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게임 - 달라지는 게임 심의, 어떻게 봐야 하는가

2013-09-17     PC사랑
지난 5월 22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개정된 게임산업진흥법을 공포하였다. 새로 공포된 개정 법안의 주요 내용은 게임물 등급위원회를 폐지하고 청소년 이용 가능 게임들의 등급 분류를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하는 민간 기관에 위탁하도록 하였으며, 게임물관리위원회를 신설해 청소년 이용 불가 게임 심의와 사후 관리 권한을 위탁하는 것이다. 공포된 내용만 보면 게임계와 게이머들이 원하고 있는 게임에 대한 자율심의로 가는 첫 단추가 꿰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걱정스러운 부분과 우려가 뒤섞여 있다. 과연 어떤 이유 때문인지 알아 보도록 하자.

박원기 death_priest@naver.com
 
 
(지난 호에서 계속)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주장하는 여성가족부의 게임물 평가표를 살펴 보면 게임에서 레벨과 능력을 높이기 위해 역할을 분담하고 협동하거나, 팀원들과 무엇을 해나가는 뿌듯함을 주는 시스템을 '강박적 상호 작용'으로, 게임을 오래 할 수록 그에 맞는 보상이 주어지는 것을 '과도한 보상 구조'로 평가하는 등 게임의 기능들을 매우 악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게임에서 경쟁심을 유발하는 행동 역시 게임 중독의 원인으로 평가하는 등 게임을 무조건 유해한 것으로 정해 놓고 기준을 만든 것이 분명했다. 기존에 게임의 심의만 전문적으로 맡았던 게임위조차 전문성 상실로 비판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편향된 기준을 마련하는 한심한 수준으로 게임 심의에 관여하겠다고 하는 여성가족부의 행동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교육부 역시 교육과학기술부로 활동하던 작년에 학교폭력예방법을 통해 쿨링오프제를 주장하면서 게임 심의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뜻을 내비쳤던 일이 있다. 게임위와 별도로 학계, 교육계, 학부모 단체 등으로 구성한 게임심의위원회를 만들어 별도의 심의를 할 것이며, 이를 교육부와 여성가족부 장관이 책임진다는 식으로 공표한 것이다. 그러나 문화부와의 조율도 거치지 않고 막무가내로 공표한 쿨링오프제는 법안 발의 단계에서 좌초되며 개정 학교폭력예방법에 포함되지 못했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아직까지 게임 규제에 대해 이렇다 할 언급을 하고 있지 않지만 게임과 관련된 상임위원회도 '교육'이 포함되어 있는 만큼, 교육부 역시 게임 심의에 끼어들어 게임의 권리를 노릴 수 있는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게임의 심의까지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청소년 보호’가 아니라‘돈’ 때문이다.
 
 
쿨링오프제를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던 교육과학기술부

 
게임과 관련된 이벤트성 법안을 남발해 주목을 받으려는 국회의원들의 행동도 문제로 지적된다. 당장 올해에 발의된 게임 관련 법안중 게임 규제 측면에서 이슈가 된 사례만 해도 두 건에 달한다. 셧다운제 시간을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확대하고 여성가족부 장관이 인터넷게임 사업자에게 매출액의 최대 5%를 징수하는 법안이 등이 지난 1월 19일 발의되어 큰 파장을 일으킨 이후, 약 석달이 지난 4월 30일에는 인터넷 게임을 술과 도박, 마약과 함께 대한민국 4대 중독으로 분류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게임이 술과 담배, 마약과 같은 유해물처럼 중독을 일으킨다는 명백한 의학적 근거가 없음에도 게임을 무작정 유해물로 낙인 찍는 이런 '게임 악법'들이 마구 생겨나는 것은 주목 받는 이슈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규제를 강화하여 권력과 금전적 이득을 노리는 정치인들의 부적절한 발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청소년 및 학부모들의 권리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이익단체들의 과도한 압력과 개입 역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은 겉으로는 게임의 유해성으로부터 청소년과 가정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게임뇌 이론과 같은 유사과학을 맹신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맞는 여성가족부와 교육과학기술부의 게임 규제에 대해 논리 없는 찬성으로 일관하는 등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권에 의해 움직이는 단체에 지나지 않는다. 셧다운제를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이들이 언론에 퍼뜨린 허위, 과장된 사실들은 게임에 대한 여론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고 이들이 주장한 잘못된 내용들이 아직도 바로잡히지 않은 채 계속 퍼져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점을 볼 때 민간 심의기구에 대해서도 비슷한 양상의 공격을 할 것이라는 추측은 매우 일리가 있다.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등의 게임 심의 권한을 노릴 가능성이 있는 타 부처와, 이들에 빌붙어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이익단체 및 정치인들은 게임계와 문화부가 주체가 되어 부분적이나마 이뤄 낸 민간 심의에 대해 이른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라는 비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게임과 같은 유해한 콘텐츠를 만드는 사업자들이 스스로 등급을 매기고 심사해 게임을 유통하는 것은 잘못되었으니 다시 모든 심의를 국가가 책임져야 하며, 그 주체는 자신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일리가 있는 것 같지만, 그들의 주장은 방송과 출판물의 예만 들어도 대단히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헌법의 가치에도 맞지 않는 매우 위험한 비유라 할 수 있다.
 
게임의 해악을 허위, 과장하는 이익단체의 행동은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더욱 굳어지게 만들고 있다.

 
누가 봐도 과도할 정도의 걸그룹 노출은 프라임 타임에도 아무 여과 없이 방영된다. 현재 자율심의의 잣대가 매우 주관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공중파 및 케이블 방송 콘텐츠는 방송 사업자가 자율심의를 통해 등급을 매겨 방송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사후관리를 하고 있으며 출판물 역시 출판물을 판매하는 사업자가 등급을 매겨 유통한 뒤에 사후 관리를 받고 있다. 방송과 출판에 대한 사전 검열은 헌법상으로 위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게임 콘텐츠의 사전심의 역시 헌법의 관점으로 생각하면 위헌 소지가 있고 선진국의 기준이나 헌법의 가치로 볼 때 콘텐츠 제작자들의 자율심의로 가야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맞는 것이다. 따라서 이치에 맞지 않는 고양이와 생선의 비유까지 들먹이며 시커먼 속내를 내보이는 정부 부처와 일부 정치인들의 권력과 돈만 겨냥한 언행은 어떤 면에서 봐도 부적절할 수밖에 없지만 게임계와 게이머들의 불안감은 잦아들 줄 모른다. 셧다운제가 막무가내식으로 관철되는 과정에서 상식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일들을 이미 겪었기 때문이다.

시행 이후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것이 드러나며 게임계와 게이머들에게 스트레스만 주고 있는 셧다운제를 여성가족부가 처음 주장할때만 해도 국외의 실패 사례, 여성가족부의 부족한 전문성 등을 생각하면 거의 모든 면에서 셧다운제가 받아들여질 만한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청소년 보호를 앞세운 여성가족부의 막무가내식 행보와 문화부 및 게임계의 안이한 대처, 그리고 아이들을 쉽게 통제하려는 부모와 대다수 어른들의 직무 유기는 결국 셧다운제와 게임시간 선택제의 이중 규제를 현실로 만들고 말았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게임에 대한 규제를 더 옥죄는 악법들도 계속 발의되고 있다. 이러니 민간 심의와 관련된 준비를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지 않으면, 제2의 셧다운제 사태가 게임 심의에서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기 때문에 게임계와 게이머들의 불안감이 식지 않는 것이다.
 
 
게이머들의 답답함. 게임계의 딜레마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게임 시장의 직접적 수요자인 게이머들의 반응을 먼저 살펴보면, 개정된 게임산업진흥법으로 인해 청소년 이용 가능 게임의 심의가 민간으로 이양되고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의 심의를 맡게 된 데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먼저 부정적인 관점의 주장부터 정리하자면, 엄연히 폐지되어야 할 게임위가 법안 개정으로 이름만 바꿔 사실상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청소년 이용 가능 게임의 심의를 민간 기관에게 내놓기는 했지만, 청소년 이용 불가 게임의 심의는 여전히 잡고 있기 때문에 민간 심의도 반쪽짜리나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자리잡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또 있다. 민간 심의기관이 있지만 게임물관리위원회에 의해 5년마다 승인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적당한 민간 심의기관이 없을 경우에는 게임위가 있을 때처럼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모든 게임을 다시 심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민간 심의기관과 정부 주도 기관 사이에 상하관계가 도입되면 장차 전면 자율심의로 이행해야 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정부가 게임 심의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입맛대로 행동하려고 할 것이며, 나아가 과거 영등위나 게임위처럼 공권력이 변질되어 게임산업과 게이머들의 권리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는 문제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사전 심의가 존재하고 정부가 이를 주도하는 한 게임 심의를 둘러싼 부정부패는 절대 근절될 수 없으며 게임물관리위원회 역시 영등위와 게임위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쪽의 주장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모든 게임 심의가 민간에 이양되지 않은 것은 당연히 불만족스럽지만 게임 규제를 정당화시킬 목적으로 정치인들과 일부 이익단체, 그리고 언론들이 퍼뜨린 게임에 대한 부정적 목소리들로 인해 게임에 대한 여론이 최근 10여년 간 어느 때보다도 부정적인 상황이고,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등은 물론 일부 국회의원들까지 가세해 청소년이나 교육 등을 전가의 보도로 들이밀며 게임산업에서 금전적 이득과 권력 기반을 마련하려는 분위기가 만연한 상황에서 주무부서인 문화부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일을 했고, 게임계의 바람대로 전면 자율심의로 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정보로 볼 때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설립이 전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점도 긍정론에 힘을 실어주는 요소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게임물관리위원회 설립추진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게임문화재단 이사, 게임산업협회 자문위원, 게임산업진흥원장 등의 게임 관련 행정을 역임한 이들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정책관이 선정되었다. 적어도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설립 과정에서 여성가족부나 교육부 같은 비 전문 부서들이나 게임산업에서 자금을 뜯어 낼 목적으로 게임 악법을 발의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이 직접적으로 끼어들 명분이 희박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며, 게임과 관련된 목소리가 예전보다 잘 반영되지 않는 일 또한 적어질 것이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게임계 현안에 적극적이지 못한 움직임을 보이는 대형 게임사들은 게이머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다.
 

이처럼 개정된 게임산업진흥법에 대해 부정적 의견과 긍정적 의견으로 분위기가 나뉘는 것과는 달리, 새로 생기는 게임물관리위원회자체에 대한 기대나 신뢰도는 거의 일관되게 부정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지난 20여 년 간 영등위와 게임위를 비롯한 정부기관들이 주도해 온 게임 심의 제도 속에서 게이머들은 정부 기관의 비리와 부정부패는 물론 전문성이 결여되고 일관성 없는 모습들을 여러 차례 봐 왔다. 더욱이 정부 및 일부 국회의원들이 주도하는 위헌 소지가 만연한 게임 규제들은 지금도 국민의 건전한 게임 생활에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위의 인력이 100% 승계되지 않고 상임 감사 제도를 채택했지만 정부 주도의 게임 관리 기관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거부감과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형 게임사들과 게임산업협회 역시 게이머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대형 게임사들이나 게임산업협회가 그 동안 민간심의에 대한 준비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가 개정된 게임산업진흥법으로 게임위가 폐지되는 것이 확실시된 지난 3월에야 민간 심의기구 설립을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늑장 대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게이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전의 영등위나 게임위에서처럼 게임 심의 구조가 게임을 즐기는 데에 방해가 되고 자유를 제약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게이머들은 게임계의 늑장 대응에 대해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고 있으며, 게임계가 원하는 민간 심의 구조가 마련되었는데도 그에 대해 늑장 대응을 하는 태도를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꼬집고 있다.
 
하지만 게임계에 대한 게이머들의 불만에는 심의 문제로 인한 게임을 즐길 권리가 침해되는 것 말고도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게임계가 게이머와 게임계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데에 대한 불만이다. 지금껏 셧다운제를 비롯한 각종 게임 규제와 게임 악법을 통해 게임은 문화 콘텐츠가 아닌 유해물 취급을 받고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았으며 그 과정에서 게이머들 역시 단지 게임을 즐긴다는 이유로 역시 사회 부적응자나 예비 범죄자로 취급되는 등 직간접적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게임계는 일부 게임사 대표의 지스타 보이콧 선언을 제외하면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는 커녕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게이머들은 게임에 돈과 시간을 들인 고객들이고, 고객의 이익을 대변해 주지 못하는 게임계의 지지부진한 행동이 게이머들에게 곱게 보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게임 악법에 반발해 지스타 보이콧을 선언한 위메이드 남궁훈 대표의 발언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다.
 

물론 게임계도 게이머들의 비판에 대해 항변할 말은 있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게임 심의 그 자체를 신경쓰기에도 벅차다는 것이다. 바뀐 심의로 인해 절차가 변경되는 것과 게임 심의 비용이 증가할수 있는 부분은 게이머들의 생각과는 달리 작은 문제가 아니다. 부가가치가 높고 많은 매출을 거두는 것으로 알려진 게임계에서 심의수수료를 걱정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이머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큰 이윤을 내는 게임사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영세 게임사들은 셧다운제 시스템을 구비하고 주민등록번호 수집 및 이용을 금지하는 인증절차를 마련하는 데에 소요되는 연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비용에도 경영상의 타격을 받을 정도이며, 특히 소수 인원으로 구성되는 신생 게임기업들에게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심의 자금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손익을 걱정해야 할 만큼 영세한 게임사들에게는 심의 수수료 인상만으로도 결정적 타격이 되며. 이렇게 되면 대형 게임 기업이나 권력기관에 의해 게임계가 좌지우지 되는 일이 지금보다 더욱 심각하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게임계에서는 심의 제도의 변경과 이로 인한 게임계 내부의 역학관계를 굉장히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일부 게임 관계자들은 민간 자율심의를 한다고 해서 게임사에게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민간 자율심의가 되면 그 책임을 거의 모두 게임사들이 감당하게 되고, 지금처럼 게임에 대한 여론을 무작정 나쁘게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라면 게임사들이 이전에 비해 더욱 사회적으로 공격의 대상에 오르게 되며 결국 게임산업이 더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염려만으로 천신만고 끝에 얻은 자율심의의 기회를 박차거나, 게이머들에게 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더욱 문제가 되는 일이기 때문에 게임계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를 겪고 있다.
 
 
게임 심의의 권리와 의무, 받아들여야 할 때

개정된 게임산업진흥법은 게이머의 시각에서 보나 게임 관계자의 시각에서 보나 만족스러운 법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면 자율심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게임 심의가 권력화될 수 있는 위험성도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자율심의로 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지만 당장은 이 기구 저 기구 찾아 다녀야 하는 복잡함을 겪을 수도 있으며 게임 심의가 게임 제작자들의 창작을 막는 걸림돌이 되는 현실 역시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한민국에서는 게임 심의가 권력화되면서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은 사실상 불법 취급 받고 있으며 이것은 게임계 발전은 물론 다양한 게임을 접하는 데에도 엄청난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

PC나 콘솔 기기 정도로 게임의 플랫폼이 획일화된 10년, 20년 전이라면 심의를 누가 하든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받아들여졌을지 모르나 이제는 SNS와 스마트폰, 웹 브라우저와 플래시 애니메이션 등의 다양한 플랫폼과 수단으로 게임이 유통되고 있다. 이런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여 게임업계의 발전이 이루어지려면 심의 제도도 다른 문화 콘텐츠처럼 자율심의로 가야 하는 것이 맞으며, 심의를 받지 않고도 인디 게임을 유통하게 하는 창작의 자유가 절실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불완전한 제도 아래에서는 현실을 반영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으며, 그렇기에 더욱 답답할 수밖에 없다.
 
PC 온라인 게임도 모바일 게임들처럼 결국 자율심의로 가는 것이 정답이다.
 
게임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에 대해 맞서 싸우는 것은 권리라기보다 의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제 책임을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게임계가 적극적으로 나서기에 좋은 시기일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위험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의 비약적 발전을 시작으로 약 20년의 세월 동안 가파르게 성장해 온 대한민국 게임 산업에 대해, 게임사와 게임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말이 지금처럼 강조된 적은 없었고 지금처럼 게임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조장된 시기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기된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말들의 속내를 뜯어 보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사례에 의거한 말들이라기보다는 게임으로 이득과 권력을 취하려 하는 세력의 편향되고 일방적 주장이 대부분이다.

그런 악의적인 언사를 통해 게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이들의 생각속에는 게임의 사회적 책임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의식보다 게임을 술이나 담배, 마약, 도박과 같이 취급하고, 아케이드 게임장이 학생들의 방과 후 활동 장소가 되자 학교가 학생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게임을 '공부에 방해되는 것'이나 '나쁜 것'으로 선전했던 해묵은 고정관념들이 자리잡고 있다. 당연히 비논리적이고 잘못된 말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고정 관념들이 오랜 동안 설득력을 얻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게임에 대한 편견을 키우는 데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고정관념을 키우게 된 것은 게임계의 책임도 일부 존재한다.

잘못된 근거에 의한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피해를 입는 대상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게임계에서 게임에 대해 제기되는 여러 문제에 대해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해야 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었고, 책임을 감당하고 받아들여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게임계는 지난시간 동안 사회에서 제기된 게임에 대한 목소리에 대해 명확한 의견과 행동을 표현하는 데에 미흡했고, 의무를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다. 게임계 자신이 지켜 내야 할 의무가 있는 게임계와 게이머의 권리에 그 동안 게임계에서 얼마나 노력을 했느냐고 누가 반문한다면, 무엇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필자도 게임계에서 일하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그와 동시에 게임계가 게임 현안에 대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않는 부분과, 게임계가 게임을 만들고 유통하는 것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받아들여야 함에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데에 대해 분개하는 사람 중 한명이기도 하다. 게임계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낸다 한들 모든 것이 바뀐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게임계가 게임을 둘러싼 현안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 왔다면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졌을때 사행성 도박물을 온라인 게임과 동일시하여 오해하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더 줄어들었을 것이고, 게임의 등급이 유명무실하고 청소년에 대한 관리 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금지시키는 셧다운제가 법제화되는 초유의 사태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 역시 좀 더 줄어들었을 것이다.
 
 
더욱 가능성 있는 게임이 태어나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이제는 게임 심의의 권리와 의무를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닐까?
 

세상에서 말하는 게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일부 정치인들이나 이익단체가 자기의 잇속을 위해 요구하는 것처럼 그들이 요구하는 수 백억 원에서 수 천억 원의 돈을 내거나 게임계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는 소리에 굴복하라는 것이 아니다. 게임이 문화 콘텐츠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게임을 만들고 유통함으로써 얻어지는 권리에 대한 책임을 당연히 져야 하고, 부당한 책임을 요구할 경우 이에 대해 단호히 거부할 수 있는 자세도 갖춰야 하는 것이 합당한 자세가 아닐까? 지금 게임계에는 다소 불완전하지만 '민간 심의'라는 또 하나의 권리가 주어졌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권리에 대한 의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장차 게임계에서 꿈꾸고 게임에 우호적인 이들이 주장하는 전면 자율심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당위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치며

최근 게임계 주요 인사들과의 회동에서 유진룡 문화부 장관은 게임의 규제에 대해 게임계에서 자율적으로 규제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들도 모두 설득시킬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하며, 게임의 규제나 제도 개선에 대한 이슈를 내부에서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게임 외부와도 적극 대화하며 편견을 없애는 노력이 따라줘야 한다고 말했다. 억울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도 모자라 근거가 희박한 게임 규제들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게임계에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이들을 설득시키고 편견을 없애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무작정 거부하는 것도 그렇게 합리적인 자세는 아닐 것이다.

게임이 세상으로 한 걸음씩 더 나서고 더 많은 권한을 가져갈 수록 게임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은 더 많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자유가 있으면 책임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완전하지만 민간 자율심의의 기초가 마련된 지금, 시간은 별로 없다. 남은 기간 동안 잘 준비해도 잡음이 없다고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임계가 꿈꾸는 전면 자율심의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더 이상 늑장을 부리거나 소극적으로 움직여서는 안 되고, 정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먼저 게임계가 움직여야 한다. 기회는 살릴 수 있는 자의 몫이고, 권리는 지킬 수 있는 자의 몫이다.
 
 
기술은 2013년인데 게임에 대한 관념은 90년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이를 타파하는 것도 게임 산업 발전을 위한 과제 중 하나다.

 

최근 명칭을 바꾼 게임물등급위원회의 등급 관련 규정. 상세하고 친절해 보이지만 속속들이 알고 보면 전체 게임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탁상공론의 암울한 산실에 대한 게임 업계의 지성적인 대처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