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법정관리로…, 반복되는 팬택 잔혹사
2014-10-07 stonepillar
2012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부진으로 올 초 두 번째 워크아웃을 신청했던 팬택이 지난 8월 12일부로 결국 기업회생절차, 즉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이제 팬택의 운명은 법원의 판단에 달렸다. 팬택은 계속되는 경영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7월, 채권단이 가진 3000억 원의 채권을 출자전환하고 워크아웃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있었는데, 이동통신3사가 보유한 1800억 원의 채권에 대한 출자전환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동통신사들은 팬택 채권단의 이러한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고, 팬택은 설립 23년 만에 존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삐삐에서 스마트폰까지, 벤처 신화 팬택
팬택은 1991년 박병엽 전 부회장이 설립한, 올해로 23년을 맞이하는 이동통신 단말기 전문 제조회사다. IT벤처의 성공 사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기업 중 하나가 바로 팬택인데, 자본금 4000만 원과 6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회사가 불과 6년 만에 연매출 762억 원을 달성하는 초고속 성장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팬택의 초기 사업은 무선호출기인 ‘삐삐’를 제조해 판매한 것이었는데, 촉망받는 영업맨 출신이었던 박병엽 전 부회장의 수완이 이런 고속 성장을 이뤄낸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1997년 팬택은 LG정보통신(현 LG전자)으로부터 OEM 휴대전화 공급 계약을 따내면서 본격적으로 휴대전화 사업에 진출했고, 같은 해 증권거래소에도 상장됐다. 1998년에는 모토로라로부터 인수제안을 받기도 했을 정도로 전망이 밝은 회사였는데, 이때 박병엽 전 부회장은 오히려 모토로라의 투자를 이끌어 내는 협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에는 매출 2871억 원을 달성했고, 이듬해에는 만년 적자로 현대전자의 골칫거리였던 현대큐리텔을 과감하게 인수하면서 단숨에 연매출 1조 원을 넘어서는 쾌거를 이뤘다. 현대큐리텔은 팬택&큐리텔로 회사명을 변경하고 인수한 첫 해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팬택은 2003년 연결매출 2조 원을 넘어섰고, 다시 2005년에는 SKY 브랜드로 유명한 SK텔레텍을 인수합병하면서 연매출 3조 원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러나 이때 이미 팬택의 내실은 크게 부실한 상태였다. 2005년 팬택 계열의 연결매출은 3조 원을 넘어섰지만, 팬택만 놓고 봤을 때는 423억 원의 영업 손실이 발생했다. 인수합병에 따른 비용 지출과 중국 등 국외 시장 개척을 위한 투자비용 등이 원인으로 지적받았다. 그러나 기대 했던 인수합병 효과는 미미했고,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운 국외 시장에서의 실적 역시 부진하면서 결국 2006년 12월 채권단에게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2007년 4월 채권단은 팬택이 신청한 워크아웃을 최종 승인했고, 이후 4년 8개월의 시간 동안 팬택은 채권단의 관리 하에서 기업개선 작업을 지속해 나갔다. 임원 60%를 포함해 전체 인력의 35%를 구조조정으로 잘라 냈고, 국외 유통라인도 50개국에서 10개국으로 대폭 축소하는 등 비대해진 몸뚱이를 축소하는데 전력을 기울인 팬택은 워크아웃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2007년 3분기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후 2011년 12월 공식적으로 워크아웃을 종료 할 때까지 18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완벽히 부활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싶었다.
약 주고 병 준 ‘베가레이서’
팬택이 워크아웃을 진행하는 동안 휴대전화 시장은 스마트폰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었다. 특히 2009년 아이폰이 국내 시장에 정식 발매되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는데, 팬택은 과감한 투자로 신제품을 개발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스마트폰 시장 공략에 나섰다. 팬택의 전략은 성공적으로 먹혀들며, 2010년 한 해 동안 총 98만 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하면서 LG전자를 제치고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 중 2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같은 해 팬택은 매출 2조 775억 원, 영업이익 839억 원을 기록했다. 2009년과 비교해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하락세를 보였지만, 휴대전화 시장이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많은 제조사들이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던 상황에 비춰 보면 고무적인 실적이었다. 게다가 팬택의 질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팬택은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호조를 바탕으로 2011년 매출 2조 9820억 원, 영업이익 2184억 원이라는 실적을 달성하면서 마침내 워크아웃에서도 탈출하게 된다. 당시 팬택의 주력 제품은 ‘베가레이서’였는데, 2011년 6월에 출시된 이 제품은 10월 말 판매량 100만 대를 돌파하더니 12월 말까지 125만대를 팔아치웠다. ‘베가레이서’의 인기는 해가 바뀌어도 멈추지 않았으며, 2012년 12월 말까지 총 180만 대의 물량이 출하되면서 팬택 역사상 가장 성공한 제품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가레이서’는 양날의 검이 되어 이후 팬택의 스마트폰 사업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만다. ‘베가레이서’는 퀄컴의 듀얼코어 AP인 스냅드래곤S3가 세계 최초로 탑재된 제품으로 빠르다는 의미에서 ‘레이서’라는 이름을 갖게 됐지만, 사실 완성도가 썩 높은 단말기는 아니었다. 연속터치 문제와 강제부팅의 문제를 비롯해 자질구레한 버그들이 산재해 있었고, 이에 대한 사후 대처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폭주하게 된다. ‘베가레이서’의 성공은 팬택이라는 회사와 ‘베가’라는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데 성공했지만, 동시에 ‘베가’의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린 요인이 돼 버렸다.
‘베가레이서’의 부메랑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2011년 좋은 실적을 달성하며 워크아웃을 종료한 팬택은 다음 해인 2012년 매출 2조 2344억 원에 영업손실 776억 원을 기록했다. 불과 1년 사이에 매출은 25.8%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적자전환 한 것이다. 판매량을 보면 국내에서보다 국외에서의 실적이 2011년 882만 대에서 2012년 518만 대로 급감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2013년의 실적은 더욱 처참해서 매출 1조 3356억 원, 순손실 6272억 원을 기록했다. 결국 2014년 2월 팬택은 2년 2개월 만에 다시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이르렀다.
치명타가 된 이통사 영업정지
물론, 팬택이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가 단순히 ‘베가레이서’ 때문만은 아니지만, 주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베가레이서’는 소비자들에게 팬택 스마트폰에 대한 불신감을 안겨줬고, 많이 팔린 만큼 그 파급력은 더욱 컸다. 팬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지면서 점차 팬택의 스마트폰은 이른바 ‘공짜폰’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 현상도 심화됐고, 팬택으로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으로 과도한 보조금을 지속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사실 팬택의 전략은 시장 초기부터 박리다매였다. 경쟁사의 제품보다 더 많은 보조금을 지원함으로써 단말기를 저렴하게 공급하고 판매량을 늘려 승부를 보겠다는 계산이었다. 단말기 하나, 하나의 수익률은 현저히 낮아지지만, 어쨌든 공급과 수요가 적절히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생산라인을 지속적으로 가동하며 회사를 운영해 나갈 수 있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팬택의 이런 전략은 스마트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시기와 맞물려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세는 눈에 띄게 둔화 된 반면, 시장 경쟁은 점차 치열해졌다. 국내에서는 팬택에 밀려 3위로 주저앉았던 LG전자가 조금씩 기지개를 켜면서 압박해 들어왔고, 국외 시장에서는 중국 제조사들의 급성장으로 팬택의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사실 최근의 팬택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후 서비스 지원에도 많은 투자를 했고, 무엇보다 작년부터 출시된 스마트폰들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이미 배는 떠난 다음이었다.
결과적으로 점차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서 악성 재고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는 팬택이 선택한 시장 전략의 근간이 되는 공급과 수요의 밸런스가 무너진 것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팬택은 심각한 자금난에 허덕이게 된다. 연구 개발, 제품 생산, 그리고 마케팅 등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 했지만, 제품이 팔리지 않으니 부채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13년을 시작할 시점에서 이미 팬택의 부채 비율은 2400%였다고 하며, 같은 해 10월 보도에서는 무려 5400%의 부채비율을 보여주고 있었다. 1차 워크아웃 직전이었던 2006년 9월 팬택의 부채 비율이 478%였으니, 현재 팬택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팬택에게 결정타를 가한 것은 이동통신사들의 영업정지였다. 지난 해 하반기 팬택은 ‘베가아이언’, ‘베가 시크릿노트’ 등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고, 다시 기사회생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올 3월 이동통신사들이 역대 최장 기간의 영업정지에 들어가면서 팬택은 결국 마지막 회생의 기회마저 막히게 됐다.
워크아웃? 법정관리?
팬택이 현재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워크아웃이니, 법정관리니 하는 용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 한다. 워크아웃과 법정관리 모두 실적이 악화되어 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을 구원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관련법과 실행 주체가 각각 다르며, 워크아웃 보다 법정관리가 더 많은 제약을 갖고 있다. 워크아웃은 보통 기업개선작업이라고 하며 법정관리는 기업회생절차로 부르기도 하는데, 단어 선택에서 두 제도의 미묘한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워크아웃은 일반적으로 금융권 채권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기업개선작업이다. 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이 채권단에게 신청할 수 있으며, 채권단은 기업의 회생가능성을 따져보고 워크아웃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 대부분 기업들이 은행에서 돈을 끌어다 쓰기 때문에 채권단은 금융권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도산위기에 처한 기업이 법정관리로 넘어가면 사실상 채권단은 막대한 손해를 입기 마련이다. 그러나 워크아웃을 통해 기업을 회생시킬 수 있다면, 손해를 최소화하거나 장기적으로 이익을 볼 수도 있다.
워크아웃 절차가 시작되면, 채권단은 기업이 가진 부채의 상환 기한을 유예하거나 일부를 탕감, 혹은 출자전환을 통해 기업이 가진 채무의 부담을 줄여준다. 이와 함께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자금지원도 이루어진다. 대신 채권단은 기업에게 강력한 구조조정과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요구하고 부실 경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관리감독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통해 기업이 다시 정상궤도에 오르게 되면 유예된 채무를 회수할 수도 있고, 취득한 주식을 매각하거나, 아니면 기업 자체를 매각해 이익을 얻기도 한다. 실제로 팬택도 2011년 말 워크아웃이 끝나갈 시점에서는 매각을 고려하기도 했었다.
법정관리 역시 기본적인 취지는 워크아웃과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법원이 개입한 만큼 워크아웃보다는 강제성을 띄게 되며,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시점부터 모든 채권채무가 동결된다. 채권자들이 진행 중인 경매, 압류, 가압류 등의 절차도 즉각 중단되며 심의가 끝날 때까지 어떤 법률행위도 허가되지 않는다. 또, 경영진의 주식이 소각되면서 경영권도 박탈되는데,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기업이 도산하기 전에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법정관리를 신청할 경우 부도를 낸 기업주에 대한 민사상 처벌이 면제되는데 부실기업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관리 절차가 승인되면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기업회생절차의 관리 감독을 맡게 되며, 워크아웃과 마찬가지로 구조조정과 재무구조 개선 등 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한 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관리 감독 책임자는 보통 외부에서 전문가를 초빙하지만, 최근에는 경영의 연속성 유지라는 측면에서 기존의 경영자를 임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공적자금이 투입되기도 한다. 법정관리 심사에서 기각되면 바로 파산절차에 돌입하게 되며, 법정관리에 들어간다고 해도 살아나지 못한다면 같은 길을 걷게 된다.
실제 법정관리 인가율은 평균 20%대라고 하며, 부도를 낸 기업이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절차인 만큼 회생 확률은 더 낮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기업이 갑작스럽게 무너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ㆍ경제적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법정관리 제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팬택의 법정관리, 앞날은?
과정이야 어찌 됐든 법정관리를 신청한 팬택의 생사여탈권은 법원이 쥐게 됐다. 팬택 앞에 놓인 시나리오는 세 가지였다. 법정관리가 받아 들여져 구조조정과 조직구조 개편을 통해 다시 한 번 회생 기회를 주거나, 관심을 보이는 중국 혹은 인도 등 외국 기업에게 매각을 하는 방법이 있다.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는 파산해서 문을 닫는 것이지만, 8월 19일 법원은 팬택의 법정관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이 시나리오는 폐기됐다.
법정관리의 통과 여부는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전망됐었다. 올 초 2차 워크아웃 신청 당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청산했을 때 가치는 1895억 원이었던 반면, 회생가치는 3824억 원으로 평가되기도 했던 만큼 살리는 쪽이 이득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게다가 팬택의 협력 업체만 해도 500개 이상이기 때문에 관련 업체들의 줄도산을 막기 위해서도 일단은 살려야 한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 법정관리 신청으로부터 일주일 만에 결과가 나온 것도 이런 부분들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팬택의 회생은 패스트트랙 방식을 적용해 최대한 신속하게 추진될 방침이며, 법률상 관리인은 현 팬택의 대표이사를 그대로 선임했다. 이와 함께 채권자 협의회가 추천하는 인사를 구조조정담당임원으로 위촉해 회생절차와 관련된 업무를 사전 협의할 수 있도록 했다. 향후 일정은 9월 2일까지 채권자 목록을 제출하고, 19일까지 채권 신고를 마친 후, 채권 조사를 거쳐 11월 7일 첫 관계인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그러나 현재 막대한 채무를 지고 있는 상황에 쌓여 있는 재고 역시 만만치 않은 규모이기 때문에 이동통신사들과 채권단의 지원 없이 팬택이 독자적으로 생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이동통신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팬택 스마트폰의 재고는 약 70만 대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법정관리 직전 이동통신사들은 팬택 단말기의 추가 구매를 거부한 바 있다. 대신 채무 상환에 2년의 유예기간을 두는 선에서 팬택을 지원하기로 했다. 법원에서도 회생계획을 인가하기 전 인수합병을 빠르게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운 만큼 남은 것은 매각처를 찾는 일이다.
팬택, 과연 팔릴까?
사실상 가장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는 외국 기업으로의 매각 추진이다. 국내 기업으로의 매각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여건상 팬택을 떠안으려는 기업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동통신사가 인수할 가능성에 대한 전망도 있지만, SKT의 경우 반독점법으로 인해 과거 SK텔레텍을 팬택에 매각한 만큼 다시 제조사를 인수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며, KT 역시 2012년 산하에 있던 KT테크를 청산하면서 제조 사업에서 손을 뗀 만큼 이제 와서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팬택을 인수할 이유가 없다. 차선책은 외국 기업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기술 유출의 문제. 팬택은 오랜 기간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2위 제조사의 위치를 유지해 왔고, 초기의 문제가 많았던 제품 완성도와 비교해 최근 제품들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의 후발 주자들에게는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조건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는 팬택만이 가진 핵심적인 원천 기술이 없는 데다, 최근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기술력 역시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에 팬택으로 인한 기술 유출 문제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반대로 외국 기업 입장에서도 딱히 팬택을 인수할 매력 포인트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팬택을 인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 사실상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논외로 치고, 국내 시장에서의 제품 경쟁력과 서비스 인프라, 그리고 설비 등을 고려해 봐야 한다. 제품 경쟁력을 먼저 살펴보면, 초기 ‘베가레이서’와 달리 최근에 출시된 ‘베가 시크릿노트’, ‘베가아이언2’ 등은 상당히 뛰어는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어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브랜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문제긴 하지만, 이는 마케팅 역량으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른 하나는 인프라. 단말기의 유통 자체는 이동통신사가 주도하고 있지만, 사후 서비스는 제조사가 담당해야 하는 만큼 서비스 인프라는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실제로 팬택 제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초기 사후 지원이 엉망이었다는 점도 한 몫 했다. 이후 팬택은 서비스에 대한 개선을 위해 투자를 지속적으로 해 왔으며, 현재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국내 시장에 진출하고 싶은 외국 기업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다.
또 하나 긍정적인 부분은 팬택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채무의 상당부분을 덜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올 초 중국의 화웨이와 인도의 마이크로맥스 등의 외국 기업들이 관심을 보였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팬택이 지고 있던 어마어마한 부채 규모에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팬택의 운명은 이제 자신들의 손을 떠났으며, 혹독한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제 남은 걱정은 팬택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소비자들이다. 팬택의 실적이 안 좋았다고는 하지만, 한 때 국내 시장에서 2위의 판매량을 달성하기도 했던 만큼 현재 수백만 명의 소비자들이 팬택의 스마트폰들을 사용하고 있다. 팬택의 사정이 안 좋다는 이유로 이들을 외면한다면 결과적으로는 ‘베가레이서’의 상황이 다시 반복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smart PC 사랑 | 석주원 기자 juwon@ilovepc.charislaurencreati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