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산업이 스마트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휴대전화에서 시작한 스마트 열풍은 모든 전자 제품에 빠르게 퍼지고 있다. ‘스마트’가 비단 요즘 나온 개념이나 유행어는 아니다. ‘스마트 카드’ ‘스마트 요금제’ ‘스마트 경영’ 등 전자산업 외의 타 분야에서도 널리 쓰는 용어다. 그만큼 다양하고 폭넓은 의미로 쓰인다.
이 글에서는 스마트의 개념을 전자산업에, 특히 휴대전화, TV 등의 IT제품에 한정하고자 한다. IT제품에 있어서 스마트가 의미하는 것은 시간에 따라 다소 변해왔다. 과거에는 ‘지능적이고 다기능적인’(Intelligent & Multi-Functional)의 의미가 강했다면 요즘 들어서는 ‘최적화와 소셜네트워크화’가 더 부각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잘 알려져 있는 애플의 아이폰이나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전화기는 똑똑하고 기능이 많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수많은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자신의 폰에 설치하고 실행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유일무이한 자신만의 휴대전화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 또 소비자 스스로가 프로그램 개발자가 되거나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그 중심에 설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 준다.
이러한 추세에서 TV도 자유롭지는 않아 보인다. 휴대전화에서 스마트화를 주도하고 있는 구글과 애플이 TV 산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구체적인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 5월, 하반기에 ‘구글 TV’를 출시하겠다고 발표했고, 애플도 이미 ‘애플 TV’라는 셋톱박스 출시를 통해 TV 산업에 발을 담그고 있으며, 곧 화면을 갖춘 TV 수상기 사업에도 진출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애플과 구글이 TV 산업에 들어온다고 수십 년간 바보상자로 불렸던 TV가 당장 스마트 박스로 바뀔지에 대한 논란은 많이 있다. 스마트폰이나 터치패널을 갖춘 최신 리모컨뿐만 아니라 음성 인식, 동작인식 등 다양한 입출력 방법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수십 년간 수동적인 기기로 이용되었던 TV를 하루아침에 능동적인 기기로 전환해서 이용하기에는 소비자에게 너무나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일 수 있다. 또 TV는 개인기기가 아니고 가족기기이므로 휴대전화처럼 변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비자는 항상 변한다. 미래의 소비자는 지금의 소비자가 아니다. TV가 개인기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TV 산업의 스마트화
스마트TV의 개념
스마트TV를 단순히 인터넷이 되고 양방향 서비스가 가능한 TV 정도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이러한 TV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브로드밴드 TV, IPTV 등이 이런 기능을 하고 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요즘 스마트의 개념은 ‘최적화되고 소셜네트워크화’한 것을 포함한다.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설치하거나 실행할 수 있어야 하며 자유롭게 소셜 네트워크에 접속해 다양한 정보와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예전에 출시되었던 PCTV(PC 기능을 할 수 있는 TV 또는 PC가 연결된 TV)와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이러한 비교는 과거 PDA폰을 지금은 스마트폰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그 당시 PDA폰은 다른 일반 휴대전화에 비하여 ‘지능적이고 다기능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스마트폰처럼 ‘최적화되고 소셜네트워크화’하지는 않다. 즉, 하드웨어 측면에서 본다면 요즘 스마트폰과 PDA폰은 차이가 크지 않을 수 있다. 물론 CPU, GPU 성능이나 디자인, 디스플레이 측면에서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이 더 훌륭하다. 하지만 PDA폰도 기능은 대부분 가지고 있었다. 인터넷도 연결되고 각종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었다.
소비자가 스마트폰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지 하드웨어의 우수성 때문만이 아니다. 본인에게 적합하게 휴대전화를 꾸밀 수 있고 또 이를 통해 자유롭게 소셜 네트워크에 참여하여 손쉽게 소통하고 각종 서비스를 하거나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PCTV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PCTV가 더 우월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마트TV를 기존 PCTV와 구분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스마트TV를 더 이상 새로운 TV수상기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콘텐츠와 각종 응용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모으고 배포하고 유통하고 과금하는 모든 서비스를 포함하여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그림 1> 참조).
TV 산업의 역동적인 가치 사슬
스마트TV의 성패 여부는 그리 단순하게 결정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콘텐츠를 잘 만드는 회사, 콘텐츠를 모으고 소비자에게 전달해주는 서비스 회사, 화질 좋은 TV수상기나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셋톱박스 생산 판매 회사가 TV 산업의 가치 사슬(Value Chain)에서 각각 경쟁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가치 사슬의 상하 관계에 있으니 제휴도 하고 긴밀하게 협업도 해왔으나 콘텐츠 1등 회사, 서비스 1등 회사, TV SET 제조 1등 회사가 확실히 구분되어 왔다. 하지만 TV 산업의 스마트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면 이러한 구분이 모호해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 이러한 현상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그림 2> 참조). 스마트화는 개인화 기기인 휴대전화 산업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어떻게 보면 휴대전화의 스마트화는 기존 기업들이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럽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TV 산업의 스마트화는 조금 다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휴대전화의 스마트화를 거울삼아 TV 산업에 관련된 선두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ABC, NBC, Fox 등 미국의 메이저 방송사들은 상호 연합하여 훌루(hulu.com)라는 온라인 방송과 비디오 서비스 회사를 만들었다. 더 이상 콘텐츠의 제작과 방송에만 머물지 않고 온라인을 이용한 서비스 플랫폼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케이블TV 사업자들이나 IPTV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사들도 마찬가지로 가치 사슬의 확장과 새로운 온라인 서비스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셋톱박스를 넘어서서 블루레이 플레이어나 TV수상기에 보조금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도 있고, 콘텐츠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해 가치 사슬의 상류 쪽에 있는 기업을 적극적으로 합병(M&A)하고 있다. 작년 말 발표된 미국 케이블 TV 사업자인 컴캐스트(Comcast)의 NBC 유니버설 인수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 케이블 방송 업계는 웹 기반 TV 서비스인 ‘TV 에브리웨어’를 가입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면서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플랫폼에 대응하고 있다.
OTT 서비스(Over the Top, 셋톱박스 등의 전용 단말기를 통해 TV에서 구현되는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도 더 다양해지고 있다. 미국 최대의 온라인 DVD 대여 회사인 넷플릭스는 ‘와치 인스탄틀리’(Watch Instantly)라는 온라인 VOD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게임 콘솔이나 셋톱박스, TV수상기 업체들과 수익 배분 사업 모델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부두(Vudo), 티보(TiVo), 로쿠(Roku), 아마존 VOD 등 다양한 형태의 OTT 서비스 플랫폼이 나타나고 있으며, 일본의 5개 가전 회사가 공동 출자하여 만든 ‘acTVila’와 같은 TV 포탈형 서비스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미디어 룸’이라는 콘텐츠서비스 플랫폼과 윈도우 7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의 개발을 통해 TV의 스마트화에 차근차근 대응하고 있다.
구글과 애플도 스마트화의 핵심 가치 사슬인 ‘서비스 플랫폼’에서 헤게모니를 가지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구글과 애플이 다른 기업들과 다른 부분은 애플리케이션이다. 서비스 플랫폼의 핵심인 영상 콘텐츠 확보와 전달 방식에서 차이를 가져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기업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애플리케이션 확보와 구동 측면에서 경쟁력을 가져갈 확률이 높다. 두 회사는 강력한 OS 개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휴대전화 산업을 통해 앱스토어 환경 구성에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스마트TV의 사업 모델은 서비스 플랫폼의 개방성과 폐쇄성, 그리고 하드웨어 중심이냐 소프트웨어/콘텐츠 중심이냐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분류해서 생각할 수 있다(<그림 3> 참조).
TV 산업의 스마트화에서 누가, 어떤 사업모델이 경쟁 우위를 차지할지는 아직 모른다. 방송사, 통신사, 유통사, 광고사, SET 제조사간의 복잡한 협업과 경쟁 관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에게 누가 가장 많은 가치를 가져다주느냐이다.
구글TV와 애플TV의 비교
구글TV와 애플TV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구글TV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잘 알려진 것처럼 구글TV는 각 분야별 세계 최고 기업들이 모여서 추진하고 있다. 구글, 인텔, 소니, 베스트바이, 어도비, 로지텍, 디시네트워크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기업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TV수상기의 제작이나 판매에서는 최고 기업들이 분명하지만 구글을 제외하면 콘텐츠의 제작이나 취합과 유통에 관련된 최고 기업은 없다. 구글TV의 성공을 낙관만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구글은 수익성이 높은 TV 산업의 가치 사슬상 전반부를 도맡아서 하려고 한다. 물론 필요할 경우 제휴나 협업을 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독점적 사업 모델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예측처럼 TV광고 부분에 대해서는 특히 그럴 것으로 보인다.
사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애플TV는 스마트TV가 아니다. PVR(Personal Video Recorder) 기능을 가지고 있고 OTT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웹(Web) TV에 가깝다.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앱스토어 이용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아이폰처럼 앱스토어에서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을 다운받아서 설치하거나 구동할 수 없다. 단지 아이튠즈를 통해 애플이 확보한 콘텐츠들을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애플TV는 이러한 반쪽자리 셋톱박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애플이 구글TV에 대비하여, 혹은 TV 산업을 바꾸기 위해 준비할 것으로 보이는 TV를 의미한다. 아이폰처럼 아이튠즈뿐만 아니라 앱스토어에서 자유롭게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고 실행시킬 수 있으며, 자기만의 UI 디자인이 가능하고 더 나아가 소셜 네트워크의 중심 기기로 이용할 수 있는 TV를 말한다(구분을 위해 이하에서는 ‘애플iTV’라 표기함).
애플리케이션
앞으로 출시될 구글TV와 애플iTV는 둘 다 스마트TV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둘은 큰 차이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로 애플리케이션이다. 애플리케이션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한 가지는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이고 다른 것은 웹 애플리케이션이다.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이하 네이티브 앱)은 소비자의 단말기(휴대전화, PC, 태블릿, TV 등)에 특정한 응용프로그램을 다운받아서 이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말한다. 현재 애플 아이폰이나 구글 안드로이드 OS를 이용해 제작된 스마트폰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애플리케이션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주로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의 안드로이드 마켓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 네이티브 앱은 처음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을 때를 제외하면 설치 후에는 통신 상태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물론 네트워크가 연결되어야만 이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은 예외임).
웹 애플리케이션(이하 웹 앱)은 소비자가 소유하고 있는 단말기에 별도의 프로그램 설치 없이 웹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대표적인 예로서 구글 메일을 들 수 있다. 일종의 클라우드 서비스다. 이러한 애플리케이션은 기본적으로 통신에 연결되어 있어야만 이용할 수 있으며 연결되어 있더라도 통신 속도가 느리거나 끊김이 많으면 불편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네이티브 앱 대비 장점도 많다.
우선 단말기의 하드웨어가 고성능일 필요가 없다. 프로그램이 단말기가 아닌 웹상의 서버에서 돌아가기 때문에 고성능 칩이나 고용량 메모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 보안 위험이나 업데이트 번거로움이 적고, 다양한 플랫폼 지원이 용이하다.
휴대전화는 아직까지 무선통신 속도가 느리고 연결이 안 되는 지역이 많으므로 네이티브 앱이 유리하다. 실제 애플과 구글이 모두 네이티브 앱에 주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TV는 사정이 좀 다르다. 기본적으로 TV는 고정형이므로 고속 유선 통신 연결이 항상 가능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즉, 웹 앱이 유리할 수 있다. 또한 차세대 HTML 표준인 HTML5가 완성되면 플래시와 같은 플러그인 없이 웹에서 고화질 동영상 구현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상태에서도 웹 앱의 구동이 가능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스마트TV의 애플리케이션이 웹 앱 중심이 될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선은 기존 TV수상기 제조업체들이 웹 앱 중심으로 가기에는 부담이 있다. 웹 앱 중심이 되면 장기적으로 볼 때 TV 하드웨어의 부가가치가 낮아질 가능성 높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웹 앱은 고성능의 단말기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하드웨어 측면의 차별화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좀 과하게 말하면 웹 앱은 소비자용 IT 기기에 클라우드 서비스가 보편화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소비자들은 애플리케이션을 단말기에 다운받아서 쓰는 것에 익숙하다. 이미 PC에서도 그렇게 해왔다. 클라우드 소프트웨어보다 PC에 직접 인스톨해서 이용하는 소프트웨어에 익숙하다. 막연한 제3의 공간에 앱을 놓아두는 것보다 자신의 소유한 단말기에 앱이 담겨있는 것을 선호한다. 현재의 유선통신 속도 수준에서는 경우에 따라 웹 앱의 이용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한 지역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접속하면 통신망에 부담이 생겨 속도가 급격히 낮아진다.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구글과 애플의 입장은 어떠할까?
우선 구글은 웹 앱 중심으로 시장을 선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구글TV 발표 시 크롬 웹스토어를 개설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구글이 서둘러 구글TV를 출시하려고 하는 이유는 애플보다 먼저 TV 산업을 선점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구글은 모바일 시장에서 애플에 뒤져 있다. 개방형 플랫폼인 안드로이드 OS를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있지만 애플의 시장 장악력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이패드와 아이폰4가 출시되면서 간격이 더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TV의 스마트화는 PC처럼 움직이는 것이 구글에 유리하다. 온라인 검색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구글 입장에서는 TV의 스마트화가 검색과 웹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이 낮다. 구글은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에 가장 적극적인 회사이기도 하다. 이미 엄청난 용량의 서버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온라인상에서 클라우드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
애플의 입장은 오히려 반대이다. 애플은 구글과 다르게 단말기를 팔아서 수익을 창출하는 회사이다. 즉, 클라우드 서비스가 활성화되어 하드웨어의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웹 앱보다는 네이티브 앱을 선호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아이폰의 성공은 애플 앱스토어에 기반하고 있다. 현재 스마트폰 개념이 탄생한 것도 거의 이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앱스토어는 애플리케이션뿐만 아니라 미디어 유통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플랫폼의 폐쇄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앱스토어에서 거래되고 있는 대부분의 애플리케이션은 네이티브 앱이다. 네이티브 앱은 고성능 아이폰과 조화를 잘 이룬다. 애플은 모바일 기기에서 성공한 네이티브 앱의 경쟁력 우위를 TV에서도 계속 가져가고 싶어 할 가능성이 크다.
구글과 애플 모두 어느 한쪽에만 집중하고 있지는 않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마켓을 계속 활성화하면서 네이티브 앱에 대응하고 있고 애플도 이미 별도의 웹 앱 전용 스토어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다만 자신이 경쟁 우위를 가지기 쉬운, 자신의 사업 모델에 잘 맞는 애플리케이션이 스마트TV에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TV 광고 시장
TV 산업에 있어서 광고는 매우 중요하다. 물론 다른 산업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TV 산업에 있어서는 다양한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이유는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다.
TV 산업에 관련된 기업들이 수익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소비자에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것이며, 다른 것은 소비자들에게 광고를 보게 하고 광고주들에게 돈을 받는 것이다. 광고로 돈을 많이 벌수록 소비자에게 과금하는 비중을 줄일 수 있고 소비자에게 과금을 많이 할 수 있을수록 광고는 적게 해도 된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이 둘 간의 비중 조절을 통해 다양한 사업 모델을 만들고 있다.
TV 광고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미디어별 광고시장 중에 TV의 비중이 가장 크다(<그림 4> 참조). 전 세계적으로 광고 시장 규모는 약 530조 원에 이르는데 이중 40% 이상이 TV 광고 시장이다. 200조 원이 넘는 규모이다. 다른 구(舊)매체인 신문과 잡지와는 다르게 빠르지는 않지만 계속 성장하고 있다. TV 산업에 관련된 기업들이 가장 탐낼 만한 시장임에 틀림없다.
현재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광고 시장은 인터넷 광고 시장이다. 주지하듯이 구글은 검색 서비스를 기반으로 인터넷 광고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모바일 광고 시장을 장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이곳에서 애플과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바일 광고 시장은 위치 기반 서비스와 더불어 앞으로 가장 빠른 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다. 당초 구글은 유선 인터넷 시장에서 이용했던 검색을 기반으로 모바일 광고 시장을 공략하려고 했다. 하지만 모바일 시장은 빠르게 스마트화하면서 검색보다 애플리케이션이 메인이 되었다. 즉, 소비자가 검색보다 앱을 이용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진 것이다. 따라서 광고도 검색 중심보다 앱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이 더 유리하게 되었다. 구글이 애드몹(AdMob)을 전격적으로 인수한 이유도 거기 있다.
애드몹은 애플리케이션 광고를 개발하는 회사로 애플이 오랜 기간 공들여 온 회사이다. 이를 구글이 갑작스럽게 인수를 해버린 것이다. 애플은 아이폰OS 4.0을 발표하면서 ‘아이애드’(iAd)라는 모바일 광고 플랫폼을 내놨다. 양방향성을 갖는 애플리케이션 중심의 광고 방식으로 애플이 직접 판매하고 호스팅하며 수익의 60%를 애플리케이션 개발자에게 나누어주는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다.
다시 TV 광고 시장으로 돌아와 보자. 구글과 애플은 TV 광고를 어떠한 플랫폼으로 가져가는 것이 서로에게 유리할까? 먼저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통해 모바일 광고 시장에서 아이애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다고 가정할 경우, 애플iTV에도 이 광고 모델을 그대로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물론 모바일 시장에서 아이애드를 성공했다하더라도 TV 시장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애플은 TV 애플리케이션을 네이티브 앱 중심으로 가져가려고 노력할 것이고 이는 네이티브 앱 중심 광고 모델인 아이애드와 궁합이 잘 맞는다.
반면 구글 입장에서 보면 TV 광고 시장을 모바일 광고 방식보다는 PC 광고 방식으로 가져가고 싶어 할 가능성이 크다. 유선 인터넷 광고 시장에서 구글은 검색을 기반으로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TV는 유선 인터넷망이 연결되는 고정형 장치라서 입출력 방식만 개선된다면 충분히 검색 기반 광고 도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동적 광고에 익숙한 TV 시청자들이 애플이나 구글이 생각하는 능동적 광고에 얼마나 빨리 적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 광고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신문과 잡지의 광고 시장이 빠르게 쇠락하는 것을 보면 TV 산업의 스마트화와 함께 TV 광고도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TV수상기 vs 셋톱박스
아무리 스마트화가 서비스 플랫폼 중심으로 움직인다 하더라도 우선 소비자의 최종 접점이 되는 단말기의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의 TV수상기나 셋톱박스만으로는 스마트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소비자는 새로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TV수상기나 셋톱박스를 구매해야 한다. 새로운 TV수상기와 새로운 셋톱박스 중 어느 것이 효과적일까?
구글은 TV수상기의 파트너로 소니를 선택했다. 그렇다고 앞으로 소니에게만 구글TV를 만들 수 있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OS를 개방하여 다른 TV수상기 제조기업들도 구글TV를 만들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셋톱박스 제조회사들도 자유롭게 만들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더 많은 기업들이 구글TV를 만들어서 소비자들에게 보급할수록 구글이 원하는 환경의 형성이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단, 크롬 웹스토어 이외의 다른 웹스토어의 이용 가능 여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모바일 시장에서 애플의 아이폰과 다르게 구글폰에서는 안드로이드 마켓 이외의 다른 앱스토어도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전략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많다. 예를 들어 안드로이드 마켓 이외의 다른 앱스토어에 등록되어 있는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은 전혀 통제가 안 된다. 이를 이용하여 광고를 한다거나 수익 모델을 만들기 어렵다. 반면 애플은 다르다. 아이폰에서 애플리케이션을 쓰려면 애플 앱스토어에서 내려받아야 한다. 즉, 애플은 모든 애플리케이션을 통제할 수 있으며 이를 이용하여 다양한 수익 모델 개발이 가능하다. 구글도 TV용 웹스토어를 독점 운용하고 OS도 라이선스 형태로 개방할 가능성이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애플은 이미 ‘애플TV’라는 셋톱박스를 만들어서 팔고 있다. 애플은 TV수상기 시장에 진입한다 하더라도 셋톱박스는 성능과 기능을 업데이트해서 계속 공급할 가능성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기기이고 교체 주기가 짧은 휴대전화와 달리 TV수상기는 가족용 기기이고 교체주기가 길다. 휴대전화는 1년에 12억 대 이상 팔린다. 반면 TV는 1년에 2억 대 정도 팔린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셋톱박스를 공급해 소비자가 기존 TV수상기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효과적이다.
이와 같은 측면을 고려해 볼 때 휴대전화에 견줘 TV수상기는 스마트화에 의해 나타나는 단말기의 하드웨어적 변화가 상대적으로 미약할 가능성도 있다. 단, TV수상기를 만들든 셋톱박스를 만들든 간에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이 있다. 기본적으로 TV의 스마트화는 소비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학습을 요구한다. 따라서 소비자들에게 거부감을 최소로 할 수 있는 입출력 기기의 개발은 TV의 스마트화 성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구글이 입출력 기기 개발 회사인 로지텍과 협력하는 것도 이와 같이 이유라고 볼 수 있다.
TV 관련 기업들의 발 빠른 사전 대응, 음악보다 강력한 영상 콘텐츠의 저작권 문제, 국가별로 매우 현지화되어 있으며 동시에 가정용 기기라는 TV의 속성, 50년 동안 소비용 기기로 이용한 소비자들 인식과 습관 등을 고려해 볼 때, TV 산업의 스마트화는 분명 휴대전화의 스마트화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