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대면 단번에 알 수 있는 유명한 SF 영화들이 있다. 예를 들어 매트릭스, 터미네이터, 공각 기동대, 마이너리티 리포트, 인셉션 등의 영화들은 ‘사이버 펑크’ 장르이다. 영화에서 표현되는 미래의 높은 기술 수준과는 다르게 인간은 그 기술로 피해를 보거나 낮은 레벨로 암울하게 살아간다. 이러한 사이버 펑크장르의 효시가 되는 영화가 블레이드 러너이다.
김희철 기자
김희철 기자
1982년 6월 11일, 미국에서 한 외계인 영화가 개봉했다.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사인 유니버셜은 이 영화에 제작비 1천 50만 달러를 들여 총 수익 $ 792,910,554, 순수익 $ 385,955,277 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E.T. 이야기이다. 그보다 14일 뒤인 6월 25일. 이번에 다룰 ‘블레이드 러너’가 제작비 2천 800만 달러를 들여 개봉했다. 바로 2주 전 E.T.가 보여준 달콤한 SF 이야기가 폭풍처럼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와중에, 어둡고 불안하고 기막히게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블레이드 러너가 관객들에게 먹히기는 힘들었다. 결국 블레이드 러너는 E.T.에 밀려 최악의 졸작이라는 평까지 들으며 흥행에 참패하고 말았다.
블레이드 러너는 동시에 개봉했던 E.T.와의 대결에서 참패했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는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적 연출과 인간 존재론적 성찰을 토대로 이 영화의 진가를 알아보는 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2년 결말이 수정된 감독판이 나온 뒤로 지금에는 수없이 많은 영화팬들에게 극찬을 받으며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표작이자 SF 작품의 바이블로 추앙받을 불멸의 명작이 되었다. 블레이드 러너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 작품은 수도 없이 많다. 그만큼 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분석이 많이 된 영화이므로, 이번 기획에서는 블레이드 러너에서 표현된 과학 기술과 현재 실현된 기술에 대해 중점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
31년 전 표현된 비행 자동차
영화가 시작하면 피라미드 모양의 집단 거주지가 등장하며 하늘에는 자동차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SF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는 비행 자동차는 여기선 그다지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자동차 그대로의 외향을 갖추면서도 무중력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며 날아다닌다. 그로부터 영화 개봉 기준으로 실제 시간 31년이 지난 지금, 비행 자동차는 그렇게 황당무계한 기술만은 아니다. 네덜란드의 항공기 개발업체 PAL-V는 도로를 주행하고 하늘도 날 수 있는 1인승 헬리콥터 형 비행 자동차를 개발했다. 지상에서는 날개를 접고 삼륜 자동차로 운행하고, 공중에서는 시속 185km로 고도 1,200m의 상공을 500km 운항할 수 있다. 그러나 블레이드 러너에서 표현된 어디서나 날아다닐 수 있는 비행 자동차는 아직 만나기 힘들 것 같다. PAL-V는 헬리콥터 형식이어서 활주거리가 짧은데도 이륙에는 165m, 착륙에는 30m의 거리를 필요로 한다. 비행 자동차가 주요 교통수단이 되는 것은 영화의 배경인 2019년을 훌쩍 넘어 2050년 정도에 실현될 전망이다.
암울한 미래세계와 형광등 우산
미래세계의 도심은 화려하다. 멋진 우주선이 떠다니며 우주 식민지에서의 새로운 삶에 대해 광고한다. 그렇게 꿈만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는 초현대적 고층 건물 숲과는 다르게, 지상에서 비를 피해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은 제 3세계 사람들처럼 묘사되어 초라하기만 하다. 어떻게 봐도 낙후된 슬럼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나마 여기가 미래세계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쓰고 다니던 형광등처럼 빛이 들어오는 우산이다. 이 미래세계의 형광등 우산은 다소 싱겁게 실현되었다. 검색엔진에 ‘광선검 우산’ 이라고 검색하면 영화에 등장했던 우산이 팔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실 활용용도는 블레이드 러너처럼 디스토피아적 미래세계의 표현이 아니라, 스타워즈의 제다이를 연상케 하는 광선검 장난감, 또는 야간에 돋보이게 하는 패션용으로 많이 쓰인다. 이럴 때는 좋은 게 좋은 거다.
복제인간의 구별법
블레이드 러너에서 복제인간은 인간과 똑같이 사랑, 증오, 분노 등의 감정을 느끼지만, 유독 눈에는 그런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 흔히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불리며,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복제인간의 눈을 정밀한 기계로 확대해 관찰하면 홍채가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는 이상 반응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블레이드 러너는 홍채 인식법으로 불완전한 복제인간을 구별한다. 복제인간을 구별했던 홍채인식 기술은 현재는 주로 보안 분야에 이용되고 있다. 금융결제, 출입통제 등이 홍채인식이 쓰이는 분야다. PC 쪽도 예외는 아니다. 개인 PC 로그온 보안, 문서·폴더 보안 등에 홍채인식 기술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아이락 글로벌의 ‘아이리스키’는 초소형 카메라와 M300_USB모듈로 구성된 초소형 USB 홍채인식 단말기이다. 휴대가 간편하며 신속하게 인증할 수 있고, 철저한 보안을 갖췄다. 또한, 홍체인식 특성상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거나 열쇠 혹은 카드키 분실 같은 돌발상황에 전혀 당황할 필요가 없다. 그저 눈만 있으면 된다.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여성 복제인간 ‘조라’는 자신을 제거하러 온 주인공 ‘데커드’를 방 안에 들인 채 태연하게 샤워를 한다. 샤워실 바깥에서는 데커드가 조라가 복제인간이라는 증거를 확인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수사 중이다. 확인되는 순간 조라는 바로 데커드의 손에 죽게 된다. 삶과 죽음이 갈리는 긴박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샤워는 상황에 맞물려 왠지 비장해 보인다. 이윽고 샤워가 끝나고 조라는 원형으로 생긴 통에 머리를 밀어 넣는다. 그런데 이 원형 통 안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나오고, 머리가 저절로 마른다. 통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바람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2009년 영국의 다이슨 사에서는 날개 없는 선풍기를 개발했다. 이 선풍기는 날개가 없는 대신 균일한 세기의 바람을 만들어 낸다. 간단한 구조이어서 신기할 수도 있는데, 사실 이 선풍기는 비행기 제트엔진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선풍기 하단의 원기둥 모양에 팬과 모터가 내장되어, 아래에서 빨아들인 공기를 위쪽 둥근 고리로 밀어 올린다. 밀어 올려진 공기들은 둥근 고리의 구조상 속도가 빨라지게 되고, 빨라진 공기들은 고리내부의 틈을 통해 밖으로 나가게 된다. 이 빠른 공기가 밖으로 나가면 둥근 고리 안쪽의 기압은 낮아지고, 선풍기 고리 주변에 있는 공기들이 고리 안쪽으로 유도되어 빨려 들어간 공기보다 15배 많은 바람을 일으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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