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암 광부아저씨 이야기
임병국 닉네임 : 열차지기
열차사랑을 만든 건 순전히 기차가 좋아서였다. 간이역은 우리와 부모님들의 삶이 담긴 소중한 공간이다. 기차가 대중교통의 전부였던 시절부터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었던 간이역. 애절하리만큼 소중한 기억이 담긴 간이역이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잊혀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들의 글과 사진이 간이역을 온전히 지켜내지는 못하겠지만, 그 기억만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게 하길 바란다. | |
내가 철암이라는 동네를 알게 된 것이 햇수로 벌써 4년 전 일이다. 사소한 우연으로 시작된 철암과의 인연은 오랫동안 내 마음 한 켠을 훈훈한 감동으로 채우고 있다.
고장 난 카메라가 이끈 인연
내가 광부 아저씨를 만나게 된 것은 내 의지에 의해서라기보다 순전히 아저씨에 의한 것이었다. 철암 풍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근처 산에 올랐다 내려오던 길이었다. 그때 아저씨는 골목길 한쪽에 혼자 서 계셨다. 낯선 젊은이의 출현에 아까부터 유심히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괜한 눈치를 보던 나는 가벼운 목례로 아저씨를 지나가려했다. 그때 아저씨가 내게 한마디 건넸다. “어디서 왔는겨? 카메라 기자인겨?” 아저씨는 경상도 말고 아니고 강원도 말도 아닌, 어중간한 강원도 사투리로 내가 어디서 왔는지, 무얼 하는 사람인지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처음에는 조금 놀랐지만 따지는 듯한 말투라기보다 뭔가 궁금해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대답을 했다. “아 예, 기자는 아니고요. 철암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서요.” “그럼 카메라에 대해 잘 아시겠네. 나 좀 도와주이소.” “카메라는 잘 모르는데….”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저씨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어디론가 총총걸음으로 가고 계셨고, 나는 자리를 지키기도, 그냥 도망가기도 애매한 시추에이션에 빠지고 말았다. 일단 아저씨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골목길을 따라 이리저리 헤매며 한참을 따라가니 녹색으로 된 대문 앞이었다. 아무도 살지 않으니 부담 갖지 말고 들어오라 하시는데 솔직히 그 말이 더 무서웠다. 그때는 ‘혹시 이러다 날 덮치는 건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했었다. “혼자 사는 집이라 지저분한데, 그래도 들어오이소.” 아저씨는 혼자 살고 있었다. 밥솥은 비어 있고, TV, 비디오, 꿀, 동충하초병, 커피믹스 같은 자잘한 물건들이 방바닥 한 쪽에 널려 있었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는데 아저씨가 밥솥 뒤로 소주병을 감췄다. 그런 아저씨를 보는데 왠지 내가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소주 한 병 치운다고 별로 달라질 것도 없는 방이었지만 그거라도 치우려는 아저씨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 한쪽에 가지런히 정렬된 담배꽁초가 눈에 띄었다. 아저씨는 담배를 하루에 2갑씩이나 피운다고 했다. “이 카메라가 고장이 났는지 언제부터인가 영 사진이 찍히지가 않아. 우리 아들이 왔다가야 이걸 고쳐줄 텐데, 야가 바쁜지 요새 통 안 오네.” “어디 멀리 계신가 봐요?” “서울에 있는데, 요즘 일이 많이 바쁜가벼.” “이리 줘 보시죠. 제가 한 번 볼게요.” 소주 한 병, 담배 두 갑, 그리고 기침
아저씨는 1분에 두어 번씩 기침을 했다. 그 모습에 신경 쓰는 것을 알았는지 입을 막고 기침을 하면서도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미안하요. 내가 젊어서 탄가루를 많이 마셔서 이렇게 산다오.” “괜찮습니다. 카메라는 멀쩡한 것 같은데, 일단 좀더 살펴볼게요.” 카메라는 캐논 구형 자동 필름카메라였다. 무겁고 단단한 것이 그래도 옛날에는 꽤 비싼 녀석이었을 것이다. 웬만하면 내 선에서 고쳐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카메라를 만지는 동안 아저씨는 내내 당신의 아들 자랑을 했다. 웃으며 아저씨의 말에 장단을 맞추었지만 ‘자주 와서 카메라도 고쳐드리고 집안도 돌보는 게 효도일 텐데’ 하는 생각에 속으로는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의 아들이 밉게 느껴졌다. “여기 장성탄전에서 일하셨어요?” “그렇제. 여기서 20년을 넘게 일했소.” “원래 고향이 여기세요?” “고향은 저어기 강원도 딴 덴데, 탄질 하다보이 그냥 여기서 살게 된 거요. 여기엔 나말고도 그런 사람이 많아.” “퇴직 후에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매달 생계보조금 20만 원 나오는 걸로 먹고살지. 좀 모자라긴 한데, 그래도 연탄 떼고 하려면 그 돈이라도 귀하지.” 한 달에 20만 원이라니. 내 자취생활을 되짚어 봐도 20만 원이라는 돈은 한 달 생활에 너무나 빠듯한 돈이다. “이놈의 기침만 좀 멈추면 살만할 텐데, 젊어서 마신 탄가루 때문에 기침이 멈추지가 않네.”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아저씨는 쉴 새 없이 기침을 했다. 혹시 아주머니가 계신지 물어보려 했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말을 참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카메라가 먹통인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필름이 잘못 꽂혀 있었던 것이다. 자동카메라라도 필름에 이를 맞춰 써야하는데, 그런 걸 잘 모르는 아저씨가 그냥 대충 꼽아놓고 방법을 몰라 애를 먹었던 것이다. 원인이 밝혀지고 나니 고치는 건 시간문제였다. “다 고쳤습니다. 하하하!” “고맙소. 진짜 고쳐진 거요?” “제가 고친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어 드리지요. 포즈 좀 잡아 보세요.” “내가 그래도 한때는 사진도 잘 찍고 그랬었는데, 너무 고맙소. 이건 내 성의 표시니 꼭 받아주시오.” 할아버지가 내민 것은 뜻밖에도 담뱃갑 안에 꼬깃꼬깃 접어놓은 만 원권 2장이었다. 한 달 생계보조비 20만 원 받아 사시는 분이 당신 카메라 고쳐줬다고 이렇게 커다란 마음을 쓰다니. 나한테 2만 원을 주면 어떻게 사시려고. 마음 한 켠이 너무 아프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어렵게 고친 카메라도 아닌데 돈은 절대 받을 수 없다고 거부했지만 아저씨는 받지 않으면 그냥은 못 가게 할 태세로 돈을 자꾸 쥐어주려 했다. 그만큼 아저씨에게는 카메라 고치는 일이 중요한 일이었고, 그것을 대신해 준 나에게 사례하는 것 역시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난감하다. 돈을 안 받자니 아저씨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다고 돈을 받자니 내 마음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결국 아저씨와 협상을 하기로 했다. “그럼 제가 정말로 감사의 뜻으로 1만 원만 받을게요. 그만한 일도 안 하고 받은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그런 소리 마시오. 내가 얼마나 고마우면 그러겠소.” “다시 기회가 된다면 들르겠습니다. 아저씨, 안녕히 계셔요.” “잘 가시오.” 문 밖에까지 나와 손을 흔드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면서 괜히 가슴 한 쪽이 뜨거워졌다. 사진 한 장 찍게 해 달라는 말에 일부러 웃음까지 지으시는 아저씨.
만 원의 감동 그 이후
처음 갔을 때와 다르게 그 사이 철암은 많이 바뀌었다. 귀신같던 중앙도로가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되고, 빈민가처럼 늘어서있던 폐가촌도 도시계획으로 많이 정리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의 모습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더 살기 좋은 쪽으로 바뀐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이 철암 아저씨처럼 어렵게 살고 있는 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얼마나 큰 도움과 혜택이 될까 의구심도 든다. 아저씨는 차가 없다. 그러니 국도가 4차선으로 넓어진다고 해서 아저씨의 교통이 더 편해질 것도 아니다. 도시계획으로 새 집들이 들어선다고 해서 아저씨 집이 갑자기 살기 좋은 집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아니다. 크고 작은 철암 바꾸기 계획들이 이곳에 사는 분들에게 좀더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저씨와의 만남 이후 나는 자가용으로 네 번이나 철암을 지났지만 한 번도 아저씨를 다시 찾지는 않았다. 아니,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저씨가 나를 기억할지도 의문이었지만, 혹시라도 더 나빠져 있을지 모를 아저씨의 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저씨를 찾지 않는 게 도리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가끔은 아버지 같은 그리움과 걱정으로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다. 혹시 카메라 건전지가 다 돼서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진 않았을까? 사진 속에서 아저씨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계신다. 오래도록 그 웃음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댓글 박종대 : 돈을 주려는 장면에서 눈물이 다 났습니다. ㅜ,ㅜ 정말 많을 걸 깨달았습니다. 제1221열차 : 마치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을 보는 듯하네요. 혼자서 생활하시려면 많이 힘드실 텐데 안타깝습니다. 어떤 사연으로 여기까지 오시게 된 걸까요. try120ap : 저분들이 있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건데요. 가슴이 아픕니다. ㅜ.ㅜ 막걸리 선생 : 아아, 인생은 얼마나 알 수 없는 일들 투성이란 말인가! 분천사랑 : 아저씨! 당신이 어디에 계시던 꼭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합니다. 한겨울 : 마음을 토닥토닥. 혹시, 나는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 맞나??? 지기님, 감동 많이 받고 갑니다. 시골장항역 : 지기님 그래도 한번 찾아가 보심이. ^^ 아저씨는 지기님을 기억하고 계실 거예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