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도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가 쓰던 전자계산기 사진을 포스팅합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핵개발 역사와 함께 이휘소 박사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시에 이 박사는 저 계산기로 어떤 인생을 계산하고 있었을까요?
사진 설명 : 이휘소 박사가 쓰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SR-50 전자계산기. 1974년 초반에 출시되었다.
이휘소(李輝昭, Benjamin W. Lee, 1935년 1월 1일 ~ 1977년 6월 16일)
한국 출신의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이다. 리휘소, 영문명 벤저민 리 로도 부른다.
생 애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에 검정고시를 통해 1952년에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다. 이후 주한 미군 부인회의 지원으로 1955년 1월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애미 대학교 물리학과에 편입하였으며 1958년에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졸업하였다. 당시 피츠버그 대학교의 시드니 메시코프는 이휘소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를 명문 펜실베이니아 대학원으로 추천하여 1961년 에이브러험 클라인(Abraham Klein)의 지도 하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곧바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임용되어 1965년에 정교수로 승진하였으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연구원, 뉴욕 주립 대학교 스토니브룩 교수 등을 지낸 후 1973년 부터는 국립 페르미 가속기 연구소 이론물리부장 및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를 겸임하였다. 1962년 싱가포르계 마리안느(沈蔓菁, Marianne)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그는 20세기 후반 입자물리학에서 재규격화 문제의 해결과 맵시 쿼크의 탐색에 관한 연구에 공헌하였다.
1974년 미국 AID 차관(서울대학교 교육 차관)의 평가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강주상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명예교수가 그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이다.
의문사 논란
1977년 일리노이 주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졌다. 뉴욕 타임스의 부고에 따르면,도로 건너편에서 사고가 난 유조차의 바퀴가 굴러와서 이휘소 가족의 차 앞유리를 강타한 것이다. 가족들은 경상을 입었지만, 이휘소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반대편에서 사고가 난 타이어가 운전석 창문에 맞는다는 것은 우연이라고 하기에 미심쩍다고 여겨, 당시 국회에서 의문사 청문회를 했다.
노벨물리학상감이였다는 분으로 유명해졌으니 인종차별주의자들(예를들어 쿠클락스클랜등)의
표적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