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rtPC사랑=임병선 기자] 2022년 PC 시장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인텔과 AMD, 엔비디아에서 새로운 칩셋을 모두 출시하면서 시장의 기대감을 키웠다. 실제 출시된 제품의 성능은 기존 제품보다 훨씬 뛰어났으며, 업그레이드를 고려하는 소비자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원자재비 상승, 물류비 상승, 달러 환율 상승 등으로 PC 부품 가격이 폭등 수준으로 올라 소비자에게 등을 돌리게 했다. 여기에 경기 침체까지 더해져 소비자의 지갑이 굳게 닫혔다.
PC 업체들은 반년 사이에 급격히 변화한 PC 시장 상황에 난처함을 감출 수 없는 상황이다. PC 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노트북이나 모니터 등 제품 판매량이 크게 늘면서 호황을 누렸지만, 이제는 이러한 특수도 사라졌다. 과연 이러한 PC 시장 불황은 2023년에도 계속될 것일까?
CPU 반격에 나선 인텔, GPU는 글쎄?
현재 PC 시장의 호재는 새로운 세대 부품의 성능이 이전 세대보다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성능이 아무리 높아졌다고 해도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면 PC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새로 사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생각하는 가격과 맞는다면 충분히 업그레이드나 새로 구매하는 것을 고려할 정도로 성능이 좋아졌다.
먼저 인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인텔은 2022년 데스크톱용 CPU로 13세대 코어 랩터레이크-S와 외장 그래픽카드인 아크 A700 시리즈를 선보였다. 13세대 코어는 12세대 코어와 비교해 클럭이 더 높아지고 E코어 개수가 2배로 늘어나 전체적인 성능이 크게 향상되었다. 따라서 고클럭 CPU가 유리한 게이밍 성능은 물론, 다중 코어를 사용하는 작업 성능도 높아졌다.
이러한 높은 성능을 기반으로 2023년에는 랩터레이크-S 논 오버 버전과 모바일 프로세서인 랩터레이크-P와 랩터레이크-U를 선보일 예정이다. 랩터레이크-S 논 오버 버전은 여전히 뛰어난 성능에 경쟁사인 AMD의 신규 CPU와 달리 기존 DDR4 메모리도 사용이 가능해 선택권이 매우 넓다. 또한, 모바일 프로세서도 이전 세대보다 성능이 높아져 더 고성능 노트북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아크 그래픽카드는 생각보다 높지 않은 성능에 가성비까지 좋지 않아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아크 그래픽카드는 그래픽카드 중 최초로 AV1 코덱을 탑재한 걸로 눈길을 끌었지만, 엔비디아와 AMD의 신규 그래픽카드도 AV1 코덱을 탑재해 큰 장점이 없어졌다. 그나마 가격이라도 저렴했다면 AV1 코덱을 사용할 수 있는 가성비 그래픽카드로 활약했겠지만, 그마저도 불가하다.
끝 모르고 높아지는 지포스 가격
엔비디아는 강력한 성능을 바탕으로 그래픽카드 시장을 장악했던 지포스 RTX 30 시리즈보다 더 높은 성능인 지포스 RTX 40 시리즈를 선보였다. 지포스 RTX 40 시리즈는 뛰어난 성능으로 큰 관심을 모았지만, 예상보다 비싼 가격과 불량 이슈로 골머리 썩고 있다. 채굴 이슈가 끝난 것과 최근 이렇다 할 신작 게임이 없는 것도 지포스 RTX 40 시리즈가 부진한 이유 중 하나다.
사실 지포스 RTX 40 시리즈는 채굴 이슈가 한창일 때와 비교하면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다. 채굴 붐이 일었을 때 지포스 RTX 3080 Ti는 200만원 이상을 호가했고 현재 최고 성능을 지닌 지포스 RTX 4090 FE의 가격이 263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채굴 이슈로 인한 가격 뻥튀기였을 뿐이고 적정 가격은 절반 수준이었기 때문에 소비자가 느끼는 가격 부담은 더 크게 느껴진다.
이어서 출시된 지포스 RTX 4080은 생각보다 낮은 성능에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지포스 3090 Ti와 비교해보면 성능과 가격 모두 비슷해 이렇다 할 큰 메리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기능인 DLSS 3를 지포스 RTX 30 시리즈에서 사용할 수 없어 게임 성능만 놓고 본다면 지포스 RTX 4080이 더 좋다. 하지만 지포스 RTX 3090 Ti이 메모리 용량이 더 높기 때문에 메모리를 많이 사용하는 게임이나 작업에는 지포스 RTX 3090 Ti가 더 좋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AMD 라이젠 & 라데온
AMD는 2022년 하반기에 새로운 CPU인 라이젠 6세대 7000 시리즈와 새로운 GPU인 라데온 7000 시리즈를 공개한다고 해서 큰 기대를 받았다. 특히 라이젠 7000 시리즈는 신규 AM5 소켓을 사용해 DDR5 등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적용될 예정이었고 라이젠 7000 시리즈는 게이밍 그래픽카드 최초로 칩렛 디자인이 적용되고 새로운 RDNA 3 아키텍처로 더 높은 성능을 보여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먼저 공개한 라이젠 6세대 7000 시리즈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성능은 올라갔지만, 이전 세대보다 더 높은 온도로 전성비가 떨어졌고 자동 오버클럭 기능인 PBO 효과도 큰 차이가 없었다. 이렇다 보니 정작 게이밍 성능 향상이 별로 없어 딱히 라이젠 7000 시리즈로 갈아타려는 사람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비록 가격을 동결하거나 인하했지만, 정작 달러 환율이 올라가면서 원화 가격은 기존보다 더 비싸졌기 때문에 장점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새로운 AM5 소켓이 적용되면서 AMD 600 시리즈 메인보드를 사용해야 하는데 새로운 메인보드의 가격이 비싸고 무조건 DDR5 메모리를 사용해야 하는 등 전체적인 가격 부담이 커졌다.
뒤이어 공개한 라데온 RX 7000 시리즈는 상황이 더 안 좋다. 라데온 RX 7000 시리즈는 칩렛 디자인과 RDNA 3 아키텍처가 적용되어 큰 기대를 모았지만, 실제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가장 성능이 높은 라데온 RX 7900 XTX의 깡성능은 지포스 RTX 4080 수준이며, 레이 트레이싱 성능은 더 낮아 게임 성능은 물론, 그래픽 작업 성능까지 떨어져 어느 용도로도 특화되지 않은 모습이다.
라데온 RX 7000 시리즈는 한껏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최고 성능이라는 라데온 RX 7900 XTX가 지포스 RTX 4080조차 이기지 못했다. 이전 세대인 라데온 RX 6900은 적어도 경쟁사 최상위 라인업인 지포스 RTX 3090과 비벼볼 수준은 되었지만, 이번에는 아예 최상위 라인업과의 경쟁 자체를 포기했음에도 차상위 라인업도 이기지 못해 충격이 더 크다. 오히려 지포스 RTX 4080이 더 잘 팔리게 해준 꼴만 되었다.
컨슈머 시장 심리 위축
하지만 2022년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국내 PC 시장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특히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 등의 경기 불확실성 증가로 컨슈머 시장의 심리가 위축되었다. 새로운 PC 제품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부진하다는 것이 상당한 문제다.
IT 시장분석 및 컨설팅 기관인 한국IDC는 최근 발표한 국내 PC 시장 연구 분석에서 2022년 3분기 국내 PC는 전년 대비 6.2% 감소한 127만대를 출하하였다고 밝혔다. 이는 전 분기 하락 폭인 3.9%보다 더 큰 하락세이다. 국내 커머셜 부문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 등 경기 불확실성 증가에 따른 소비 심리의 위축이 컨슈머 시장 감소를 야기하여 전반적인 시장 축소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시장별로 살펴보면, 국내 컨슈머(가정) 시장은 경기 둔화로 인한 소비 심리 감소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전년 대비 17.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글로벌 추세를 봤을 때 컨슈머 시장의 경우, 전년 대비 13.9% 하락하였고 커머셜 시장도 이와 마찬가지로 16.9% 감소세를 보였다.
반면, 국내 커머셜(공공/교육/기업) 시장은 교육청의 스마트 디바이스 보급, 경찰청과 군부대 등 공공 부문의 대규모 입찰, 기업의 사무실 복귀 인력을 위한 노후화된 PC 교체 등에 힘입어 전년 대비 8.1% 성장을 기록하였다.
글로벌 기조와는 상이하게 국내 커머셜 시장이 상대적으로 성장을 보인 것은 교육 부문의 성장이 비교적 견고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내 교육 부문은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스마트 기기의 지속적인 보급에 힘입어 PC는 전년 동기 대비 44% 성장을 이룬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노트북 판매량 건재
부진한 PC 시장 속에서도 판매량이 견고하거나 더 오른 제품도 존재한다. 교육용 노트북인 컨버터블 노트북이나 애플의 새로운 M2 프로세서를 탑재한 맥북 에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리 PC 시장이 부진하더라도 꼭 필요하거나 주목받는 제품은 여전히 팔리고 있었다.
컨버터블 노트북은 14만대 출하하여 전년 대비 약 1.5배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교육 부문의 크롬북 도입 확대와 더불어 기업 시장을 중심으로 휴대와 이동, 펜 입력 등 직원의 업무 능률 향상을 위한 프리미엄 컨버터블 제품 활용 증가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애플의 M2 프로세서를 탑재한 맥북 에어 출시는 울트라슬림 노트북 판매 확대에 기여하였다. 울트라슬림 노트북은 휴대가 용이할 뿐만 아니라, 12인치부터 17인치에 이르기까지 사용 목적에 따라 다양한 화면을 선택할 수 있으며, 슬림 베젤을 적용하여 노트북 크기도 줄어드는 장점이 있어 수요가 견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내 PC 시장은 수요의 약화로 매출 규모의 확대보다는 안정적인 수익 확보가 요구되는 추세다. 한국IDC는 온라인 수업, 하이브리드 근무, 게임,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제작 등 사용 목적에 맞추어 제품을 브랜딩하고, 고객 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보다 세분된 채널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전했다.
노트북 시장 반등할까?
이렇듯 노트북 시장은 데스크톱 시장에 비해 새롭고 강력한 성능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있다. 2023년에 출시될 노트북은 2022년에 새롭게 출시한 CPU와 GPU의 모바일 버전이 탑재될 예정이다. 이는 인텔과 AMD, 엔비디아 모두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만큼 노트북의 전체적인 가격도 상승할 전망이다. 앞서 2022년에 원자재비나 물류비 등이 상승하면서 2021년보다 노트북 가격이 크게 상승했는데 2023년에도 가격이 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데스크톱 부품 가격이 오른 만큼 노트북에 탑재될 부품 가격도 오를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꽁꽁 얼어붙은 소비자 심리를 녹일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이미 사용 중인 노트북과 비교해 뛰어난 가성비나 압도적인 성능이 아니라면 당연히 지갑을 열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현재 PC 시장은 인텔과 AMD, 엔비디아의 새로운 CPU와 GPU 성능 향상이 절실하다.
조만간 새로운 노트북이 하나둘 출시되면서 성능에 대한 실체가 밝혀질 예정이다. 획기적인 성능은 아니라도 보다 향상된 전성비를 갖췄다면 노트북 시장 반응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예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