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이 게임이 뭐기에 이리도 난리지?
15년. 자그마치 15년이라는 시간동안 출시와 연기를 반복한, 역사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게임이 바로 <듀크 뉴켐 포에버>다. 때문에 출시를 전후해 전 세계 게임 언론에서도 이런 사연을 자세하게 소개하곤 했다. 오랜 시간동안 출시를 미룬 것도 미룬 것이고, 한동안 아예 개발을 중단하기까지 하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게임의 출시가 지지부진하는 동안, 유행하는 게임도 여러 번 바뀌었다. 더구나 이제는 전작을 기억하는 이들 역시 많이 줄었다. 그래서인지 이 게임이 이슈가 되자, 한편에서는 이 게임이 단순히 오래 개발한 신작이나 뜬금없이 나온 FPS 게임으로 아는 게이머도 적지 않았다. 15년이라는 세월은 무심할 따름이다.
짚고 넘어가자. <듀크 뉴켐 포에버>는 어느 날 벼락스타처럼 떠오른 게임이 아니다. 남성미 넘치는 주인공, ‘듀크 뉴켐’이 등장하는 네 번째 정식 후속 작품이다. 첫 번째 시리즈에 해당하는 <듀크 누컴>(뉴켐이 아니다)이 1991년에 나왔으니 20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게임이다. 하지만 출시하겠다던 후속이 1998년 이후 14년여 동안 연기에 연기를 거듭했다. 시리즈 통산 20여 년의 역사 중 3분의 2를 출시 예고와 연기로 날린 게임이다. 그러니 듀크 뉴켐 시리즈의 행보는 다른 어떤 게임 시리즈에서도 찾지 못할 만큼 이색적이라 하겠다.
이 게임 처음 들어본다고요?
듀크 뉴켐 시리즈가 낯선 독자를 위해 시리즈의 역사부터 간단히 짚어보자. 첫 게임은 1991년 MS DOS 기반으로 나왔다. 내용은 ‘매드 사이언티스트 기믹’의 악당인 닥터 프로톤과 그를 주축으로 한 외계 생명체들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듀크 누컴’이 저지하고 영웅이 된다는, 지금으로 치면 매우 진부한 줄거리를 가진 액션 게임이다.
줄거리가 단순한 것은 비단 이 게임뿐만 아니라, 90년대 나온 액션 게임이나 FPS 게임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따라서 줄거리가 빈약하다고 게임의 재미를 해치진 않는다. 다만 이 게임은 진행이 단조롭고 일부 무기 기능만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등, 다른 게임에 비해 차별화 요소가 딱히 많지 않은 액션 게임이다. 당연히 지금 시각으로 보나 당시 시각으로 보나 <듀크 뉴켐 2>가 나올 때까지 이 시리즈는 그저 그런 DOS 기반 액션 게임에 불과했다. 그 시절 다른 액션 게임에 비해 크게 띄울 만한 요소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듀크 뉴켐 시리즈가 이렇게 큰 화제를 불러 올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 개발자 자신들도 꿈도 못 꿨을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첫 번째 시리즈는 당시 유명 만화영화의 악당 이름 때문에 본명을 바꿔야 했다.
같은 ‘듀크’라고 믿기 어려운 <듀크 뉴켐 2>.
장르 변화, 게임 운명을 바꾸다
듀크 뉴켐 시리즈 운명을 뒤바꾼 계기는 1996년 출시 후, 전 세계 400만 장을 판매한 <듀크 뉴켐 3D> 덕분이다. 이전까지 액션 슈팅 장르였던 시리즈는 <듀크 뉴켐 3D>로 넘어가면서 장르를 FPS로 바꾸고, 화면도 2D에서 3D로 꾸미면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 덕분인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판매량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그러나 부정적인 문제도 있었다. 게임 성향과 주인공 성격도 함께 바뀌면서 엽기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 때문에 FPS 게임의 폭력이나 잔인함을 이야기할 때 <둠>이나 <퀘이크> 시리즈만큼은 아니어도, 만만찮게 언급되는 부작용도 갖게 됐다. 어쨌거나 장르 노선 변경은 긍정적이었다. 이는 FPS 장르의 기념비라 할 <울펜슈타인 3D> 등을 유통하며 일찌감치 3D로 진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어포지 소프트웨어의 계산이 맞아 떨어진 덕이다.
어포지 소프트웨어는 3D 게임 제작을 위해 1994년 3D 게임 전문 브랜드인 ‘3D 렐름즈’(3D Realms)를 새로 만드는가 하면, 켄 실버맨 같은 걸출한 프로그래머와 <둠>, <퀘이크>를 만든 이드소프트 출신 개발자 영입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빌드 엔진 같은 3D 게임을 위한 새로운 게임 엔진을 만드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시대를 정확히 읽고, 그에 대응한 노력이 <듀크 뉴켐 3D> 성공으로 이어졌다.
<듀크 뉴켐 3D>에서 쓴 빌드 엔진은 2D에서 3D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겪은 엔진이지만, <둠>에서 썼던 엔진보다 나은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다. 예컨대 오브젝트 파괴나 점프, 앉기 같은 다양한 동작을 구현했고, 경사면이나 물 속 같은 지형지물을 표현하는 등 <둠>에 비해 여러 부분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이와 함께 3D 그래픽과 2D 그래픽을 적절히 섞어 건물의 층 개념을 표현하는 등 3D 효과를 내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듀크 뉴켐 3D>는 게이머에게 전작보다 훨씬 다양한 환경과 임무를 부여하면서 입체적으로 움직이도록 했다. 비록 빌드 엔진은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하드웨어 환경에 힘입어 퀘이크나 언리얼 엔진에 밀려 사라졌지만, <듀크 뉴켐 3D>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3D 그래픽이 발전하던 시기에 <듀크 뉴켐 3D>는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제 2장.
전설의 기대작, 출시 연기의 전설이 되다
전작에 비해 완전히 달라진 <듀크 뉴켐 3D>의 대성공은 자연히 후속 게임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한껏 고무된 개발사 3D 렐름즈는 후속으로 <듀크 뉴켐 포에버>를 개발 중이라고 발표해 당시 게이머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3D 렐름즈의 스캇 밀러는 1997년 무렵, <듀크 뉴켐 포에버>를 언급하면서 “이 게임은 1998년 최고의 게임이 되거나 최고의 게임 중 하나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듀크 뉴켐 포에버>를 다른 의미로 ‘최고의 게임’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발표 당시의 호언장담과 달리, 이듬해 <듀크 뉴켐 포에버>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해외나 국내나 모두 기대작들이라면 으레 한두 번씩 하는 출시 연기려니 했다. 당시 유행하던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도 연기를 밥 먹듯이 한 게임이었고, 국내 게임 중에도 <포가튼 사가>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출시를 연기한 게임도 있었다. 그러니 <듀크 뉴켐 포에버>가 출시를 미뤘다고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달이 가고 해가 바뀌면서 ‘이제 웬만큼 만들었겠다’ 싶을 때마다 나오라는 게임은 없고 매번 3D 렐름즈 관계자들의 출시 연기 발언들만 전해졌다. 1998년 5월, E3 게임쇼에서 공개한 영상과 다음해 나온 새로운 스크린 샷들은 기대감을 높였지만, 여전히 게임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제 슬슬 게이머들의 기대는 점차 초조함과 불안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블리자드도 <듀크 뉴켐 포에버>의 출시 연기 앞에서는 한 수 접어줘야 할 정도다.
2년은 기다려 줄 수 있었지
출시 일자를 몇 번에 걸쳐 바꾸나 싶더니 마침내 2000년마저 흐지부지 지나쳤다. 이러자 게이머들의 초조와 불안은 서서히 자포자기로 변했다. 더불어 여기저기서 조롱거리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는 <듀크 뉴켐 포에버>의 약자인 ‘DNF’가 ‘끝내지 않겠다’(Do Not Finish)라는 뜻이라며 비아냥거리기 시작했고, 국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3D 렐름즈가 하는 말에 대해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중간에 출시 희망이 조짐도 있었다. 개발 엔진을 퀘이크 계열에서 언리얼 계열로 바꾼 2001년 5월 무렵에 새로운 예고편이 선보였다. 이때 공개한 영상은 확실히 전에 비해 질적으로 진보해 있었다. 당시 이 게임 유통사인 테이크 투가 판타그램과 국내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도 전해지면서 ‘드디어 나오는구나’하는 기대감을 드높였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001년 12월에는 나왔어야 하는 게임이 또 해를 넘겼다. 당시 판타그램 이상윤 대표이사는 국내 게임 전문지와 인터뷰를 통해 <듀크 뉴켐 포에버>와 관련해 “유통 계약 직후 진척 상황을 확인하고자 3D 렐름즈를 찾았는데 (개발은 하지 않고) 다들 놀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 충격적인 소식은 그때까지 4년여를 기다린 게이머들을 한순간에 절망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이쯤 되자 3D 렐름즈 관계자들이 내뱉는 <듀크 뉴켐 포에버> 관련 언급들은 코미디 수준으로 전락한다. 조지 브롬우사드라는 관계자는 출시 일에 대해 “많이 늦어졌지만 적어도 <언리얼 2>보다는 먼저 나온다” 혹은 “<둠 3>보다는 먼저 나올 것”이라는 발언으로 빠른 출시를 공공연하게 자신했다. 그러나 정작 <언리얼 2>나 <둠 3>가 진작 먼저 나왔고, 급기야 “(출시에 대해) 할 말이 없다”거나 “2004년에는 출시하기를 희망한다” 등 무기력한 모습까지 보여 실망감을 안겼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이런 언급을 하던 시기였다면 게임을 거의 다 만들었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개발 초기였다고 한다. 언리얼 2 엔진 기반의 새로운 엔진 구성을 위해 기존 콘텐츠를 다 엎고 막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려던 시기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훗날 3D 렐름즈가 고의적으로 게이머들을 기만했다는 지탄을 받는 단초가 된다.
결국 <둠 3> 마저 <듀크 뉴켐 포에버>보다 빨리 나왔다.
게임의 주인공에 얽힌 이야기들
★내 본명은 사실 이거야
예명을 쓰는 연예인들 중에는 먼저 데뷔한 연예인과 이름이 같아 불가피하게 바꾼 경우도 있다. 듀크 뉴켐 역시 첫 번째 발매를 앞두고 불가피하게 본명인 듀크 뉴켐을 놔두고 ‘듀크 누컴’(Duke Nukum)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이는 당시 인기리에 방영 중인 만화영화 <캡틴 플래닛>에서 나오는 악당, 듀크 뉴켐과 이름이 겹쳤기 때문이다. 다행히 <캡틴 플래닛>이 시들해지면서 듀크 뉴켐도 처음 이름을 쓸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고전 게임 마니아 중에서는 듀크 뉴켐 본명을 듀크 누컴으로 아는 사람도 있지만, 본명은 듀크 뉴켐이 옳다.
★처음부터 거친 남자는 아니었단다
지금의 듀크 뉴켐은 갈 데까지 간 거친 남자 같은 성격이다. 그러나 시리즈 초기에는 <혼두라>나 <이카리> 같은 스크롤 슈팅 게임 주인공과 같은 군인처럼 보였다. 그러나 <듀크 뉴켐 3D>부터 성인 코드와 관련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투입하면서 점차 달라졌다. 악당들을 물리치는 이벤트 역시 무척 과장되게 묘사해 이른바 마초(Macho, 남자다움을 거칠게 과시하는) 스타일로 정체성을 각인시켰다. 이런 성격은 <듀크 뉴켐 포에버>에서도 그대로 계승했다.
★자존심 하나로 먹고 사는 남자
<듀크 뉴켐>의 캐릭터 체력은 일반적인 게임에서 뜻하는 ‘HP’(Health Point)가 아니라 에고(Ego, 자아)다. 이는 게임 속에서 대척자가 없는 듀크 뉴켐의 끝없는 자존심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듀크 뉴켐 포에버>에서도 그대로 반영했다. 신작에서 에고 게이지를 높이는 방법은 우리네 일상에서도 흔히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예컨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거나, 샌드백을 두드리면 된다. 혹은 거울에 본인 모습을 비춰주면 듀크 뉴켐의 욕구와 자존심을 동시에 충족시켜 준다.
존폐 기로에 놓인 게임
6년에 걸쳐 나오네 마네 말이 많은 게임을 보는 유통사의 심정은 어땠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기다릴 대로 기다린 유통사 테이크 투 인내심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투자자 회의에서 출시시기를 2005년이라고 언급했다가 다시 발표를 연기하자, 게임 하나 때문에 회사 운영에도 악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어르고 달래기도 했다. 2006년 6월, 테이크 투는 “연내 출시한다면 보너스로 50만 달러를 주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한 푼도 없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정작 3D 렐름즈의 반응은 너무나 뻔뻔했다. 출시 일자를 10년 가까이 넘긴 주제에 “고작 50만 달러 때문에 게임을 빨리 내지 않겠다”며 “게임은 개발 중이고 다 만들면 내놓겠다”고 큰소리를 쳐 테이크 투와 게이머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적반하장 격 발언은 또 있었다. 기록적인 출시 연기에 대해 비판하는 기사를 두고 “게임은 사실상 완성했고 출시도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게임에 유지보수를 하고 있는 단계”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런 발언을 믿는 게이머들은 거의 없었다.
대표이사 발언도 구설에 올랐다. 2006년 스캇 밀러는 “<프레이>가 성공한 덕분에 <듀크 뉴켐 포에버> 작업에 5년은 더 투자할 수 있게 됐다”고 한 것. 이는 아예 출시 연기를 즐기는 것처럼 비춰져 게이머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다. 결국 1998년 출시를 예고했던 게임은 이후 만 1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출시를 미루고 있었다. 그리고 점차 게임에 대한 기대와 관심도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베이퍼웨어란?
베이퍼웨어(vaporware)는 수증기라는 뜻 이외에도 부질없는
공상, 망상, 허황된 생각이라는 뜻의 베이퍼(vapor)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등에서 쓰는 접미사 ware를 합성한 말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게임이나 프로그램을 베이퍼웨어라고 부른다면, 그 제품은
소문이나 정보만 그럴 듯 하고, 실체는 부실하고 장기간 출시를
미루는 제품이라 할 수 있다. 개발사 사정에 따라 피치 못한
경우도 있어 모든 경우에 베이퍼웨어라고 하지는 않지만, 2년
이상 출시를 미룬 게임들이 이에 해당한다.
<스타크래프트 : 고스트>
블리자드 게임들 중 <워크래프트 : 어드벤처>와 함께 베이퍼웨어
소리를 듣던 주요 미완성 작품이다. 2000년부터 개발해 한때
시연 가능한 버전까지 나왔지만, 2006년 무기한 연기 형태로 제작
중단에 들어갔다. <스타크래프트 2> 확장팩이나 다른 게임 출시
일정 등을 감안했을 때 개발 재개는 사실상 힘들어 보인다.
<하프 라이프 2 : 에피소드 3>
원래 2007년에 나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게임의 전체적인
일정이 늦어지면서 뒤로 밀렸다. 그러더니 2011년 현재에 와서는
출시 일정을 포함해 관련 소식이 전무한 상태다. 지난 2월 출시할
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역시나 루머로 밝혀졌다.
<클라나드>
일본의 유명 텍스트 기반 어드벤처 게임이다. 마니아
사이에서는 ‘<클라나드>는 인생’이라는 찬사를 들을 만큼 완성도나
시나리오가 탄탄한 명작이다. 그러나 당초 기획한 규모가
지나치게 커서 개발이 좌초될 위기에 처하기도. 외적으로는
시나리오 작가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인적 수난도 겪었다.
그나마 2002년 출시 예정이었던 것이 실제로는 2004년에야
나왔다. 2년이면 <듀크 뉴켐 포에버>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포가튼 사가>
개발 소식을 공개한 시점이 1994년, 출시 계획은 1995년이었으나
실제로 나온 것은 1997년 11월이었다. 그마저도 완성도가 엉망이라
버그로 넘쳤다. 출시 후 반 년에 걸쳐 쉴 새 없이 패치를 했으나
신통치 않았다. 이후 국내 게임 중 버그와 출시 연기하면 약방
감초처럼 꼭 불려 나오는 게임으로 등극한다.
뜬 구름 같은 게임 1위에 오르다
해외 유명 IT 전문 사이트인 <와이어드>는 매년 베이퍼웨어(Vaporware, 박스기사 참고)를 선정하는데, <듀크 뉴켐 포에버>는 무려 6번이나 대상을 차지하는 굴욕을 기록했다. 그만큼 시간이 지나면서 게임의 유행을 선도한 아이콘에서 허풍과 허세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같은 시기에 출시를 연기 하는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 : 고스트>처럼 출시를 미루다 아예 개발 중단을 선언한 게임도 있었다. 한때 <워크래프트 3>도 <듀크 뉴켐 포에버>와 베이퍼웨어 순위를 놓고 다투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다른 게임이 출시가 늦어졌어도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듀크 뉴켐 포에버>를 이기는 게임은 없었다. 오죽하면 와이어드가 해마다 1, 2위를 <듀크 뉴켐 포에버>가 꿰차자 3D 렐름즈에 개발 소식 좀 전해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명확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12년에 걸쳐 <듀크 뉴켐 포에버>를 쥐고 있던 3D 렐름즈는 힘이 다했는지, 2009년 5월 개발팀 해산을 선언했다. 그때까지도 게임을 기다려 온 유통사 테이크 투는 분노하며 3D 렐름즈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당시 테이크 투 발표에 따르면 3D 렐름즈에 투자한 금액만 1200만 달러였고, 이 금액을 쓰고 12년 간 출시를 미루며 게임 개발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3D 렐름즈 역시 12년에 걸쳐 개발을 끌어온 노련미(?)를 살려, 2009년 1월경 테이크 투가 자신들에게 600만 달러를 더 조달하기로 해놓고 약속을 취소했다며 맞고소했다. 당시 3D 렐름즈는 “개발팀은 해산했지만 개발을 취소한다고 하지는 않았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으로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훗날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당시 3D 렐름즈 인원 중 일부는 개발사 해체 이후에도 트립틱 게임즈라는 소규모 스튜디오에서 <듀크 뉴켐 포에버> 개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3D 렐름즈의 주장이 변명은 아니었던 셈이다.
베이퍼웨어 1위에 <듀크 뉴켐 포에버>를 선정한 2002년 와이어드 기사.
2009년 개발사 해체 당시 3D 렐름즈 소속 인원들의 모습.
제 3장.
“이대로 못 끝낸다!” 시리즈, 부활하다
개발팀 해산 선언 이후, 개발사와 유통사는 고소와 고발로 제 얼굴에 먹칠을 했다. 그러나 게이머들은 그제야 <듀크 뉴켐 포에버>라는 기다림의 악몽이 끝났다며 안도했다. 일각에서는 그래도 10년을 끌어왔는데 이렇게 좋지 않은 결말로 끝나는 것은 아쉬운 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출시 연기 하나만으로 엄청난 화제가 된 게임인데다, 지금껏 이런 식으로 법정 문제로 비화한 게임이 올바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게이머들의 안타까움은 더 절절했고, 이렇게 <듀크 뉴켐 포에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3D 렐름즈 해체 후 3개월이 지났을 무렵, 기어박스 소프트웨어가 <듀크 뉴켐 포에버> 핵심 개발진을 포함한 트립틱 게임즈를 포함해 시리즈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모두 인수하기로 결정한다. 영원히 사라질 뻔한 <듀크 뉴켐 포에버> 개발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어박스 소프트웨어 대표이사인 랜디 피치포드가 과거 3D 렐름즈 개발자 출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억박스 소프트웨어가 인수한 뒤, <듀크 뉴켐 포에버> 개발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테이크 투와 법정 분쟁도 2010년 6월, 상호 합의 발표로 끝내면서 외적인 부담도 덜어냈다. 그러면서 전에 거의 완성했던 싱글 플레이 콘텐츠를 다듬으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한편, 멀티 플랫폼 출시를 위한 작업도 함께 했다. 실질적인 출시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20101년 9월에 열린 <PAX 2010>에 모습을 드러낸 <듀크 뉴켐 포에버>는 제법 그럴 듯한 완성도를 보였고, 예고편이나 보여주던 과거와 달리 실제로 게임 진행이 가능한 버전을 출품해 화제가 됐다.
<PAX 2010>에서 시연한 <듀크 뉴켐 포에버>는 인터넷을 통해 수만 명이 영상을 시청할 만큼 관심을 끌었다. 모습을 드러낸 게임은 초기 퀘이크 엔진을 쓴 것과 달리, 언리얼 엔진 2를 기반으로 제작했다. 때문에 지난해 유행하는 게임들에 비해 그래픽 수준을 미흡했지만, ‘전설’의 재림은 환영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기어박스 소프트웨어는 2011년 1월, 유럽을 기준으로 5월 6일로 최종 출시 일을 선언했다. 이는 개발을 시작한 1997년 이래 처음으로 ‘최종’이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에 이 발표만으로 큰 화제가 됐다. 그러나 출시일 변경은 없을 것이라던 호언장담과 달리, 2개월 만인 3월에 다시 출시 일정을 6월 10일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또 연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대부분 ‘10년도 기다렸는데 1개월쯤이야’ 하면서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의연한 반응은 15년 가까이 기다려온 이유도 있지만, 과거와 달리 실제로 즐길 수 있는 버전이 나왔고, 출시 연기에 대해 회사 대표가 직접 나서 동영상으로 해명과 사과를 전한 것도 한 몫 거들었다. 그리고 그 발표대로 출시 연기는 없었다. 햇수로 15년 만에 멀티 플랫폼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듀크 뉴켐 시리즈를 인수한 랜디 피치포드 역시 3D 렐름즈 출신이다.
PAX 2010에 출품된 <듀크 뉴켐 포에버>의 홍보물.
왜 15년이나 걸렸을까?
출시 지연으로 화제가 된 게임이니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출시까지 15년이나 걸렸을까 궁금할 법도 하다.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과 여러 소문, 게임 개발 과정 등을 추론하면 다음 4가지 이유가 제일 설득력을 지닌다.
1) 인력 운용 문제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기어박스 소프트웨어가 인수하기 전까지 <듀크 뉴켐 포에버> 제작 인원은 3D 렐름즈 전체 인원 중 많아야 30명 안팎이었다. 심지어 이전 결과물을 모두 갈아엎고 언리얼 엔진 2를 기반으로 만들 때도 개발진을 모두 무급휴가를 내보냈다. 그러면서 한쪽에서 프로그래머 1명에게 엔진 개선 작업을 지시했다고 한다. 새 엔진을 적용해 <듀크 뉴켐 포에버>를 만들기 시작한 뒤에도 제작진은 줄곧 20명 내외였다.
20여 명의 개발진이 적은 수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팔릴 게임’을 만들려면 개발팀 규모에 달렸다는 사실이 정설로 통한다는 사실을 토대로 보면, 3D 렐름즈 인원 운용은 상식 밖의 일이나 다름없었다. 더욱이 개발자 충원을 할 때도 상용 게임 개발 경험이 전무후무한 인원을 들여오는 우를 반복하면서 문제를 일으켰다. 이런 인력 운용 문제는 자연히 개발기간 지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2) 추상적인 목표 설정
400만 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린 게임의 후속 작품이니 배짱이 생길 법도 했다. 이에 한껏 고무한 3D 렐름즈는 개발 목표를 크게 잡았다. 개발 초기에 “1998년 최고의 게임이 될 것”이라는 호언장담도, 출시를 5년이나 미룬 뒤에도 “역대 최고의 게임이 될 것이다”라는 자신감도 다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1990년대 후반을 넘어가면서 PC 하드웨어와 이를 뒷받침하는 소프트웨어 모두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게임과 그래픽 발전 속도는 두말하면 잔소리. 이런 상황에서 ‘최고의 그래픽과 완성도, 새로운 콘텐츠를 지닌 역대 최고의 게임’이라는, 추상적이다 못해 허황되기까지 한 목표는 신기루에 불과했다. 이런 가운데 3D 렐름즈는 1997년 퀘이크 엔진으로 개발을 시작했지만, 2003년 언리얼 엔진 2 기반의 새로운 엔진으로 게임을 다시 만들면서 만 6년간 만든 콘텐츠를 모두 버렸다. 그리고 이 그래픽을 토대로 한 게임이 15년 뒤에 나왔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꿈꿨던 것일까?
빠르게 발전하는 PC 환경 속에서는 그래픽만 최고로 맞추기도 매우 어렵다.
3) 관리 능력 부재
개발 초기 6년을 합을 맞추는데 썼다고 쳐도, 그 이후 훨씬 더 오랜 시간을 개발한답시고 허송세월 했으니 자못 그 이유가 궁금하다. 더욱이 현재 나온 <듀크 뉴켐 포에버>는 2003년 나온 언리얼 엔진 2 기반이니 “모든 것이 최고인 게임이 되겠다”던 꿈같은 목표도 일찌감치 접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후반기 출시 연기 사태는 3D 렐름즈의 프로젝트 관리 능력 부재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무엇을 만들든 장인정신이 필요하다지만, 상품은 가마에서 나오는 족족 깨버리는 명품 도자기가 아니다. 99% 완성했어도 마지막 1% 때문에 끝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부분을 헤아리는 관리 능력은 어디서나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3D 렐름즈 핵심 관리자 중 일부는 새로운 것에 눈이 팔려 관리를 등한시 했고, 이것이 출시 연기를 불러왔을지도 모른다.
3D 렐름즈가 개발비를 충당했던 원동력 중 하나인 <맥스 페인>.
4) 자금 부족
얼핏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 돈이 부족해 게임 개발을 포기하는 경우가 제일 많다. 그만큼 현실적인 문제다. 혹자는 돈이 없어 개발을 포기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컵라면 먹으며 밤새 휴일 없이 개발하는 곳도 있다”며 개발사의 의지 부족을 지적한다. 그러나 헝그리 정신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어떤 노동이든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며, 따라서 적정 금액은 무엇을 만들든 필요하다. 그러니 인건비나 개발 자금이 부족하면 게임을 못 만드는 건 당연하다. 3D 렐름즈가 12년을 버티다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유는 자기네 콘텐츠의 지적재산권 등을 팔아 개발비를 충당하려던 노력이나 외부의 개발비 지원 등으로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되었건 3D 렐름즈 출신 개발자들이 해산 후에도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좋게 봐야 할 대목이다.
제 4장.
전설의 등장, 그러나 엇갈린 반응들
화제의 게임답게 출시 후 초반 판매량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영국에서는 출시 첫 주에 게임 순위 1위에 오르기도. 주 고객층은 듀크 뉴켐 시리즈나 고전 게임에 대한 그리움을 가진 게이머들과 성인 코드에 관심 있는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판매량은 아쉽지만 400만 장을 팔아치운 전작에 비해서는 한참 부족한 100만~150만 장 내외가 될 전망이다.
현재 인터넷에서 반응은 좋다기보다 아쉽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 편이다. 해외 게임 전문 웹진들의 리뷰 점수를 취합하는 메타사이트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PC 버전은 100점 만점에 57점을 기록했다. PS3와 XBOX 360 버전은 각각 55점, 49점을 기록 중이다. PC 버전에 비해 콘솔 버전 점수가 낮은 이유는 멀티 플랫폼으로 내려다 결과물이 신통치 않았던 탓이다. 특히 XBOX 360 버전은 다른 버전에 비해 전체적으로 그래픽도 떨어지고 로딩이나 프레임 저하 같은 문제도 발견되면서 점수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점수만 놓고 보면 그저 그런, 즐길 만한 게임이라는 평가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들이 꿈꿨던 ‘좋은 게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해외 유명 웹진 평가도 실망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스 테크니카>는 “이 게임이 좋은 이유는 끝을 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대신 나쁜 점은 모든 것(Everything else)이 나쁘다”고 혹평했다. <게임스팟>은 아예 플랫폼 별로 점수를 3~3.5점 내외로 주며 혹평을 대신했다. 심지어 <1UP>은 모든 버전에 대해 ‘F’를 부여하며 0점 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게임 시스템에 대한 부분보다 게임 내용, 즉 주인공의 외설스러운 발언이나 성인 코드 등을 지나치게 윤리나 도덕적인 면으로 접근해 바라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감정싸움으로 번진 일도 있었다. 게임의 홍보 대행을 맡은 레드너 그룹의 대표이사인 짐 레드너는 자기네 공식 트위터를 통해 “혹평이 담긴 일부 리뷰는 악의적이다”라며 “(이런 리뷰를 올린) 해당 매체에는 리뷰용 게임을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적어 논란을 부추겼다. 나중에 문제가 커지자 해당 발언을 삭제하고 “감정적인 행동을 사과하며 이 발언은 2K 게임즈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2K 게임즈는 이 사건으로 인한 책임을 물어 레드너 그룹에 자사 제품에 대한 홍보 대행을 맡기지 않기로 결정했다.
전문가들의 싸늘한 시선과 달리, 게이머들은 조금 우호적인 반응이다. 단점은 웹진들이 꼽는 이유와 같다. 금방 끝나고 그래픽은 촌스럽고, 진행이 불편한 방식이다. 그러나 웹진들이 단점으로 지적한 원초적인 타격감이나 성인들을 위한 콘텐츠, 패러디 요소들은 게이머들에게는 통한 모양이다.
대행사 책임을 물어 비즈니스 관계를 해제했다고 언급한 2K게임즈 트위터 내용.
그나마 PC 버전이 가장 높은 리뷰 점수를 받았다.
<듀크 뉴켐 포에버>, 이래서 좋다
호평하는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게임 전반에 흐르는 B급 정서가 좋아서라는 의견이 제일 많다. 이 게임만이 가진 독특한 B급 정서는 게임 시작부터 보인다. 남자화장실에서 시작하는 게임은 주인공이 소변을 볼 수 있게 만들어야 다음으로 진행한다. 또 축구장 한복판에서 거대한 보스 몬스터인 ‘사이클로이드 엠페러’와 대결 후에 괴물의 눈알을 축구공처럼 걷어차는 등의 엽기적 장면은 ‘듀크 뉴켐은 이런 놈’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참고로 여기까지도 듀크 뉴켐이 즐기는 비디오 게임 속 내용에 불과하다.
액션 게임인 <모탈 컴뱃>의 필살기처럼 보스 몬스터 체력을 0으로 만들면 보스 몬스터를 고깃덩이처럼 조각내거나 혀를 뽑거나, 급소를 가격하는 등 잔혹하게 최후를 맞게 할 수 있는 것 역시 B급 공포 영화 등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즐거워 할 부분이다.
비록 15년 전이지만, 전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듀크 뉴켐 시리즈의 특색을 잘 살렸다고 칭찬할 것이다. 보스 몬스터에게 하는 몹쓸(?) 짓은 물론, 듀크 입에서 쏟아지는 걸쭉한 입담은 전작의 추억을 십분 살렸다. 멀게는 <동키콩>부터 가깝게는 <데드 스페이스>까지 다양한 게임들을 패러디한 센스도 인상적이다.
게임 중간에 삽입한 성인 콘텐츠 때문에 <듀크 뉴켐 포에버>가 좋다는 의견도 상당히 있었다. 스트립 바 장면은 출시에 임박해 공개된 스크린 샷만으로도 수위가 높았고, 실제로 게임을 해 본 게이머들마다 주위의 눈을 피해 할 것을 충고할 정도였다. 어떤 이들은 국내의 성인 등급 게임들이나 성(性)적 코드를 무기로 마케팅을 하는 게임들이 실제 실속(?)은 별로 없는 반면, <듀크 뉴켐 포에버>는 게임의 명성처럼 성인 콘텐츠를 화끈하게 표현해줘서 고맙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게임 초반 등장하는 사이클로이드 엠페러는 전작 <듀크 뉴켐 3D>의 마지막 보스.
<듀크 뉴켐 포에버> 내에서 패러디한 <데드 스페이스>.
성인 게임답게 성인들만을 위한 공간이 있다.
이래서 아쉬운 <듀크 뉴켐 포에버>
<듀크 뉴켐 포에버>를 백안시하는 이유로는 우선 불친절한 게임이라는 지적이 많다. FPS 게임답게 여러 오브젝트를 활용하는 다양성은 좋게 평가하지만, 게임 진행에 있어 필요한 힌트가 지나치게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게이머들은 듀크 뉴켐의 대사나 지형지물에서 막연하게 힌트를 추론해야 한다. 문제는 뜬구름 잡는 지문이나 마을을 오가는 인공지능 캐릭터들의 무의미한 대사에서 힌트를 찾던 고전 RPG 같다는 것. 오랜 경험으로 숙련된 게이머들은 별 문제가 없지만, 이런 흐름에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들은 매우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불친절한 시스템으로 꾸민 싱글 플레이가 그나마도 짧다는 것이다. 멀티 엔딩이나 분기 시스템 같은 것도 없어서 작정하고 진행하면 하루 안에 끝을 볼 수 있다. 이것도 인터넷에 올라온 공략을 참고하면 반나절로 줄일 정도다. FPS 게임 특성상 싱글 플레이는 멀티 플레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이니 큰 상관없다는 의견도 있다. <듀크 뉴켐 포에버> 멀티플레이는 현대 FPS 게임에 비해 단조롭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아쉬운 일이다.
이에 비하면 딸리는 그래픽은 문제도 아니다. 언리얼 엔진 2를 기반으로 만든 게임이나 요새 유행하는 크라이 엔진이나 언리얼 엔진 3에 비하면 촌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화면이 뭉개져 모이는 등의 완성도가 결여된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전투도 박진감이나 타격감은 좋지만, 전작에서 느끼던 화력전이 아니라 회피 중심으로 변한 전투 방식은 어딘가 아쉽다. 더불어 게임 진행 중 만나는 퍼즐 장치 풀기는 FPS 게임이 아니라 어드벤처 게임을 하는 느낌이라 자칫 지루할 가능성까지 있다. 이 밖에 소소한 지적으로는 절대자에 가까운 듀크 뉴켐이 무기를 모두 쓰지 못하고 골라 쓴다는 빈축도 있다.
그러나 남은 문제에 비하면 이 모든 것은 하찮다. 듀크 뉴켐의 절대자적 이미지를 꾸미기 위해 게임 속에 성적인 요소나 성차별적 요소가 곳곳에 눈에 띈다. 성인 등급 게임이니 성적인 요소가 등장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게임을 하다 보면 곳곳에서 주인공이 여성에 보이는 태도는 주인공의 욕구 해소와 관련한 경우가 많다. 특히 게임 속 여성들은 침략한 외계인에게 감염되거나 임신을 당하는 등 험하게 다뤄진다. 그러니 자연스레 게임 가치와 관계없이 논란거리로 전락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나쁘지는 않지만, 최신 게임과 비교하기는 무리인 그래픽은 큰 약점이다.
닫으며 : 그냥 전설로 남았으면
일단 나온 뒤로는 성적이 썩 나쁘지 않다. 더불어 기어박스 소프트웨어는 “듀크 뉴켐 시리즈의 지적재산권을 인수한 후 첫 타이틀이지만, 시리즈의 마지막 게임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해 후속 작품에 대한 가능성도 열려 있다. 실제로 기어박스 소프트웨어는 듀크 뉴켐 시리즈의 차기작과 관련해 Duke5.com이나 Duke6.com 등 도메인을 미리 사놨다. 이것만 보면 앞으로도 듀크 뉴켐 시리즈를 만들고자 하는 사전 준비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듀크 뉴켐 포에버>는 13년 전쯤 나왔어야 했다. 현대는 듀크 뉴켐의 정서나 투박함이 통하지 않는 시대다. 앞으로 얼마나 더 팔릴지, 또 후속 작품이 어떤 반향을 일으키느냐 다르겠지만, <듀크 뉴켐 포에버>는 과거 향수를 자극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중론이다.
차라리 전설로 남았다면 추억이라도 하겠지만, 막상 모습을 드러내니 곳곳에서 아쉬움이 보인다. 전설적 명작이었던 전작의 명성이나 신선함은 없고, 오히려 여러모로 부족할 따름이다. 다음에 나올, 아니 나온다면 지금의 유행을 잘 읽어내 반영하길 희망한다. 아니면 아예 더 절대적인 매력으로 현실 세계를 주름잡을 위력으로 돌아왔으면 한다. 이대로는 만나는 것만 못한 초등학교 짝사랑 그녀와 다를 바 없다.
<듀크 뉴켐 포에버>의 세계관에서 여성은 불평등한 대접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