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죽이고 있다.”
이 소리가 나온 지도 몇 년째다. 스마트폰의 하드웨어 성능이 상향평준화 되면서 각 제조사들은 부가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주력했는데, 카메라 성능은 중요한 경쟁 포인트 중 하나로 꼽혀 왔다. 이런 시장 흐름 속에서 제조사들은 새로운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마다 카메라 성능을 포장하기에 바빴는데, 그때마다 애꿎은 디지털카메라들은 스마트폰과 비교되며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는 애물단지 취급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정말 스마트폰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의 입지를 위협할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보여줄까?
카메라를 품은 휴대전화
지금은 휴대전화에 카메라 기능이 탑재되는 것이 당연한 일로 인식되고 있지만, 처음부터 휴대전화들이 카메라 기능을 지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국내에서 휴대전화가 본격적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기였는데, 이때의 휴대전화들은 그야말로 전화 본연의 기능에만 충실한 제품들이었다. 처음으로 휴대전화에 전화 기능을 탑재한 것은 지금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는 1999년부터 2000년 사이에 독특한 콘셉트의 휴대전화들을 여럿 선보였는데, 세계 최초의 여성전용 휴대폰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SPH-A4000(드라마폰)과 시대를 앞서간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폰 SPH-WP10 등도 이때 등장했다. 세계 최초의 카메리폰도 바로 이 시기에 개발됐다. 삼성전자는 2000년 7월에 카메라를 내장한 CDMA 단말기 SCH-V200를 공개했는데, 컬러 액정 화면에 35만 화소의 사진을 20장까지 촬영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 제품은 시판되지 않았고, 2002년 봄에 SCH-X590이 출시되면서 국내최초의 카메라폰으로 이름을 남겼다. 이후 카메라는 휴대전화에서 필수 기능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으며,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다양한 디자인과 성능을 갖춘 카메라폰들이 출시되어 인기를 끌었다.
2007년 출시된 아이폰 1세대 역시 후면에 200만 화소의 카메라를 탑재하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쓸 만한 수준이었지만, 최신 스마트폰들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격차를 느낄 수 있다. 1년 후 출시된 2세대 아이폰은 1세대와 동일한 성능의 카메라를 탑재했었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아이폰3세대(3GS)에 와서 300만 화소 카메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이후 아이폰4에서 다시 500만 화소, 4S에서 800만 화소로 발전한 이후 5s까지는 더 이상의 화소 수 증가는 없는 상태다. 하드웨어 경쟁이 보다 치열한 안드로이드 진영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1300만 화소의 카메라가 주류가 된 지 오래됐다.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고화소의 함정
스마트폰의 카메라 성능을 이야기할 때 언제나 가장 먼저 언급되는 수치가 바로 화소 수다. 화소는 한 화면에 표현할 수 있는 색 정보의 양을 이야기하는데, 최신 스마트폰들은 1300만 화소 이상의 카메라들을 탑재하고 있다. 화소가 높으면 더 많은 정보를 표현할 수 있으며, 이는 더 선명하고 좋은 품질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단순히 화소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카메라는 렌즈로 받아들인 빛을 이미지센서에서 전기적인 신호로 변환해 저장 매체에 디지털 이미지 형태로 사진을 저장하게 되는데, 아무리 화소가 높더라도 렌즈와 이미지센서의 성능이 부족하면 좋은 품질의 사진을 얻을 수 없다. 이는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복합적인 제품인데다 크기의 제약까지 더해져 일반적인 디지털카메라와 동일한 수준의 렌즈 및 이미지센서를 장착하기가 어렵다. 이런 이유로 카메라에 특화된 일부 제품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스마트폰들이 디지털카메라보다 작은 크기의 렌즈와 이미지센서를 채용하고 있다.
이미지센서의 크기는 한 번에 받아들이는 빛의 양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센서의 크기가 클수록 더 많은 빛을 받아들여 좋은 품질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미지센서가 작으면 받아들이는 빛 정보의 수가 그만큼 적어지기 때문에 사진의 품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 이 작은 센서에 무식하게 많은 화소를 구겨 넣으면 어떻게 될까? 화소의 밀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화소 하나하나가 차지하는 면적이 작아지게 되는데, 이는 화소 하나가 표현할 수 있는 데이터 양 역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지나친 밀도로 인한 화소간의 간섭이 발생해 사진의 화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고급 DSLR 카메라들을 살펴봐도 오히려 하위 기종보다 화소수가 적은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고화소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 해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높은 화소가 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미지센서의 크기가 충분히 크고, 기술적인 보완이 뒷받침 되어야만 한다. 전문가들은 현재 스마트폰 카메라의 센서 크기에서는 800만 화소도 충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아이폰5s는 800만 화소로도 뛰어난 카메라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최신 스마트폰들이 갈수록 높은 화소의 카메라를 장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원가 대비 성능 향상의 효과가 높으며, 마케팅적으로도 활용도가 높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센서 경쟁의 시작
지금까지 스마트폰 카메라 분야는 소니에 의해 좌지우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니는 DSLR 시장과 미러리스 시장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고, 소니가 개발한 이미지센서는 니콘과 같은 대표적인 카메라 제조사에서도 사용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소니는 엑스모어라는 자체 개발한 이미지센서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데,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디바이스 카메라에도 이 엑스모어 기술을 도입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소니의 자체 발표에 따르면, 2013년에 출시된 전 세계 스마트폰 중 약 44%가 소니의 이미지센서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국내의 스마트폰 제조사인 삼성전자, LG전자, 팬택도 예외는 아니다. 가장 최근에 출시된 팬택의 베가아이언2, LG전자의 G3 모두 소니 엑스모어 센서를 채용했다. 삼성전자는 사정이 조금 다른데, 갤럭시S4까지는 삼성전자도 소니의 엑스모어 센서를 사용했지만, 2013년 하반기에 출시한 갤럭시노트3부터는 자체 개발한 이미지센서를 탑재한 것이다. 삼성이 공개한 새로운 이미지센서의 이름은 아이소셀. 특징은 사진 촬영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빛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기술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S5에는 바로 이 아이소셀이 탑재되어 있는데, 뛰어난 카메라 성능을 보여주면서 소니 엑스모어의 라이벌로 급부상하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가치
위의 비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마트폰 카메라들의 이미지센서는 DSLR은 물론이고 콤팩트카메라와 비교해도 무척이나 작다. 비단 이미지센서 뿐 아니라 렌즈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의 제조사들은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 보다 뛰어난 품질의 사진을 얻기 위해 다양한 기술들을 개발해 적용하고 있지만, 디지털카메라 역시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드웨어 적인 성능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첫머리에 언급한 ‘디지털카메라를 죽이는 스마트폰’이라는 전제는 잘못된 것일까?
워낙 트렌드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 보니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디지털카메라 시장의 규모가 매년 축소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IDC에 의하면 2013년 전 세계 디지털카메라의 출하 대수는 8100만 대로 나타났는데, 이는 2010년 출하량 1억 4500만 대와 비교해 무려 44%나 감소한 수치다. 같은 기간 동안 스마트폰 시장 규모는 약 3배가량 성장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스마트폰이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위축시키고 있음을 통계가 증명해 준 셈인데, 적어도 그 이유가 언론에서 포장하는 것처럼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디지털카메라 뺨칠 만큼 뛰어나서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언제, 왜 사진을 찍을까? 간단하다. 그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을 때다. 그것이 즐거운 한 때가 됐든, 특별한 의미가 있는 순간이 됐든, 혹은 사건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든 사진은 그 순간을 간직하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다. 물론 이왕 기록을 남기는 김에 더 화질이 뛰어난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접근성과 편의성이다. 스마트폰은 이 부분에 있어서 가장 적합한 IT기기다. 게다가 본래의 용도가 휴대전화인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상 소지하고 다닌다는 점도 스마트폰의 장점이다.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마트폰이 항상 손에 들려 있으니 별도의 디지털 카메라에 필요성과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도 DSLR 등 고가의 렌즈교환식 카메라보다는 콤팩트카메라 분야가 큰 타격을 받았는데, 이는 소비자들이 뛰어난 품질의 사진을 원할 경우에는 고가의 카메라를 찾지만, 그 외의 용도에서는 스마트폰 카메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콤팩트카메라에 미치지 못한다고는 해도 지속적인 성능 향상을 통해 이제는 상당히 괜찮은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점도 갈수록 콤팩트카메라를 어렵게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소니의 엑스모어 센서는 콤팩트카메라 수준인 1/2.3″판형까지 나와 있고, 삼성전자의 아이소셀도 1/2.6″크기까지 공개됐다. 렌즈기술만 조금 더 보강된다면 이제 정말로 디지털카메라 뺨치는 스마트폰 카메라가 탄생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시장에서 도태되고 있는 콤팩트카메라의 위치를 아예 스마트폰이 대체하면서 스마트폰의 카메라 발전 속도를 가속화 시킬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기도 하다. 이를 통해 DSLR과 미러리스 등의 고급 카메라 라인업과 스마트폰이 미래의 카메라 시장을 양분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아직은 이 모든 것들이 예측과 상상의 범주에 속해 있지만, 불과 몇 년 사이 휴대전화 시장을 바꿔 버린 스마트폰의 저력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기대해 볼만 하다.
smart PC 사랑 | 석주원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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