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rtPC사랑=이철호 기자] 그동안 인류는 수많은 역사적 충격과 함께 변화를 거듭해 왔다. 컴퓨터, 전자기기도 예외가 아니다. 내적인 기술 발전뿐만 아니라 외부의 큰 충격이 PC 시장의 발전, IT기기 시장의 판도에 영향을 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전염병 때문에 판이 뒤집힐 거라는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COVID-19) 바이러스 때문이다. 10월 12일 기준으로 코로나19 확진자는 전세계적으로 3,730만명에 달하며, 약 107만명이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했다.
문제는 언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종식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미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는 지난 3월보다 더 빠른 속도로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으며, 미국 역시 매일 2~3만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하며 바이러스 진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의 시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논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래상은 이미 우리가 상당부분 경험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양상이 앞으로 PC/IT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살펴보자.
모두가 어렵다는데 컴퓨터 업계는 호황?!
코로나19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증상, 후유증도 무섭지만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얼어붙게 하고 이동을 꺼리게 해 경제를 마비시키고 있다는 점이 더 무섭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0.5%를 기록함에 따라 명목 GDP 67조 2,000억원 손실, 일자리 678,000개 감소 등의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시장이 있다. 바로 컴퓨터 시장이다.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에 따르면, 올해 8월 국내 노트북 판매량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49%나 상승했다. 올해 초부터 나타난 노트북 시장 호황세가 여름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노트북뿐만이 아니다. 데스크톱 쪽에서도 시장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2020년 8월 CPU 판매는 작년 같은 기간 대비 44% 늘었고, 그래픽카드와 모니터 판매량도 각각 55%, 61% 증가했다. 그야말로 상당한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호황세는 내년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PC업계 관계자 A는 "PC방 폐업 등으로 인한 악제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PC 관련 제품 판매가 늘었다"며 "이와 같은 추세는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 상반기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 속에서도 웨어러블 시장 성장…가전 시장도 회복세
PC 이외의 IT기기, 가전제품 시장은 어떨까? 가장 먼저 눈에 띄게 성장한 분야로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부문이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전세계 웨어러블 디바이스 전체 출하량은 8,620만대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4.1% 성장했다. 특히 코드리스 이어폰을 비롯한 히어러블 디바이스가 시장을 주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1분기에 큰 충격을 받았던 가전 시장도 2분기 들어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인 가전 판매업체인 롯데하이마트의 경우 2분기 매출액 1조 1,150억원, 영업이익 69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 각 4.2%, 51% 증가하며 시장 기대치를 넘어섰다. 특히 홈 인테리어 가전과 공기청정기, 살균기 등의 청정가전이 시장을 주도했다는 평가다.
반면, 코로나19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쪽도 있다. 대표적으로 카메라 시장의 경우 지난 3월 출하량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0% 미만으로 떨어진 후 아직까지도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코로나가 일으킨 '집콕'과 '언택트'
이렇게 사람들이 불황기 속에서도 컴퓨터, 웨어러블 기기, 공기청정기 등을 더 많이 구매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밖보다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콕족'들이 (강제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을 꼽을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실외보다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물론 집에 있다고 해서 일상에 손을 놓을 수는 없는 법. 이에 사람들은 회의실 대신 줌이나 MS 팀즈 등의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화상회의로 팀원과 소통하고, 웹캠으로 촬영한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강의를 듣게 되었다. 한편,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실내 가전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었다. 이것이 현재 PC/IT 시장 호황의 원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등장한 또 하나의 트렌드가 있다면 바로 '언택트(Untact)'다. 언택트는 접속, 연결을 뜻하는 콘택트(Contact)에 부정,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사 언(Un)을 합성한 것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트렌드를 뜻하는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언택트 기술로는 화상회의, 온라인 교육 등에 사용되는 화상 솔루션을 들 수 있다. 카카오페이나 토스 등의 디지털 기반 금융 서비스나 모바일 병원예약 등을 비롯한 비대면 의료 관련 서비스, 쿠팡과 11번가 등으로 대표되는 이커머스 등도 언택트 트렌드를 이끌어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이후에도 트렌드는 이어진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에도 이런 트렌드는 계속될까? 일단 먼저 언급해야 할 부분은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설렁 코로나 백신이 나온다 해도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공급될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내년이나 내후년은 되어야 진정한 코로나19 종식을 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설렁 전세계가 코로나19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해도 한 번 굳어진 라이프스타일이 쉽게 바뀌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 개인은 집에서 생활하는 패턴에 익숙해질 수 있으며, 정부와 기업 역시 코로나19를 계기로 온라인을 통한 업무 처리, 교육을 강화할 것으로 보임에 따라 굳이 사무실이나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
유통 시장에서의 변화도 불가역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온라인쇼핑, 모바일쇼핑 규모는 꾸준히 커 왔는데, 코로나19는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화했다. 머지않은 시기에는 동네 컴퓨터 가게들이 모두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집콕 라이프, 새로운 선택의 기준이 되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사람들이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는 경향이 이어진다면 PC나 IT기기를 고를 때 집에서의 활용도를 먼저 고려하게 될 것이다. 먼저 컴퓨터의 경우 화상회의를 비롯한 재택근무에 적합한 솔루션과 퍼포먼스를 우선적으로 따져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미 시장의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한국IDG의 조사에 따르면, 향후 업무용 컴퓨터를 고체할 때 '재택근무'를 선택 기준 중 하나로 감안하겠다는 응답자가 무려 85.6%에 달했다. 이는 재택근무를 경험한 바가 있는 사람들이 74%에 달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재택근무 경험이 없고 앞으로도 실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1.1%에 불과했다.
이렇게 재택근무가 중요한 구매포인트로 자리 잡으면서 데스크톱에서 노트북으로의 판도 변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선택할 PC 폼팩터 중에서 노트북을 고른 응답자는 85.6%에 달한 반면, 데스크톱을 선택한 이들은 14.4%에 그쳤다. 노트북은 재택근무에 필요한 캠, 오디오 등이 내장되어 있고 집은 물론 사무실에서도 쓰기 편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전 부문에서는 디자인에 신경을 쓴 제품들이 집콕 트렌드에 수혜를 입을 것으로 관측된다. 대표적인 가구기업 이케아의 경우 2020회계연도 매출액이 전년 대비 33% 증가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홈퍼니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가전 분야에서도 기능과 가성비는 물론 디자인도 고려한 제품이 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어떤 디자인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어울릴까? 시장조사업체 오픈서베이의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52.4%가 심플한 디자인을 최우선적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 인테리어와 어울리는 디자인을 원하는 소비자도 17.0%에 달했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호하는 소비자도 11.1%나 됐다. 즉 심플하고 세련된, 그래서 어디에 둬도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 가전제품 디자인에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게임에서 넷플릭스까지 모두 집에서 즐긴다
고사양 PC 게임에 필요한 그래픽카드나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등의 경우 PC방에서의 수요는 줄어든 반면, 개인 유저의 수요는 늘었다. 업계 관계자 B는 "코로나19로 인해 PC방이 폐업하거나 운영을 중단하면서 PC방 쪽 매출은 감소했다"며 "하지만 집에서 게임을 즐기려는 유저들의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코로나19를 맞아 게임에 적합한 PC와 모니터 등을 구성한 유저들은 앞으로도 집에서 게임을 즐기려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오는 11월에는 PS5와 엑스박스 시리즈 X/S 등이 출시됨에 따라 신작 콘솔 게임을 플스방 대신 집에서 플레이하려는 수요도 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집에서 더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 게이밍 기어의 수요는 개인 소비자를 중심으로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외산 브랜드는 물론 삼성, LG 등의 국내 대기업도 게이밍 기어 시장에 뛰어든 가운데 어떤 브랜드가 차별화된 기능과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비단 컴퓨터뿐만 아니라 TV, 빔프로젝터 등 영상기기 분야에서도 게임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관련 기능이 새로운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 서비스는 물론 통신3사가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이면서 모바일이나 TV로도 최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집에서 게임이나 영화, 드라마 등을 더 실감 나게 즐기려는 이들을 위해 디스플레이 사이즈가 날로 커지는 영상가전의 '거거익선' 트렌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집에서 더 신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무선 스피커의 수요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더 스마트해진 사무실 위한 오피스기어 인기 끌 듯
코로나19가 사라진 뒤에도 원격근무, 화상회의에 대한 니즈는 늘 것이다. 비단 집뿐만 아니라 사무실에서도 원활한 원격근무, 화상회의를 위한 스마트오피스 구축이 중요할 것이다. 해외여행이 어려워져 해외와의 대면 소통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로 인해 최첨단 스마트오피스 구축에 필요한 PC와 IT기기의 수요가 앞으로도 탄탄히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한 프레젠테이션에 요구되는 전자칠판, 디스플레이나 서울 본사와 뉴욕 오피스 간의 화상통화, 영상회의를 위한 웹캠, 헤드셋 등이 그것이다.
한편으로는 빠르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위한 네트워크 솔루션도 중요해질 것이다. 중요한 데이터를 더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는 기가비트 네트워크 솔루션이 더 많은 기업에게 요구될 것이며, 와이파이는 물론 5G로도 연결 가능한 노트북의 수요도 늘 것이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원격근무, 화상회의, 화상수업에 대한 니즈 확산으로 전자칠판, 무선 프레젠테이션 솔루션에 대한 관심도와 판매량이 늘었다"며 "앞으로도 대면 접촉 없이도 원활한 업무와 수업이 가능하도록 돕는 언택트 솔루션에 더욱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화하거나 혹은 확장하거나
사실 이렇게 써놓았지만 코로나19 이후의 세계가 정확히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에 PC/IT 업계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 혹은 확장을 시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코로나 특수' 이후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목말라하는 PC 업계에서 이런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첫 번째로 PC, 게이밍 기어의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ASUS는 자사의 게이밍 기어 브랜드 ROG(Republic of Gamers)와 이케아의 협력을 예고했다. 이는 조만간 ROG 게이밍 가구가 출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이밍 기어 브랜드 레이저는 게임 플레이 시 씹는 껌인 레이저 리스폰(Razer Respawn)을 공개했다.
그동안 PC회사가 도전하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에 발을 내딛는 경우도 있다. 국내 PC 주변기기 브랜드 앱코는 비토닉(Beatonic) 브랜드로 블루투스 이어폰, 무선 스피커 등을 출시하는가 하면 오엘라(OHELLA) 브랜드로 다양한 생활가전도 판매하고 있다. 게이밍 기어 업체 웨이코스는 씽크웨이(Thinkway) 브랜드를 통해 공기청정기, 로봇청소기를 선보였다.
이런 변화 속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업계 관계자 C는 "자체 기획 및 개발을 통해 품질로 인정받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빠른 트렌드 변화에 맞춰 계속적인 시장조사를 통해 관련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용산으로 온라인으로 판이 완전히 바뀐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컴퓨터 및 주변기기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6,089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8.4% 늘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3월부터 매월 30% 이상의 높은 성장세를 나타냈다. 가전·전자·통신기기 온라인쇼핑 거래액 역시 전년 동월 대비 14.0% 상승한 1조 4,405억원을 기록했다.
이것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쇼핑의 축이 이동하는 현상을 코로나19가 가속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나 가전제품을 다나와나 에누리에서 가격을 비교하고 네이버 쇼핑이나 11번가, 쿠팡 등을 통해 구매하게 됨에 따라 용산 선인상가나 하이마트로 대표되는 오프라인 유통의 영향력은 약해질 것이다.
최근 발생한 'RTX 3080 대란'은 앞으로의 PC/IT 유통 시장을 상징하는 사건이 될 수 있다. ASUS 그래픽카드 공식유통사인 ㄱ사가 RTX 3080 제품을 중간 유통업자 대신 쿠팡을 통해 직접 판매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전례 없는 행보에 이엠텍, 기가바이트 역시 자체몰이나 하이마트, 인터파크 등을 통해 직접 그래픽카드를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온라인을 통해 언택트로 구매하는 트렌드 속에서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반응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마케팅 업계 관계자는 "비대면 구매환경에서는 제품을 직접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 먼저 구매한 자의 솔직한 리뷰 하나가 선택을 좌우할 수도 있다"며 "그만큼 소비자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고 불만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온라인 구매 플랫폼이 얼마나 투명한 판매 환경을 제공하는가도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 D는 "광고비에 따라 노출도가 심하게 달라지는 플랫폼에서 상대적으로 공정하게 랭킹이 정해지고 노출도가 달라지는 플랫폼으로 업체들이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