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역대 최대’ 규모의 지스타 국제 게임 전시회가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됐다. 매년 가장 큰 인기를 모았던 블리자드가 올해에는 참가하지 않아 기대감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도 받았지만, 넥슨과 엔씨소프트, 엑스엘게임즈 등이 오랜만에 신작 온라인게임을 대거 공개하면서 작년보다는 볼거리가 풍성한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 행사가 흥한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각종 게임 규제안을 생각하면 마냥 좋아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흔들리는 ‘게임 도시’ 부산의 입지
우리나라의 게임 시장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 인터넷 게임 중독과 관련된 법률안, 이른바 손인춘법, 신의진법이 발의된 지도 2년이 다 되어간다. 발의된 법률안의 내용만으로도 게임 업계에 분노를 안겨 주기에 충분했지만, 해당 법률안의 공동 발의자로 매년 지스타 게임 전시회가 개최되는 부산 해운대구의 지역구 국회의원 서병수의 이름이 올라가면서 게임 업계는 큰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2008년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되던 지스타 게임쇼는 매년 흥행이 감소하고 갈수록 업계의 참여도도 줄어들면서 존폐의 기로에 서 있었다. 그런데 2009년 부산에서 지스타를 유치하면서 거짓말처럼 부활하는가 싶더니 2012년까지 최전성기를 누리며 흥행가도를 달렸다. 서울에 집중돼 있던 거대한 게임 관련 행사가 지방에서 열린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서울에 이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이 가진 잠재력, 거기에 시기적인 요인까지 더해지면서 지스타의 흥행을 이끌었다. 부산시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게임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심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하필이면 지스타가 열리는 해운대구 지역구 의원인 서병수가 게임 규제안에 찬성입장을 표명하면서 찬물을 끼얹고 만 것이다. 2012년까지 최고의 흥행을 달리던 지스타 게임쇼는 게임 규제안이 발의된 2013년 주요 게임 회사들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급격히 분위기가 냉각돼 버렸다. 게다가 올해 지방선거에서 서병수 의원이 부산시장으로 당선되면서 게임 업계 및 유저들이 부산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더욱 냉랭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임 산업 규제안에 찬성한 서병수 시장이 부산 시장으로 당선되자, 지스타 개최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점점 커지고 있는 중이다. 지스타 게임쇼는 매년 수백억 원에서 1천억 원대의 수익을 부산시에 안겨주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기여를 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할 수 있다. 부산시 입장에서
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행사인 셈인데, 이를 의식해서인지 서병수 시장은 당선 후 게임 업계와의 관계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물론, 입장에 따라 자신의 주장을 손바닥 뒤집듯쉽게 바꾸는 것이 정치인들이긴 하지만, 이를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고울 리는 없을 것이다.
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행사인 셈인데, 이를 의식해서인지 서병수 시장은 당선 후 게임 업계와의 관계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물론, 입장에 따라 자신의 주장을 손바닥 뒤집듯쉽게 바꾸는 것이 정치인들이긴 하지만, 이를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고울 리는 없을 것이다.
▲ 지스타 2014 개막식에 참석한 서병수 부산시장
게임 회사들의 안일한 대처
작년 초 게임 규제안이 발의되고 부산 해운대구 지역구의 서병수 의원이 공동 발의한 것이 확인됐을 당시, 위메이드가 가장 먼저 공식적으로 지스타 불참을 선언하면서 업계의 지스타 불참 움직임을 주도했었다. 위메이드는 매출 순위 기준으로 국내에서 10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 게임 회사인데다, 2012년 지스타의 메인 스폰서였던 만큼 이 발언은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실제로 2013년 지스타는 위메이드를 필두로 대형 개발사들이 대거 불참하면서 반쪽짜리 행사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블리자드가 역대 최대 부스로 참가하면서 체면치레를 하기는 했다.
올해에는 넥슨, 엔씨소프트를 비롯해 엑스엘게임즈, 액토즈소프트, 스마일게이트 등이 참가해 다수의 신작을 공개하면서 작년보다는 볼거리가 풍성해졌다. 하지만 논란이 됐던 문제들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과 1년 만에 다시 하나둘 지스타에 얼굴을 내미는 게임 회사들의 행보도 사실 썩 반갑지는 않다. 물론, 지스타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또 홍보 및 마케팅의 장으로 최적의 행사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때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분명한 항의 표시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게임 업계의 집단 항의 행동이 얼마나 큰 효과를 보여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높으신 분들은 별 신경조차 안 쓸 수도 있다. 심지어 서병수 부산시장 역시 겉으로는 게임 업계와의 오해를 풀고 싶다고 말을 하지만,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역시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업계의 집단적인 행동이 필요한 것은 그것이 최소한의 저항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회사의 운영 자금도 간당간당한 영세 개발사나 각각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기조차 어려운 유저들의 의견은 사실상 큰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국내 게임 시장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고, 발언력이 있는 업체들이 앞장서야 작든 크든 파문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입으로는 게임 산업을 탄압하는 정부의 규제를 비난하면서, 정작 행동으로는 그렇지 못한 게임 업계와 이권에 따라 자신의 주장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번복하는 정치인, 그리고 어떠한 결론도 내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정부 정책이 뒤섞인 우리의 게임 시장을 바라보면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 지스타 2014에서 공개된 다수의 신작 게임들. 여러 정황상 순수하게 신작 발표를 반기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한 지스타
부산은 여러모로 지스타를 개최하기에 적합한 도시다. 우선 지스타를 개최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행사장인 벡스코를 갖고 있고, 관광도시 중 하나이다 보니 숙박시설과 교통 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어 여러모로 최적의 접근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입지 조건이 좋다고 해도 앞으로 계속 부산시에서 지스타 게임쇼를 개최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단순 손익 계산이 아닌, 게임 업계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서병수 시장 당선 이후 부산이 지스타를 개최할 도시로 적합하지 않다는 여론이 강해지면서 많은 후보 도시들이 지스타 유치를 위해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스타 유치에 가장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며, 업계 및 유저들의 지지도 역시 높은 곳은 경기도 성남시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전부터 게임 업계에 우호적인 입장을 자주 표명해 왔으며, 현재 성남시 분당구 판교에 위치한 테크노밸리에는 국내 주요 게임 회사들이 전부 밀집해 있어 대의명분이나 접근성도 높은 편이다. 다만, 성남시에는지스타 게임쇼를 개최할 전시장이 없고, 숙박시설 확보도 어렵다는 문제점들이 남아 있다.
현실적으로 지스타를 다시 수도권으로 가져온다는 가정을 전제로 생각해 봤을 때 가능성이 있는 장소는 서울의 코엑스와 일산의 킨텍스를 꼽을 수 있는데, 코엑스의 경우 강남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입지 자체는 좋긴 하지만, 주변 교통이 복잡하고 대관료도 상당히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서울시에서 딱히 지스타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기도 하다. 일산 킨텍스의 경우는 접근성이 너무 떨어지고, 이미 한 번 같은 장소에서 저조한 실적을 거둔 경험이 있기 때문에 기피되고 있는 장소다.
또 다른 후보지로는 꾸준히 부산과 지스타 유치를 경쟁하고 있는 대구시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대구시는 2001년부터 자체적인 게임 행사를 꾸준히 개최해 올만큼 게임 산업 육성에 노력해 왔다.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엑스코라는 전시장을 갖고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확장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만큼 시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부산과 비교하면 관중 동원면이나 주변시설 등에서 뒤처진다는 단점이 있다.
아무리 포장해 봐도 다른 후보지들이 부산보다 부족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부산 이외의 대안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호갱’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스마트폰을 외국보다 비싸게 사는 사람만이 호갱인 것은 아니다.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그에 대한 저항을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는 순간 우리 게임 산업은 결국 정부 정책에 따라 속절없이 휘둘리는 ‘호갱’의 길로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게임회사들의 성지가 된 판교테크노밸리.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차기 지스타의 개최 후보지 중 하나다.
smartPC사랑 | 석주원 기자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디지털포스트(PC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