨 부커 상은 영국과 영연방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그해 최고 소설을 가려내는 영국 문학상이다. 2002년 캐나다의 소설가 얀 마텔은 227일 동안 태평양 한가운데서 호랑이와 소년이 함께 표류하는 생존기를 엮어내 맨 부커 상을 수상했다. 이 이야기는 40개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수많은 독자를 감동시켰다. 그만큼 영화화에 대한 기대도는 아주 높았고, 결국 세계적인 거장 이안 감독의 손에 영화화 되었다. 이번에 소개할 라이프 오브 파이다.
김희철 기자
김희철 기자
원작에 뒤떨어지지 않는 위대한 영화
당연한 이야기지만 좋은 영화는 연출력이 좋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야 볼 수 있다. 특히 원작 콘텐츠를 기반으로 제작하는 경우엔 그 차이는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면 올드 보이와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지만, 평가는 차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깊은 감동을 줬던 원작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 팬들은 더욱 냉정하게 영화를 평가하게 되는 것. 원작과의 비교라는 근본적 과제는 오로지 뛰어난 연출로만 해결할 수 있다.
비교가 부끄러운 수준이다.
‘ 시나리오는 무엇인가’의 저자 사이드 필드는 소설의 영화화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소설을 각색할 때 본래의 소설에 충실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는 점을 전제로 하며, 책 그대로를 시나리오에 복사해서는 안 되고, 그것을 영상으로 설명되는 시나리오가 되게끔 시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그런 점에 있어서 아주 모범적인 영화다. 제 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고, 결국 4관왕 수상(감독상, 촬영상, 음악상, 시각효과상)으로 결실을 맺었다. 영화에 쏟아졌던 기대에 멋지게 부응한 것이다.
아름답고 환상적인 3D 그래픽의 비밀
구명선을 타고 바다를 떠도는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황홀한 대자연의 신비를 만나게 된다. 이 장면들은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이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은 시각효과 스튜디오 리듬앤휴에서 맡아 작업한 결과물이다.
영화에서 감탄한 것과 비례할 정도로 리듬앤휴가 맡은 작업은 고난이도였다. 우선 170만 갤론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자체 파도 생성 물탱크가 준비됐다. 그 다음 그래픽 작업에는 전세계 리듬앤휴 사무실에서 600명 이상의 디지털 아티스트들이 동원되었다.
폭풍우 속에서 절규하던 파이는 사실 안전했다.
리듬앤휴는 라이프 오브 파이를 위해 자체 시각효과 툴을 개발했고 그 중 다수는 GPU용으로 제작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하늘 매핑에 사용된 3D 투사 매핑 시스템인‘램피지(Rampage)’ 툴이다. 디지털 아티스트들은 램피지를 사용해서 각 장면의 하늘을 고해상도의 커스텀 매트 페인팅으로 빠르게 교체할 수 있었다. 그 수는 다양해서 110개 이상의 하늘 배경이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맑게 개인다양한 하늘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 하늘 이미지의 평균 파일 크기는 3GB 이상으로 최대 규모의 페인팅 작업이 될 정도였다. 어떤 GPU가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해답은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엔비디아의 쿼드로 그래픽카드 및 테슬라 K20 GPU 가속장치였다. 엔비디아 GPU를 사용해 아티스트들은 커스텀 2D 매트 페인팅을 단순한 3D 기하학적 구조에 투사하고, 실시간으로 검토해서 이안 감독과 빌 웨스텐호퍼 시각효과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구현해냈다.
리처드 파커의 비밀, 포토리얼리스틱
리듬앤휴가 제작한 GPU 툴은 램피지 툴만이 아니다. 과거 3Dfx를 떠올리게 하는‘부두’는 트래킹과 애니메이션에 사용됐다. 또한 인하우스 합성 패키지인‘아이시’는 리타이밍 및 옵티컬 플로우, 실시간 색보정 작업에 사용되었다. 이들 소프트웨어는 엔비디아의 쿠다 아키텍쳐를 기반으로 한다. 또한 엔비디아 쿠다(CUDA) 기반의 옵티컬 플로우는 무려 10배의 성능 향상을 제공해, 아티스트들이 원하는 장면을 빠르게 완성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묵직한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CG다. 리듬앤휴는 리처드 파커를 만들기 위해‘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등의 작품에서 특수효과를 제작했던 경험을 다시 활용했다. 당시 주인공 사자 아슬란, 켄타우로스, 미노타우로스 등을 포토 리얼리스틱 기술로 구현해냈던 것이다.
리듬앤휴는 호랑이의 특성과 운동계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소스에서 모은 수백 시간 분량의 참조 영상으로 네 마리의 호랑이를 연구했다. 작업팀은 부두를 활용한 키프레임 애니메이션으로 CGI 퍼포먼스를 구현하고 그 위에 테크니컬 애니메이션 레이어를 더했다. 복잡한 외부 요인에 기반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호랑이의 몸에 섬세한 표현을 덧입히기 위해서였다. 이는 오랑우탄, 얼룩말, 하이에나, 미어캣 등 다른 수많은 동물들과 구명선을 덮어 놓은 방수천, 구명조끼 끈 등 다양한 소품에도 적용되었다. 이 과정 끝에 리처드 파커가 실감나게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많은 머리수의 동물을 한꺼번에 움직이기 위해 리듬앤휴는 자체소프트웨어 패키지인‘매시브(Massive)’를 활용했다. 미어캣 무리를 통제한 복잡한 규칙은 광범위한 키프레임 모션 라이브러리에 기반, 최고 6만 마리의 동물을 한번에 움직일 수 있었다.
엄마! 아빠! 미안해요.
영화 초반부 침춤 호의 침몰로 가족을 잃은 파이는 울면서 외친다“.엄마! 아빠!”이 장면에서 웃음을 터트린 관객들이 적잖이 있었다. 분명히 슬픈 장면이었고, 파이의 감정에 몰입 중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파이가 예상치 못했던 반가운 한국말을 하니 웃음보가 터진 것이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화면을 쳐다봐도 보이는 자막은 틀림없는 엄마 아빠다.
파이가 한국어로“엄마! 아빠!”를 외치게 된 상황에는 재미있는 설정이 숨겨져 있다. 극 중 파이의 고향은 인도 남부의 폰티체리로 설정되어 있다. 남인도에서 주로 쓰이는 언어는 타밀어로 한국어와 유사한 점이 많다. 대표적으로 엄마, 아빠, 아버지, 풀, 강, 쌀 등이 아주 흡사한 발음이다. 이렇게 발음이 흡사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고대 가야에서 지배층이 쓰던 말이 인도의 드라비다어이고 이 언어가 한국어에 조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말을 쓴다는 점에서 인도는 더이상 신비로운 느낌만이 아닌 친근함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