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맥스 20년 역사
소프트맥스는 PC 패키지 게임 제작으로 시작했지만, 창립 20년이 지난 현재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소프트맥스는 PC통신 시절 게임 동호회에서 시작해 1993년 12월 설립됐다. 이후 주식회사로 법인 전환한 것은 1994년 10월 정영희(이후 정영원으로 개명) 대표이사를 비롯한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고 나서다. 당시 여러 게임회사가 등장했으나 소프트맥스처럼 전문 경영인을 대표이사로 내세운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게임회사들은 프로듀서나 자본을 대는 사람이 사장을 맡고 있었으며, 이런 비전문적인 운영으로 소위 말하는 게임이 ‘대박’을 치지 못할 경우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지금은 당연하지만 소프트맥스는 설립 당시부터 경영진과 제작진을 분리해 다른 게임회사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소프트맥스는 1990년대 국내 게임 시장을 선도했던 회사답게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1995년에는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유망중소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산업기능요원 병역특례업체로 지정받기도 했다. 1996년에는 다양한 게임 관련 상을 받으면서 손노리와 함께 한국의 대표 게임회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외에도 1997년에는 정보통신부로부터 유망정보통신기업으로 선정됐고 1998년에는 중소기업청에 의해 벤처기업으로 지정됐다. 마침내 2001년에는 코스닥시장에 상장해 주식시장에서도 큰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다.회사 명운 바꾼 창세기전
소프트맥스의 대표작 하면 요즘은 ‘SD건담 캡슐파이터 온라인(이하 캡슐파이터)’이지만, 1990년대를 지냈던 게이머라면 누구나 ‘창세기전’ 시리즈를 먼저 떠올린다. ‘창세기전’은 1990년대 게이머들 사이에서 국산 게임의 바이블 같은 존재였으며, 신작 소식이 나왔다 하면 큰 주목을 받기 일쑤였다. ‘창세기전’은 한국 게임 시장의 전성기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며, 스토리와 그래픽, 캐릭터, BGM 등 모든 부분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그전까지 소프트맥스는 일본 게임의 로컬라이징이나 횡스크롤 액션 게임 ‘리크니스’, 슈팅 게임 ‘스카이 앤 리카’같은 캐쥬얼 게임을 만들었던 회사였다. 하지만 ‘창세기전’으로 인해 블록버스터 게임을 제작하는 회사로 우뚝 서게 된다. 1995년 처음 출시된 ‘창세기전 1’은 발매 전부터 인기 만화가 김진을 일러스트레이터로 내세우고 ‘국내 최초 시뮬레이션 RPG’를 내세워 주목받았다. 당시 일본 콘솔 게임에서나 볼 수 있었던 멋진 배경 그래픽과 매력적인 캐릭터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특히 만화 ‘바람의 나라’로 큰 인기를 끌었던 김진의 팬들까지 가세해 게임에 관심 없던 사람까지 불러모았다. 여기에 쳐다보는 방향으로 대미지가 증감되는 전략 공격 시스템, 링커맨드 조합 마법 시스템, 거대 마장기 같은 화려한 볼거리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국산 대작 게임의 전성기를 열었다.당시 3.5형 인스톨 디스크 10장으로 인스톨 후 용량 100MB, 플레이 타임 100시간에 달하는 엄청난 볼륨은 충격적이었다. 이 때문에 생긴 문제도 많았는데 인스톨 도중 디스크가 오류나면 디스크 교환까지 게임을 못하고 마냥 기다려야 하는 황당한 사례도 있었다. 사실 이런 문제는 기존 게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디스크 수가 5장 이내였던 다른 게임들보다 문제가 빈번했다. 이후 CD-ROM 보급이 일반화되면서 CD-ROM판으로도 출시됐고 후속작도 모두 CD-ROM으로 출시됐다.‘창세기전’은 발매 후 수많은 버그 때문에 게임 자체로는 큰 화제에 오르지 못했다. 물론 소프트맥스도 이런 문제를 감지하고 우편으로 패치 디스크 1장을 발송하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1년 뒤에는 스토리를 더 추가한 완전판인 ‘창세기전 2’를 발매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시리즈화 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소프트맥스의 게임을 해본 게이머라면 다양한 버그를 겪으면서 치를 떨었을 것이다. 심지어 패치를 할 때마다 세이브가 연동 안 되거나 버전마다 공략법이 다를 정도니 게이머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었다.한국 대표 게임사로 우뚝
소프트맥스는 ‘창세기전 2’의 성공 이후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이어 1998년에는 ‘창세기전 외전 : 서풍의 광시곡’과 ‘창세기전 외전 : 템페스트’를 출시하면서 ‘창세기전’ 시리즈는 국산 대표 게임으로 자리 메김 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서풍의 광시곡’까지 이어진 어두운 분위기와 달리 급조된 ‘템페스트’는 지나치게 밝은 분위기로 기존 팬들에게 큰 원성을 듣게 된다. 그럼에도 ‘템페스트’는 ‘창세기전’ 최신 시리즈와 많은 홍보로 인해 신규 ‘창세기전’ 팬층을 끌어모으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기존 게이머나 ‘창세기전’ 팬들에게는 최악의 게임으로 평가 받았던 ‘템페스트’가 ‘창세기전’ 시리즈의 대중화에 기여한 셈이다. 1999년 출시된 ‘창세기전 3’는 큰 관심 속에 등장했다. ‘창세기전 3’는 정통 RPG를 표방했던 ‘서풍의 광시곡’이나 RPG 요소는 거의 배제한 ‘템페스트’와 달리 과거 ‘창세기전 2’ 같은 시뮬레이션 RPG 형식으로 회귀했다. ‘창세기전’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스토리에 관심을 가진 팬들이 많아졌고 ‘창세기전 3’는 그 기대에 부응했다. 전작에서 잠깐 다뤘던 이야기를 좀 더 세밀하게 알려주거나 떡밥으로 끝날 줄 알았던 부분도 속 시원히 해결했다. 특히 3명의 주인공을 내세워 동시대 3개의 에피소드를 진행하게 하는 옴니버스식 진행 방식도 색달랐다. 여기에 수십 명의 초호화 성우진과 50곡에 달하는 방대한 BGM까지 더해져 명작 반열에 오른다.2000년에 출시된 후속작은 시리즈 최종편이자 3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창세기전 3’ 기획 당시 방대한 스케일을 둘로 나누기로 해서 제목은 자연스럽게 ‘창세기전 4’가 아니라 ‘창세기전 3 : 파트2’가 됐다. 실제 게임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1편부터 시작하지 않고 ‘창세기전 3’에 이어 4편과 5편으로 이뤄졌다. 전투 시스템은 ‘창세기전 3’를 다듬었으며, TP 시스템이나 링 커맨드 등 ‘창세기전 2’에서 부활한 것도 있다. 스토리나 전투, 버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지만,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화려한 연출과 매력적인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여 팬들에게 큰 지지를 끌어냈다.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 시리즈는 2000년까지 승승장구하면서 PC 패키지 시장에서 인기순위와 기대순위 1위를 독점했다. 이 때문에 당시 대다수 게임회사들은 ‘창세기전’ 시리즈와 발매일을 피하기 일쑤였고 소프트맥스의 행보에 일거수일투족이 집중됐다. ‘창세기전’ 시리즈 총 누적 카피 70만 장에 달했으며, 2001년 코스닥시장 상장 등 국내 게임 시장을 선도했지만 이후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는다.명작게임 제작사의 몰락
소프트맥스는 ‘창세기전’ 시리즈의 완결과 함께 새로운 시리즈를 제작해 출시한다. 바로 소프트맥스의 마지막 PC 패키지 게임이자 몰락의 시작을 알린 ‘마그나카르타 : 눈사태의 망령’이다. ‘마그나카르타 : 눈사태의 망령’은 소프트맥스가 야심 차게 내놓은 기대작이자 최초 3D로 제작한 RPG 게임이다. 이에 예약판매까지 진행하며 큰 기대를 모았지만, 엄청난 버그로 희대의 졸작이 돼 소프트맥스의 명성에 금만 가고 말았다. 특히 게임의 부제를 기억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며, 원제 자체도 ‘버그나깔았다’, ‘만들다말았다’ 등으로 조롱당했다. 특히 같은 해 플레이스테이션2(이하 PS2)로 출시된 스퀘어(현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판타지 10’과 비교당하면서 큰 굴욕을 맛봤다. 이후 게임 OST 겸 버그 패치가 들어있는 CD를 무료 배포했지만, 팬들이 마음은 돌아선 뒤였다.이후 국내 PC 패키지 시장은 불법복제나 온라인 게임들의 성행 등으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몰락하면서 소프트맥스도 PC 패키지 제작을 접는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당대 최고의 MMORPG였던 엔씨소프트의 ‘리니지’와 ‘창세기전 3’의 매출액은 10배 이상으로 차이가 났다. 심지어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디아블로 2’ 유통만을 담당한 한빛소프트의 매출액이 ‘창세기전 3’의 3배가 될 정도로 온라인과 연계되지 않은 PC 패키지 게임은 사장 당하는 수순이었다. 이렇게 되자 소프트맥스는 ‘마그나카르타’ 시리즈의 후속작 ‘마그나카르타 : 진홍의 성흔’을 PS2로 제작하면서 콘솔업계로 진출했다. 2004년 PS2로 출시한 ‘마그나카르타 : 진홍의 성흔’은 전작 PC판을 흑역사로 취급하고 리메이크가 아닌 별개의 게임으로 출시했다. 게임 완성도나 인기는 둘째 치고 전 세계 판매량 40만 장을 돌파했다. 후속작인 ‘마그나카르타 2’는 2009년 XBOX360으로 출시됐으며, 전작보다 개선된 모습을 보여줘 평작 수준의 평가를 받았다. 판매량도 나쁘지 않아 소프트맥스의 부활을 알리기도 했다.반면 기존에 서비스하던 PC 온라인 게임 ‘테일즈위버’의 운영권을 넥슨에게 넘기고, ‘4LEAF’ 서비스를 종료하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이후 소트프맥스가 제작 운영한 PC 온라인 게임은 ‘캡슐파이터’ 뿐이었다. ‘캡슐파이터’는 유저 사이에서 버그투성이에 소프트맥스의 엉망진창 운영으로 악평이 자자했다. 이 같은 문제에도 건담을 다룬 게임이며, 다양한 기체를 조작할 수 있어 하드코어 팬들 중심으로 오랫동안 서비스가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5월 29일 서비스를 종료함으로써 현재 소프트맥스가 운영 중인 온라인 게임은 없다.2010년대 들어서 그나마 소프트맥스를 지탱하고 있던 건 ‘캡슐파이터’가 전부였다. 그러나 소프트맥스의 무책임 운영과 밸런스 조절 실패 등으로 접속 인원과 수입은 계속 감소하고 있었다. 심지어 2015년 들어서는 설날 이벤트나 8주년 이벤트 등 모든 이벤트를 하지 않는 등 서비스 종료 징조가 나타났다. 결국, 4월 중순 서비스 종료 공지 후 한 달여 만에 서비스 종료 수순을 밟았다. 사실 소프트맥스의 유일한 자금줄인 ‘캡슐파이터’가 종료되게 된 까닭에는 유저 감소도 있지만, 개발팀인 ‘팀 트리니티’가 ‘트리니티 게임즈’로 독립하면서 반다이 남코 게임즈에 편입된 이유도 있다. 소프트맥스가 반다이 남코 게임즈와 계약기간을 연장해 ‘캡슐파이터’ 서비스를 계속했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질 않았다.끝없는 고전, 상장폐지 위기
항상 소프트맥스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창세기전’ 시리즈의 부활이 그것이다. 다만 ‘창세기전’ 시리즈의 스토리가 ‘창세기전 3 파트2’로 완전히 끝나버렸기 때문에 후속작이 아닌 리메이크 관련이다. 이 중 리메이크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왔던 건 과거 팬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창세기전 2’다. ‘창세기전 2’가 DOS용 게임이고 구하기도 힘들어진 고전 게임이 되자 최신 그래픽으로 재탄생을 원하는 게이머들이 많았다.리메이크까지는 아니지만, 1997년 소프트맥스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창세기전 2’의 윈도우 95용과 PS1용으로 제작하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나이츠 오브 제네시스’다. ‘나이츠 오브 제네시스’는 원작의 장점을 살리면서 PS1 패드로도 쉽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와 게임성을 전면 수정했다. 또한, 부족한 스토리 부분과 캐릭터 음성을 추가하고 일본 현지 일러스트레이터를 채용해 캐릭터 디자인도 변경했다. 여기에 40여 종의 3D 동영상을 추가해 이벤트 연출도 보강했다. 어떻게 보면 리메이크에 가까운 결과물이 나왔지만, 일본 퍼블리셔였던 VIP가 부도나면서 빛을 보지 못했다. 소프트맥스는 어떻게든 출시를 위해 노력했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후엔 이미 콘솔 시장은 PS2, PC 시장은 윈도우 XP 중심으로 재편된 후였다.‘창세기전’ 시리즈의 리메이크 반응도 시들해질 때쯤인 2009년, ‘창세기전’이 온라인 버전으로 나온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어 2010년 소프트맥스는 MMORPG로 ‘창세기전 4’를 제작한다고 공개했다. 하지만 2013년 관련 영상 하나만 공개하고 2014년에는 ‘창세기전 4’ 관련 프로젝트가 중지되면서 없던 이야기가 되는 듯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4월 1차 CBT(클로즈 베타 테스트)가 진행됐지만, 반응은 참담했다. 2015년에 공개한 게임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저퀄리티 그래픽과 불편한 전투 시스템 등 불평불만이 터져 나왔다. 특히 1차 CBT가 ‘창세기전’ 시리즈를 잊지 않은 골수 팬들 위주로 진행된 것을 고려했을 때 이런 반응이 나왔다는 것은 ‘창세기전 4’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부분이다.여기에 지난 5월 15일, 소프트맥스의 주권거래가 정지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는 2015년 1분기 매출이 3억 원 미만에 따른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여부에 올랐기 때문이다. 소프트맥스가 공시한 바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매출은 고작 3995만 원을 기록했으며, 영업 손실은 24억 원에 달했다. 지난해 4분기에는 5억 6천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대부분 ‘캡슐파이터’로 거둔 것이고 이마저도 서비스 종료돼 당분간 소프트맥스의 매출은 없을 전망이다. 이에 소프트맥스는 개발 중인 모바일 게임 ‘트레인크래셔’와 ‘주사위의 잔영’, 온라인 게임 ‘창세기전 4’를 어필했다. 또한, 지난 6월 4일에는 ‘창세기전 4’의 모바일버전 개발과 서비스 권한에 대한 계약을 조이시티와 체결했다. 계약 금액은 5억 원이며, 추후 수익 배분은 서비스 종료 시까지 순수익의 10%다. 또 6월 10일에는 중국 게임앤아이와 모바일게임 ‘트레인크레셔’ 중화권 라이센스 계약을 맺었다.힘들게 6월 15일 거래정지는 해제됐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황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고전 중인 소프트맥스가 현재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대박 게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대박 게임이 현재까지 보여준 ‘창세기전 4’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창세기전’ 시리즈와 함께 한국 게임 시장을 이끈 소프트맥스가 맥없이 무너지지 않고 다시 한 번 힘차게 날아오르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저작권자 © 디지털포스트(PC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