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한 인터넷 실명제의 폐기를 전후하여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을 금지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약 7개월이 지났다. 6개월간의 계도기간이 종료된 지금은 게임 사이트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거나 이용할 경우 최대 3천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무분별한 개인정보 사용을 줄이기 위해 주민등록번호의 수집·이용이 금지되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미비한 대책으로 게임 세상은 때 아닌 대격변을 겪고 있다. 과연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그 현상의 원인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인터넷 실명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2012년 8월 23일, 일명 '인터넷 실명제'라고 불리던 인터넷상의 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대한 헌법 소원 결과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판결이 내려졌다. 이 날 인터넷 실명제는 도입된 지 만 5년 만에 효력을 상실했다. 과거 PC통신 시절의 ‘온라인 서비스 이용 증진 방안’부터 인터넷 및 게임에 대해 정부의 방안 및 방침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인터넷 실명제는 언급되었지만 초반에는 큰 파급력을 얻지 못하다가 PC통신 시기를 넘어 인터넷이 정치, 문화, 사회적으로 높은 파급력을 가진 장소로 자리 잡고, 가상공간의 인권 침해 등이 이슈가 되면서 점점 힘을얻어 갔다.
제한적 본인확인제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실명제가 처음 도입된 것은 지난 2007년 7월이다. 도입 당시에는 일일 방문자 수 30만 명 이상인 인터넷 정보통신서비스를 운영하는 곳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시행되어 이 사업자 및 공공기관 측에서 이용자의 본인 확인 조치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었다. 게임 및 인터넷 공간에서 제한적 본인확인제가 시행된 같은 해에 공직선거법에도 제한적 본인확인제 조항이 신설되며 인터넷 실명제는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 사회의 몇몇 이슈들이 인터넷의 역기능인 것처럼 간주되며 인터넷이 죄악시되는 분위기를 틈타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인터넷의 정보와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게임 사이트와 인터넷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하기로 하였고, 그 조치 중 하나로 제한적 본인확인제의 적용 대상을 일일 방문자 수 10만 명 이상의 사이트까지 확대했다.
하지만 정부가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도입하며 언급한 취지인 인터넷 세상의 역기능을 막고 정보 보호를 향상시키는 목적은 제도가 강화된 후에도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악성 게시물이나 욕설, 비방은 근절되기는 커녕 한층 더 심해졌고, 포털사이트나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는 사이버 분쟁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그런 현상에 대해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반면, 게임과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역기능 사례들은 사회 문제로 비화되며 잊을 만하면 계속 이슈화되었다. 제한적 본인확인제와 그로 인해 파생된 규제들 때문에 표현의 자유나 정보 보호 등의 근본적 가치는 되레 위축되거나 편한 논리로 무시당하는 경우가 잦았고, 이용자들은 게임과 인터넷 등이 요구하는 과도한 개인정보 제공과 스팸 마케팅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며 불편을 겪어야 했다.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PSN) 해킹 사고는 세계적인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가져왔다.
게다가 과도한 본인 확인 조치로 인하여 인터넷상에 개인정보가 남용되고, 이를 노린 개인정보 도용 및 해킹 등의 범죄행위로 인한 피해가 날로 커지며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요구는 어느덧 인터넷 세상의 역기능에 대한 경계심리보다 더욱 강해지게 되었다. 특히 최근 몇 년 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벌어진 대규모 해킹 사태가 이런 요구를 부채질했는데, 지난 2011년 4월에 발견되어 약 1억 명 이상의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가져 온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PSN) 해킹 사건을 필두로 2011년 7월26일 SK커뮤니케이션즈가 비인가 사용 중이던 개인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해킹을 당하며 약 3,5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넥슨에서 서비스되는 <메이플스토리> 가입자 1,320만 명의 개인정보가 해킹으로 유출되었다.
‘유출 정보가 모두 회수되었습니다’라는 말로 물의를 빚은 KT의 개인정보 유출 사과문
해가 바뀌어도 대규모 해킹 사태는 끊이지 않았다. 2012년 7월에는 KT의 휴대전화 가입자 8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약 5개월에 걸쳐 불법 유출된 것이 확인되었고, 블리자드의 배틀넷 서비스에 대해서도 불법 접근이 확인되는 등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계속 일어난 것이다. 그렇잖아도 게임을 이용하면서 과도한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악용한 텔레마케팅 등에 노출되어 불만을 품었던 게임 및 인터넷 서비스 이용자들의 여론은 해킹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갈수록 악화되었다. 개인정보를 통해 이득을 보던 거대 사업자 및 언론 등의 규제 찬성 집단들도 개인정보를 획득하여 얻는 이득보다 개인정보 관련 범죄로 인한 손실이 크다고 판단되자 종전의 입장을 바꿔 개인정보 남용을 조장하는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헌법재판소가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를 위헌 판결한 이유
헌법재판소는 2012년 8월 23일 2010헌마47 헌법소원 사건의 판결을 통해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전원일치 위헌 판결했다. 헌법재판소가 발표한 결정요약문을 토대로 제한적 본인확인제의 위헌 결정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 본인확인제는 불법정보의 범람으로 인한 피해를 억제하고자 하는 목적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는 과도한 제한을 하고 있다.
- 인터넷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적용 범위를 광범위하게 정하여 자의적인 법 집행의 여지를 만들고 있다.
- 이용자들의 본인확인정보가 무기한으로 보관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정보가 유출되거나 부당하게 이용될 가능성이 증가한다.
- 본인확인제의 시행 이후 불법정보 게시가 의미 있게 감소하였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없다.
- 국내 이용자들이 해외 사이트로 도피하고,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사이의 역차별이 발생하는 등 법 집행을 곤란하게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 본인확인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모바일 게시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등의 새로운 의사소통수단이 등장하여 본인확인제가 유명무실해졌다.
- 본인확인제로 인해 인터넷 이용자는 신원 노출에 따른 규제나 처벌 등을 염려하여 표현의 자유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 외국인이나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재외국민은 인터넷게시판의 이용이 봉쇄되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
- 따라서, 게시판 이용자 및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이 본인확인제가 달성하려는 공익보다 더 작다고 할 수 없다.
- 인터넷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적용 범위를 광범위하게 정하여 자의적인 법 집행의 여지를 만들고 있다.
- 이용자들의 본인확인정보가 무기한으로 보관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정보가 유출되거나 부당하게 이용될 가능성이 증가한다.
- 본인확인제의 시행 이후 불법정보 게시가 의미 있게 감소하였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없다.
- 국내 이용자들이 해외 사이트로 도피하고,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사이의 역차별이 발생하는 등 법 집행을 곤란하게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 본인확인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모바일 게시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등의 새로운 의사소통수단이 등장하여 본인확인제가 유명무실해졌다.
- 본인확인제로 인해 인터넷 이용자는 신원 노출에 따른 규제나 처벌 등을 염려하여 표현의 자유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 외국인이나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재외국민은 인터넷게시판의 이용이 봉쇄되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
- 따라서, 게시판 이용자 및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이 본인확인제가 달성하려는 공익보다 더 작다고 할 수 없다.
결국 인터넷 실명제, 즉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도입 시점에서 밝혔던 인터넷 세상의 역기능 규제와 정보 보호 등의 목적을 실현할 힘을 완전히 상실했으며 정부의 규제가 인터넷 문화를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없다는 사실과 인터넷 상에서 개인정보가 남용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증명한 채 전원일치 위헌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2012년 8월 23일을 기하여 완전히 폐기되었다. 더불어 제한적 본인확인제가 위헌으로 판결된 시점을 전후하여 지난 2012년 2월 개정된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을 금지하도록 개정된 정보통신망법의 개정안이 공포 후 180일의 시간이 지나 지난 8월부터 본격적으로 효력을 가지게 되고, 그 이후 주어진 6개월간의 계도기간도 지난 2월에 끝나면서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남용해 오던 게임 세상에도 대격변이 발생하게 되었다.
뒤늦은 제도 개선, 예견된 대란
개인정보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 가는 것을 생각하면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집·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당연한 일인 것과 동시에, 현실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 게임 및 인터넷 회원 가입에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각종 개인정보를 사용한 것은 한두 해 지속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태동기라 불리는 PC통신 시절부터 사업자들은 이용자들에게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며 회원 가입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이후 청소년 회원의 보호자 확인 의무화 등을 비롯한게임 규제가 강화될 때마다 요구되는 개인정보는 더 많이 늘어났다. 이처럼, PC통신 이후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각종 개인정보는 게임 세상과 인터넷 전반에서 매우 무분별하게 사용되어 왔다.
명색이 IT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인습이 지금도 횡행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지만, 우리 삶에서 알게 모르게 행하는 개인정보 보호를 경시하는 습관들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금융실명제가 도입되었다고 해도 가족 안에서 차명으로 계좌를 만들어 사용하는 일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고, 신용카드 발급 실적을 올리기 위해 신청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명의의 카드를 무분별하게 발급하여 가입자 수를 늘리는 일도 한두 번 있어 온 것이 아니다.
경찰에 대포폰 판매 일당이 적발되는 것은 새삼스러운 뉴스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다른 IT 선진국에 비해 개인정보 보호 의식과 개인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오랫동안 낮은 상태였고 지금도 그리 높다고 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개인정보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경각심이 높아진것도 기술의 발달과 맞물려 서서히 높아진 것이 아니라 이미 많은 부분에서 기술이 선진국 수준으로 발달한 이후 한참이 지난 뒤에 갑자기 필요성과 경각심이 높아진 기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온라인 게임과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게임의 수명이 사실상 무한해졌을 때부터 게임과 인터넷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바르게 판단하고 합리적인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준비해야 했지만 정책을 입안하는 이들이 인식 제고와 제도 정비에 대한 노력을 등한시했다. 대규모 해킹 사태 등으로 사회적 불만이 커지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뒤에야 부랴부랴 제도와 의식 개선에 나섰으니 제도에 허점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물론 개인정보의 수집·이용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한해서 판단하면, 정부도 이번의 제도 개선 측면에서는 큰 틀에서 나름대로의 대비와 노력을 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정보통신망법이 주민등록번호의 수집·이용을 금지하도록 개정되어 공포된 시점은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소원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내려지기 약 6개월 전인 2012년 2월 17일이었고, 이 법안은 공포된 지 6개월이 지난 2012년 8월 18일부터 이미 유효한 법안이었다. 즉, 공포된 지 이미 일 년이 지났고 사업자들에게 주어진 6개월의 계도기간이 약 한 달 전인 2013년 2월 17일에 종료되어, 법안에 명시된 과태료 등의 조항이 본격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게 된 시점이 지금인 것이다. 따라서 공포된 지 일 년이 지난 법을 두고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정부가 법을 갑자기 바꿔 게임과 인터넷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개정된 정보통신망법의 취지를 보면 선진국 수준으로 정보 보안 제도와 인식을 격상시켜 이제부터라도 정보 보호에 신경 쓰려는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나 기업이 관습적으로 해 왔던 무분별한 주민등록 번호의 수집·이용을 금지하고, 개인정보가 유출될 경우 이용자에게 즉시 알리도록 하며, 일정 기간 이용하지 않는 휴면계정의 개인정보는 파기조치하도록 하는 등 실질적인 개인정보 보호 지침이 수록되어 있다. 뿐만아니라, DDoS 공격 등에 대응하기 위해 정보보호 체계를 일원화하고 정보보호 최고 책임자 역시 팀장급 혹은 실무자가 아닌 임원급으로 임명하며, 결제 등의 제한된 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터넷 가입 및 이용에서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 대신 대체수단을 통한 인증을 명시하는 등, 실질적인 관리책임 수립과 대체 인증 시스템 확립 근거를 만들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본인확인기관을 뒤늦게 지정해 혼란을 자초하고 말았다.
그러나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 전환 및 정보 보호의 노력을 담은 법안의 취지와 걸맞지 않은 안이한 후속 대책은 지금의 혼란을 자초하는 빌미를 만들고 말았다. 정보통신망법 개정 이후 정부에서는 후속 조치를 통해 본인 확인 수단을 빠르게 정하고 본인확인기관도 지정해야 했지만, 이 책임을 맡은 방송통신위원회는 계도기간이 시작된 지 4개월이 넘은 2012년 12월 말에야 휴대폰 인증을 위하여 이동통신 3사를 추가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했다. 법안이 효력을 발휘한 지 거의 반 년 만에 새로운 본인 확인수단이 추가되자, 인터넷 사업자 및 게임업계는 고작 40~50일 가량의 부족한 시간 동안 휴대폰을 통한 인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어려움에 놓였다. 게임산업협회 측에서 이에 대해 어려움을 표시하며 계도기간 연장등의 조치를 요구했지만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혼란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게임 및 인터넷 사업자들은 부족한 시간 안에 새로운 인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 회원들의 개인정보 체계도 변경해야 했고, 회원 가입, 정보 조회, 결제 등의 부분에 대해서도 바뀐 법규를 적용한 인증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등 부족한 기간동안에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했다. 사업자들뿐만 아니라 이용자들도 혼란을 피할 수 없었다. 주민등록번호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것도 문제지만 그 전까지는 주민등록번호의 보조 인증수단에 불과하던 휴대폰이나 범용 공인인증서 등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주민등록번호 없는 게임 및 인터넷 세상에서 사업자와 이용자 모두 혼란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주민등록번호 대신 도입되어 제 역할을 해야했던 대체 인증 수단들이 저마다의 한계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 확인 수단들의 문제와 한계
주민등록번호의 수집·이용이 금지되면서 게이머 및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적용되도록 규정된 본인 확인 수단들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은 아이핀, 범용 공인인증서, 신용카드, 휴대폰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방식들은 과거 주민등록번호가 기본적인 본인 확인 수단으로 사용되었을때부터 보안을 위한 추가 정보 등을 요구하는 법규를 준수하고, 게임 사업자의 마케팅이나 추가 보안 필요성에 의해 이미 보조적인 본인 확인 수단으로 사용되어 온 방식들이다. 따라서 익숙한 수단도 있지만, 각각의 수단이 가진 특성상 획득하기 위해 연령, 경제적 처지, 절차 등의 여러가지 차이점과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수단도 있어 모두가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라고 보기는 다소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물론 지금 나열된 본인 확인 수단들은 주민등록번호 같은 개인정보처럼 연령과 성별, 경제 상황 등에 관계없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각각의 인증 수단이 고유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고, 이런 수단들을 이용자 모두가 가지고 있도록 강요하는 것도 곤란하다. 하지만 범용 공인인증서, 아이핀, 신용카드, 휴대폰 등의 인증 수단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차이점이나 약점이 주민등록번호가 사용되는 상황에서 ‘보조적 인증 수단’일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개정 정보통신망법의 시행 이후 이 인증 방법들이 직접적 인증 수단으로 변경되자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근본적 문제나 차이점 등은 곧바로 단점으로 인식되며 부정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신용카드는 청소년 인증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결제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신용카드, 범용 공인인증서, 휴대폰, 아이핀 등의 본인 확인 수단 중 휴대폰을 제외한 나머지 수단들은 연령에 따른 제약이 매우 크거나 보급률이 낮은 등, 획득할 수 있는 조건에서 근본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신용카드는 성인이면 거의 대부분 사용하고 있지만 일정한 수입원이 있는 이들만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성인이라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본인 확인 수단은 아니다. 더욱이 미성년자의 경우 매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만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이나 인터넷을 즐기려 하는 미성년 이용자들이 본인 확인 수단으로 사용하기 곤란한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신용카드를 결제 수단으로는 생각하고 있어도 인증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들의 고정관념도 극복해야 한다.
보급률과 절차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범용 공인인증서라면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수단은 단연 아이핀이다. 아이핀은 지난 2006년 10월 정보통신부에서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대체수단으로 지정, 도입하였지만 시행 초기부터 느슨한 정책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아이핀 발급 과정에서 개인정보 도용의 위험이 있고, 개인정보가 상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은 아이핀 도입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게임 및 인터넷 등에서 본인인증 수단으로 아이핀을 도입하는 것을 권고 사항으로 처리한 것은 새 인증 수단이 도입될 필요성을 처음부터 끊어 놓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결국 아이핀은 게임 및 인터넷 사업자들로부터 외면 받았으며, 엔씨소프트 등의 일부 게임사와 인터넷 사이트들을 제외하면 아이핀을 보조 인증수단으로도 채택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8년 후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것이라던 아이핀은 고작 800만명 발급에 그치고 있다.
그렇다면 휴대폰은 본인 확인 수단으로 적합할까? 일단 휴대폰은 다른 본인 확인 수단에 비해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또한 다른 인증 수단에 비하여 쉽고 간편하게 인증 작업을 완료할 수 있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휴대폰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보급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덕에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스마트폰 및 태블릿 PC에 가입한 사람만 무려 3,5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런 높은 보급률 때문에 주민등록번호가 사용되던 시절에도 휴대폰은 보조 인증 수단 또는 보조 결제 수단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었고, 계도기간이 종료된 2013년 2월 18일 이후 게이머들 사이에서 대체 인증 수단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도 휴대폰 인증이다.
수많은 게임 이용자의 개인정보 구조를 변경하는 것도 엄청난 작업이다.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가 그간 인터넷 상으로 너무 남용되다 보니 이용자들의 입장에서는 게임이나 인터넷 등에서 개인정보를 인증하고 시스템을 바꾸는 것을 매우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 봐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온라인 게임은 가입자 수에 따라 몇 만 명 이상의 계정정보를 보유하게 되며, 블록버스터급 게임의 경우 몇 천만 명에 달하는 누적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회원들에게 바뀐 절차에 따른 개인정보 인증을 요구하고, 그 인증으로 인해 변경되는 정보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8년 후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것이라던 아이핀은 고작 800만명 발급에 그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세 가지 본인 인증 방법은 한두 개씩 치명적 단점을 가지고 있어서 널리 사용되기 어려운 본인인증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결제용도로 사용하는 신용카드는 사실상 성인 대상의 인증 수단으로만 사용될 수밖에 없다고 간주한다 해도, 범용 공인인증서나 아이핀의 경우에는 도입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인터넷 및 게임 세상에 적용되도록 해야하는 도구였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이핀이나 범용 공인인증서에 대하여 외부에서는 지속적 가입 및 관리를 위해 적정한 강제성 부여, 홍보, 절차 개선 등을 요구하면서 개인정보 대체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했지만, 방만한 운영은 지속되었다. 그 결과, 도입된 지 상당 기간이 지나 주민등록번호를 상당 부분 대체했어야 할 본인 인증 수단들이 막상 기능을 발휘할 때가 되니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게임 이용자도, 사업자도 모두 피해자
그렇다면 휴대폰은 본인 확인 수단으로 적합할까? 일단 휴대폰은 다른 본인 확인 수단에 비해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또한 다른 인증 수단에 비하여 쉽고 간편하게 인증 작업을 완료할 수 있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휴대폰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보급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덕에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스마트폰 및 태블릿 PC에 가입한 사람만 무려 3,5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런 높은 보급률 때문에 주민등록번호가 사용되던 시절에도 휴대폰은 보조 인증 수단 또는 보조 결제 수단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었고, 계도기간이 종료된 2013년 2월 18일 이후 게이머들 사이에서 대체 인증 수단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도 휴대폰 인증이다.
하지만 문제는, 인증에 사용되는 휴대폰이 반드시 사용하는 사람의 개인정보를 담고 있다고 보장할 수 없는 데에 있다.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대한민국에서는 가족 혹은 친족 간의 차명 휴대폰 개설이 만연해 있고 명의를 도용한 대포폰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게임이나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은 이들은 휴대폰 인증으로 인해 자신의 연령대로 가입할 수 있는 게임 혹은 인터넷 사이트에도 부모 명의로 가입해야 하는 얄궂은 일이 발생하게 된다. 더욱이 게임 서비스의 경우, 그렇잖아도 실효성 없는 셧다운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청소년들이 그 전부터 부모의 개인정보를 도용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주민등록번호 수집까지 금지되었으니 부모 명의로 개설된 핸드폰밖에 없는 청소년들은 명의 도용을 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청소년의 명의 도용이 더욱 빈번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앞서 전제한 것처럼 휴대폰, 아이핀 같은 대체 본인 확인 수단들 하나하나가 주민등록번호만큼의 명확성과 보편성을 가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를 든,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하는 본인 확인 수단들은 짧게는 몇 년 전부터, 길게는 10여년 혹은 그 이전부터 준비되어 오던 수단들이다. 그런 수단들이 제대로 보급, 사용되도록 살펴서 네다섯 가지의 수단이 본인 확인 수단으로 제공되면 주민등록번호를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도록 미리 설계하고 준비해야 했지만,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금지된 지금 이 수단들은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준비 기간에 비해 대비가 부족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게임 및 인터넷 사업자들과, 이용자들이 모두 떠안고 있다.
수많은 게임 이용자의 개인정보 구조를 변경하는 것도 엄청난 작업이다.
그나마 시간과 비용과 인력을 어떻게든 들여서 이런 인증절차를 마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힘이 있는 사업자들이라면 모르지만, 전체 게임 사업자들의 최소 80% 이상을 차지하는 30인 이하 게임사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영세 게임사들이 느끼는 고통은 매우 심각하다. 그런 게임사들은 대부분 전체 구성원들 중 많아야 한두 명이 개인정보와 관련된 시스템을 구축하며, 그 일만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개발 및 프로그램, 서버관리 등의 프로그래밍 업무를 도맡아 하게 된다. 기존의 업무만으로도 과중한 상황에서 법의 강제성이 뒷받침되는 일을 빠듯한 시간 안에 해내야하는 실무자들의 고통과, 회사 유지마저 어려운 상황에서 추가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영세 사업자들의 고통은 지금 이 순간도 일어나고 있는 분명한 현실이다.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게임 및 인터넷 이용자들도 마찬가지다. 경제활동 때문에 신용카드나 휴대폰을 자신의 명의로 보유하는 것이 일반적인 성인 게이머들은 그나마 덜하지만, 청소년 게이머들의 불편은 매우 심각하다. 신용카드는 사용이 불가능하고, 범용 공인인증서나 아이핀은 발급받으려면 부모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번거로운 절차를 겪어야 하며, 휴대폰은 부모 명의로 발급받는 경우가 많다.
개인정보 인증과 셧다운제의 번거로움 때문에 모바일 게임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나마 대한민국에서 게임을 즐기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행복한(?) 편에 속한다.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감수하거나, 약간의 시간과 비용등을 들여 인증수단을 획득해 개인정보 인증에 성공하면 거의 대부분은 대체 인증 수단 중의 하나로 본인 확인을 할 수 있는 반면,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외국에 거주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즐겼던 게임이나 인터넷 서비스를 즐기고자 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새로운 시스템으로 게임이나 인터넷 서비스에 인증하는 것은 대한민국 안에 있는 국민들이 인증절차를 밟는 것보다 몇 배 어렵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정책적 배려 역시 전무하다. 실제로 제도 변경 이후 게임사나 인터넷 서비스사에는 국내 인증뿐만 아니라 국외에서의 인증에 대한 문의도 쇄도하고 있지만, 사실상 대책이 없는 상태다. 이처럼 게임사도, 게이머나 인터넷 이용자들도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번거로움과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법안의 의도처럼 주민등록번호 없는 청정 온라인 환경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매우 엷다. 이용자들은 번거로운 인증 절차를 감수하기보다는 모바일 등의 인증절차가 간단한 다른 플랫폼으로 갈아타거나 규제를 회피할 목적으로 개인정보 도용을 부추김 당하고 있고, 사업자들은 정부의 늑장 대응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의무화된 인증절차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돈과 시간, 인력 면에서 추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개정된 정보통신망법을 공포하며, 방송통신위원회는 새로운 회원의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만 제한한 것이 아니라 기존 회원의 활동에 있어서도 주민등록번호를 사실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매우 엄격하게 제한했다. 단순한 연령 확인이나 유해매체 유통 금지, 계약 이행, 명의도용 방지, 분쟁 해소, 결제, 거래기록 등의 보존의무 이행 작업 등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주민등록번호 사용을 하지 못하도록 하여 지금 인터넷 서비스 상에서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금융기관 정도뿐이다. 그러나 이 법안대로라면, 바뀐 본인 확인 조치를 채택하는 것으로 개인정보 인증 문제가 끝나야 하지만 게임 및 인터넷 세상의 현실은 다르다. 셧다운제와 게임시간선택제 같은 게임 규제 때문에 청소년 이용자들이 권리 침해를 받고 있으며 사업자들에게도 인증 문제로 계속 스트레스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법안이 변경되었는데도 셧다운제와 게임시간선택제 등의 게임 규제가 청소년의 권리를 침해하고 사업자들에게 개인정보 보호 인증의 어려움이 지속되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본인 인증 수단의 대책 미비와 근본적 한계에 있다. 앞서 정리된 사실에서 나타나 있듯 청소년의 아이핀 보급률은 불과 0.5%에 불과하고 범용 공인인증서와 신용카드, 아이핀 모두 성인에 비해 매우 까다로운 발급절차를 거쳐야 하며 휴대폰조차 보호자 명의로 개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청소년 회원들 중 상당수는 바뀐 법규에 따른 본인 인증을 본인의 정보로 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자기 계정을 자기계정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셧다운제 강화는 개인정보 보호에 역주행할 뿐만 아니라 지스타 보이콧 등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스타 보이콧을 선언한 위메이드 남궁훈 대표.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집·이용해 오던 기존 관행을 차단하고자 하는 개정 정보통신망법은 적어도 부당한 권리침해를 염두에 두거나 편향적시각을 포함했던 지금까지의 IT 및 게임 규제들과는 달리 최소한 정보 보호에 있어서 실질적 가치를 담고 있다. 다른 규제에 비해 실제 도입되기전까지의 논의도 나름대로 오랜 기간 이루어졌고 주민등록번호를 대신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대체 수단들 역시 길게는 10년 이상의 기간을 두고 사용된 것들이다. 헌법 위반의 요소를 제거하여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중요 개인정보를 더 이상 저장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었으므로 이용자와 사업자 모두 무분별한 개인정보 제공 및 보관에 관한 책임을 덜게 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 사례가 있는 이동통신사들이 본인확인기관이 된 것을 못미더워하는 목소리도 매우 높다.
일부 포털사이트 등에서는 슬그머니 주민등록번호 입력창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결국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을 금지하는 정보통신망법의 개정은 별다른 목적 없이 순수하게 환영할 수 있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 취지에 무색하게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위헌으로 폐기된 인터넷 실명제나 실효성이 없는 셧다운제 등의 게임 규제처럼 게임 및 인터넷 업계의 현실을 무시하고,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대체 수단을 마련하지 않은 채 법이 집행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소년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보호자는 물론 담임교사의 개인정보까지 입력하게 하는 위헌적 법안이 발의된 현실은 개인정보 보호 및 IT 콘텐츠와 관련한 일원화된 컨트롤 타워가 없는 상태에서 정책이 중구난방으로 집행된다는 인상까지 주며 신뢰도를 심각하게 떨어뜨리고 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지금 대한민국의 게임 및 인터넷 세상에 매우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바뀐 인증 시스템을 어려워하는 게임 이용자들은 애꿎은 게임사들을 상대로 주민등록번호라도 줄 테니 자신의 계정을 인증시켜달라는식의 요구를 서슴지 않고 있다. 게임사와 인터넷 서비스사들은 범법자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손실을 막기 위해 그런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태다. 이 대격변이 안정되고 정보 보호를 위한 취지가 올바르게 집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인터넷 실명제, 셧다운제 등의 게임 규제, 그리고 이번에 계도기간이 끝난 주민등록번호의 수집·이용을 금지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까지, 게임계와 IT 업계, 그리고 이용자들의 목소리는 정부의 규제 정책에서 제대로 반영된 일이 사실상 없다. 책과 영화와 가요에 비유되어야 하는 게임은 정치인들의 몰이해와 유사과학의 범람으로 인하여 마약과 술과 담배에 비유되며 여전히 악마 취급을 받고 있다. 정치권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통제하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인지도를 쌓기 위한 홍보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등 일관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미 위헌 판결로 폐기된 인터넷 실명제와, 사실상 실패한 셧다운제는 불순한 의도와 편향된 사고방식으로 만들어진 비합리적인 규제가 어떤 말로를 맞게 되는지에 대해 반면교사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등록번호의 수집·이용을 금지하는 정보통신망법이 지금처럼 졸속 운용된다면, 규제를 철폐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안이한 대응과 느슨한 법 집행으로 망가지게 되는 나쁜 선례를 낳을 수도 있다. 이용자와 게임사 등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보다는 소중한 개인정보를 지키고 우리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보로 게임과 인터넷을 즐길 수 있도록 정부에서 먼저 현실적이고 믿음을 줄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개인정보 인증과 셧다운제의 번거로움 때문에 모바일 게임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다.
청소년의 권리와 개인정보 보호는 뒷전
개정된 정보통신망법을 공포하며, 방송통신위원회는 새로운 회원의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만 제한한 것이 아니라 기존 회원의 활동에 있어서도 주민등록번호를 사실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매우 엄격하게 제한했다. 단순한 연령 확인이나 유해매체 유통 금지, 계약 이행, 명의도용 방지, 분쟁 해소, 결제, 거래기록 등의 보존의무 이행 작업 등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주민등록번호 사용을 하지 못하도록 하여 지금 인터넷 서비스 상에서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금융기관 정도뿐이다. 그러나 이 법안대로라면, 바뀐 본인 확인 조치를 채택하는 것으로 개인정보 인증 문제가 끝나야 하지만 게임 및 인터넷 세상의 현실은 다르다. 셧다운제와 게임시간선택제 같은 게임 규제 때문에 청소년 이용자들이 권리 침해를 받고 있으며 사업자들에게도 인증 문제로 계속 스트레스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법안이 변경되었는데도 셧다운제와 게임시간선택제 등의 게임 규제가 청소년의 권리를 침해하고 사업자들에게 개인정보 보호 인증의 어려움이 지속되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본인 인증 수단의 대책 미비와 근본적 한계에 있다. 앞서 정리된 사실에서 나타나 있듯 청소년의 아이핀 보급률은 불과 0.5%에 불과하고 범용 공인인증서와 신용카드, 아이핀 모두 성인에 비해 매우 까다로운 발급절차를 거쳐야 하며 휴대폰조차 보호자 명의로 개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청소년 회원들 중 상당수는 바뀐 법규에 따른 본인 인증을 본인의 정보로 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자기 계정을 자기계정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성인 위주의 본인 인증 수단들만 제공되는 현실에서 청소년이 자기 정보로 게임에 신규 가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방송통신위원회가 권고한 본인 인증 수단들을 모두 구비한다고해도 게임 세상에서는 청소년이 본인 인증을 사실상 할 수 없게 되니 청소년 게이머의 권리침해가 되고, 사업자들 역시 청소년 회원 신규 유치와 기존 청소년 회원 유지에 어려움을 겪게 되니 권리침해를 받는 셈이다. 규제를 하는 입장에서는 바뀐 법규에 따라 인증 절차를 구비하고, 인증을 받으면 된다고 할 지 모르지만 현실은 다르다. 보유하고 있는 게임 캐릭터와 아이템 등이 아까워서 청소년들이 셧다운제를 준수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부모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청소년 자녀가 계정을 만드는 일만 더욱 빈번하게 늘어나는 셧다운제 도입 이후의 문제가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청소년을 제대로 계도해도 모자랄 판에 청소년의 권리를 틀어막은 게임 규제가 개인정보 도용 행위를 부추긴 것처럼, 인증 절차가 미비한 현실도 청소년에게 정보 도용을 선택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셧다운제 강화는 개인정보 보호에 역주행할 뿐만 아니라 지스타 보이콧 등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스타 보이콧을 선언한 위메이드 남궁훈 대표.
올바른 인터넷 및 게임 이용을 지도하고 청소년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 규제의 취지대로라면, 규제를 하는 정부 부처들은 규제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본인 인증에 불편이 없도록 하는 정책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또한 규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청소년 및 게임 이용자의 개인정보 유출 등에 대한 권리침해 방지에도 신경 써야 한다. 규제를 만들어놓은 주체들이 금전적, 정치적 이익에만 골몰할 뿐 책임을 지지 않으려하고 있어 권리침해 방지와 개인정보 보호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올해 1월에 발의된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 등의 강화된 게임 규제들이 권리 침해와 개인정보 보호에서 한층 더 후퇴한 모습을 보이며 더욱 강력한 역주행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발의 중인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의 조항을 살펴보면 이미 시행 중인 셧다운제의 연령 및 시간을 강화하고 게임업계에 최대 매출 1%의 치유부담금과 매출 5%의 과징금 징수가 가능하도록 하였는데, 게임업계에 도박 산업보다 더 많은 금전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균형 감각이 심각하게 망가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인터넷게임의 제공업자가 청소년의 보호자 및 담임교사에게 게임의 특성, 게임 등급, 게임 이용시간, 인터넷게임 이용 등에 따른 결제정보를 고지하게 되어 있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어, 수집되어야 하는 개인정보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 개인정보의 수집·이용을 인터넷상에서 금지하는 정보통신망법의 의도와 명백히 상충하는 역주행 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 및 인터넷 사업자들도, 이용자들도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주민등록번호의 수집·이용을 통한 제한적 본인확인제마저 권리침해와 자의적 제재 등의 역기능이 제도가 달성하려는 공익보다 더 작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이미 위헌 판결이 난 상황에서, 청소년 게임 이용자가 이용하는 게임명과 등급, 이용 시간, 결제정보를 보호자와 담임교사에게 알리는 것을 법제화하려는 위헌적 발상은 매우 당황스럽다. 청소년의 개인생활을 침해하기 때문에 인권 유린의 소지가 있는 점도 문제일뿐더러 한 명의 청소년이 게임을 즐기는 데에 3명 이상의 개인정보가 사용되는 비상식적 상황으로 개인정보 남용을 부추겨 정보 보호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도 매우 큰 문제다. 따로 노는 시각이 빚어낸 지각없는 법안들이, 지금 원치 않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방향이나마 올바르게 돌려놓은 개인정보 보호 노력을 또 다시 물거품으로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되풀이되는 부작용의 이유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집·이용해 오던 기존 관행을 차단하고자 하는 개정 정보통신망법은 적어도 부당한 권리침해를 염두에 두거나 편향적시각을 포함했던 지금까지의 IT 및 게임 규제들과는 달리 최소한 정보 보호에 있어서 실질적 가치를 담고 있다. 다른 규제에 비해 실제 도입되기전까지의 논의도 나름대로 오랜 기간 이루어졌고 주민등록번호를 대신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대체 수단들 역시 길게는 10년 이상의 기간을 두고 사용된 것들이다. 헌법 위반의 요소를 제거하여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중요 개인정보를 더 이상 저장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었으므로 이용자와 사업자 모두 무분별한 개인정보 제공 및 보관에 관한 책임을 덜게 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하지만 게임 및 인터넷 서비스에서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을 제한하고 있는 지금. 아직도 주민등록번호를 여전히 사용하는 곳들이 있는가 하면 실시 초기임을 감안해도 혼란과 시행착오를 비롯한 많은 문제가 일어나 이용자와 게임사, 인터넷 서비스사 모두에 피해를 주고 있다. 졸속 행정을 지적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매우 높다. 시행 초기에 으레 있을 법한 혼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문제가 많이 보인다. 문제제기의 종류와 비판의 이유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일단 예전의 다른 규제에서 벌어진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가진 인터넷 및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점을 꼬집는 목소리가 높다. 주민등록번호의 수집·이용이 문제가 되자 그것을 풀어준 것일 뿐, 규제 일변도의 사고방식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수준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법을 집행하고 만드는 이들이 게임과 인터넷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을 보면 기본적으로 게임과 인터넷을 유희 수단, 정보교환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유해 수단, 규제와 지배 가능한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고 필자는 그것을 매우 불편하게 여기고 있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풀어줘야 되는 것은 아니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무언가를 확인 혹은 검사하거나 통제할 수도 있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상에 대해 합리적인 이해와 객관적인 지식 획득이 뒷받침된 상태여야 가능한 일이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 사례가 있는 이동통신사들이 본인확인기관이 된 것을 못미더워하는 목소리도 매우 높다.
다른 곳도 아니고 정부에서 게임과 인터넷을 무작정 유해하다고 생각하거나 그 계층의 목소리를 무작정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올바른 통제와 지배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런 구시대적 발상은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인증 절차의 불편함과 본인확인기관의 신뢰도에 대해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가장 많이 사용하는 휴대폰 인증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데, 그 이유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저지른 이동통신사들의 거듭된 과실 때문에 수많은 국민들이 정보 유출 피해를 보았던 ‘전과’가 있는 이동통신사들을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며, 그러다 보니 정부가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을 못미더워 하는 국민들도 상당히 많다.
물론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된 기관이 개인정보를 유출할 경우 그만큼의 불이익이 뒤따르겠지만, 단지 본인확인기관으로 어떤 기관을 지정한 것만으로 그 기관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없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불만의 목소리라도 있는 휴대폰과는 달리 아이핀이나 범용 공인인증서처럼 보급률이 낮은 인증 수단의 경우 일반 이용자들은 관심이 아예 없다시피 하다. 사용 및 발급 등에 있어 걸림돌로 지적되어 온 부분들이나 보안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아 이들 인증 수단을 획득하는 것을 꺼려하거나, 획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이들이 많다.
일부 포털사이트 등에서는 슬그머니 주민등록번호 입력창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게임 및 인터넷 사이트들은 물론 일부 포털사이트들까지 주민등록번호 등의 과거 개인정보를 파기하는 것을 최대한 유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ID/비밀번호 찾기 등을 비롯한 정보 인증 항목에 슬그머니 주민등록번호 입력란을 부활시키고, 때로는 신분증 사본을 제출하도록 하는 등 다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이용하며 정보통신망법을 위반하고 있는 상태다. 딱히 대체할 인증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개인정보를 통한 인증이라도 해야 한다는 이용자들의 요구와, 현실적 불편 때문에 법을 무시하는 사업자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법을 준수할 시간도 시스템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정부의 능력 부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일어난 일이다.
결국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을 금지하는 정보통신망법의 개정은 별다른 목적 없이 순수하게 환영할 수 있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 취지에 무색하게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위헌으로 폐기된 인터넷 실명제나 실효성이 없는 셧다운제 등의 게임 규제처럼 게임 및 인터넷 업계의 현실을 무시하고,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대체 수단을 마련하지 않은 채 법이 집행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소년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보호자는 물론 담임교사의 개인정보까지 입력하게 하는 위헌적 법안이 발의된 현실은 개인정보 보호 및 IT 콘텐츠와 관련한 일원화된 컨트롤 타워가 없는 상태에서 정책이 중구난방으로 집행된다는 인상까지 주며 신뢰도를 심각하게 떨어뜨리고 있다.
대체 언제쯤 게임을 마음 놓고 자신의 정보로 즐길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요즈음이다.
마치며
인터넷 실명제, 셧다운제 등의 게임 규제, 그리고 이번에 계도기간이 끝난 주민등록번호의 수집·이용을 금지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까지, 게임계와 IT 업계, 그리고 이용자들의 목소리는 정부의 규제 정책에서 제대로 반영된 일이 사실상 없다. 책과 영화와 가요에 비유되어야 하는 게임은 정치인들의 몰이해와 유사과학의 범람으로 인하여 마약과 술과 담배에 비유되며 여전히 악마 취급을 받고 있다. 정치권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통제하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인지도를 쌓기 위한 홍보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등 일관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미 위헌 판결로 폐기된 인터넷 실명제와, 사실상 실패한 셧다운제는 불순한 의도와 편향된 사고방식으로 만들어진 비합리적인 규제가 어떤 말로를 맞게 되는지에 대해 반면교사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등록번호의 수집·이용을 금지하는 정보통신망법이 지금처럼 졸속 운용된다면, 규제를 철폐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안이한 대응과 느슨한 법 집행으로 망가지게 되는 나쁜 선례를 낳을 수도 있다. 이용자와 게임사 등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보다는 소중한 개인정보를 지키고 우리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보로 게임과 인터넷을 즐길 수 있도록 정부에서 먼저 현실적이고 믿음을 줄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디지털포스트(PC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