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손금
2013년 뱀의 해가 밝았다. 해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토정비결을 뒤적이거나 역술인들을 찾아 올해 운세를 미리 점쳐보고 각자 바라는 바를 모두 이루어달라는 소원을 빈다. 어김없이 이번 연초에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다운로드 순위의 상위에는 새해 운세 관련 애플리케이션들이 올랐고, 갖가지 매체들도 토정비결이나 무료 새해 운세를 소재로 독자의 마음을 유혹했다. 이런 마음이 SNS 상에서도 나타나고 있는지 궁금해서 2013년 첫 한 주간 SNS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들을 살펴봤다.
김현곤 [email protected]
이 중에서 ‘할머니’와 ‘손금’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언뜻 보면 ‘이게 새해 운세와 무슨 상관이지?’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새해를 맞아 용하다는 점쟁이 할머니에게 손금을 봤다는 이야기일까? 분석해 보니두 단어에 숨겨져 있는 건 조금 더 엉뚱하고 초자연적인 이야기였다.
(출처: 소셜매트릭스, )
내용은 이렇다. 한 트위터리안이 100억을 벌었다는 부자 할머니의 손금사진을 올리면서 ‘이 할머니 손금을 리트윗하면 금전운이 좋아진다’고 트윗을 게시했다. 이 할머니 손금 사진을 리트윗만 해도 효험이 있다는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앞다퉈 해당 사진을 리트윗하기 시작했고, 일부에서는 손금 사진을 리트윗한 덕에 생각지도 않았던 선물을 받았다거나, 용돈이 인상되었다는 등의 증언이 쏟아졌다. 재치 있는 사람들이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등 세계적인 부호의 손바닥을 확대한 사진을 올리는가 하면 10대 트위터리안들은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손금 사진을 올리면서 새해를 시작하는 크고 작은 소원을 빌었다.
(출처: 트윗몹, tweetmob.charislaurencreative.com)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이런 SNS 부적들을 괴담으로 치부하는 시선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SNS 괴담들은 주로 10대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왔다. ‘연가시’라는 기생충을 소재로 한 재난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에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기생충이 실재하니 약국에서 꼭 치료제를 구해야 살 수 있다는 괴담이 퍼지기도 했고, 싸이의 ‘강남스타일’ 유투브 영상 조회수가 10억 건을 돌파하는 12월 21일에 지구 종말이 온다는 설도 한 동안 타임라인에 오르내렸다. 이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일부 유명인들조차 사실 확인이 안 된 괴담을 리트윗을 통해 퍼날랐다가 곤욕을 치른 사례가 몇 차례 보도된 바 있다.
SNS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그렇다고 ‘할머니 손금’을 단순히 또 하나의 SNS 괴담으로 치부하는 것은 과한 시선이다. SNS를 통해 확산되는 근거 없는 괴담이 특정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빠르게 정보가 확산되는 SNS의 특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넣거나 나아가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나 절박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사정을 리트윗을 통해 널리 알리거나, 주인을 잃은 반려동물의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다. 기상정보나 최신 뉴스 등도 트위터를 통해서 가장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전파되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규모와 수준의 지인 네트워크에 속해 있다면, SNS는 필요로 하는 정보에 가장 먼저 접근할 수 있는 채널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실제로 인기 가수인 휘트니 휴스턴의 사망 소식은 트위터에서 등장한지 16시간이 지난 뒤에 처음으로 보도되었다고 한다. SNS가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이유는 단순한 정보 확산의 신속성과 효과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슈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창의성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가치를 담은 콘텐츠들이 재생산되고 발전하는 집단지성의 힘이 더해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할머니 손금’의 사례만 보더라도 처음에는 한 사람의 장난스러운 시도였을지 모르지만 확산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이 더해지면서 새해 소망을 공유하는 더욱 재미있는 문화현상이 되었다. 지난해 가을에 한 디지털카메라 커뮤니티에서 촉발된 ‘T24’도 SNS의 참여와 집단지성 기제가 긍정적으로 작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군용 24인 천막을 한 사람이 설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전에 한 사용자가 남긴 “되는데요?”라는 반박성 댓글을 남겼다. 이 한 마디의 댓글에서 시작된 이 이벤트는 결국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예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즐기는 ‘소셜 이벤트’로 진화했고 결국 댓글을 남긴 당사자가 실제로 천막 설치에 성공함으로써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해 말에는 페이스북에서 시작된 ‘솔로대첩’도 화제가 되었다. 12월 24일 솔로인 남녀가 여의도 공원 건널목 양쪽에서 출발해 손을 잡는 방식의 전무후무한 초대형 미팅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비록 실제 행사에서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배치된 경찰과 비둘기가 참가자들보다 많았다는 비아냥 섞인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이 또한 한 사용자가 장난삼아 제안한 솔로대첩 아이디어가 확산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대형 이벤트로 발전한 사례다.
SNS의 힘은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를 심어주는 것
한 사람, 혹은 소수의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가장 효과적으로 공유, 확산되고 여기에 집단지성의 힘이 더해지면서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SNS만이 가진 가장 큰 가능성이다. 하지만 괴담이나 어뷰징 등의 부작용을 경계하기 위해 ‘악플 방지’나 ‘건전한 인터넷 문화 창달’ 등에 힘을 쏟는 최근의 정책적 노력들은 자칫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창의적인 표현을 가로막는 접근 방식이 될 수 있다. 흥미로운 아이디어나 중요한 소식들이 쉽게 발견되고, 공유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을 개발하거나 지원하려는 노력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소셜 네트워크는 기본적으로 지인 중심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나와 연결이 되어 있지 않은 사용자의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거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공통의 이슈나 관심사 중심의 ‘소셜 큐레이션’으로 서비스 트렌드가 옮겨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나와 내 지인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누구나 SNS 상에서 공유되고 있는 재미있는 정보를 쉽게 발견하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소통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핀터레스트 (pinterest.com), 페이퍼리(paper.li) 등 소셜 큐레이션을 표방하는 서비스들이 이런 가능성을 더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할머니의 손금’ 사진을 공유했다고 실제로 금전운이 좋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새해를 맞이하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임에는 틀림없다.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연초에 저마다의 소망을 담아 자신이 생각하는 롤모델의 손바닥 사진을 트위터에 공유하는 풍습이 트렌드가 될는지 또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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