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뜨거웠던(혹은 너무나 차가웠던) IT 핫이슈
2015-01-06 정환용기자
비단 IT 업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크고작은 이슈들이 유난히 많았던 한 해였다. 그리고 아쉽게도, 또한 언제나 그렇듯, 웃음이 나오기보다 한숨이 나오는 소식들이 더 많았다. 중국의 거대한 자본이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하려 하고, 모바일웨어는 전화기에서 시계로 영역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어떤 기업은 새로운 그래픽 칩셋으로 점유율을 굳히고, 어떤 기업은 소비자를 기만하며 큰 논란을 만들기도 했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사자성어로 요약할 수 있었던 2014년, IT 업계를 비롯해 사회 전반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도록 하자.
세계 130조 원 규모, 국내에선 마약 취급
게임법, 국내 게임산업 악화일로
단언컨대, 현재 게임법 제정을 외치고 있는 자들 중 게임과 게임 산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현재 손인춘, 황우여, 신의진 의원이 계속 상정을 시도하고 있는 일명 ‘게임법’은,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게임을 마약과 같은 중독물로 규정해 관리하고, 중독 예방을 위해 게임 매출의 최대 1%를 치유기금으로, 이와 별도로 게임에 과도한 규제를 가해 매출의 최대 5% 혹은 5억 원을 과징금으로 징수하는 것. 이로 인해 매년 지스타에 후원를 맡았던 대형 게임 개발사들이 보이콧에 나섰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지스타는 메인 스폰서가 없이 수많은 광고 공간을 잘게 쪼개 판매하며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손인춘 의원이 대표발의한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은 제목의 ‘인터넷게임’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범위도 구분돼 있지 않다. 정보통신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게임물을 인터넷게임이라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게임 전반에 적용하면 게임 타이틀 카트리지나 DVD, 블루레이 등의 매체로 이용하는 휴대용 게임이나 콘솔 게임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멀티플레이 콘텐츠가 있는 콘솔 게임 타이틀도 있지만 오직 1인 플레이만 지원하는 게임도 많다. 결국 게임법을 주장하는 의원들은 자신들의 판단으로 ‘게임을 규제한다’는 대전제만 있을 뿐 그 디테일한 분류는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해당 법률안의 14조 ‘중독유발지수의 측정’에 명시된 ‘중독유발지수’란 지표도 그 기준이나 조건이 전혀 없는 상태다. 막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현재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셧다운제의 적용 시간도 22시부터 07시까지로 확대돼 청소년들의 권리 침해가 심각한 수준이다. 아직도 그들은 머릿속에 ‘오락실에 가면 나쁜 형들이 있으니 가면 안 된다’는 무지렁이 같은 논리만을 가진 채, 국민들을 기만하고, 종합예술문화콘텐츠 산업으로 국익에도 일조하고 있는 효자 산업인 게임을 망치려 하고 있다. 그렇게 부르짖던 ‘한류’, ‘K-pop’의 2013년 수출액은 약 2억 3천5백만 달러, 게임 산업 수출액은 그 11배인 약 26억 4천만 달러를 기록한 것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국회의원 직위를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라면, 해당 분야 전반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먼저 쌓고 법안을 제안하는 것을 권한다.
공평하게, 모두가 비싸게 사라
단통법인가 호구법인가
‘할부원금’은 들어봤을 것이다. 현재 단통법의 원인이 된 휴대폰 구입 보조금과 관련된 용어다. 예를 들어 A 판매점이 B 통신사로부터 C 스마트폰을 한 대당 90만 원에 사왔다고 가정하자. C의 판매에 대한 리베이트는 80만 원 수준. 이는 제품마다, 통신사마다 모두 다르지만 비율은 비슷하다. 세금과 마진, 인건비 등을 제하면 남는 리베이트는 70만 원 정도. 이 70만 원으로 원가 대비 할인 영업을 하는 것이다. 고객에게 C를 할부원금 40만 원(2년 계약시 월 17,000원 정도, 혹은 구매 시 현금 지불)에 판다면 리베이트 70만 원 중 원가에서 20만 원을 남기고 50만 원을 공제하는 것이다. 속칭 ‘호갱님’이 걸렸다면 60만 원에 판매하고 리베이트 중 40만 원을 챙기는 것이다. 이를 잘 아는 고객이 와도 30만 원에 팔고 10만 원을 남기면 된다.
간혹 들려오는 ‘스마트폰 대란’은, 판매점이 마진을 최소화하고 다량 판매할 요량으로 할부원금을 최대 공짜 수준까지 낮추는 걸 말한다. 결국 이에 대해 잘 알거나 정보 수집에 능하면 매우 저렴하게 스마트폰을 장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단통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모처에서 은밀하게 시행되고 있다.
정부가 국민들을 ‘물’로 본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설마 이런 법이 나오겠어?’ 싶었던 국민들의 뒤통수를 대차게 치고 있다.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의 줄임말인 단통법은, 쉽게 말해 정부가 경제 행위에 개입해 스마트폰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법적으로 차단하는 정책이다. 90만 원짜리 스마트폰을 원가 그대로 구입하는 사람과 각종 혜택을 이용해 20만 원에 사는 사람이 있었다면, 단통법 시행 이후엔 모두가 70만 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통신사들이 판매점에 실적에 따른 리베이트를 과도하게 책정해 통신3사 간의 경쟁이 과열되자 정부에서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정책이다. 크게 줄어든 보조금도 비싼 월 정액제를 2년 이상 약정계약을 맺어야 받게끔 바뀌었고, 덕분에 통신사들은 통신비와 보조금을 적절하게 조절해 가며 기업의 손실을 줄이고 고객들의 부담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경제 행위를 감시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정부가, 경제 행위에 직접 개입해 관리하는 공산주의적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용산 ‘먹튀’의 거대화, 구제는 누가?
모뉴엘, 5천억 원대 불법대출과 사기 행각
‘수천억 원대 대출사기.’ 한 때 연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며 홍보에 열을 올리던 기업 모뉴엘의 현재를 지칭하는 말이다. 관세청은 모뉴엘이 5천억 원대 수출환어음 사기와 외환 도피 혐의를 밝혀냈고, 모뉴엘은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박홍석 대표는 금융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제주도로 사옥을 옮겼지만 현재는 극소수의 직원들만 빈 건물을 지키고 있다. 모뉴엘을 ‘히든 챔피언’으로 선정한 수출입은행과, 6년 가까이 이어진 실적 위조도 알아채지 못한 무역보험공사는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물론 빌 게이츠가 언급했다고 앞을 다투어 오보(誤報)를 보도한 언론들도 딱히 할 말은 없어 보인다. 우리은행을 제외한 대부분의 은행들도 부실한 대출심사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가 빚어낸 촌극이다. 1조 원을 돌파했다던 매출은 사실 300억 원 정도가 전부였고, 이마저도 제품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반품과 환불이 이어지고 있었다. 박홍석 대표는 원가 2만 원짜리 폐품을 250만 원으로 부풀려 수출 실적을 조작했고, 매출 1조원을 돌파할 때쯤 수출 채권을 채권은행에 할인 판매해 빠르게 성장하는 것처럼 부풀렸다. 이 매출 채권은 전체 매출의 97%에 달해 사실상 서류조작으로 은행에서 수천억 원을 사기대출 받아 가로챈 것과 다름없다.
모뉴엘은 약 5천억 원 규모의 수출 채권을 갚지 못했고, 법정관리를 신청해 사실상 부도가 난 상태다. 모뉴엘의 직원들과 관련 은행 대출 담당자, 관세청과 무역보험공사 등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2011년 모뉴엘에 인수된 뒤 서류조작과 분식회계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잘만테크 역시 현재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잘만테크의 대표인 박홍석의 동생 박민석은 현재 도주 중이다. 형제가 기업과 직원들을 기만한 사실이 드러나며 IT 업계에는 아직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휴가철이나 겨울에 용산 입점 업체의 횡령 및 도주 행각이 종종 발생하는데, 이번 사태는 그 규모가 너무 거대했다.
거래규모, 올해 2조 원 가능한가?
해외직접구매 수요 폭발적 증가
아마 smartPC사랑 12월호가 인쇄소에서 각 서점으로 배송되고 있을 때, 집에서 밤을 새워 아마존닷컴에 접속해 있을 기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11월 넷째주 목요일인 미국의 추수감사절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대 쇼핑 시즌 ‘블랙프라이데이’ 특구를 노리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42인치 국산 LCD TV를 국내에서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전자제품만이 아니더라도 미국 최대의 쇼핑 시즌에는 거의 모든 물건들을 평소보다 절반 가까이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으니,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11월 28일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국내 기업의 제품을 해외 쇼핑몰에서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모순이 해외직구 열풍을 만들었다. 해외 배송비에 더해 일정 가액을 넘어 해당 제품의 관세를 추가한다 해도 국내에서 구입하는 가격보다 저렴한 제품들은, 국산 제품을 비롯해 수입품에서도 수많은 품목들로 소비자를 기다리고 있다. 기자 또한 128GB 용량의 플래시 메모리를 구입할 때 국내 쇼핑몰에서 평균 7만 원대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을 아마존닷컴에서 배송비 포함 48,000원에 구입했다. 최근에는 구입해야 할 물건이 있을 때 국내 쇼핑몰과 아마존, 이베이 등 해외 쇼핑몰에서 가격을 비교해 보고 구입하는데, 10건 중 3~4건은 해외쇼핑몰을 이용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물론 해외 쇼핑몰을 직접 이용하는 것이나 구매대행 사이트를 이용할 때 평소보다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건 당연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같은 제품의 가격이 판매처마다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 판매처에 국내와 해외를 모두 포함해도 관계없다. 다만, 자동차나 대형TV처럼 고가의 제품, 그것도 국내 기업의 제품인데 국내 쇼핑몰과 해외 쇼핑몰의 가격 차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5~6만 원짜리 제품부터 수백만 원짜리 고가의 전자제품까지, 소비자들은 수많은 제품들을 해외 쇼핑몰에서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조금 더 ‘스마트’해진 소비자들이 늘어나며 해외직구의 규모는 올해 2조 원 돌파를 예상할 정도로 거대해졌다. 이에 대해 각종 언론들은 해외직구의 위험성을 적극 알리고 있고, 정부는 신용카드 해외결제 금액이 커지면 관세청에 통보하는 관세법 개정안을 언급하기도 했다. 소는 아직 떠나지 않았는데 외양간을 잠그려 하고 있다. ‘그들’의 뇌는 아직도 청순한가 보다.
샤오미,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중국의 IT 산업 약진
중국의 IT 산업 약진
한 때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호적수는 애플이었다. 판매량으로 따지면 아이폰보다 많은 매출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갤럭시 시리즈의 경쟁자는 북미가 아닌 아시아에 있다. 중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샤오미’가 그 주인공이다. 내수용 저가형 스마트폰을 만들던 샤오미는 올해 8월 자사의 스마트폰 ‘Mi4’를 이탈리아에 정식출시하며 본격 글로벌 시장 진출을 알렸다. 이미 상반기에만 2600만 대가 넘는 스마트폰을 판매한 샤오미는, 올해 목표 판매량을 6천만 대로 잡고 있다. 게다가 스냅드래곤 801, 3GB RAM, 3080mAh 배터리 등의 하드웨어 조합에 64GB 제품이 40만 원대로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중국의 기업들, 특히 IT 산업의 신흥 강자들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샤오미 뿐 아니라 게임 업계의 공룡 ‘텐센트홀딩스’도 3분기까지의 영업 이익이 4조 원을 넘어섰고, 중국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를 만든 알리바바그룹도 2013년 매출이 80억 달러(약 8조 7880억 원)를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인구만 많은 줄 알았던 중국이 거대한 자본력으로 점차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든 두 기업 뿐 아니라 중국 최대의 포털사이트 ‘바이두’는 중국인 대상으로 올해 1분기에만 약 95억 위안, 1조 5700억여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들 기업들의 대부분의 매출이 중국 내에서 이뤄진 것을 볼 때, 이들이 중국 밖으로 눈을 돌렸을 때의 파급효과는 예측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중국의 IT 기업들은, 이내 세계 시장에서 ‘made in china’의 인식을 한 층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 중국산은 품질이 좋지 못하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중국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과 산업 분야에서 일찌감치 선두권을 향한 경쟁으로 바쁘다. 속칭 영화판에서 이미 차이나머니가 잽머니를 넘어선 것으로 볼 때, 머지않아 세계 IT 산업도 그 판도가 급격하게 뒤바뀔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내 메신저를 국가가 엿본다
카카오톡 검열 논란, 메신저 망명
카카오톡 검열 논란, 메신저 망명
출시 1년여 만에 거의 모든 스마트폰에서 맹활약하게 된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은,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필수를 넘어 기본 설치해야 할 앱이다. 아니, 앱이었다. 카카오는 메신저는 물론 SNS(카카오스토리), 사진(카카오앨범), 패션(카카오스타일) 등 생활 전반에 걸쳐 관련 앱을 출시하며 모바일 시장의 공룡으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금융 관련 앱(카카오픽, 뱅크월렛카카오)까지 출시하며 금융 시장에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게임 연계 서비스 ‘for Kakao’는 for Kakao가 없는 게임을 찾기 힘들 정도로 홍보와 추천 시스템이 과하다는 지적도 받아 왔다.
카카오톡이 여론의 뭇매를 맞기 시작한 것은 정부의 검열이었다. 정부의 사이버 사찰에 대해 카카오톡이 검찰과 경찰에 개인의 대화 내역과 개인정보를 열람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6월 10일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 위반 현행범으로 체포됐을 때, 카카오 측은 정부에서 요구한 카카오톡 대화 기록의 일부를 정부에 넘겼다. 또한, 김인성 전 한양대 교수는 이 사태에 대해 ‘영장 발부를 통해 이용자 대화내용을 실시간 감청할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태는 일파만파 커지기 시작했다. 카카오 측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가, 1주일만에 40만여 명이 탈퇴하자 입장을 슬쩍 바꿨다. 하지만 ‘합법적인 절차로 정보를 요구하면 동의하겠다’는 입장 표명으로 변명의 기회마저 스스로 걷어찼고, 다급히 발표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프로젝트’도 사용자들의 신뢰를 되돌리기엔 늦었고, 이젠 치졸한 말장난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트위터의 잭 도시 회장은 이에 대해 “정부의 요구보다 사용자 개인정보가 더 중요하다”고 언급했고, 일명 ‘사이버 망명’이 이뤄지고 있는 ‘텔레그램’은 대화 정보가 저장되지 않고 데이터 통신도 암호화되기 때문에 보안 측면에서 높은 신뢰도를 얻고 있다. 국내에 전혀 홍보를 진행하지 않은 텔레그램 측은 발빠르게 한국어를 서비스하며 이에 대응하고 있다. 사용자가 가입하기 위해 작성한 개인정보를 회사의 소유로 착각하는 기업은, 무엇보다 사용자들의 단결 하에 시장에서 완전히 추방돼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위기에 빠진 카카오톡이 아직도 고개가 뻣뻣한 것은, 그래도 좋다고 카카오톡을 사용하는 이들이 아직도 2천만 명이 넘기 때문이다.
앱으로 주문하면 대신 주문전화를?
배달 앱, 유통 라인에 끼어들다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지역 배달음식점들의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배달 앱의 인기가 늘고 있다. ‘배달의 민족’, ‘요기요’, ‘배달통’ 등이 배달앱의 big 3 정도인데, 최근에는 TV 광고까지 하며 가입자 및 사용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앱을 실행하고 주변을 검색하면 근처의 메뉴 별 음식점들과 메뉴가 보이고, 앱 내에서 주문과 결제까지 가능해 많은 사람들이 간편한 시스템을 옹호하며 사용자 수가 늘고 있다.
비슷한 경우로 10여 년 전 용산을 떠올려 보자. 조립PC가 유행하고 사용자들이 폭증하며 용산이 국내 최대의 전자상가가 됐고, 이에 따라 수많은 도·소매점과 중개인들이 미어터지듯 용산으로 밀려들어왔다. 하루가 다르게 수많은 브랜드의 신제품들이 쏟아지던 때였고, 넓은 용산의 대부분의 상가들이 주말이면 걸어 다니기도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현재, 용산은 전자상가로서의 빛을 모두 잃고 무너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사람들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배달 앱과 같은 ‘유통 새치기꾼’들 때문이었다.
제품 하나가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까지는 몇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용산처럼 수입 제품이 많은 경우는 수입·총판업체에서 도매로 제품을 넘기고, 도매상들이 소매점들에 약간의 마진을 남기고 제품을 공급한다. 소매점들은 여기에 나름의 이윤을 붙여 소비자들에게 판매한다. 마진을 적게 보고 많이 팔 것인지, 마진도 적당히 판매량도 적당히 할 것인지는 판매자의 재량이다. 그런데 용산에는 도매와 소매 사이에 너무나 많은 중간유통 상인들이 달라붙었다. A 도매점에서 물건을 받아 B 도매점에 다시 넘기거나, 가지고 있던 제품을 원가에 현금으로 팔아넘긴 뒤 다른 제품을 매입하는 등 짧은 기간에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여기에 ‘계산서’라는, 차마 밝힐 수 없는 거래가 더해지면 잡음은 훨씬 심해진다. 같은 제품을 현금으로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작된 ‘계산서 미스터리’가 낳은 불행, 그 결과가 용산의 몰락이다.
배달 앱의 경우 상황은 약간 달라도 유통 과정의 중간에 끼어든 것은 명확하다. 음식 주문은 음식점에서 재료를 매입하고, 음식을 만들어 고객에게 판매하면 된다. 그런데 배달 앱 업체들이 음식점과 소비자 사이에 끼어들어 편리한 주문을 미끼로 음식점에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배달 앱 측은 기존의 홍보비보다 저렴하다고 하지만, 그들이 설정한 ‘기존의 홍보비’엔 명확한 기준이 없어 신빙성이 떨어지고, 주문 별로 음식점에 부과하는 수수료도 수익이 아니라 매출 기준으로 설정해 적지 않은 수준이다. 홍보 효과는 누리고 싶지만 돈은 더 내기 싫어하는 음식점도 문제지만, 작은 편의성을 억지로 포장해 상인들의 수익을 거둬가려는 배달 앱들은 상인과 소비자 사이에는 그다지 필요 없는 계륵이다. 게다가 주문 대행의 방식이 ‘대신 전화를 걸어주는’ 웃기지도 않은 아날로그 스타일인 것은 차라리 코미디.
smartPC사랑 | 정환용 기자 maddenflower@ilovepc.charislaurencreati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