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 안철수 의원이 출사표 격으로 인용해 유명해진 이 말은 윌리엄 깁슨이 1993년 NPR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윌리엄 깁슨은 사이버펑크 문학 장르의 창시자이며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작가다. 이런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한 개념을 토대로 깁슨은‘메모리 배달부 조니’라는 소설을 썼고 영화화 했다. 이번에 소개할 코드명 J다.
김희철기자
김희철기자
내 머리의 저장용량은 160기가
현대인들은 초고속 인터넷 시대 속에서 수많은 데이터 속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저장장치도 같이 발전을 이뤄 2TB 급의 하드디스크가 과거라면 상상도 못했을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160기가라는 저장 용량은 어떻게 다가올까? 초고속 저장 장치를 대표하는 SSD도 기본 사양이 128GB로 출시되고 그것을 부족하다 느끼는 시대에 160기가의 저장용량은 그다지 큰 용량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18년 전인 1995년을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44MB플로피 디스켓을 사용했으며 650MB CD-ROM을 거대한 용량이라 말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160기가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용량이었다.
코드명 J는 1995년 개봉된 영화다. 사람의 두뇌 속에 정보를 담아 배달한다는 매력적인 SF설정을 기반으로 매력적인 배우를 캐스팅했다. 당시 전작 ‘스피드’로 인기를 모으고 있던 키아누 리브스, 액션으로 유명한 돌프 룬드그렌, 일본의 슈퍼스타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급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영화의 전개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엉성한 연출력으로 아쉬움만 남겼다.
영화는 대기업이 세상을 지배하고 신종 신경쇠약 불치병 NAS가 인류를 위협하는 디스토피아적인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런 사회악과 같은 존재인 대기업에 대항하는 ‘로텍스’라는 게릴라 단체가 결성된다. 로텍스는 무장 투쟁을 전개하며 대기업 컴퓨터에 침입해 정보를 빼내려 한다. 이런 게릴라 단체의 위협에 맞서 대기업은 확실한 정보보안이 유지되는 안전한 데이터 전송을 위해 네트워크 망이 아닌 사람의 두뇌를 이용한다.
두뇌에 데이터를 이식해 사람이 직접 운반하는 것. 이 데이터 운반을 담당할 사람이 주인공인 죠니. 죠니는 160기가까지 저장이 가능하지만 대기업은 320기가의 데이터 전송을 원했다. 결국 죠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삭제해 데이터를 받아들인다. 뇌가 허용하는 용량보다 많은 데이터를 받아들인 죠니는 빠른 시간 안에 데이터를 꺼내지 못할 경우 죽게 되는 운명에 처한다.
과거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에 엄청난 용량으로 다가왔겠지만 고용량 자료가 넘쳐나는 현재는 뇌 저장용량이 160기가라는 것이 귀엽게 다가오며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놓쳐서 안 될 포인트는 사람이 직접 데이터를 배달한다는 개념이다. 이것은 ‘향후 보안 산업이 생체적으로도 결합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낳는다.
망각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
두뇌에 메모리칩을 장착하고 싶다는 상상은 전국의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이라면 한 번쯤은 했을 법한 상상이다. 인간의 기억능력은 불완전하고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기억에 대한 의지와 꾸준한 노력이 없으면 시간이 갈수록 천천히 왜곡돼 결국 망각하게 된다. 코드명 J가 흥미로운 것은 이런 불완전한 사람의 두뇌가 직접 저장장치가 될 수 있다는 설정 때문이다.
CNN에 따르면 서던캘리포니아대와 웨이크포레스트대 등으로 구성된 미국 연구팀이 인간의 두뇌에 메모리칩을 이식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알려졌다. 뇌에서 기억이 형성되고 유지되는 방법을 연구 후 그대로 복제해서 재생산하는 메모리칩을 만들고 사람의 머리에 삽입해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것이다.
인체, 특히 두뇌에 기계를 삽입하는 것은 수많은 SF물에서 비인간적 미래 사회를 표현하기 위해 다루는 소재다. 기술의 발전이 잘못 사용되는 그런 미래상 때문에 거부감이 있을 수 있지만 이건 근본적으로 뇌치료를 위해 좋은 뜻으로 개발되는 만큼 반드시 연구에 성공해야 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연구는 궁극적으로 기억력 질환의 대표적인 병인 치매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상 현실의 진정한 첫걸음
야쿠자들에게 데이터가 들어 있는 머리를 잘릴 뻔했던 위기를 넘긴 죠니는 아름다운 보디가드 제인과 사람이 없는 컴퓨터 가게에 무단으로 침입한다. 책상 위에는 작업 중이던 하드웨어가 있었지만 우리의 쿨한 주인공 죠니는 내 것이 아니라 상관없다는 듯 책상 위의 기계를 상쾌하게 옆으로 밀어 떨어트린다. 이윽고 죠니는 제인이 가게를 뒤져 훔쳐온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와 모션 인식 컨트롤러를 손에 끼고 가상현실세계로 접속해 정보를 찾는다. 영화는 이 가상현실을 조작하는 장면을 시간을 들여 상당히 세심하게 다룬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가상 현실 자체가 호기심을 끌며 상당한 볼거리가 될 수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가상 현실은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번에 소개했던 가상현실 영화 ‘론머맨’ 편에서 다뤘던 장비 오큘러스 리프트. 이 오큘러스 리프트의 개발자 키트가 판매 시작된 것이다. 300달러의 나름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오큘러스 리프트를 체험한 사람이 많아졌고 국내 웹사이트에서도 이제 쉽게 후기를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3D 멀미라고 하지만 직접 체험해 본 사람들은 현장감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언리얼 엔진 4도 오큘러스 리프트를 공식 지원한다고 발표할 만큼 진정한 가상 현실을 구현해 줄 오큘러스 리프트에 대한 기대는 날이 갈수록 뜨겁다.
데이터 해독이 필요한 순간
영화 초반에 뇌에서 허용하는 용량 160기가를 초과해 320기가를 받아들인 주인공 죠니. 시간을 오래 끌면 과부화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된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죠니는 고통을 호소하며 필사적으로 머리 속의 데이터를 밖으로 내보내려는 데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특수한 암호화를 거친 죠니의 기억은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사진이 없으면 절대 꺼낼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상황을 해결해 줄 똑똑한 친구는 사람도 아닌 돌고래 ‘존스’다. 죠니는 존스의 도움을 받아 머릿속에서 암호화된 데이터를 꺼내게 된다.
영화 상에서 표현된 이 장면은 일종의 인코딩과 디코딩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죠니가 기억한 영상을 뇌 속에 저장하기 위해 특수한 이미지를 섞어 데이터를 변환해서 저장한 것은 일종의 인코딩이며, 그 인코딩 작업으로 죠니는 살아서 움직이는 ‘파일’이 되었다. 죠니에게 걸린 암호를 풀고 재생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돌고래 존스였고, 그것은 일종의 디코딩 프로그램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인코딩과 디코딩은 삶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표정으로 나타내는 것을 인코딩, 상대방의 표정을 보고 마음을 이해하고 추측하는 것은 디코딩으로 표현한다. 잔뜩 화가 난 얼굴로“화 안났어.”라고 말하는 여자친구를 빠르게 진정시키려면 무엇보다 재빠른 디코딩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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