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기 신제품이 출시될 때, 새로운 음악이 나왔을 때, 좋아하는 배우의 신작 영화가 개봉됐을 때 등, 새로운 아이디어가 세상에 공개될 때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의혹이 있다‘. 어, 이거 전에도 본 것 같은데?’, 혹은‘뭐야, 이거 XX회사의 OO 제품과 비슷하잖아!’등의 표절 의혹이 그것이다. 인간의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평가는 타인의 지식에 대한 존중인 동시에, 제작자 간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다. 그 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정환용 기자
2011년 기준으로 작성된 세계 게임시장 동향. 스마트폰의 급격한 확산으로 모바일 게임의 파이가 크게 늘고 PC 패키지 게임은 줄고 있다. 국내 게임 산업의 강점인 온라인 게임도 꾸준히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비록 1990년대에 국내 PC 패키지 게임 시장은 사장되다시피 줄어들었지만, 그 자리를 온라인 게임이 대신한 덕에 전체 게임 시장은 성장세다. 스타크래프트의 영향으로 PC방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전국에 걸쳐 자리를 잡은 덕에 온라인 게임의 성장이 패키지 게임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이해할 수 없는 제한 정책이 발목을 붙잡고는 있지만, 이는 게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 것이기에 제대로 된 이해관계가 조성된다면 국내 시장의 성장도 노려볼 수 있다.
모 퀴즈 방송에서 드러난 문화수출 산업의 효자는 음악이 아닌 게임이다. 문화산업 총 수출액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게임 산업은, 과거 MMORPG에 치중됐던 추세에서 벗어나 장르의 다양화로 더 폭 넓은 유저층을 공략하며 점점 그 기세를 키워가는 중이다. ‘블리자드 게임은 종족특성’이라는 수식어를 만들며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한국의 프로게이머들도 게임 열풍의 주역들이다. ‘웃기는 것 빼고 다 잘하는’개그맨 정형돈처럼‘, 정치 빼고 다 잘하는’한국인들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부분이다.
지식재산권의 중요성
표절에 대한 진위여부를 가리는 가장 중요한 법적 권리보호 수단인‘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에 대해 알아보자. 지적재산권은‘인간의 창조적 활동, 또는 경험 등을 통해 창출하거나 발견한 지식,정보, 기술이나 표현, 표시, 그 밖의 무형적인 것으로서 재산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지적창작물에 부여된 재산에 관한 권리’다. 과거‘지적 재산권’으로 불리던 것이 현재는 특허청 등에서 일반적으로‘지식 재산권’으로 통용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특허, 상표, 디자인 등의 산업재산권을 비롯해 음악, 영화, 게임 등의 창작물 저작권 등으로 크게 나뉘고, 이밖에 경제 및 사회 문화의 변화나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분야에서 출현하는 지식 재산권을‘신 지식재산권’으로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해하기 쉽게 게임을 예를 들어 보자. 몇 년 전 표절 논란으로 법적싸움까지 갔던 리듬 게임을 보면, 코나미의‘비트매니아’는 화면의 상단에서 일정한 형태의 노트가 음악에 맞춰 떨어진다. 게이머는 이 노트를 건반 형태의 조작 버튼을 정해진 타이밍에 맞춰 누르고,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면 노트가 가지고 있는 음(音)이 배경음악과 합쳐져 하모니를 만들어 간다.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체력 개념의 게이지가 조금씩 하락하고, 음악이 끝나기 전에 주어진 체력을 모두 소진하면 게임이 종료되는 방식이다. 코나미는 같은 게임 방식의 국산 게임회사 어뮤즈먼트의‘EZ2DJ’에 대해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을 걸었고, 몇 년에 걸친 소송 끝에 코나미가 승소해 국내에서 같은 방식의 EZ2DJ 신작을 볼 수 없게 됐다.
여기서 코나미가 주장한 지식재산은‘떨어지는 노트를 건반 형태의 버튼을 눌러 맞추는 게임 방식’이고, 이를 어뮤즈먼트가 침해했다고 판단해 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어뮤즈먼트는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지불하고 차기작도 출시하지 못하게 됐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체감형 리듬게임인 코나미의‘댄스 댄스 레볼루션’(이하‘DDR’)과 안다미로의‘펌프 잇 업’(이하‘펌프’)이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두 게임은 각각 상하좌우 4발판, 대각선 사방과 중앙을 포함한 5발판 체제로 입력 시스템이 약간 다르긴 하나 위로 올라오는 방향 노트에 맞춰 발판을 눌러주는 기본 게임 방식이 같아 논란이 됐다. 결국 안다미로는 소송보다 합의를 택했고, 코나미에 일부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표절 논란을 종식시킨 바 있다.
좌측이 코나미의 DDR, 우측이 안다미로의 펌프잇업. 속된 말로 지식 재산권은‘먼저 하는 사람이 임자’다. 다른 누군가의 재산권에서 작은 변화를 주며 그것이 자신의 권리라 주장하는 것은 절도나 다름없다.
사회 전반에 걸쳐 문제가 되고 있는 표절은 그 종류와 행태에 따라 다양한 담론을 형성한다. 이미 21세기에 들어선 현대사회에 새로운 콘텐츠를 창작하는 것은 한계에 다다랐다. 단순히 지난 몇 년간 영화관에 새로 개봉하는 영화들을 살펴봐도 창작보다는 소설, 만화 등의 기존 작품을 필름으로 재구성하는 영화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이에 어떤 평론가들은 이를‘제2의 창작’이라 표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소재고갈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게임의 경우에는 그래도 창작에 대한 범위가 넓은 편이다. 1990년대의 PC 게임, 2000년대의 온라인 및 콘솔 게임(이하 모든‘콘솔’은 XBOX, 플레이스테이션, Wii 및 휴대용 게임 모두를 통칭한다)에 이어 2010년대의 모바일 게임 등으로 비교적 새로운 플랫폼으로의 확장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기자 역시 1990년대 말 처음 접한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부터 현재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모바일 게임 ‘아이러브커피’까지 PC, 콘솔, 스마트폰, 태블릿 등의 다양한 플랫폼 기반 게임들을 즐겨왔다.
게임에 있어 가장 크게 분류되는 기준 중 하나는‘컨트롤’이다. PC는 키보드와 마우스, 콘솔 게임은 전용 게임패드, 모바일 기기는 엄지손가락을 주로 사용한다.(최근 과도한 모바일 게임을 즐기며 엄지손가락이나 손목에 통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하니, 게임도 적당히 즐기도록 하자) 각종 플랫폼 기반의 게임 또한 각자의 컨트롤러에 맞춘 게임 시스템을 기반으로 제작되고, 최근의 게임들 중에선 PC나 콘솔 모두에서 즐길 수 있는 멀티 플랫폼 타이틀의 출시가 늘고 있어 키보드와 마우스, 게임패드 모두 사용하는 게이머들이 늘고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 어떤 게임의 표절 여부를 가릴 때 컨트롤 방식은 예외로 둬야 한다는 점이다. 게임의 장르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지만 이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PC, 콘솔, 모바일 기기, 아케이드 기기 정도로 한정돼 있기에 게임을 즐기는 방법으로 표절을 구분하는 것은 기준 범위를 초과하게 된다. 다만, 앞서 언급했던 리듬 게임들은 아케이드 기기의 범주 내에서도 게임의 진행 방식과 컨트롤러가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표절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
표절의 쟁점은 다방면에서 접근해야
지난 2006년 코나미는 네오플의 야구 게임‘신야구’가 자사의 1994년작‘실황 파워풀 프로야구’를 표절했다며 소송을 건 적이 있다. 당시 코나미는 캐릭터나 게임 장면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에서는 네오플의 손을 들어줬다. 단순히 겉보기에 캐릭터가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만으로 표절 여부를 가릴 수는 없다.
저스트나인의‘헬 키드’(좌측)와 위메이드의‘윈드러너’는 무한히 앞으로 달리며 장애물과 함정을 피해가는 횡스크롤 점프액션 게임이다. 영혼불이나 별을 계속해서 획득해 점수를 쌓는 부분과 점프로 장애물을 피하는 것은 표절이라 볼 수 없는 일반적인 게임 방식 중 하나다. 그러나 게임 자체가 흡사해 보이는 이러한 게임들을 지칭해‘카피캣’이라고 완화해 표현한다. 법적으로는 표절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창작이라 볼 수도 없는 게임이다.
넥슨의‘카트라이더’(우측)는 출시 초기부터 닌텐도의 슈퍼마리오 시리즈 스핀오프인‘마리오 카트’와 흡사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스타트부터 각종 아이템의 효과들까지 마리오카트와 똑같다 싶을 정도로 닮아 판권을 산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생겼지만, 정작 닌텐도는 이 게임으로 소송을 건 적이 없다. 나중에는 넥슨이 마리오카트의 판권을 샀다는 루머까지 퍼졌지만 진실은 아직도 알 수 없다
지난 4월 열린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법무팀의 김정만 대리가‘표절과 창작의 경계에 서다’란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저작권 침해 여부는‘아이디어’와‘표현’의 구분이 필요하며,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것은 표절이 아니”라고 했다. 함께 보여준 예시‘테트리스’와‘미노’는 게임 내 칸의 크기, 하단 블록 더미의 표시, 블록이 내려올때의 그림자, 다음 조각의 예시 등의 요소들이‘표현’으로 인정돼 저작권 일부 침해 판정을 받았다. 요약하면, 테트리스처럼 한 줄이 모두 채워졌을 때 사라지는 게임 방식은 아이디어로 구분돼 표절이 아니지만 그 칸의 수가 같거나 게임 고유의 표현 방식이 유사하다면 표절로 판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강연을 달리 말하면, 법적으로 표절이란 판정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이 제기된다. 새로운 콘텐츠가 문제가 아니다. 현재 잘나가는 게임의 인기를 나눠먹고 싶은데, 그냥 따라하면 저작권 분쟁으로 큰 손해를 입을 수 있으니 표절을 정의하는 법의 테두리를 얼마나 교묘하게 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게임 개발의 2차적인 목표가 돼버린 것이다. 앞서 언급한‘카피캣’이 모두 이런 방식으로 최초의 아이디어를 법망을 피해 도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개발 방식을 맹목적으로 탓할 수는 없다. 이미 상상 가능한‘거의’모든 게임 방식과 장르가 나왔고, 더 이상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것은 큰 위험 부담을 안아야 하는 난제가 됐다. 이미 1990년대 중반에 액션, 퍼즐, 어드벤처 등의‘장르’는 정리 됐고, 현재 모든 플랫폼을 포함해 새로 출시되는 게임들은 이 거대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문학이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영원할 것 같았던 샘이 메말라버린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개발자들은 나름의 고충이 더욱 커진다. 최근 출시되는 게임의 다수가 후속작인 것을 보면, 새로운 소재를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약간이나마 알 수 있다. 해당 장르 안에서 다시 나눠지는 세부 포지션에서는 그나마 새로운 방식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스토리텔링으로 게임에 차별성을 부여한다. 같은 FPS라 해도‘배틀필드’와‘콜 오브 듀티’가 확연히 다른 게임인 것처럼, 이제 새로운 게임을 바라보는 게이머들의 시선은 개척적인 측면보다 질적인 측면을 더 집중해서 보게 됐다.
사용과 도용, 그 명백한 차이
1939년 DC코믹스에서 첫 선을 보인 슈퍼히어로‘배트맨’은 지금까지 코믹스와 애니메이션, 영화와 게임, 장난감과 피규어 등 수많은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계속 살아오고 있다. 이것은 원작에 대한 존중과 명확한 저작권 개념이 정착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초대 플랫폼인 코믹스는 물론 가장 최근 출시된 게임‘배트맨 : 아캄 시티’까지 원작의 이야기와 설정에 충실하고 원작자를 존중한 제작자 덕분에 소비자들은 다양한 소재로 배트맨을 만날 수 있었다.
최근 애니메이션화(化)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만화‘진격의 거인’이 국내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진격의 거인은‘인간만을 잡아먹는 거인’이라는 특이한 소재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로 만화부터 애니메이션까지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에‘자이언트 러쉬’라는 이름의 게임이 등장했다. 이 게임을 접해 본 다수의 사용자들은 대번에‘진격의 거인’을 떠올렸을 정도로 첫 화면이나 게임 방식이 만화와 흡사했다. 게임의 제작사‘데브워커스’는 현재 구글 마켓에서 게임을 삭제당하고 홈페이지도 정지한 상태다. 이는 전형적인‘은근슬쩍 물타기’행태로 인기 콘텐츠를 무단으로 도용해 부당이익을 노리는‘지식절도’가 아닐까?
만화‘진격의 거인’일러스트
데브워커스의 안드로이드 게임‘자이언트 러시’초기화면과 게임화면. 이를 보고 표절이 아니라고 한 사람을 기자는 데브워커스 해명 담당자 이외에는 보지 못했다. 데브워커스 관계자는 해명에서‘좀비 게임이 모두’바이오 하자드‘의 표절은 아니지 않느냐’는 억지 주장으로 표절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표절이 아니라 하면서도‘뜨끔’했는지 얼마 뒤의 초기화면은 좌우가 바뀌었다. 마치‘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의도였는지 궁금하다.
'당연히' 표절 논란이 식지 않자 이번에는 초기화면의 거인을 유령처럼 바꿨다. 하단의 석궁 모양 일러스트는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거인만 슬쩍 바꿔 넣은 듯하다. 그러나 게임 방식이나 게임 내 그래픽은 변하지 않
았다. 전형적인‘얼굴 바꾸기’다.
았다. 전형적인‘얼굴 바꾸기’다.
이쯤 되면 우습기까지 하다‘. 자이언트 러시’가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차단되자 타 게임과 비슷한 이름의‘다함께 샷샷샷’이라는 새 게임을 출시했는데, 이름과 그래픽이 달라졌을 뿐 같은 게임의 후속작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변화의 폭이 작았다. 결국 데브워커스는 이 게임마저 마켓에서 퇴출당하는 댓가를 치르게 됐다. 달리 보면, 원작자가 거액의 소송을 걸지 않은 것이 오히려 제작사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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