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게임은 무료로 즐길 수 있습니다! 정말?!

2015-03-05     stonepillar
일반적으로 온라인게임의 요금제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일정 기간 동안 정해진 요금을 지속적으로 지불해야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정액요금제로 초창기 온라인게임은 모두 이런 형태로 서비스 됐다. 다른 하나는 조금 늦게 도입된 부분유료화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자체는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게임을 보다 편리하고 쉽게 즐길 수 있는 부가적인 요소를 유료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부분유료화는 넥슨이 처음 도입했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킴으로써 이제는 가장 보편적인 게임 서비스 방식으로 자리매김 됐다. 그러나 동시에 도가 지나친 부분유료화 정책이 오히려 전체적인 게임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사행성 조장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등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게임 판매 방식의 새로운 패러다임

넥슨은 2001년 ‘퀴즈퀴즈(큐플레이)’라는 캐주얼게임을 정액제 서비스에서 무료 서비스로 전환하고, 캐시 아이템을 판매하는 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당시만 해도 월정액제가 일반적인 서비스 형태였고, 과연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게임에 누가 돈을 쓰겠냐 등의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지만, 예상을 깨고 이 새로운 서비스 형태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 넥슨뿐 아니라 많은 온라인게임 제작사들이 캐주얼게임을 중심으로 부분유료화 과금방식을 도입했고, 이제는 어지간한 온라인게임은 대부분 부분유료화를 기본으로 서비스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분유료 서비스가 빠르게 보편적인 서비스 형태로 자리 잡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게임 회사들의 수익률이 크게 향상됐기 때문이다. 부분유료 서비스는 게임의 기본 플레이를 무료로 제공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게임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이를 통해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층이 크게 증가했고, 이는 새로운 수익 구조를 창출하는 밑바탕이 됐다. 게임은 경쟁을 기본 요소로 갖고 있다. 경쟁은 혼자 할 수 없으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쟁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승리했을 때 얻는 쾌감과 만족감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부분유료 서비스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공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해냈다.
 
온라인게임 시장에서의 부분유료화 성공 사례는 다른 플랫폼의 게임들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패키지를 구매하기만 하면 게임의 모든 콘텐츠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었던 콘솔게임들과 PC패키지 게임들에 ‘DLC(DownLoadable Contents)’라는 악마의 손길이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DLC는 문자 그대로 다운로드 방식으로 추가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스템인데, 문제는 이들 콘텐츠들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콘솔과 PC패키지 게임들도 게임 판매 수익 외에 부가적인 콘텐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소비자들의 지갑도 함께 활짝 열리게 만들었다.
 
▲ 부분유료 과금제의 시초가 된 ‘퀴즈퀴즈’는 지금도 현역으로 서비스 되고 있다.
 

부분유료 서비스의 변질

부분유료 서비스의 취지는 좋았다. 이용자들은 게임의 기본 플레이를 무료로 즐길 수 있게 됐고, 게임 회사는 새로운 수익구조 창출로 매출을 증대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욕심은 끝이 없고, 소비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인 법. 게임 회사들은 더 큰 매출에 눈이 멀어 점차 손대지 말아야할 영역까지 부분유료화 시스템에 포함시키게 됐다. 바로 게임 밸런스와 관계된 민감한 부분들이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경쟁 요소를 갖게 된다. 특히 온라인게임에서는 타인과의 경쟁이 게임 전반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이용자들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보통 온라인게임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캐릭터를 강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들을 구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강화 시스템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캐시 아이템들을 도입하면서 게임 회사는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반면, 이로 인해 돈을 많이 투자하는 이용자와 그렇지 않은 이용자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발생하면서 게임의 밸런스가 무너지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이용자들이 게임을 떠나는 모습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최근에는 밸런스 붕괴 뿐 아니라 사행성 조장도 논란이 되고 있다. 특정 미끼 상품을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랜덤박스를 기간 한정으로 판매하는 형태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운에 따라 어떤 사람은 하나의 상자만 구입하고도 원하는 아이템을 얻는가 하면, 정말 운이 없는 사람은 수십, 수백만 원의 돈을 쓰고도 못 얻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최근 넥슨의 ‘마비노기영웅전’이 한정판 아바타를 이런 형태로 판매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논란이 거세지자 랜덤박스 구매 시 특정한 쿠폰 형태의 아이템을 추가로 증정하고 이 쿠폰 아이템을 일정 수 모으면 원하는 아이템과 교환할 수 있는 보완책을 내놓기는 했는데, 이 쿠폰 아이템마저 확률적으로 제공하는 만행을 보여주고 있다.
 
부분유료화의 악랄함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갈수록 도를 더해가고 있는데, 작년 하반기 엔씨소프트는 ‘블레이드앤소울’에서 버프 아이템을 유료로 판매하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버프 아이템을 캐시로 판매하는 방식이 ‘블레이드앤소울’에서 처음 도입한 건 아니지만, 정액제 게임에서 기간제 버프 아이템을 추가로 판매하는 형태는 매우 드문 경우다.
 
▲ 전대미문의 ‘3중 과금’ 논란을 불러일으킨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앤소울’. 회사측은 게임 밸런스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아이템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돈슨의 역습’은 두 번 친다

작년 11월 어느 날. 지스타2014를 며칠 앞둔 시점에서 국내 최대 게임회사인 넥슨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돈슨의 역습’이라는 마케팅 슬로건을 공개한 바 있다. ‘돈슨’은 넥슨을 비하하는 악의적인 별명으로, 돈 밖에 모르는 회사라는 비난의 의미가 담겨 있다. 넥슨은 부분유료화 서비스를 처음으로 도입했고, 이를 통해 국내 최대의 게임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부분유료 과금제의 온갖 문제점들을 앞장서 조장해 온 회사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가 반복되면서 넥슨은 어느 새 국내 게임 시장의 ‘악의 축’ 중 하나로 꼽히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돈슨의 역습’은 바로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타파하겠다는 의미의 자학 섞인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돈슨의 역습’이 공개됐을 때는 그래도 반쯤은 기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에 공개서비스를 시작한 하나의 게임은 이런 작은 기대마저 산산조각 내기에 충분했다. 넥슨이 서비스 하는 MORPG ‘클로저스’가 공개서비스 시작과 함께 부분유료 정책을 공개했는데, 품목과 가격이 신작 게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쁜 쪽으로.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논란이 돼 왔던 ‘마비노기영웅전’의 아바타 랜덤박스도 신년 이벤트로 그대로 판매를 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결국 ‘돈슨의 역습’은 그냥 이용자를 기만한 ‘마케팅 쇼’와 다름없는 눈가림에 불과한 셈이 됐다. 넥슨은 국내 최대의 게임 회사인데다, 부분유료 과금제 서비스에서 업계의 롤모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넥슨의 행보는 국내 게임 시장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넥슨이 실질적인 변혁은 뒷전이고 여전히 이용자의 돈을 쓸어 담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이용자들 입장에서는 더욱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돈슨의 역습’을 내세우지 않았다면 그러려니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 ‘돈슨의 역습’은 다른 의미의 역습이 돼 버렸다.
 

늪을 향해 걸어가는 게임 업계

요즘 우리나라는 ‘甲질’ 논란과 더불어 전 국민의 ‘호갱화’에 분노를 하고 있다. 기업들은 온갖 편법과 가격담합으로 소비자들을 우롱하고, 국민의 편이 되어야할 국가는 오히려 기업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소비 유형도 점차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산 대신 상대적으로 가격대비 품질이 괜찮은 수입품이나 외국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직접 제품을 구매하면서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다.
 
게임 업계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도가 지나친 과금 방식에 지친 이용자들이 점차 온라인게임에서 멀어지고 있는 추세다.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온라인게임의 과금제에 정이 떨어져 콘솔게임으로 갈아탔다는 이야기도 종종 접할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온라인게임에 수십, 수백만 원씩 지불하는 VIP 고객들이 많고, 실질적으로 게임 회사들은 이들 VIP 고객들만으로 회사를 유지하고 게임을 서비스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일반 이용자들이 떨어져 나간 다음에는 바로 이들 VIP 이용자들이 서서히 떨어지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라는 점이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게임은 경쟁이다. 그러나 일반 이용자들이 모두 떨어져 나간다면 VIP 고객들이 경쟁할 상대도, 과시할 상대도 사라져 버리며, 게임에 대한 흥미도 점차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결과적으로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은 스스로 자멸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임 회사들이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대국민 호갱화’ 논란에서 아직도 ‘우리는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smartPC사랑 | 석주원 기자 juwon@ilovepc.charislaurencreati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