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시절’이 지난 모바일게임 개발사,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15-10-10     stonepillar

인터넷 용어 중에 ‘리즈시절’(주1)이라는 말이 있다. 순화해서 표현하면 가장 형편이 좋았던 시기, 즉 전성기를 의미한다. 모바일게임이 대세가 된 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났다. 그 동안 수많은 모바일게임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졌으며, 그 중에서는 국민게임이라고 불리며 리즈시절을 보낸 게임들도 있다. 하지만 온라인게임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은 모바일 플랫폼의 특성상 ‘리즈시절’ 그리 길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리즈시절이 지난 게임들은 어떻게 됐을까? 또, 그 게임을 개발했던 개발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주1: 본래 축구 팬들 사이에서 사용되던 말로, 유래를 살펴보면 박지성 선수의 팀 동료였던 앨런 스미스 선수가 전 소속팀이었던 리즈 유나이티드에 있을 때보다 부진해 안타깝다는 의미로 ‘리즈 시절에는 정말 잘 했는데’ 라고 사용한 데서 비롯됐다. 사실 ‘리즈시절’이 대중적으로 퍼지게 되기까지에는 좀 더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여기에서 풀어쓰기에는 내용이 기니,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자.
 
 

징가는 소셜네트워크게임(이하 SNG) 전문 개발사로 2007년 마크 핀커스를 비롯한 4명의 공동 창업자에 의해 설립됐다. 마크 핀커스는 개발자 출신은 아니었고, 경제학을 전공한 후 금융 애널리스트와 벤처 캐피털을 거쳐 하버드 경영대학원 MBA까지 섭렵한 사업의 스페셜리스트였다. 하버드에서 MBA를 마친 다음 텔레커뮤니케이션(현 AT&T케이블)에 들어가 사업 개발 매니저로 일하다, 다시 1년 만에 컬럼비아 캐피털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때 미디어 및 소프트웨어 사업 투자를 결정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투자 전문가로 IT 시장을 지켜보던 마크 핀커스는 1995년 29살의 나이에 창업을 결심했다. 첫 도전은 프리로더라는 인터넷 기반의 푸시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였는데, 설립 7개월 만에 3800만 달러에 팔리는 잭팟을 터트렸다. 단번에 거금을 거머쥔 그는 1년 동안 실리콘밸리에서 배회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러다 1997년 두 번째 회사를 창업했지만, 벤처 캐피털과 갈등이 발생해 지분을 매각하고 회사를 떠났다. 2003년에 세 번째 창업을 하지만, 이 역시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세번째 창업을 실패하고 휴식기를 가진 마크 핀커스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데, 이것이 바로 온라인 소셜 게임을 서비스하는 회사 징가였다.
 
마크 핀커스에게 있어 네 번째 창업이 되는 징가는 가파른 성장세를 타고 있던 페이스북 플랫폼으로 소셜 게임을 서비스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징가의 첫 게임은 텍사스 홀덤 포커(징거포커)였는데, 이 게임은 현재까지 징가에게 큰 수익을 가져다 주고 있다. 이후 ‘팜빌’, ‘마피아워즈’, ‘시티빌’ 등을 연이어 출시하며, 설립 2년 만에 연매출 2억 달러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9년 12월 기준으로 일 이용자 수가 6000만 명을 넘어섰으며, 리즈시절 징가 게임을 즐기는 활성화된 계정의 숫자는 월 2억 50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징가는 초기에 페이스북에서만 게임을 서비스했지만, 애플 아이폰 출시 이후 플랫폼을 iOS로 확장했고 안드로이드는 나증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내에서 징가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 iOS용 ‘마피아워즈’가 인기를 끌면서였다. 이후 ‘위룰’이 성공하면서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됐는데, ‘위룰’은 징가가 자체 개발은 아니었고 징가에서 인수한 뉴토이가 개발한 게임이었다. 서비스도 징가가 아닌 엔지모코(ngmoco)에서 담당했다. 이 당시의 징가는 약 30여개의 개발사들을 인수하는 등 진정한 리즈시절을 보내며, 국내 게임 업계의 롤모델로 꼽히기도 했다.
 
징가는 2011년 12월에 나스닥에 상장됐는데, 상장당시 주당 10달러였던 주가가 2012년 1분기 14.5달러까지 오르며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2분기 징가의 주가는 3.05달러까지 급락했고, 3분기에는 다시 2.3달러까지 떨어졌다. 이 기간 1억 5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급격히 나빠진 이유에 대해 징가는 기존 게임들의 수명이 빠르게 소진되는 와중에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게임의 출시가 늦춰졌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징가의 상황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2013년 매출 8억 7327만 달러, 영업손실 6563만 달러, 순손실 3698만 달러의 실적을 기록했다.
 

사실 징가는 창의적인 발상으로 새로운 게임을 개발해 시장을 주도하는 회사가 아니었다. 애초에 창업자인 마크 핀커스 자체가 어디까지나 사업가였고, 처음 서비스한 게임도 포커였다. 게임 자체로 성공을 거두었다기보다는 막 뜨기 시작한 소셜네트워크라는 플랫폼을 잘 활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징가는 다른 회사의 게임들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소송을 당한 바 있고, 게임 안에서도 특정 브랜드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었다. 또한, 징가는 F2P(Free to Play), 우리말로 하자면 부분유료화에 있어서 악명을 떨친 회사이기도 한데, 여러모로 국내의 모 업체와 겹치는 부분이 많은 회사다.
 

 
 

징가가 소셜게임 시장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면, 로비오는 초창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전설을 만든 회사라고 할 수 있다. 로비오는 2003년 헬싱키 공대(현재는 알토대학교로 통합)를 다니던 세 명의 학생들에 의해 설립된 모바일게임 개발사로, 설립 당시 이름은 Relude였다. 2005년 로비오 모바일로 이름을 바꿨다가, 2011년에 다시 로비오 엔터테인먼트로 변경해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참고로 로비오는 핀란드어로 모닥불을 뜻한다고 한다.
 
로비오는 2009년까지 크게 눈에 띄는 게임하나 없는, 일설에는 망하기 직전의 회사였다가 ‘앵그리버드’로 대박을 터트리며 세계 게임사에 한 획을 긋게 됐다. 어디서 많이 보던 패턴. 심지어 로비오 홈페이지에서도 ‘앵그리버드’ 이전의 게임은 올라와 있지도 않다. ‘앵그리버드’ 이외에도 몇 개의 게임을 출시했지만, ‘앵그리버드’ 만큼의 주목도, 성공도 거두지 못한 모습이다. 그러나 징가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서 회사는 여전히 잘나가고 있다. 로비오의 2013년 실적을 보면 매출 1억 5600만 유로(약 2110억 원), 순이익 2690만 유로(약 364억 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전설이 된 ‘앵그리버드’는 날지 못하는 새를 새총으로 날려보내는 퍼즐 액션 게임으로, 매우 심플한 조작 방식과 의외로 높은 수준의 물리 엔진, 그리고 개성 강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조합되면서 전례 없는 대성공을 만들어 냈다. ‘앵그리버드’의 무서운 점 중 하나는 게임 내에 어떠한 텍스트 형태의 튜토리얼이나 메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임 시나리오부터 튜토리얼 등을 모두 그림으로만 설명하는데, 이해하기도 쉽고 어차피 직접 게임을 몇 번 하다보면 금세 익숙해 진다.
 

‘앵그리버드’는 돼지들에게 알을 도둑맞아 화가 난 새들이 돼지들을 처단하고 알을 되찾아 온다는 심플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게임은 스테이지 방식으로 구성돼 있으며, 새를 새총에 실어 돼지들이 만든 건축물로 발사해 무너뜨리는 것이 기본 게임 방식이다. 새의 종류에 따라 발동할 수 있는 액션이 달라서 머리를 적절히 써야 하는 퍼즐 요소와 정확히 원하는 방향으로 힘과 방향을 조절해서 날려야 하는 액션 감각, 그리고 약간의 운이 더해지면서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한다.
 

레벨 디자인도 절묘해서 각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게 만든 대신, 고득점을 얻는 건 어렵게 디자인돼 있다. 최근 ‘캔디크러쉬사가’ 등 스테이지형 게임들에서 별의 숫자로 달성도를 매기는 형태를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앵그리버드’는 그들의 선조격인 게임이다. 특히 조금만 더 노력하면 별 세 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자극하며, 여기에 빠지기 시작하면 그 어떤 게임보다도 높은 중독성을 보여준다.
 

‘앵그리버드’는 2009년 12월 iOS로 처음 출시됐고, 2010년 10월까지 1200만 다운로드를 달성했다. 이는 무료 버전을 제외한 0.99달러에 판매된 유료 버전의 실제 판매량이다. 이후 안드로이드를 비롯해 심비안, palmOS, 미고, 윈도우폰7 등 거의 대부분의 모바일OS 버전을 출시했으며, 심지어 삼성전자의 바다OS까지 섭렵했었다. 모바일 뿐 아니라 PC, 맥, 콘솔게임기에 이르기까지 실행이 가능한 거의 대부분의 플랫폼으로 출시됐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앱 마켓에서는 전 세계 79개국에서 1위를 달성한 기록도 있다. ‘앵그리버드’ 성공 이후 로비오는 정식 후속작은 물론이고, 다양한 파생작과 특별 에디션을 출시했는데, 지금까지 출시된 모든 시리즈의 누계 다운로드 수는 무려 20억 회를 넘었다고 한다.
 

현재는 게임 외에도 ‘앵그리버드’의 캐릭터를 이용한 캐릭터 사업과 테마공원 사업까지 하는 등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다만 로비오도 ‘앵그리버드’ 시리즈 이후에는 성공한 게임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앵그리버드’에 악역으로 나오는 돼지들을 주인공으로 한 게임도 나왔는데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참고로 한국 지사도 있다.
 
 
 

조이시티는 1994년에 설립된 1세대 온라인게임 개발사 중 하나다. 초창기 MMORPG를 서비스할 때는 크게 전망이 좋은 회사는 아니었는데, 온라인농구게임 ‘프리스타일’이 성공을 거두면서 온라인게임 시장을 대표하는 개발사 중 하나가 됐다. 이후 ‘프리스타일’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후속작을 비롯한 다양한 신작을 선보였지만, ‘프리스타일’을 대신할 만한 차세대 성장동력이 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던 중 게임 시장에 모바일 열풍이 불면서 조이시티는 또 한 번의 도약을 맞이하게 된다.
 

조이시티는 2011년 4월 ‘룰더스카이’라는 SNG를 출시했는데, 사실 출시 당시만 해도 ‘위룰’의 수많은 모방 게임 중 하나로 치부됐다. 그러나 ‘룰더스카이’는 국내 이용자들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기존의 SNG 이용자들을 끌어 모으는데 성공한다. SNG의 특성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기세를 탄 ‘룰더스카이’는 빠르게 이용자를 늘려 나가며 출시 6개월 만에 일 이용자 수 20만 명을 돌파했고, 월매출 9억을 달성했다. 지금이야 일매출 수 억원을 기록하는 게임들도 많지만, 그 당시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은 잠재력은 높게 평가 받으면서도 실질적인 시장 규모는 매우 작았었다. ‘룰더스카이’는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율의 성장을 주도하며, 2012년 초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처음으로 누적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최근 모바일게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1위만 달성하면 국민게임 타이틀을 내세우고 있지만, ‘룰더스카이’는 무려 193일 동안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 매출 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진정한 국민게임의 위용을 보여주기도 했다. ‘룰더스카이’의 성공으로 2011년 조이시티의 실적도 크게 뛰었다. 연매출 393억 원, 영업이익 67억 원, 순이익 84억 원을 기록하며 각각 전년 대비 매출은 55%, 영업이익은 90%, 순이익은 167% 성장한 수치를 기록했다. 2012년에도 성장세를 이어가며 연매출은 53% 성장한 602억 원, 영업이익은 33% 성장한 90억 원을 달성했다. 이 당시 조이시티의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2011년 전체 매출의 11.1%를 차지했던 ‘룰더스카이’가 2012년에는 55%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난다. 2012년 한 해 동안 ‘룰더스카이’ 만으로 300억 원 이상을 벌어들였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조이시티의 영광의 시대는 ‘for Kakao’가 등장하면서 내리막을 걷기 시작한다. 2012년 7월 시작된 카카오 게임 서비스는 ‘애니팡’을 필두로 다수의 차세대 국민게임을 양산하며, ‘룰더스카이’에 쏠렸던 게임 밀집도를 분산시켰다. 그래도 2012년 상반기까지는 ‘룰더스카이’가 독보적인 1위를 질주했기 때문에 좋은 실적을 보여줬지만, 2013년에 조이시티는 연매출이 377억 원으로 급감했고, 영업손실 약 9억 원으로 적자전환했다.
 
아직까지 ‘룰더스카이’는 꾸준히 서비스를 이어오고 있지만, 구글플레이 매출 순위에서 50위권 밑으로 처져 있어 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조이시티는 ‘정령의날개’ 등으로 꾸준히 모바일게임 시장을 두드리고 있으며, 온라인게임 시장에서는 여전히 ‘프리스타일’ 시리즈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핀란드에 로비오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넥스트플로어가 비슷한 위치에 있던 개발사였다. 넥스트플로어는 카카오톡 게임 서비스 초창기 ‘애니팡’에 이어 국민게임으로 등극했던 ‘드래곤플라이트’의 개발사다. ‘드래곤플라이트’는 iOS용으로만 출시돼 은근한 인기를 끌던 게임이었는데, 카카오가 게임 서비스를 시작한 직후 카카오 관계자의 요청으로 안드로이드로 ‘for Kakao’ 버전의 ‘드래곤플라이트’를 출시했다. 그리고 ‘애니팡’에 이어 두 번째 ‘for Kakao’ 국민게임 반열에 올랐다.
 

원래 본진은 iOS였지만, ‘for Kakao’ 출시 이후 상황이 역전되면서 안드로이드 이용자들은 다양한 콘텐츠 업데이트와 소셜 서비스의 혜택을 누린 반면, iOS 이용자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iOS로 ‘for Kakao’ 버전이 나온 것은 한참 후였으며, 오리지널 버전과 연동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새로 키워야 했다. 이후 오리지널 버전은 서비스 종료 시켜 버렸다.
 
‘드래곤플라이트’보다 먼저 대박을 터트린 ‘애니팡’의 경우에는 이전에 다른 플랫폼으로 서비스된 중고 게임이기도 했고, 또 선데이토즈 역시 규모는 크지 않아도 오래 전부터 게임을 개발해 온 회사였다. 이는 ‘룰더스카이’ 마찬가지. 그런데 ‘드래곤플라이트’를 개발한 넥스트플로어의 경우 완전 신생 개발사인데다가 1인 개발자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상대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었다. 실제로는 1인 개발자는 아니었고, 5명의 개발자가 각자 독립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독특한 시스템의 개발조직이었다고 한다.
 

‘드래곤플라이트’는 2012년 6월 iOS로 처음 출시됐고, 같은 해 9월 26일 ‘for Kakao’ 버전이 안드로이드로만 선을 보였다. 그리고 출시 후 불과 2개월 만에 다운로드 1000만을 돌파하면서 일매출도 10억 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야말로 한국의 ‘앵그리버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당시 외국의 모바일 시장조사 업체의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0월 구글플레이 월매출 순위에서 넥스트플로어가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전 세계에서 10위를 달성한 것도 놀라운 성과긴 하지만, 정말 대단한 것은 1위부터 9위까지의 회사들과 달리 당시 넥스트플로어는 ‘드래곤플라이트’ 하나로만 TOP10에 올랐다는 점이다.
 
이후 넥스트플로어는 ‘드래곤플라이트’ 만큼의 대성공을 거둔 게임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지만, ‘엘브리사’, ‘스피릿캐처’ 같은 게임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 초에는 ‘블레이드&소울’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김형태와 공동으로 모바일게임을 개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smart PC 사랑 | 석주원 기자 juwon@ilovepc.charislaurencreati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